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 혹은 대표라면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이 모두 적극적인 오너십을 바탕으로 일하며 결과를 내주길 바랄 겁니다. 마치 모두가 대표인 것처럼 일하는 조직이죠. 그러면 어떻게 회사가 시스템적으로 각 팀원이 강력한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이 용어를 ‘개념’화 하기 시작한 것은 애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업무의 책임자를 두기 위해 DRI 개념을 썼어요. 잡스가 이 개념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런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마케팅 팀에서 A라는 전략을 도출하여 실행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많이 좋지 않았다. 전략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해준 팀장이 잘못일까? 전략을 구상했던 팀원의 전략이 잘못된 것일까?”
잡스는 이렇게 봤다고 해요.
“아니. 마케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마케팅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내려야지, 왜 마케팅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 상위 직급이라는 이유로 마케팅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거지?”
그때부터 잡스는 애플에서 특정 업무에 관해 가장 전문적인 인력이 매니저가 되도록 설계하고, DRI라는 의사결정 프레임 워크를 사내에 전파했습니다. 애플 아이팟 팀에서 프로덕트 오너(PO)를 맡았던 글로리아 린은 DRI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활동을 소화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사람들이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 중요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 일이 자기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정말 신경 쓰고 챙기게 될 거에요.”
DRI의 3가지 변수 : 결정, 실행, 책임
이렇게 보면 DRI는 3가지의 변수가 맞물려서 작동되는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DRI의 핵심은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과 = 실행하는 사람과 = 그 실행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맡아야 하는 사람’을 동일하게 두는 방정식에서 탄생합니다.
예를 들어 광고 예산에 DRI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번 달 광고 예산 우선 순위를 페이스북에서 네이버 키워드 위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상황에서 주변 팀원 또는 대표가 오히려 네이버보다 페이스북이 지금 더 낫다는 주장을 펼치더라도(반대 의사), 의사 결정은 광고에 DRI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내리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맞든 틀리든 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고요. 이렇게 되면 해당 업무를 본인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더 책임감을 가지게 될 겁니다.
이때 DRI를 잘못된 방식으로 만들어 가는 회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책임”이라는 영역을 “탓”을 정하는 것처럼 여기는 방식입니다. 마치 “그래요. 당신이 결정하세요. 근데 잘못 되면 당신이 책임지세요”라고 하는 거죠. 팀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일으키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팀원들이 큰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의사 결정을 회피하게 되고 실패하지 않는 지엽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할 우려가 있습니다.
DRI에서 “책임”의 영역은 “탓” 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를 정하는 관점입니다. 결국 스타트업에서 내리는 의사결정들은 기본적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구조로 가기 때문에 틀리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더 높습니다. 그래서 의사 결정의 비용을 싸게 가져가면서(=린스타트업)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책임’은 잘못을 뒤집어 쓰는 개념이 아니라 이 의사결정에 대한 배움의 주체가 책임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다음에는 더 잘할 테니까요.
물론 한 번 배우고 끝나는 식이어선 안 됩니다. (스타트업은 학원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스터디하고, 주변으로부터 피드백 충분히 받고, 이를 바탕으로 책임감 있게 의사결정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DRI를 가진 사람은 대표 포함 그 누구보다도 본인의 영역에서 가장 똑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DRI를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런 팀 의사결정의 구조를 만들게 되면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결정해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옳은 의사결정들을 더 많이 축적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이게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쉽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일이 조직에서 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우리 조직은 DRI가 실무자에게 있다’고 했으면서 왜 나는 당신을 설득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나요? 답정너 아닙니까?”
보통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팀원이 아직 회사가 DRI를 줄만큼 신뢰를 못했는데, 본인이 DRI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 고객이 원하는 니즈와 검증된 논리적인 가설을 통해 조직에 의사결정을 전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혹은 강한 주관을 통해 계속해서 일을 끌고 가는 경우
1번은 조직 내에서 명확하게 DRI가 누구에게 있는지 정해야 합니다. 2번은 질문을 통해 계속 논리적인 구조가 강화될 수 있는 사고 방식으로 일하게끔 도와줘야 하고요.
2번에서 계속 억지를 부린다면 (논리적 구조에 의한 토론이 아니라 ‘왜 내 말을 안들어주냐’, 개인적인 찬반에 대해 포커스하는 사람) 함께 가기 어렵겠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팀 내에서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겁니다.
위 상황과 관련해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은 사실 대표입니다. 대표는 사실상 초기에 회사 모든 업무의 C레벨이기 때문에 위 상황을 가장 많이 맞닥트릴 겁니다.
물론 채용 퀄리티가 높다면 대부분 팀원들이 DRI를 가지고 일을 할 겁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DRI를 가진 팀원들의 권한을 뛰어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대표만 직관적으로 이걸 알아채는 경우들이 더러 있어요. 이때는 대표도 답답할 수 있어요. 논리적으로 최대한 설득하고 싶지만, 동물적으로 느껴지는 직관을 설명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경우 ‘이번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합니다. 조직 내에서 ‘와일드 카드’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DRI는 해당 담당자가 갖고 있지만, 전사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면 (미안하지만) 담당자의 DRI를 대표가 아주 가끔은 꺾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대표는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충분히 미안하게 생각해야 되고, (그게 진심으로 표현돼야 합니다). DRI 담당자 또한 ‘그래. 대표가 평소에는 나를 많이 신뢰하고 밀어주니까 이번 한번은 이렇게 해가는 게 좋다’고 숙고해줘야 합니다.
DRI 프레임워크로 일할 때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괜히 DRI 줬다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다는 지레짐작으로) 조직의 의사소통을 수직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결정은 수직이 맞습니다. 그러나 소통 자체도 수직적으로 하면 사람들이 말을 꺼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진정 위대한 조직은, 의사는 수평적으로 하고 결정은 수직적으로 하는 구조에서 탄생합니다.

글을 마치며
과거 슬픈 역사 중에 ‘노예 무역’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 노예들에게 가장 불행했던 일은 맛있는 걸 먹을 수 없고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유 의지’(free will)가 완전히 박탈된 상황이 극도로 스트레스였다고 해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겁니다. 즉, 스스로 생각한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가장 근원적인 욕구를 DRI 형태로 팀원들에게 제공한다면 팀원들은, 엄청난 보상 자체보다도 내가 다니는 곳을 나의 회사라고 느끼며 대표처럼 오너십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좋다면 팀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상을 하면 됩니다.
다시 한번 글을 정리해보면
- 채용 퀄리티가 높아야 DRI 구조로 일하기 수월합니다. (오너십을 가지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열정과 똑똑함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에)
- DRI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해당 업무에 대해서 가장 높은 역량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 DRI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치열한 피드백을 받아드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인이 결정하는 것은 맞지만 피드백 자체를 거부하고 설득에 힘들어하는 건 프로가 아닙니다. 설득도 실력입니다. 우리는 같이 “팀”으로 일하는 곳이죠. 협업해야 합니다.
- 회사에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DRI 가진 사람을 믿어줘야 합니다. 설사 그 결정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틀려봐야 그 사람도 압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죠. 회사는 학원이 아니지만 팀원들도 결국 성장해 나아갑니다. (팀원들은 이런 기회를 주는 회사를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요.)
- DRI는 사내 창업가들을 육성해낼 수 있는 의사결정 프레임워크입니다. 모두가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는 회사를 꿈꾼다면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DRI를 끈기있게 시스템으로 만들어나가 봅시다.
오늘의 QnA
Q.우리 조직에는 DRI를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요?
DRI에서 책임은 ‘탓’ 할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라는 것이 매우 와닿았습니다.
저도 회사에 다닐 때 특정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 실행, 책임을 모두 맡아야 했는데 이 때 '나는 그거 잘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추진해' 라는 식의 방관에 가까운 상황에서 의사결정과 실행을 하다 보니 책임 부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물론 상사분께서 '문제 생기면 네가 다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그 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더라면 좀 더 오너십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고, 제가 창업하게 된다면 책임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려주어 책임감은 가지되 부담은 덜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책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