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0세 생일을 맞는 테트리스
테트리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5억 2천 카피, 2022년 기준)이자, 지금까지 수 조원을 벌어들였으며, 매년 수 조회의 게임이 플레이되며,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가 3500만 개나 팔리게 만든 역사적인 게임입니다.
1984년 알렉세이 파지트노프(이하 파지트노프)가 그래픽 시스템조차 없었던 Elektronika 60 이라는 낡은 컴퓨터로 만든 이 게임의 판권이 헹크 로저스(이하 로저스)에게 넘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첩보 영화 그 자체였죠. 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2023년 3월 애플TV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마침 제가 애정하는 책인 <협상 가능>(Everything is negotiable)이라는 책을 오랜만에 다시 들고 자세히 읽던 중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로저스가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세 가지 장면이 보이더군요. 중요한 협상의 원칙을 잘 지켜냈던 2가지 장면, 그리고 절대로 범하면 안되었던 실수를 한 한 가지 장면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장면들에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숨어있으니, 영화를 한 번 보시고 읽어주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 가격 말고 패키지를 바꿔라.
왜 중요한가: 당신이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협상가에게는 양배추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의 사업가 로버트 스타인(이하 스타인)은 소련의 모든 지재권을 독점하는 국영 기관인 일렉트로노르그테크니카(엘로그)와 테트리스에 대한 컴퓨터 판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는 미러소프트에 해당 판권을 재판매하죠.
이 당시 게임의 라이선스는 3가지 기기에 대해 설정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컴퓨터, 가정용 오락기, 그리고 오락실용 오락기죠. 헹크는 가정용 오락기와 오락실용 오락기에 대한 일본 판권을 미러소프트에게 사들입니다.
로저스는 획득한 일본 판권을 닌텐도에게 제시합니다. 당시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던 닌텐도도 테트리스 게임을 보자마자 판권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게임을 당시 개발 중이었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에 이식할 계획을 세우죠.
하지만, 여기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실 스타인이 획득한 라이선스는 ‘컴퓨터’ 뿐이었던 겁니다. 당시 소련은 닌텐도라는 기업을 모를 정도로 오락기라는 것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기에 컴퓨터의 정의를 조금 애매하게 설정하게 되었고, 스타인은 해당 계약을 근거로 컴퓨터와 오락기에 대한 모든 판권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거래를 했던 거죠.
당시, 이런 문제를 깨닫고 로저스, 스타인, 미러소프트, 닌텐도, 그리고 당시 유명한 게임 회사였던 아타리와 세가까지 얽히고 설킨 복잡한 협상 타래가 이어집니다. 자금이 풍부했던 미러소프트에게 유리하게 협상이 흘러가려던 순간 로저스가 생각해 낸 결정적 장면은 바로 ‘휴대용 기기’에 대한 새로운 라이선스를 계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위 말은 모든 판도를 뒤집으며, 라이선스에 관심 있던 모든 사람이 소련으로 날아가 엘로그와 휴대용 저작권을 포함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더 높은 가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패키지를 제안하는 방식은 ‘협상 가능' 책의 이 문단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사거나 팔든, 지금까지 협상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조건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 수많은 변수 중에 당신의 가격을 방어해줄 조건이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맞교환할 수 있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따져보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2. 모든 계약은 재협상이 가능한 법이다.
왜 중요한가: 믿는 누군가가 당신을 완전히 기만하고 있었다면?
엘로그의 직원이자, 소련의 이익이 자신의 애국심이었던 니콜라이 벨리코프(이하 벨리코프)는 스타인이 테트리스 판권 계약의 애매한 조항을 이용해 오락기용 게임을 팔고 있음을 로저스를 통해 알게 됩니다.
오락기의 존재, 휴대용 판권의 가능성, 현재 계약의 문제점을 벨리코프에게 조목조목 설명한 로저스는 계약서의 맹점을 지적하죠. 오락기와 컴퓨터의 가장 큰 차이는 키보드의 유무에 있음을 설명하며, 스타인이 오락기 판권을 갖지 못하도록 컴퓨터를 재정의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로저스는 이미 서명된 계약서를 되돌릴 수 있겠나며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벨리코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타인에게 돌아가 컴퓨터를 재정의 하지 않으면 다음 협상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죠. 즉, 휴대용 저작권이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계약을 재협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재협상을 얻어내죠. 이 결정적인 장면을 통해 향후 로저스와 닌텐도가 획득하는 라이선스는 분란의 여지 없이 깔끔하게 계약됩니다.
‘협상 가능'의 한 마디만 더 볼까요?
"당신이 상대 쪽에 더 유리한 계약을 해지하려 하면, 상대는 문제가 되는 조항을 재협상하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상대 쪽에서는 계약 해지를 막으려고 지금까지 협상에서 숨겨왔던 유연성을 보이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3. 협상할 때 협박을 하지 마라.
왜 중요한가: 상대를 자극해서 보복을 부추기거나, 계약이 깨진다.
미러소프트의 회장이자 백만장자 로버트 멕스웰(이하 멕스웰)은 당시에 이미 조만장자에 가까운 부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의 친분을 이용하고, 당시 무너져 가던 소련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부정부패를 자행하던 발렌틴 트리포노프(발렌틴)에게 뇌물을 찔러넣으면서 스타인과 로저스를 위협합니다. 그리고 벨리코프와 파지트노프를 위협하며 로저스와의 계약을 방해합니다.
그러면서 테트리스의 휴대용 저작권을 콜리어 백과사전의 저작권(당시 약 200만 달러)과 맞교환 하는 계약을 체결하려 시도했고, 계약금 백만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당시 미러소프트는 현금 흐름에 큰 문제가 있었기에, 계약금을 지정된 날짜까지 지불하지 못하고 계약은 파기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스웰은 고르바초프가 내 친구고, 소련에는 돈을 줄 필요 없다고 이야기 하며,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합니다. 이 일은 벨리코프와 파지트노프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며, 발렌틴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테트리스 저작권을 공정한 계약 조건을 가져온 로저스와 계약하게 되죠.
이 장면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협상의 이해. 이번엔 두 마디 더 보태볼까 합니다.
“이 두 요소에는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모두 존재한다. 협박을 이행한다는 상대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고, 피해를 끼칠 능력이 강력하다면, 사람들은 러시아 최전방 작전에 넘어갈 것이다. 실제로 당신의 약점을 쥐고 있는 상대 앞에서는 아무리 저항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런데 상대가 정말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뭐하러 지금 당신과 협상을 하느라 힘을 빼고 있겠는가.”
“보통은 우리가 상대의 협박에 타격을 받는 만큼 상대도 이쪽의 반격에 타격을 받는다. 그러니 협박을 하더라도 상대의 즉각적인 순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건 놀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상대를 자극해서 보복성 협박을 부추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협박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은 '상대가 협박을 이행해도 상관없다'라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반전들과 긴박감이 가득했고, 비즈니스란 이렇게 흥미진진한(하지만 정말 살 떨리는)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협상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들이 그득했죠.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한 문장으로 뽑자면 바로 이겁니다. ‘협상 가능'에서 제시하는 협상의 정의 말이죠.
내게서 무언가를 얻기 원하는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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