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바이럴 됐던 게 벌써 2년 전 이야기 입니다. 저 때가 2번의 사업 아이템 피봇을 거쳐 에딧메이트 초기 PMF를 찾아가던 시기였는데, 지금은 에딧메이트도 2년 반이 됐습니다. 월 매출 2억 가까이 되는 서비스로 견고하게 성장 중입니다.
만 6년도 안 된 초보 대표지만, 가장 권위있는 국제 대회 상도 받아보고, 실리콘밸리로 플립도 해보고, 망해서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서 세 번 째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함께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예비 창업자와 아직 투자 유치 전인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미 사업을 잘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이 글이 별로 도움이 안될 수 있으니, 뒤로 가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투자유치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왜 실패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초기 창업자에게는 이 글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단순합니다.
사업계획서 쓰지 마세요!
사업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잠시 사업계획서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로 옮기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초기 창업자들은 다들 사업계획서부터 쓰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업을 결심하면 ‘사업계획서 쓰는 법’부터 찾아봅니다. 저도 예전에 창업을 준비하면서 6주 짜리 창업 교육을 들으러 다녔는데, 강의의 대부분은 사업계획서 쓰는 요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업계획서는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쓰는 문서입니다. 정부 과제나 지원 사업 등을 유치하기 위해 쓰기도 하죠. 넓게 보면 사업에 필요한 리소스를 확보하기 위해 쓰는 문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의 본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고객을 설득하고 고객에게 돈을 받아야 할 텐데, 왜 우리는 고객이 아닌 투자자를 설득하고 있을까요?
Q.“돈이 있어야 사람을 뽑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잘 되던가요? 1단계부터 잘 안됩니다. 대부분 투자유치에 실패합니다. 뇌피셜로 쓴 사업 계획은 투자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운 좋게 투자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3~4단계를 못 가서 또 위기가 찾아옵니다. 개발자들도 뽑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는데, 막상 시장에 나가니 잘 안 팔립니다.
저는 2016년에 삼성 출신의 탁월한 엔지니어들과 함께 험온이라는 인공지능 음악 앱을 만들었습니다. 운 좋게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5억 원이 넘는 씨드투자를 받았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호 처리 기술을 사용해 허밍을 실시간으로 악보로 바꿔주었고요. 클래식, R&B, 록 등의 장르를 선택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편곡을 해주는 신박한 앱이었습니다.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도 받고, 실리콘밸리도 진출하고, 다운로드가 200만 회 이상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 결국은 3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습니다.
이런 실패의 스토리는 스타트업의 숙명일까요?
10%도 안되는 성공률은 창업자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통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돈 받고 팔아보세요.
만약, 위와 같은 험온 사업을 이렇게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앱을 개발하기 전에 아래와 같은 문구로 랜딩페이지를 하나 만듭니다.
“단돈 10만 원에 작곡해드립니다. 프로포즈 할 때, 가족의 생일에 특별한 음악 선물을 해보세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카카오 녹음하기로 딱 10초만 허밍해서 보내주세요.
24시간 내로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만의 곡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실용음악 프로듀서 한 명을 섭외해서 7만 원에 곡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이 분들은 실력이 출중해서 1시간이면 충분히 좋은 곡을 만들어 내지만, 히트곡을 못 써서 돈이 궁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급 7만 원이면 이 분들에게 나쁘지 않은 아르바이트입니다. 이렇게 한 곡을 팔면 창업자는 3만 원을 벌게 됩니다.
의뢰가 늘어나면 작곡가를 더 늘리고, 의뢰가 더 늘어나면 고객 관계 관리(CRM)*과 업무 배분도 자동화 합니다. 하루에 10건 만 주문이 들어와도 안정적 수입을 내는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이 더 크다면, 투자를 받아 사업의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개발팀을 뽑아 허밍을 악보로 변환함으로써 작곡가들의 생산성을 향상하고, 자체 앱도 만듭니다. 허밍 데이터가 많이 모이면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 작곡 기능도 개발합니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면 리스크가 훨씬 줄어듭니다. 애초에 잘 안 팔리면, 뒷단의 채용, 앱개발, 기술개발은 안 해도 되니까요. 보통은 반대로 하다가 망합니다. 큰 돈 들여서 개발자 뽑고 앱부터 만듭니다. 뜬금없이 해외 진출도 시도합니다. 그러나 정착 제품이 안 팔려서 실패합니다.
위에서 얘기한 방법을 도식화하면 이렇습니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팔아보고, 매출을 만듭니다. 이렇게 시도하면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피봇이 쉽습니다.
매출이 생기면 투자를 받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투자를 안 받고도 사업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상태일 때, 사업계획서를 쓰면 아이디어만 가지고 쓸 때 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됩니다. 실제로 고객의 니즈를 매출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2년 반 전에 영상 편집 서비스 에딧메이트를 시작할 때 이런 원리를 적용해봤습니다. 아무것도 개발하지 않고, 랜딩페이지만 만들고 에디터 딱 한 명만 준비해서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첫 달부터 매출이 260만 원 가량 발생했습니다. 3년 동안 12억 원을 써서 만든 험온의 그 달 매출보다 더 높았습니다. 6개월 만에 월 매출 4천 만원을 돌파하고, 그 이듬해는 1억 원을 넘겼습니다.
프로덕트 마켓 핏(Product-Market Fit)을 찾고 나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매출이 저절로 늘었습니다. 회사 규모를 더 키우지 않아도 안정적 수익을 내며 운영할 수 있는 상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투자 유치를 선택했습니다. 작년 8월에 20억 원 투자를 유치하고, 개발 팀을 늘렸습니다.
사업 아이템의 가치를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
먼저 팔아보고 제품을 만드는 사업 검증 방법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일례로,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가 간편 송금 앱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루 만에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사람들의 수요를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사전예약이 며칠 동안 몇 만 건이 쌓이자 그때부터 토스 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토스의 첫 버전에서는 이승건 대표가 인터넷 뱅킹으로 8시간 마다 직접 송금했습니다.
모어랩스 이시선 대표도 미국에서 숙취해소 음료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랜딩페이지를 먼저 만들고 한 병에 5달러에 팔았습니다. 2,000달러 정도 주문이 들어오자 충분한 수요가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구매자들에게 재고가 없다며 환불해주고, 그 때부터 실제로 숙취해소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미국판 배달의 민족 도어대시(Doordash)도 시작은 간단한 랜딩페이지 하나였습니다. 스탠포드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었던 창업자들은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코딩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만에 웹 빌더로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식당의 메뉴판을 PDF로 넣고, 주문 전화번호를 올려놨습니다. 수요가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다가 전화가 오면 강의실을 빠져나가 배달을 하고 왔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 통씩 오던 전화가 두 통, 세 통으로 늘어나고, 도저히 수업과 병행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자 그들은 휴학을 하고 사업에 매진했습니다. 앱이 생기고, 배달부가 자동 매칭되기 시작한 건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나의 사업 아이템이 실제로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지 검증하려면, 팔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문조사나 구매 의향 같은 것들은 믿을 게 못됩니다. 진짜 정직한 것은 고객의 지갑밖에 없습니다. 고객의 속마음을 알고 싶으면 돈을 요구하면 됩니다. 돈을 요구했는데, 진짜 돈을 낸다! 그러면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찾은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초반부터 기꺼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는 마케팅 없이도 자연 성장합니다.
SaaS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발하기 전에 사전 주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진짜 문제를 건드렸다면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팔립니다. 저도 최근에 창업자의 설명만 듣고, 나오지도 않은 웹 서비스를 900달러나 주고 구매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사업계획서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
머리로는 이해해도 위의 방법을 실제로 실행하려고 하면 심리적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첫번째, 두려움 때문입니다.
초기 창업가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팔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하나 팔아 본 경험이 없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두렵습니다. 돈을 직접 요구하지 않기 위해, 웹이나 앱을 만들어 그 뒤에 숨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관성 때문입니다.
창업을 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익숙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리서치해서 문서 만들고, 누군가에게 발표하고 평가 받는 일 말입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늘 해오던 일이지요. 그래서 이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투자 유치 활동에 목을 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한 많은 노력이 수반됩니다. 면밀히 관찰하고, 만나서 얘기도 하고, 치열하게 고민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거절도 당하고, 쪽팔림을 무릅써야 할 일도 생깁니다. 골방에서 사업계획서를 쓰거나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에는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본질에 집중하면 투자는 쉬워집니다. 투자를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 문제해결이라는 본질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려면 아이디어 수준일 때부터 고객을 만나고, 먼저 팔아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설을 늦게 검증할수록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업에서 고객이 내 제품에 돈을 낼지 알아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가설 검증이 있을까요?
무자본 창업의 아이템이 대부분 지식서비스나 판매대행에 국한되어 있어서, 지향점은 좀 다릅니다. 그러나 먼저 팔아보면서 고객의 수요를 확인한다는 아이디어는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도 적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