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글을 만드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주제를 던지면 목차가 나오고, 목차를 넣으면 초안이 나온다. 긴 자료를 요약하거나 비교 기준을 정리하는 일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문법도 안정적이고, 소제목까지 알아서 붙여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잘못 쓴 글은 아닌데, 다 읽고 나면 누가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글이 늘고 있다.
문장은 매끄럽다. 정보도 빠짐없다. 그런데 한 가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AI가 글을 잘 쓰게 될수록, 오히려 이 질문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매끄럽게 쓰는 능력만으로는 차이가 나기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정보를 잘 정리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주거나,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정리해주는 글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개념을 설명하고, 장단점을 나누고, 비교표를 만드는 일은 AI도 꽤 잘한다. 비슷한 도구를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하면 글의 구조도 자연스럽게 닮아간다.
문제를 제시한다.
이유를 설명한다.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에는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틀린 구조는 아니다. 그래서 더 애매하다.
다 읽고 나서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글에서 보고 싶은 건 '결론'보다 '왜 그런 결론을 냈는가'다
제품 하나를 고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제품은 성능이 좋고 사용하기 편리합니다.”
정보는 전달된다.
하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선택하기 어렵다.
반대로 이런 설명이라면 조금 다르다.
A 조건에서는 이 제품이 편하다.
다만 B 조건이라면 굳이 더 비싼 모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단순한 제품 정보 외에 하나가 더 들어 있다.
판단 기준이다.
좋은 점만 나열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는 추천하고 어느 상황에서는 굳이 추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보까지 함께 전달된다.
콘텐츠에서 신뢰가 생기는 지점도 비슷하다고 본다.
실제로 무엇을 봤는지, 처음에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조건에서 판단이 달라졌는지, 무엇을 선택하면서 무엇을 포기했는지.
이런 과정이 보이면 글쓴이의 기준도 같이 보인다.
AI도 이런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AI가 만든 그럴듯한 경험과 실제로 사람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내린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맡기느냐에 가깝다.
판단이 보이는 글은 판매 문구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글 하나가 매출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상품 자체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가격이 문제일 수도 있다. 애초에 그 글을 보는 사람이 없다면 전환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콘텐츠가 비즈니스에서 하는 역할은 있다.
구매나 문의 전에 생기는 질문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 분야를 실제로 알고 있을까?”
“좋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내 상황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제품 장점만 계속 나열하는 방식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예외를 보여주는 쪽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잘 맞는다.
하지만 이런 조건이라면 다른 선택도 생각해볼 만하다.
판매를 포기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글쓴이의 기준을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독자가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정보의 양만이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비교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콘텐츠가 계속 쌓이면서 그 역할을 하게 되면, 글쓴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보다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사람’에 가까워진다.
브랜드는 로고나 슬로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판단이 반복해서 쌓이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AI는 더 많이 쓰되, 판단까지 넘기지는 않는 방식
그래서 AI를 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잘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맡기는 편이 효율적이다.
자료를 분류하고, 질문을 묶고, 목차의 뼈대를 잡고, 긴 문장을 줄이고, 비교할 항목을 정리하는 일.
이런 작업을 매번 사람이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사람이 남겨야 할 영역은 따로 있다.
글에서 결국 무엇을 말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여러 경험 중 어떤 장면을 꺼낼 것인지 고르는 것.
처음 생각과 지금 생각이 달라졌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
그리고 AI가 만들어낸 경험이나 감정을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
나는 이 구분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본다.
AI가 글의 대부분을 만들어도 괜찮다.
다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건 “왜 나는 이렇게 판단했는가”다.
모든 글에 사람 이야기를 넣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사람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글을 에세이처럼 쓸 필요는 없다.
정수기의 크기를 검색한 사람은 크기부터 알고 싶다.
신고 기간을 찾는 사람도 날짜를 먼저 원한다.
소프트웨어 단축키를 찾는데 글쓴이의 성장 서사를 읽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글에서는 답을 먼저 주는 게 맞다.
반대로 정답 하나로 끝나지 않는 글이 있다.
어떤 서비스를 선택해야 하는지, 여러 제품 중 무엇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지, 사업하면서 어떤 방식을 버렸는지, 실패한 뒤 무엇을 바꿨는지.
이런 주제는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누군가의 판단을 참고하게 된다.
그래서 검색을 위한 글과 사람을 선택하게 만드는 글은 같은 방식으로 쓸 필요가 없다.
정보가 필요한 순간에는 정보를 빠르게.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판단의 근거까지.
AI 시대에는 오히려 이 구분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글쓰기가 쉬워질수록, 남는 것은 판단이다
앞으로 글을 만드는 과정은 지금보다 더 간단해질 가능성이 크다.
초안 작성에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고, 정보 정리의 품질도 계속 좋아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예전보다 화려한 문장을 써야 하는 것도, AI보다 빨리 써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남길지.
어떤 정보는 버릴지.
좋은 점만 보여줄지, 불편한 조건도 함께 말할지.
그리고 그 판단을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을 수 있을지.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도 그 판단까지 대신 맡길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매끄러운 글을 만들 수 있게 될수록, 오히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가 보이는 글이 더 오래 남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