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아티클
#팀빌딩 #마인드셋 #기타
사업가는 사기꾼과 정말 다른가

[아티클 한 눈에 보기]

1.사기꾼을 연사로 초청한 하버드
2.선을 넘어야 하는 창업가의 숙명
3.“해낼 때까지 속여라”의 위험 신호
4.사업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장치들
5.‘사기꾼이랑 뭐가 다르냐’ 묻기 전에

 


 

‘사기꾼을 초대한 하버드’

이 헤드라인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MBA)에서 올 상반기에 특강 연사로 사기 전과자를 초청했다는 보도다. 

사기꾼의 이름은 애나 소로킨. 아니, ‘애나 델비’(Anna delvey)라고 불러야 할까.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 속 그 애나다. 다시 부상한, 화려했던 사기꾼 이야기의 주인공이 연단에 오르는 것이다. 

 

드라마 <애나 만들기>의 실존인물, 애나 소로킨

 

경영대학원에서 왜 범죄자를 강연자로 부르는 걸까. 진짜로 사기 수법을 배우기 위해 범죄자를 초대한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사업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이 둘 사이에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걸. 당장 ‘사업가와 사기꾼의 차이’라고 검색했을 때 ‘유니콘 대신 사기꾼이 된 사업가’라는 보도가 뜨는 현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테라노스’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피 몇 방울만으로 암, 당뇨 등을 포함한 240여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이 주장이 허위로 밝혀지면서 그 피해가 일파만파 퍼졌던 사건이었다.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으로도 불리는 테라노스 사태 중심에 있던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2022년 11년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회사의 주력 제품인 에디슨에 대해 환자와 의사들에게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회사 실적을 과장하는 사기 행각을 벌여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들이 인정됐다.

 

 

이후 테라노스 사건은 ‘거짓된 혁신’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학자금 대출 중개 스타트업 프랭크(Frank)의 창업자 찰리 제이비스에 시선이 쏠렸다. 그의 스타트업을 인수했던 JP모건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 고객 리스트를 만들어 실적을 부풀렸다는 혐의다. 이 사건이 ‘제2의 테라노스 사건’으로 귀결될지 지켜봄 직하다. 

와튼 스쿨 출신으로 알려진 제이비스는 미국의 복잡한 학자금 대출 문제를 파고들어 프랭크를 창업했다. 학자금 대출 대상자들을 가로막는 문제들, 이를 파고드는 프랭크의 문제의식 자체는 확실히 심각했다. 프랭크의 방식에 의구심을 품거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2021년 9월 JP모건이 1억7500만 달러에 프랭크를 인수했다.

JP모건 측은 인수합병이 마무리된 후에야 “재앙”을 발견했다. 40만개 이메일에 학자금 대출 마케팅 메일을 보냈는데, 수신자가 있는 이메일이 불과 28%뿐이었다. 그나마 메일을 받은 수신자 중에서도 프랭크 웹사이트로 전환된 경우는 더 적었다. 제이비스는 곧 해고됐지만, “이미 완료된 거래를 JP모건이 취소하려는 음해”라고 맞서고 있다. 

 

‘포브스가 주목한 인물’로 선정돼 유명세를 얻었지만 구설수에 오른 창업가들. 출처 : 포브스

 

선고가 내려지기 전, 엘리자베스 홈즈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측 변호인단은 홈즈의 가택 연금형을 요청했다.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 지방법원 에드워드 다빌라 판사는 홈즈를 “뛰어난” 사업가라고 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사기로 인한 실패는 옳지 않다.” 

변호인단은 홈즈가 사람들을 돕고자 “선의로” 사업해왔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주목한다. 세상에 없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업에 도전하는 창업가에게 다빌라 판사의 말과 변호인단의 주장은 각기 다른 울림을 준다. 사업가는 정도를 걸어야 함을, 그럼에도 유혹과 잘못된 판단, 거짓의 탑이 그림자처럼 일렁일 수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창업이라는 분야에서 도전과 실패는 일상이다. 비전을 바라보며 혁신의 꿈을 먹고 자란다. 그걸 믿고 기대하며 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면면들이 사기와 동일할 순 없다. 다만 무엇이 사업가로 하여금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매일 생존과 성장과 도약을 동시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경종이 될 내용이다.

어쩌면 하버드에서 사기꾼을 섭외한 이유 또한 비슷하지 않겠나. 어떻게 이런 사기꾼을 구분해 경계할지 알기 위해, 무엇보다 스스로 건강하게 비즈니스를 일구기 위해 반면교사를 삼는 게 아닐까. 아무 교훈 없이 출혈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교훈이다. 

사업가와 사기꾼은 한 끗차이면서도 하늘 땅 만큼 다르다. 기업가를 이해한다면, 그들이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며 주시할 때 ‘제 N의 테라노스 사건’을 줄일 수 있다. 이번 글도 타산지석에 초점을 맞춘다. 창업가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어떻게 올바름을 구해낼 수 있나. 그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사기꾼을 연사로 초청한 하버드

 

일단 애나 소로킨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결고리로 말문을 연다. ‘애나 델비’로도 불리는 이 문제적 인물은 뉴욕 상류층에 파문을 일으킨 가짜 상속녀 사건의 주인공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6000만 달러 규모 자산을 가진 독일계 자산가의 상속녀 행세를 하고 다녔다. 크게 3가지 방식으로 본인을 상류층으로 가장해 ‘고급 허언’을 벌인 것으로 풀이된다.

  1. 이미지가 전부다 : 인스타그램에 럭셔리 호텔에 투속하는 모습, VIP 파티에 참석한 사진 등을 게재했다. 상속녀라는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다. 
  2. 빌린 돈의 착시효과 : 유럽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해 “독일 은행에서 바로 이체가 안 된다”는 거짓말이 가능했다. 이렇게 빌린 돈이 4년간 27만5000만 달러(한화 3억 2000만원) 상당이었다. 빌린 돈으로 다시 호화로운 생활을 전시하는 등 자신의 이름값을 유지하고 끌어올리는 데 썼다. 
  3. 서류 조작 시도 : 이후에는 예술 재단을 설립하겠다며 사업에 뛰어드는 시늉을 했다. 관련 대출 서류를 위조해 2200만 달러(약 224억 원)이 넘게 융자를 받으려 했던 것. 허나 여행 경비를 덤터기 쓴 지인이 소로킨을 신고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만약 소로킨의 가짜 사업계획이 통과됐다면 어땠을까. 그의 사기 행각이 더 오래 갔을 것이다. 2번과 같이 ‘돈 놓고 돈 먹기’로 연명했을 테니까. 나중에는 진실과 가짜의 경계마저 흐렸을 테다. 다행히 소로킨은 절도 및 사기 혐의로 징역 4~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소셜미디어 접근 금지 명령, 가택 구금 등의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가택 연금 중에도 생일파티를 열고 자기 이름을 건 리얼리티쇼를 기획하는 소로킨의 근황

 

여기까지 읽고 나니 확실히 소로킨에게서 ‘사짜’의 냄새가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기꾼은 어떤 하버드 강연에 초청된 것일까. 페이지식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연사로 참여하는 강의명은 ‘borderline’(경계선). 하버드 경영대학원 유진 솔테스 교수가 가르치는 3학점짜리 과목이다. 강의 소개부터 예사롭지 않다. 강의명이 대변해주듯 논쟁적인 소재를 다룬다.

‘해킹, 기업 스파이, 대마초 산업, 드롭갱* 등 비즈니스 세계 곳곳에 도사리는 복잡하고, 종종 숨겨진 위험에 대해 탐구한다’
*드롭갱(dropgang) : 메신저앱을 활용해 마약 등을 거래하는 중개자를 일컫는 속어

기본적으로 강의는 비즈니스가 도발적이고 파격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극복하려는” 혁신 기업가, “신흥 시장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자, “캐치-22 딜레마(모순된 규칙이나 제약을 따라야 하는 반면 통제할 순 없는 역설)에 직면한 다국적 리더”의 관점에 서서 문제 상황을 직면하는 게 강의의 목적이다. 

아예 사기꾼이 이끄는 전문 조직에 대해 살펴보는 이유도 동일하다. 위험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탐색하기 위함이다. 선을 넘는 사람들이 선의든 악의든 경계선에서 취하는 판단을 공부하는 수업이라 할 수 있다. 야심찬 기업가가 위험을 간과하거나 선의를 무색하게 하는 전술로 범죄자가 되는 케이스도 학습 자료에 포함된다.

그래서인지 교과서뿐 아니라 영화, 유출된 기밀문서, 레딧 게시물 등 다양한 소스를 교재로 사용한다. “비즈니스 세계의 어두운 측면에서 독특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가진 게스트를 보충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애나 소로킨의 (아마도 원격으로 이뤄질) 초청 강연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물론 소로킨의 이런 소식에 부정적인 여론도 적잖아 보인다. 당장 기사 댓글에는 “범죄자에게 관심을 줘선 안 된다”는 일갈이 주를 이룬다. 더군다나 소로킨이 가짜 이미지와 영향력으로 이익을 편취한 사기 전과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학가에서 그를 초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기꾼에게 또 다시 인지도를 쌓아줄 수 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더더욱 애나 소로킨이 아니라 ‘왜 애나 소로킨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드라마 <슈퍼펌프드 : 우버 전쟁>의 한 장면. 우버는 자사 앱을 설치했던 이력이 있는 개별 아이폰 소유주를 식별하는 ‘핑거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앱스토어 삭제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수업을 주관하는 유진 솔테스 교수는 기업 임직원의 화이트칼라 범죄를 연구하는 학자다. 2016년에는 <왜 그랬을까 :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심리 해부>라는 책을 낸 바 있다. 기업 경제사범들의 범죄가 중하다는 결론에 더해 이들이 왜 이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이런 잘못된 의사결정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 탐구해왔던 인물이다. 

공인사기심사관협회(ACFE)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Fraud Magazine> 기고에서 솔테스 교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들과 동일한 환경에서 나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반드시 뉴스 1면을 장식하는 대도(!)가 되진 않더라도 저마다 윤리적으로 삐끗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크고작은 유혹을 직면하고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솔테스 교수는 편지를 주고받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고 직관적으로 의사결정을 해버렸다는 점에 방점을 둔다.

비즈니스의 속성상 과신, 과욕, 야심과 함께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직관적인 판단은 범죄와 선점 사이에 회색지대를 드리운다. 솔테스 교수의 ‘경계선’ 강의는 그 극단에서 악의적으로 사실을 숨기는 범죄자까지도 의사결정과 실행의 잘못된 케이스로 스터디하는 셈이다. 그만치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경계선을 필히 경험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 : 편향된 의사결정의 덫을 피하는 전략)

스타트업 창업가는 오죽할까. 이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믿는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특히나 혁신은 ‘선을 넘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다. 과감함이 요구되는데, 자칫 비전과 PR의 차원을 넘어 무언가 꾸며내는 잘못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생존과 성장을 겸비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난이도다. 

이러한 스타트업, 창업가의 속성을 이해하지 않고 그들의 위기를 해석할 수 없다. ‘그들은 왜 사기꾼이 되는가’라는 질문 이전에 이들이 왜 선을 넘고자 하는지, 그래야만 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의사결정의 어려움이 창업이라는 특수성과 결합해 작금의 현실이 된 것일 테니까. 이해를 벗삼아야 창업의 세계, 그 속에 숨겨진 함정과 대응책을 모두 살필 수 있다.  

 

“우리는 파괴자(disrupter)에요. 혁명에 반드시 필요하죠.” 출처 : 드라마 <슈퍼펌프드>


 

2.선을 넘어야 하는 창업가의 숙명

 

“컨트래리언(역발상)의 힘을 믿어요.” 

한 창업가의 말이다. 남들이 모두 위기라고 여길 때, 그래서 도전하지 않는 영역에서 역설적으로 기회를 발견한다는 관점이다. 그는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것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기존의 문법으로 봤을 땐 말이 되지 않는 시도여야 다시 없을 도약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흔한 예시들이 있다. 글로벌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에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국민 메신저가 된 카카오도 2010년에 창업했다. 이렇게 위기를 감수해 예상을 뒤집는 자세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속성 중 하나로 꼽힌다. 대체로 실패할 심산이 크지만, 해내면 그 임팩트는 곱절이 된다는 계산이다.

(참고 : 10명 중 6명이 반드시 다시 찾는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순응하지 않는 힘은 투자자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는 초기 창업팀에 중요하게 보는 5가지 요소를 소개했다. 이 중 3가지가 선을 넘는 창업가의 성질과 연관돼 있다. 똑똑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대담하게 밀고 나아가는 역량이 투자 판단에 관건이라는 시선이다.

  • 융통성(Flexibility) :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야생의 정글이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상황에 맞춰 변해야 살아남는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결단력과 융통성을 겸비해야 한다.
  • 상상력(Imagination) : 똑똑함(Intelligence)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선시 되는 자질은 상상력이다. 교과서적인 맥락과 상황에서 아무리 잘 대처해도 스타트업에선 쓸모없을 수 있다. 기막힌 임기응변과 이상한 상상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적정선의 ‘똘끼’ 있는 상상력이 수반돼야 한다.
  • 응큼한 개척자(Naughtiness) : 좋은 사람들은 대개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창업가들에겐 ‘해적의 눈빛’이 있다. 갖출 건 다 갖춘 ‘정도’만 걷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큰 그림을 완수하기 위해 예의와 규범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걸 깨트리고 정복할 때 희열을 느낀다.
     

(참고 : YC가 스타트업 창업팀에서 중요하게 보는 요소들)

 

“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

YC 이사이자 트위치 공동창업자인 마이클 세이벨은 창업가들을 “특이한 사람들”(weirdo)라며 위와 같이 묘사했다. 기존 시스템에서 무언가 하는 데 5년, 10, 20년쯤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기업가 기질이 있는 이들은 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챌린지 해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non-conformist)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니 창업가에게 선을 넘는 건 숙명이자 자질이다. 선 너머에 펼쳐질 풍경을 낙관적으로 보고 자신만만하게 속도를 내는 유형에 속한다. 세이벨은 창업가들이 “자신의 급속한 성장 곡선을 믿고 기꺼이 자신에게 올인하는 비순응자”이며 “스킬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낙관적인) 짐작에 기반한다”고 짚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뛰어드는 속성이다.

믹스미디어랩 창업가 달턴 콜드웰 대표 : “대체로 비순응형 인재는 또래 집단 안에 끼려고 하지 않는다. 순응형 인재가 여러 사람 사이에 속해있길 바라는 반면, 이들은 ‘남들과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내 일은 잘 될 것’이라고 반응한다.”

트위치 공동창업자 마이클 세이벨 : “그런 사람이 세상을 한 뼘 더 움직이는 것 같다.”

달턴 콜드웰 대표 : “이런 인재는 빅테크의 쳇바퀴 말고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해보길 권한다. 혼돈 그 자체고, (당신과 비슷한) 특이한 사람들과 일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훨씬 나은 선택일 될 테다. ‘자리 경쟁’(status game)에 뛰어들지 말자고 깨달을 수 있다.”

 

 

20세기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건강한 사람이 (모든 인간에게 예정돼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제쳐 놓은 것처럼” 개척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제껴둔다고 말했다. “수학적 예상치에만 의존해서는 기업은 사라지고 죽게 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즉, 창업가를 포함한 기업가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이며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Fake it till you make it”(해낼 때까지 속여라)라는 문장이 힘을 얻는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 넘어 스스로 이뤄내리라 믿고, 그 아우라로 주변을 설득해 실제로 현실이 되게 한다는 문구다.

<훔쳐라. 예술가처럼>의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Fake it untill you make it”을 2가지로 본다. 하나는 성공할 때까지, 본인이 원하는 내 모습으로 ‘그런 척’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무언가 만들어내기 전까지 ‘만드는 척’ 혹은 ‘만들 수 있는 척’ 하는 것이다. 둘 다 먼저 약속을 하고, 이 약속이 유망하다면 실제로 그 약속을 실현하는 식으로 순서를 뒤집는 양상이다.

스타트업에 익숙한 예시로는 ‘문짝 테스트’(apinted-door-test)가 있겠다. 자원이 많지 않은 입장에서 문짝 하나를 만드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문짝을 페인트칠 해두고 사람들이 실제로 그 문을 쓰려 하는지 살펴본다. 문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허탕 치는, 혹은 문이 생기길 기다리는 사람은 곧 수요를 가리킨다. 이걸 확인하고 나중에 문을 만드는 게다.

국내에서는 토스의 랜딩페이지 케이스가 유명하다. 이체 수수료 없이,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 같이 기존 인터넷 뱅킹의 복잡한 과정 없이 바로 모바일 송금이 가능해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런 서비스를 원한다면 전화번호를 남겨달라. 다운로드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접수란도 달아뒀다. 서비스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로부터 출발한 격이다.

 

출처 : 토스

 

놓칠 수 없는 비즈니스 기회를 만났을 때도 “Fake it till you make it”이 고개를 든다. 빌 게이츠의 일화는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클라이언트를 만들기 위해 창업자들은 앨테어 8800이라는 조립식 개인용 컴퓨터에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관련 하드웨어 경험이 없음에도 구현할 수 있다고 영업을 한 상황이다.

결국 MITS사는 이들의 첫 고객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약속했던 것처럼 ‘앨테어 베이직’(Altair BASIC)을 첫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뿐이랴. 아이폰 또한 첫 발표 직전까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리허설 중에도 무선인터넷이 자꾸 끊기거나 메모리가 빨리 닳았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여러 프로토타입을 상비해두고 발표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미래를 낙관하는 동시에 만들어내는 저글링. 투자자는 결국 이런 창업가에게 끌린다. 크리스틴 콜피온 변호사는 기고를 통해 “섬세한 투자자는 마켓에 대한 이해도, 창업가 이력이나 부족한 점을 바탕으로 합리성을 저울질 하지만, 결국 낙관적인 창업가에게 매번 베팅한다”고 적었다. 그렇게 베팅하는 게 벤처투자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Fake it untill you make it”은 스타트업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구호다. “안 된다는 게 증명되지 않은 이상 ‘된다’고 하라.” 줄을 서지 않는 창업가에게 이러한 마인드셋은 창업이 가능하게, 유지되게, 성장하게 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본질에 가깝다. 종합해보면 창업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엔 아래와 같은 이유가 포진해있다. 

  1. 다들 안 된다 해도 나 자신을 믿는 것
  2. 미래의 목표를 가상으로 설정해 크게 성장하는 것
  3. 원대한 비전을 제시해 수요, 기대, 인지도를 모으는 것
  4. 낙관, 상상력, 추진력을 보여 미래 가치를 인정받는 것 

 

 

3.”Fake it till make it”의 위험 신호들

 

그러나 “Fake it till you make it”은 자주 독이 든 성배가 된다. 테라노스 사건 당시, 이 사태를 비판하는 헤드라인은 ‘만들 때까지 속이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Fake it’과 ‘Make it’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 이 함정에 창업가가 발을 헛디뎌 추락할 우려가 크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논지였다. 기업가의 핵심이 돌부리가 될 수 있다. 

잔인한 운명이다. 선을 넘어야 하는 숙명에 잘못 선을 넘을 위험이 도사린다. 방심할 수 없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선 시시각각 저 문장의 함의를 균형 있게 보고 자세를 고쳐잡을 줄 알아야 한다. 홈런을 치기 위해서 기꺼이 기울어지는 패기 만큼이나 기울어짐이 속임수, 조작으로 빠지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학 강석헌 교수는 ‘미래를 낙관하고 이를 설득하는 것’과 ‘허위 및 과장을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약속은 “투자자나 언론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설파하는 행위에서 ‘투명하고 솔직한 것’과 ‘허위 및 과장을 하는 것’ 사이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있는데, 미래를 낙관하기 위해 과거에 대한 허위 및 과장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분명 투명하고 솔직한 것에는 부담이 따른다. 특히 스타트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상황을 직면하는 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강석헌 교수는 이러한 자세가 “스타트업이 미래를 낙관하는 정도를 약화할 수 있”으며 “위험 감수(risk-taking)를 못 하고 위험 회피(risk-averse) 성향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자세라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로 ‘허위 및 과장을 하는 것’은 더 치명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거짓 약속으로 쌓은 탑은 모래 성이 돼 부서지기 십상이다. 한 번 상실한 신뢰와 이미지는 다시 메우기 어렵다. 게다가 투명성의 결여는 결과적으로 비효율로 이어진다. 강 교수는 “허위와 과장이 또 다른 허위와 과장을 낳으면서 (스타트업의) 제한된 자원을 쓸데없는 곳에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크리스틴 콜피온 변호사은 진실, 거짓, 실수를 구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기업가라면 응당 낙관적인 미래 비전을 세우고 도전해야 하지만, 실제 벌어진 혹은 벌어지지 않은 일을 곡해할 경우 문제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창업가 본인과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진실과 거짓, 실수가 뒤섞여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 진실 : 제삼자가 역산을 해서 배경 및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음. 시장 기회에 대해 서로 결론이 다를 순 있어도 최소한 ‘미스터리’가 끼어있지 않음.
  • 실수 : 창업가가 진실을 바탕으로 말한다 해도 모든 걸 예견할 순 없기에 발생하는 결과. “사실상 진실과 불가분의 관계”.
  • 거짓 : 과거 성과를 날조하거나 주요 사실을 생략하거나 고의로 다른 정보를 잘못 전달하는 등 “사기”에 해당하는 내용
     
앨테어 BASIC 개발 비하인드를 이야기 하는 1994년의 빌 게이츠. 출처 : MS

 

빌 게이츠와 앨테어 8800 케이스로 돌아가보자. 당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MITS사에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 변환이 되는 제품 구현이 가능하다고 서신을 보냈다. 여기서 언더셔플의 편집장 허버트 루이는 “가장(pretending)의 정도가 중요하다”고 봤다. 비록 하드웨어 경험은 없대도 소프트웨어 경험에 기초해 ‘해볼 만 하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언더셔플 편집장 허버트 루이 : “(낙관은) 그저 드러낸다고, 시각화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근거에 기반을 둘 때 제대로 된 자신감이 나타난다. 당사자가 숨김 없이 진지할 때 미래를 믿거나 믿는 척하는 게 먹힐 수 있다.”

완제품이 아닌 까닭에 발표 현장에서 맛이 갈 수도 있었던 아이폰 프로토타입 또한 완제품에 근접해 있는 시범제품을 근거로 댈 수 있었다. “버그가 많아도 완제품에 가까운 데모를 공개했던” 애플은 이후 아이폰은 실제로 완제품이 돼 세상을 바꿔놓았다. 

‘정도의 차이’는 근거를 속일 때 실수가 아닌 거짓으로 흐르기 쉽다. 일례로, 미국 전기·수소 트럭 제조사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와 유사하게 혐의가 인정됐다. 2022년 투자자를 속인 금융 및 인터넷 사기 혐의를 받았다. 

소셜미디어, 팟캐스트 등에서 사실이 아닌 주장을 펼친 게 인터넷 사기에 포함됐다. ‘작동하지 않는 트럭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양 굴었다’ ‘다른 곳에서 사온 배터리를 인하우스에서 모두 개발한 것처럼 말했다’ 등등 의도적으로 과거, 현재를 속인 점에서 밀턴은 유죄 판결을 면치 못했다. “당장 존재하지 않는 기술력으로” 미래를 가장해 사기를 친 격이다.

상장 전에 “본인의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려 과장 및 허위 정보를 유포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를 떳떳한 기업가라 부를 순 없다. 다만 이 범죄를 참고자료로 삼아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배울 수 있겠다. 일상적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창업가가 “Fake it till you make it”에 먹혀버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창업가들이 “Fake it untill you make it”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로 강석헌 교수는 ‘가면증후군’을 꼽았다. 가면증후군(Impostor syndrome)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자신의 성취나 재능이 부족하다 여기는 심리 상태, 이에 따라 자신이나 타인이 씌운 가면에 더 부합하려 하는 반응을 일컫는 용어다. 

예컨대 이런 흐름이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창업가 A에겐 성공한 다른 사업가들을 보고 들을 기회가 늘었다. 다들 대담하게 큰그림을 그려 판돈을 모으고, 그 판돈으로 성장 동력을 얻어 실제로 성공을 거머쥔 듯하다. 안 될 때까진 된다고 보는 게 성공 방정식인 걸까. 투자자들도 자신만만한 회사를 선호하는 듯하고, 기세등등해야 언론 등에 회사를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저 가면에 “걸맞는 행보나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회사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편향이 생긴다. A는 속으로 되뇌었다. ‘성공하려면 (설령 지금 내가 그렇지 않더라도) 기세가 중요한 거야. Fake it till you make it!’ 비교와 압박감, 불안과 의구심, 내외부의 위태로움이 가득한 창업가의 하루에 오늘도 이 문장은 완벽한 가면이 돼 준다.  

이러한 가면은 자칫 ‘현실 왜곡장’으로 펼쳐질 리스크가 있다. 트랜스링크 김범수 파트너는 “Fake it until you make it”이 괴로운 현실을 잊게 해줄 마약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회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만 보면 힘들고 사는 재미가 없는데, 외부에서 자신을 추켜 세워준다면 자꾸만 고통을 피해 믿고 싶은 걸 믿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스타창업자’. 그 시작점은 회사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남들은 못 보지만 우리 회사가 보고 있는 청사진을 알리고 PR 및 HR을 위해 외부 활동을 했다. 여러모로 창업자이자 대표자가 스타트업에서 반드시 해내야 할 몫이기도 하다. 회사 내부든 외부든 비전을 전파하고 “우리가 그게 되게 할 것이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말에 완전히 먹혀서 그릇된 결정을 해선 안 되는 법이다. 그때부터 실수라고 변론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해 지금 믿음을 갖는 것과 과거, 현재를 속이는 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와 후자의 중간지대에서 진실하고자 하는 다른 창업가들의 노고마저 무력해지고 만다. 경계선에서 도약을 꿈꿀 때 더더욱 “Fake it till you make it”의 폐해에도 민감해야 한다.  

 


 

4.사업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장치들

 

‘그래서 어떻게?’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 거짓을 지어내면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 안다. 허나 어떻게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까. 미래에 대한 낙관에 과거에 대한 허위와 과장이 필수 요소는 아니라지만, 그 유혹을 피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Fake it until you make it”이 실리콘밸리에서 문화로 여겨진 것처럼 이를 보완하는 관행과 시도가 뒤따라야 한다.

 

1)자기기만을 방지하려면

입에 쓰지만 몸에 달다. 괴롭지만 도움이 된다. 깐깐한 회의론은 낙관주의에 가려져 놓칠 수 있는 뇌관을 파악하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어떤 일에 의심을 품는다’는 뜻의 회의적임(skeptical)은 검사, 탐구를 뜻하는 그리스어(skepsis)에서 유래된 단어다. 창업자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가면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꼭 갖춰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크리스틴 콜피온 변호사는 실수가 거짓이 아닌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3가지를 제안한다. 투명성, 입체성, 업계 평균. 사업과 비전에 대해 설득할 때 성장가능성 외에도 3가지 항목을 함께 고려하라는 조언이다. 각 항목이 종종 엄격하게 느껴질 수 있더라도 스타트업이 스스로 위험 요소를 줄이는, 그러면서도 미래를 낙관하는 데 보탬이 되는 기준이다.

  1. 투명성 : 우리 사업의 비전, 예측이 바탕을 두고 있는 세부내용까지 극도로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가.
  2. 입체성 : 스타트업으로써 최고의, 현실적인, 최악의 시나리오를 모두 예비하고 있나. 이런 자세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3. 업계 평균 : 사업에 관한 특정 숫자를 인용할 때 SaaS 기업 평균 성장률 등 업계 평균 수치를 파악하고 벤치마크 했는가.

 

(“Fake it till you make it”이 만연한 것 같지만) 실상 사업 검증 및 비전 공유 과정에서 창업자에게는 근거와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현실 파악이 중요하다. 그 후에 미래에 대한 전망이 힘을 얻는다. 고의성을 차치하고라도 설령 허위 및 과장이 섞여 들어도 이러한 근거에 뿌리내린 전망이 아니라면 설득력을 얻긴 요원하다. 요행보다 정면돌파가 지름길이 되는 역설이다. 

실제로 테라노스의 ‘스텔스 연구’에 문제를 제기했던 스탠포드 의학과 존 이오아니디스 교수가 강조했던 덕목이다. 피어리뷰 등을 통한 과학적 투명성 없이 “그 혁신이 90억 달러 짜리인지, 9천억 달러, 9달러 가치인지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수 없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 이런 현실적인 챌린지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을 때 진짜 혁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 강석헌 교수 : “(본인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다른 창업 이해관계자들에게도 ‘낙관’으로 비춰질지, 아니면 ‘허위 및 과장’으로 비춰질지를 내가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잘못된 직관을 거스르려면

또한 강 교수는 “창업 성공 스토리만큼 창업 과정에 있었던 실패 스토리도 부각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창업자에게 발언과 주장의 책임, 윤리를 요구하는 걸 넘어 창업가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중화하는 게 기업가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출처 : unsplash

 

유진 솔테스 교수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막는 데에 불협화음이 꼭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고속도로에 과속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혹은 과속을 하려는 운전자를 말리는 동승자처럼 경영진에게 거리낌을 주는 요소가 최초의 의사결정을 재평가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회사에 도움이 된다거나 이쯤은 괜찮다고 넘겨짚는 직관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유진 솔테스 교수 : “주변에 반대, 경고하는 이가 없을 때 뭐든 할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된다.”

솔테스 교수의 기고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인용됐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안드르센 호로위츠의 수장이자 명망 있는 벤처투자자이자 벤 호로위츠의 사례다. 새로 고용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경영진에 최대한 유리한 스톡옵션 인센티브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받은 상황이었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호로위츠는 최고법무책임자(CLO)에게도 검토를 요청했다. CLO는 솔직하게 의견을 밝혔다. “6번 넘게 검토해봤지만 이 관행은 결코 법 테두리 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후 해당 CFO는 그 전 직장에서 본인을 포함한 경영진의 스톡옵션 부여 날짜를 오기해 탈세 혐의로 복역했던 이력이 드러났다.

호로위츠는 늘 자신을 둘러싼 실리콘밸리 ‘버블’,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 듣게 됐다고 한다. 이 일화를 소개하며 솔테스 교수는 경영자에게 “서로를 잘 알며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부부끼리 애정도 테스트(spouse test)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듯이 경영자 또한 주변에 다양한 사람, 간언을 해줄 사람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솔테스 교수 : “경영자들가 ‘현재 내가 어디에 매진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상대, 동시에 이에 우려를 표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인이 (재무, 회계 등 특정 영역에선) 항상 옳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걸 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3)장기적인 시각을 가지려면

트랜스링크 김범수 파트너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회사의 미션이 회사를 주도해야”고 강조했다. 더불어 “창업자 스스로 회사의 문제를 직면해야만 한다”고 권한다. 외부 인식이 아무리 좋아도 창업가는, 진정 결과물을 통해 미션을 이룰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Fake it until you make it”의 단점을 감안하며 비범한 시도를 이어가라는 권유다.

허버트 루이 편집장 또한 “과하게 속여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다”며 “그냥 ‘프로덕트를 만들어간다’는, (허위와 과장과) 전혀 다른 선택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진실로 창업을 천직으로 삼는 마음가짐이다. 페인트칠로 문을 보여주는 것과 문을 파는 것과 문을 실제로 만드는 것, 이 중 한 쪽의 무게감이 줄어들지 않도록 밸런스에 신경쓰라는 제언이라 할 수 있다. 

 

에버노트 창업자 Phil Libin의 트윗. “경제가 좋을 땐 팔기 좋고 경제가 나쁠 땐 만들기 좋은 시기다”

 

기업가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은 사업을 장기전으로 보고 조급함을 덜어내는 데 일조한다. 한 판 크게 치르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오래오래, 목적지도 여정도 스스로 정해야 하는 무한한 게임으로써 창업에 임하는 게다. 안 된다는 게 명확할 때까지 된다고 보는 자세, 되게 하는 처세뿐 아니라 오래 걸려도 진짜를 만든다는 기세로 나아가야 한다. 

창업가를 둘러싼 생태계 또한 진일보하면 어떨까. 인생 굴곡에 성공과 실패가 교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조명해야 한다. 강석헌 교수는 “모든 스타트업이 단기간에, 한순간의 노력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고 비추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유니콘만이 스타트업의 성공 지표가 아니라,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차곡차곡 해나가는 데도 주목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투자자, 미디어의 역할도 뒷받침된다. 창업가 본인이 아무리 현실성을 고려해도 주변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생태계가 자정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테라노스도, 프랭크도, 니콜라 사태도 결코 창업자 혼자만의 산물은 아니라는 걸 되새겨야 한다. 현실이 단단하게 발을 붙잡을 때 “Fake it till you make it”(해낼 때까지 속여라)의 부작용을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


 

5.‘사기꾼이랑 뭐가 다르냐’ 묻기 전에

 

창업가들은 이탈한 존재들이다. 마이클 세이벨의 표현처럼 정해진 줄, 시스템에 서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만든다. 이들은 3가지 시간을 동시에 살아간다. 창업에 뛰어들어 열정을 불태운 과거의 궤적, 당장 생존과 성장을 이뤄야 하는 현재, 앞으로 다가올 기회와 위기를 모두 펼치는 미래. 3가지 모두 한꺼번에 감당하는 식으로 하루하루 분투한다. 

필연적으로 가시 면류관이다. 다들 만류해도 자기 확신을 가질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을 붙잡아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해야 하며 적당한 성공이 아닌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기길 원한다. 중간중간 완벽히 쳐내지 못하거나 일을 그르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꿋꿋해야 한다. 내가 물러서면 끝이니까. 고립되기 쉽고, 공감받긴 어렵고. 숨고르기조차 사치로 여길지 모른다. 

의도적인 잘못은 명명백백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실수가 잘못으로 양산될 여지가 있다면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지 고민해볼 수 있다. 도전하는 이들의 낙관이 생채기로 끝나버리지 않으려면 더더욱. “사업가가 사기꾼이랑 뭐가 다르냐”는 힐난으론 어떤 문제도 해소되지 않는다. 바뀔 수 있는 과오를 찾아야 변화할 수 있다.

 

사업가로써 평판을 잃었음에도 새로운 서비스를 내 단번에 유니콘 가치로 투자를 유치한 위워크 창업자 애덤 뉴먼.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우린폭망했다>

 

와이어드 보도에 따르면 테라노스가 물의를 일으킨 후 한 스타트업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공개했다. ‘우리는 걔들보다 낫다’는 내용의 영상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기꾼으로 판명난 사업가의 이야기가 (특수한 케이스일지언정) 유일한 케이스는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가의 속성에 잠재력의 양날이 공존한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테라노스 사건 당시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지나 최 디렉터가 남긴 코멘트다.

“이 사건은 실리콘밸리에 중요한 교훈을 줬다. 산업을 뒤집어 혁신하고자 하는 혁신가들은 반드시 현재 자신들의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진실을 투자자에게 말해야 한다. 언젠가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사항 뿐 아니라 (진실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창업 생태계를 위해서도 투명성, 안전 장치, 장기적인 시각을 겸비해야 한다. 기업가가 “Make it” 하는 환경을 조성하려면 신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케인스는 “(기업가를 통한) 국부의 증진이 그저 카지노 놀이의 산물로 전락한다면, (기업가의 일은 도리어) 뜻대로 되지 않을 심산이 크다”고 예견했다. 기업가정신이 발휘되는 데 진정성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용관 대표 : 리더들 중엔 스스로 뛰어난 사람이라 여기고 항상 넘치는 자신감을 탑재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야 당당하게 IR도 잘하고, 투자유치도 잘 받고, 직원들에게 리더십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외부의 조언을 수용하고 문제를 개선해 성공에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참고 : 스타트업은 왜 후드티를 입을까: 성공하는 리더의 메타인지(1)

스타트업이 고속 성장 하기 위한 주문과도 같았던 “Fake it till you make it”(해낼 때까지 속여라). 앞으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버드가 사기꾼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건 궁극적으로 사업가는 사기꾼과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닐까. 사업 아이템을, 수익구조를, 기술을 혁신해온 것처럼 스타트업계가 신뢰의 문제도 돌파구를 찾아가리라 기대해본다.

강석헌 교수 : “결국 우리 사회가 권장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Fake it till you make it’을 넘어 ‘Believe it until you make it’(해낼 때까지 믿어라)이지 않을까. (이런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 출처]

Borderline - Course Catalog - Harvard Business School  

테라노스: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 벌인 엘리자베스 홈스, 징역 11년 선고 - BBC News 코리아 

JP모건 농락한 28세 와튼 졸업생… 2200억원짜리 가짜 스타트업 [박건형의 디코드 2.0] - 조선일보 

Anna Delvey to speak about 'murky side of business' at Harvard

Convicted Fraudster Anna Sorokin Speaks With Harvard MBA Students 

Anna Delvey Will Host Intimate Dinner Parties in a Brand New Reality Series | Vogue 

[Who’s who] ‘백만장자 상속녀’ 사기로 뉴욕 사교계 뒤흔든 ‘애나 소로킨’ : 주간동아 

"내가 우버고, 우버가 곧 나야!"  

Why do they do it? 

The Cult of Conformity in Silicon Valley

Startup founders: Don't cross the line between optimism and fraud | VentureBeat 

When you should fake it 'til you make it 

How Steve Jobs Faked His Way Through Unveiling the iPhone 

Theranos and Silicon Valley's 'Fake It Till You Make It' Culture | WIRED

'Fake it till you make it' is an old trick Silicon Valley startups use to get money. Starry-eyed stock investors keep falling for it. - MarketWatch

Portal:Business/Selected quote/71 - Wikipedia

스타트업은 왜 후드티를 입을까: 성공하는 리더의 메타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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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와, 글이 너무 좋네요. 최근에 여러 협업 제안을 주고 받고 있는데 사기꾼과 사업가의 경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좋네요...! 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
김지윤 님의 글이 eo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이번 주 이오레터를 확인하세요!

👉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6njYGebgzG0W8MO8ObZYHeATlANzj4k=
너무 좋은 글 잘 보았어요 최고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인사이트가 팝콘처럼 터지는 글이네요.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필력이 정말 좋으셔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작성해 주신 글도 그렇고 댓글을 안 남길 수가 없네요. 최고입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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