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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를 길게 지어도 사람들이 짧게 부른다면? - 선등록 CIELO에 막힌 'O EL CIELO', 미국 심결

 

브랜드 이름을 짓다가 선등록상표에 걸리면 흔히 나오는 해법이 있다. 앞이나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이름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지역명을 더하고 관사를 붙이고 감탄사를 얹으면 그만큼 달라 보이니 등록도 받고 분쟁도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이 방식이 왜 자주 실패하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준 결정이 최근 미국에서 나왔다.

2026년 9월 3일, 미국 상표심판원(TTAB, 우리 특허심판원에 해당하는 기관)이 선례로 지정한 이 사건의 구도는 단순하다. 이탈리아 와이너리 Cielo e Terra가 2000년에 등록해 둔 자신의 상표 CIELO(와인)를 근거로, 멕시코 발레 데 과달루페의 와이너리가 2022년에 미국에 낸 O EL CIELO VALLE DE GUADALUPE(와인) 출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심판원이 이의를 받아들여 등록을 막았다.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에서 모두 '하늘'을 뜻하는 한 단어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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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선등록상표, 오른쪽이 출원상표. 심판부가 실제로 비교한 것은 흐려진 부분을 뺀 나머지였다."

 


심판부가 근거로 든 것은 출원인 자신의 웹사이트였다

출원상표는 맨 앞의 O, 정관사 EL, 핵심어 CIELO, 그리고 산지인 VALLE DE GUADALUPE의 네 덩어리로 되어 있었고, 이 중 산지 부분은 출원인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혀 둔 상태였다. 심판부는 맨 앞의 O를 두고 "출처를 표시하는 의미가 없는 감탄사로 보인다"고 정리했다.

그다음이 이 결정의 핵심이다. 심판부는 출원인 자신의 웹사이트가 그 와인을 "El Cielo Wines"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수요자가 바에서 이 와인을 주문하거나 입소문으로 추천할 때 네 덩어리를 모두 발음하는 대신 "엘 시엘로"로 줄여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라벨을 보아도 "El Cielo"가 위아래의 다른 글자들보다 크고 눈에 띄는 필기체로 올라가 있었다. 요부를 심판부가 상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출원인이 시장에서 이미 그렇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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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부가 인용한 것은 출원인 자신의 웹사이트 표기였다.”


출원표장이 표준문자로 출원된 점도 방어를 어렵게 했다. 표준문자 상표의 권리는 글자에 있지 특정한 표시 태양에 있지 않으므로, 서체나 색상, 크기를 달리 쓴다는 사정으로 상대 상표와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남은 것은 EL CIELO였고, 이것이 2000년에 등록된 CIELO와 마주 서게 되자 지정상품이 양쪽 모두 와인이라는 사정이 더해지면서 혼동 가능성이 인정됐다.

눈여겨볼 것은 판단의 재료다. 심판부가 본 것은 출원서에 적힌 글자의 개수가 아니라 그 이름이 매장과 식당에서 어떻게 불릴 것인가였고, 상표를 종이 위에 나란히 놓고 비교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 올려놓고 비교한 셈이다. 덧붙여 이 이의신청인은 최근 2년 사이에도 CIELO가 들어간 미국 출원 여러 건에 연달아 이의를 제기해 왔는데, 한 단어를 브랜드의 중심에 놓은 기업이 그 단어의 주변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요부관찰도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 판단 구조는 한국 실무에 낯설지 않다. 우리가 요부관찰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

대법원은 요부를 "일반 수요자에게 그 상표에 관한 인상을 심어주거나 기억·연상을 하게 함으로써 그 부분만으로 독립하여 상품의 출처표시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정의하고, 요부인지를 가릴 때에는 그 부분의 주지·저명성과 수요자에게 주는 인상의 강도, 전체 상표에서 차지하는 비중, 다른 구성 부분과 비교한 상대적 식별력, 결합의 상태와 정도, 지정상품과의 관계, 그리고 거래실정을 함께 본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정의의 한복판에 놓인 것이 수요자의 인상과 기억이라는 점에서, 미국 심판부가 맨 앞의 O를 두고 출처를 표시하는 의미가 없다고 한 판단과 우리 법리가 요부를 "출처표시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상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부분이 수요자에게 출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그저 붙어 있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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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정의한 요부. 기준의 중심에 수요자의 인상과 기억이 놓여 있다.”


두 나라의 작동 방식이 포개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요부관찰이라는 이름의 단계를 따로 두고 식별력이 약한 부분은 요부가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반면, 미국에는 그런 이름의 관문이 없고 상표 전체가 주는 인상을 판단하면서 어느 부분에 더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같은 일을 처리한다. 결론에 이르는 경로와 관문의 수가 다를 뿐, 판단의 바닥에 깔린 질문은 하나인 셈이다.

이 구조는 국내 상표 실무에서 매일 작동한다. 지역명과 보통명사를 붙여 만든 이름이나 영문 브랜드에 업종어를 얹은 이름이 심사에서 갈리는 지점이 대부분 여기이고,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히 달라 보이는데 요부만 대비하면 선등록과 겹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검토 단계에서 요부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검색식이 달라지고 검색식이 달라지면 나오는 결과가 달라지므로, 이름을 확정하기 전에 요부를 먼저 정해 두어야 한다. 요부를 전체 이름 그대로 잡아 검색하면 선등록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그 상태로 출원했다가 심사 단계에서야 같은 지점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 실제로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네이밍 회의에서 물어야 할 질문

선등록을 피하려고 이름을 늘리는 방식이 늘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덧붙인 부분이 그 자체로 식별력을 갖고 수요자의 기억에 남는다면 전체가 하나의 다른 이름으로 작동할 수 있고, 오랜 사용으로 그 이름이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면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그런 사정은 주장하는 쪽이 증거로 보여야 하고, 매출과 광고와 유통 경로, 소비자가 실제로 그 이름을 불러 온 기록 같은 자료는 분쟁이 시작된 뒤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출원인의 웹사이트가 반대 방향의 증거로 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브랜드가 스스로 남기는 기록이 어느 쪽으로든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브랜드라면 한 겹을 더 봐야 한다. 이름이 어떻게 줄어드는지는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언어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정관사가 붙은 EL CIELO가 통째로 하나의 호칭으로 묶인 것도 스페인어를 쓰는 시장의 사정이고, 같은 이름이 다른 언어권에 들어가면 끊어지는 자리가 달라질 수 있다. 국문 브랜드를 영어권에 내보낼 때 앞 두 음절만 남는 경우나 알파벳 표기를 현지식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각 시장에서 실제로 불릴 이름을 먼저 적어 보고 그 이름으로 검색해 보는 편이, 진출 이후에 권리를 다시 설계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그래서 네이밍 회의에서 손님이 이 제품을 주문할 때 실제로 어떤 소리를 낼 것인지, 그때 남는 음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음절이 이미 남의 등록상표인지를 먼저 정리해 두면 상표 검색의 정확도부터 달라진다. 출원 이후에 확인할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길게 지은 이름 가운데 어느 부분에 권리를 주장할 것인지, 그 부분을 실제 라벨과 광고와 홈페이지에서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점검해 두어야 한다. 등록부에 적힌 이름과 매대에서 불리는 이름이 어긋나 있으면, 분쟁이 생겼을 때 기업이 지키려는 부분과 판단기관이 들여다보는 부분이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게 된다.

당신의 브랜드는 소비자의 입에서 몇 음절로 줄어드는가. 그리고 그 몇 음절은 지금 누구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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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태균 파트너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들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48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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