“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지금의 룰루레몬은 위대하지 않다며, 창업자 칩 윌슨이 책 말미에 적어 놓은 문장이죠.
룰루레몬은 여성 에슬레저 시장을 열어젖힌 회사입니다. 1998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시작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0% 이상 성장하면서 여성 기능성 의류 시장의 95%까지도 장악했었죠.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칩 윌슨이 쫓겨난 2013년 회사의 주가는 48달러, 2021년 최고 주가 456달러, 2022년 12월 현재는 약 313달러로 여전히 5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토록 거대한 성취에도 창업자는 룰루레몬을 위대한 회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나 봅니다.
이전 글에서 리뷰했던 스타트업 드라마들(위크래시드, 슈퍼펌프드, 드롭아웃)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죠. 창업자가 쫓겨났고, 창업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에서 창업자가 얼마나 괴퍅한 인물인지를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룰루레몬 스토리'라는 책은 창업자인 칩 윌슨의 자기 자랑이자, 현재 경영진들과의 갈등을 창업자의 시선에서 격정적으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미사여구 없이 창업자의 사고방식이 거칠고 날서있지만, 동시에 묵직하게 느껴져서 책장을 쉬이 넘기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고난의 시간 동안 켜켜히 쌓인 경험들로 우러난 문장들은 중간중간 제 뇌를 후려치더랬습니다.
이사진과의 갈등 과정에서 얻는 교훈, 미디어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오해(‘뚱뚱한 여성의 체형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블룸버그에서의 인터뷰)와 같이 창업자가 쫓겨나게 된 과정에서 느꼈던 억울함도 절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좋은 스노보드 의류 회사를 운영했던 칩 윌슨이 룰루레몬을 어떻게 위대하게 만들어갔는지 3가지 포인트만 잡아보고 싶었습니다.
1.고객에 대한 집착
칩 윌슨은 이전에 운영했던 회사인 웨스트비치 스노보드에서부터 고객 중심의 사고를 했었습니다. 자신과는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청소년 고객을 위한 스노보드복을 만들었습니다.
“십대들이 즐기는 음악은 내게는 잘 맞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과는 분명한 세대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한 '슈퍼 뚱뚱이’ 웃을 다시 만들어보았다.”
“(중략) 그러나 이듬해 나는 이 교훈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다음 시즌에도 비슷하게 넉넉한 사이즈의 제품을 꺼내 그들에게 선보였다. 당연히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또 빗나갔다. 그들의 취향이 확 바뀐 것이다."
"(중략) 나는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원래대로 고집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그들이 옳았다. 크기를 줄이고 단식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었더라면 우리가 생산한 제품은 미친 듯 팔려나갔을 것이다.”
‘18년 간의 MBA’라고 스스로 명명한 웨스트비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룰루레몬에서는 훨씬 더 고객 지향적으로 변모합니다. 어찌 보면 핵심고객이 아닌 이들은 무시하는 정도까지 핵심 고객을 정교하게 생각하고 집중하죠. 몇 가지 사례를 볼까요?
“나는 옷이 나의 몸에 딱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활용하여 어떤 운동을 할 때,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하게 알고 나의 운동 능력에 도움을 주는 옷을 만들고 싶다. 심지어 주머니의 길이와 각도까지 도 철저하게 계산돼야 하고, 두 개의 고리를 달아 스마트폰을 걸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또 이어폰을 꽂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메고 다니는 배낭은 다양한 물품들을 넣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주머니가 구비되어야 하고, 칫솔과 손전등, 태블릿PC, 입술용 크림, 카드, 선글라스, 컴퓨터 코드, 펜, 비타민 등을 3초 이내에 꺼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건강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낫게하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서핑이나, 스케이트보드, 스노보드 관련 브랜드 사업을 할 때 부터 지켰던 기본 원칙은 힘든 길을 가더라도 전략적인 고객이 아닌 사람들은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브랜드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룰루레몬에서 사용한 전략이기도 하다.”
칩 윌슨은 완벽한 경영자라고 부르기 어려울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면밀히 살펴보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설정한 잠재 고객의 ‘페르소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야만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겁니다.
CNN과의 인터뷰는 칩 윌슨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룰루레몬이 ‘슈퍼걸'이라고 불렀던 고객을 상상해 왔는지에 대한 정수를 보여줍니다.
“룰루레몬은 콘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행과 유행,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여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33세나 31세 여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정한 고객만을 겨냥해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관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다른 여성들을 소외시킨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의미가 없다. 어떤 누구를 위해서도 만들지 않는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2.사회 변화에 대한 통찰
칩 윌슨은 분명 사회 변화에 대한 통찰이 있었습니다. 계산적이지는 않았지만, 피부로 느끼는 타임이라고나 할까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공략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즈음 그가 가졌던 생각들을 볼까요.
“요가를 시작했된 초기에는 내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잠시 묻어두려고 애썼다. (중략) 내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든, 안에서 솟구치는 아이디어로 인해 느껴지는 어떤 충동은 더욱 강해졌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스포츠업계에서 일어나는 유행의 파도를 5-7년 전쯤에 예측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세계는 종교의 영향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었다. (중략) 이전에는 주일 예배를 통해 누렸던 마음의 평화가 이제는 각자의 운동 실력을 키우고, 그런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얻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운동'이 '교회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는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통찰들에 기반해, 경쟁사와 비교해 선진적인 인력 고용 정책을 펼치기도 합니다. ‘여성'을 주요 타겟으로 하는 회사였기에 ‘여성'의 삶의 궤적과 함께하는 정책은 직원들의 직무 만족, 그리고 충성도를 높이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출산휴가를 제공하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6개월 이상 먼저 고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에서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1년 이상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서 그전에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그대로 다시 수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세상이 변하는 속도보다 회사의 성장 속도는 더 빨랐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직원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업무에 완전히 다시 적응하려면 3~4개월은 걸렸다. 유럽이나 캐나다에 비해 출산 휴가가 짧은 미국이나 아시아의 경쟁업체들과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우리는 우리의 시스템이 차질 없이 작동하게 하기 위해 비슷한 다른 회사에 비해 인건비를 10~15% 정도 더 지출했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2008년 리먼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서도 빛이 났죠.
“금융위기는 금방 끝났다. 우리 사업의 피해는 매우 가벼웠기 때문에 룰루레몬의 위기는 더 빨리 끝났다. 우리 회사는 캐쉬 카우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고, 부채는 없어야 하고, 항상 풍성한 현금을 은행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나의 원칙은 깨지지 않았다. 나는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미리 은행에 충분한 실탄을 쌓아 두고 싶었고, 그 덕분에 미래를 향한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3. 기업 문화에 대한 집착
이 책 내내 현재의 경영진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는 (본인을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이 가꾸어온 기업 문화를 파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 같습니다. 기업 문화를 통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했던 그의 비전이 조금씩 빛을 바래고 좋은 기업으로 내려앉는다고 느꼈기에, 그는 룰루레몬에게 실망하게 되죠.
칩 윌슨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걸맞게 ‘슈퍼걸'이라는 성취 지향적 여성을 ‘고객'이자 회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로 설정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고 서술합니다.
“나는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 품질 관리 플랫폼, 그리고 인재개발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놓고 회사를 떠났다. 룰루레몬의 기하급수적인 성장과 조직문화, 그리고 브랜드의 강점을 따라갈 만한 기업을 동종업계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것은 위대함을 선택한 직원들 때문이다. 룰루레몬은 기업의 이익보다 개인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실험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창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영입된 임원들을 위한 온보딩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그들에게 우리 회사의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책 3-4권을 선정하여 읽게 하라."
"그다음 하루 동안 매장에서 일하게 하고, 룰루레몬의 경우처럼 일반 직원과 동일한 교육 프로그램을 거치도록 하라, 비즈니스 모델이 작용하는 원리에 대한 이해, 회사의 추상적 언어에 대한 공감대, 가치, 매니페스토 등에 대한 이해 등 10가지 정도의 주제를 놓고, 충분한 토론의 시간을 마련하라. 기업이 돈을 벌어야 하는 숨겨져 있는 무의식적인 이유를 완전하게 이해하는지 확인하라.”
“랜드마크 포럼은 이처럼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행동에 관한 나의 해석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매장의 직원들을 ‘에듀케이터'라고 부르며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에듀케이터'들이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을 통해 고객과 더 깊은 소통을 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남성 위주의 스포츠 의류 시장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정책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기업 문화가 올바르게 작용한 가장 좋은 사례일 겁니다.
나가며
이토록 훌륭한 기업을 만든 칩 윌슨이지만, 역시 에슬레져 시장을 타겟으로 만든 가족회사인 킷앤에이스는 칩 윌슨이 룰루레몬의 이사회에서 배제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곳을 룰루레몬처럼 성공적인 회사로 만들어내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그의 독단적인 면모와 원활하지 않았던 미디어와의 관계들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기도 했죠.
책을 읽으며 칩 윌슨이라는 한 사람은 정말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스티브 잡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던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서 제 값을 받겠다고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고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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