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첫 줄에 적은 문장입니다. 창업 판에서는 이 문장이 거꾸로 읽힙니다.
서점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리스트 앞을 가보세요. 성공한 회사 이야기가 스무 권쯤 꽂혀 있는데 성공한 이유도 스무 개입니다. 꾸준함이 답이라는 책 옆에 속도가 답이라는 책이 있고 하나만 파라는 책 옆에 하나만 파다 죽는다는 책이 있습니다. 반면 망한 회사 이야기는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않으며 나와도 망한 이유가 대개 비슷합니다. 돈 없어서 망했다거나 시장이 그 물건을 원하지 않았다거나.
행복한(성공) 회사가 제각각으로 보이고 불행한(실패) 회사가 죄다 붕어빵으로 보이는 겁니다. 둘 다 잘못 본 겁니다.
사무실에 온수 욕조가 있고 회의 중에 대마 냄새가 나던 아타리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망했으면 그 욕조는 방만 경영의 문제로 지적됐을 겁니다. 안 망했으니 자유로운 조직 문화의 상징이 됐죠. 이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성공을 뜯어보는 일은 이런 이유로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살아남은 회사가 한 짓은 전부 무죄입니다. 죽었으니 유죄입니다. 결정적이었던 것과 그냥 옆에 같이 있었던 것이 구분이 안 돼요. 창업자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 것도, 팀을 스무 명으로 제한한 것도, 로고를 파란색으로 한 것도 전부 성공 요인 목록에 오릅니다.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거든요. 그렇기에 성공한 회사에 자문을 구하면 그 회사의 노하우를 듣는 게 아닙니다. 그 회사가 살아남은 뒤에 스스로에게 붙인 해석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나가던 회사가 망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못하던 회사가 망하면 배울 게 없습니다. 죽게 만든 용의자들이 너무 많아서요. 물건도 시원찮고, 마케팅도 못했고, 돈도 없었다면 그중 뭐가 죽였는지 알 도리가 없죠. 그런데 물건도 좋고 콘텐츠도 잘 만들고 돈까지 있던 회사가 죽으면 잘한 항목들이 하나씩 용의선상에서 빠집니다. 다 빼고 남는 게 진짜 사인입니다.
사망진단서에 제일 자주 적히는 사인은 사인이 못 됩니다
잘 나가다 실패한 회사를 왜 부검해야 하는지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진짜 사망진단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씁니다. 이 종이 한가운데에 사인을 적는 칸이 네개가 있습니다.
맨 위에 마지막 원인을 적고 그 아래에 그 원인의 원인을, 또 그 아래에 그 원인의 원인을 적게 돼 있어요. 죽음까지 이어진 인과의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설계입니다. 그런데 이 칸에 아직도 자주 적히는 단어가 심폐정지입니다. 심장과 폐가 멎었다는 뜻인데 죽은 사람은 전부 심장과 폐가 멎었죠. 죽음의 정의를 사인란에 옮겨 적은 것이라 이 네 글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망한 스타트업의 죽은 이유의 1위는 시장이 그 물건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쌀로 밥 짓는 말입니다. 안 팔린 회사는 전부 시장이 안 원해서 안 팔렸다는 건 심폐정지와 같은 층위의 문장입니다. 단골 2위는 자금 고갈이라고 합니다. 이건 더 합니다. 망한 회사는 예외 없이 돈이 떨어져서 문을 닫습니다. 안 떨어졌으면 안 망했을 테니까요. 둘 다 거짓말 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값이 “0”으로 그냥 둘 다 죽음의 마지막 “장면”일 뿐입니다.
대중 미디어는 성공과 실패를 장면으로만 다룹니다. 원인을 파고 들수록 인지 비용이 증가하고 대중은 버거워하게 됩니다. 그럼 관심을 못받죠.
시장이 서는 것과 파는 것은 의외로 남남입니다
프콘핏 두번째 레터에서 이렇게 끝을 맺었죠. “콘텐츠를 올리면 시장이 섭니다.”
시장의 원자가 콘텐츠라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시장 세우는 법을 배우면 될 것 같은데, 장사를 해보신 분이라면 여기서 하나 걸리실 겁니다. 시장이 서는 것과 파는 것은 다른 일이거든요. 오일장 한복판 목 좋은 자리를 잡아놓고 좌판에 올릴 게 없는 장사꾼이 있고, 물건은 기가 막힌데 시장이 어디 서는지 몰라 평생 등에 지고 도는 장사꾼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두가지로 나뉩니다.
- 나는 시장을 세울 줄 아는가?
- 세운 시장에 내다 팔 내 물건이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동시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상태는 프로덕트 콘텐츠 핏이라고 부릅니다.
프로덕트 콘텐츠 핏, 줄여서 프콘핏은 제품이 콘텐츠 단위로 쪼개져 있어서 조각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형태의 시장을 세우고, 그 시장에 팔 물건까지 조각 안에 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조각 열 개가 같은 시장을 열 번 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열 개의 시장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여기가 프로덕트 마켓 핏과 다른 지점입니다.
마켓 핏에서 시장은 하나입니다. 간판 하나, 시장 규모 슬라이드 한 장, 타겟 고객 한 명입니다. 반면, 프콘핏에서 시장은 콘텐츠 게시물 수만큼 있습니다. 허리 아픈 사람이 서 있는 장과 원룸에 침대를 못 놓는 자취생이 서 있는 장은 구경꾼이 안 겹치거든요.
블랭크는 임차인 중에 제일 잘나가는 임차인이었습니다
2016년 2월에 블랭크TV라는 회사가 생겼습니다. 나중에 블랭크코퍼레이션으로 뒤에 TV를 때고, 회사를 붙인 곳 입니다.
여기서 판매한 물건 목록을 읽어드리면 대부분 들어보셨을 겁니다. 마약베개와 악어발팩과 블랙몬스터 다운펌과 퓨어썸 샤워기 등 인터넷을 휩쓸었습니다. 2016년에서 2018년 사이에 페이스북을 하셨다면 이 물건들 영상을 최소 한 번은 끝까지 보셨을 텐데, 끝까지 봤다는 게 중요합니다. 당시 이 회사 영상은 일반 광고처럼 안 생겼거든요.
일반인이 제품을 써보는 장면을 찍어 소셜 피드에 흘려보내고 엄지가 멈춘 사람을 자체 사이트 결제창까지 데려오는 구조였습니다. 블랙몬스터 영상 하나는 제목이 "처음 꾸며본 남자들의 흔한 착각"인데 러닝타임 내내 제품을 사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꾸미기 시작한 남자가 저지르는 실수를 늘어놓다가 그냥 끝나요. 그렇게 악어발팩이 141만 개, 마약베개가 100만 개 넘게 팔렸습니다.
창업자 남대광 대표의 자기소개가 정확했습니다. 남대광 대표는 자기 회사를 미디어커머스라고 부르는 대신 디지털 방문판매 회사라고 불렀어요. 초인종을 누르는 자리에 엄지를 세워뒀을 뿐이라는 겁니다. 매출이 2016년 41억 원에서 2017년 478억 원, 2018년 1,200억 원대로 뛰었고 그해 순이익이 123억 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콘텐츠로 물건 파는 법을 배우려던 사람들은 전부 이 회사를 봤고, 미디어커머스라는 말이 업계 용어가 된 것 자체가 이 회사 덕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9년, 매출 증가율이 4%로 내려앉고 영업손실 89억 원이 찍힙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흔한 답은 이렇습니다. 카피 제품이 쏟아졌다, 유행이 지났다, 과대광고 경고를 받았다. 셋 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셋 다 심폐정지 층위의 문제입니다. 잘 팔리던 물건이 덜 팔리게 된 장면의 묘사이지 이유가 못 됩니다. 이유를 보려면 이 회사가 서 있던 자리의 임대료를 봐야 합니다
2016년의 페이스북은 장사꾼에게 다시 오기 힘든 틈이었습니다. 타겟팅은 정밀한데 그 자리를 놓고 입찰하는 광고주는 별로 없던 시기였어요. 대기업 마케팅 예산은 여전히 네이버와 방송에 묶여 있었고, 페이스북 광고 계정을 열어본 한국 회사가 손에 꼽히던 때입니다. 같은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눈길”이 역사상 가장 많던 시기였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블랭크의 폭발은 좋은 영상과 이 헐값 임대료가 만난 결과였습니다. 회사가 밝힌 최초 고객 인입 채널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60%였으니 이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그 임대료 위에 서 있던 셈이죠.
문제는 이 임대료가 경매로 정해진다는 겁니다. 마약베개가 100만 개 팔렸다는 소식은 시장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저 자리에 서면 베개가 100만 개 팔린다. 그러면 같은 자리에 입찰자가 몰리고 값이 오릅니다. 카피 제품이란 결국 내 옆자리에 새로 앉겠다고 손 든 입찰자입니다. 그러니까 카피가 쏟아져서 죽었다는 진단이 심폐정지처럼 들립니다. 진짜 사인은 오른 임대료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죠.
이것이 이 회사에서 배워야할 첫 번째 진실입니다.
여기서 남의 장에서 장사하는 일의 본질이 나옵니다. 내 손익계산서의 제1변수가 내 실력에서 임대료로 바뀝니다. 실력이 작년과 똑같아도 옆자리 입찰자가 늘면 마진이 죽어요. 반대로 잘나갈 때의 실적에도 헐값 임대료 몫이 섞여 있는데 회사는 그걸 실력 몫으로 회계처리합니다. 본인들도 그렇게 믿고요. 이 회사의 전성기가 페이스북 광고가 쌌던 시기와 겹치고 꺾인 시점이 그 자리의 입찰자가 불어난 시기와 겹치는 건 우연이라기엔 너무 맞는 구석이 많습니다.
같은 해 남 대표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종속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페이스북이 시들어도 사람이 몰리는 길목은 반드시 생길 테고 자기들은 그 길목에 서겠다고 답했어요. 길목이 중요합니다. 이 단어가 이 회사의 지도입니다. 길목은 서는 자리이지 소유하는 자리가 못 되거든요. 길목에는 임대인이 있고 임대인은 세를 올립니다.
광고 경매는 돈 많다고 이기지 않습니다
임대료가 경매라는 말을 조금 더 정확히 풀겠습니다. 이걸 모르는 분이 의외로 많고, 모르면 다음 이야기가 안 통합니다.
네이버에서 이혼 소송을 검색한 사람 한 명의 눈길을 놓고, 그 눈길을 사고 싶은 변호사들이 실시간으로 경매를 붙습니다. 낙찰가가 그날의 광고비입니다. 네이버 파워링크의 업종별 클릭당 비용을 보면 경쟁 센 키워드의 모바일 상위 기준으로 법률이 5만 원에서 10만 원, 병원이 1만 원에서 4만 원, 창업 관련 키워드가 1만 원에서 4만 원, 그리고 식품이 1천 원에서 3천 원입니다.
클릭 한 번에 10만 원인 셈이죠. 상담이 잡힌 것도 수임이 된 것도 없이 그냥 눌러본 값입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백 명이 누르고 한 명이 상담을 오면 상담 한 건에 천만 원을 쓴 셈입니다.
그런데 이 경매에는 보통 경매와 다른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제일 높은 값을 부른 사람이 이기지 않습니다. 플랫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이 사람들은 도달 수 당으로 돈을 버는데, 아무도 안 누르는 광고를 비싸게 판 자리는 결국 빈 자리거든요. 그래서 낙찰 점수를 이렇게 계산합니다. 입찰가 곱하기 예상 반응률입니다. 열 명 중 한 명이 누를 광고를 만든 사람은 백 명 중 한 명이 누를 광고를 만든 사람보다 훨씬 낮은 값을 불러도 이깁니다.
블랭크가 초반에 무섭게 이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광고처럼 안 생긴 영상은 반응률이 높고, 반응률이 높으면 같은 도달을 남들보다 싸게 삽니다. 좋은 콘텐츠가 임대료를 깎아주는 구조예요. 이건 진짜 실력이었습니다.
다만 이 할인권에는 유효기간이 붙어 있습니다. 같은 영상을 계속 돌리면 반응률이 떨어져요. 봤던 사람이 또 보면 안 누르니까요. 업계에서 소재 피로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그래서 광고 소재는 반복적으로 쓰는 자산이 아니라 쓰면 없어지는 소모품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적용해야할 두 번째 진실입니다.
프콘핏 웹북에서는 이 소재 피로를 없애는, 콘텐츠 무한 생산법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의외로 간단한 건데 첫단추를 잘못 꿰고 있어서 생긴 일이거든요. 지난 2년 동안 최상급의 데이터를 축적했고 30만 자 분량의 프콘핀 이론을 완성했고 이제 곧 3가지 결과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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