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들 사이에서 스티브 잡스의 고집은 종종 ‘성공 공식’처럼 통합니다. 한국에는 '잡스병'이라는 말까지 있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대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잡스는 그 고집 때문에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밀려났습니다.
1985년, 애플의 창업자 잡스는 외부에서 영입했던 존 스컬리 CEO를 몰아내려다 거꾸로 이사회에 밀려 한직으로 쫓겨납니다. 그해 애플을 나온 잡스는 핵심 인력 다섯 명을 데리고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세웠죠. 이후 1997년 애플 CEO로 돌아오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에서 5년 일하며 『삼성 라이징』을 쓴 저널리스트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이 이 스티브 잡스의 12년을 111명의 증언으로 복원했습니다. 책 『넥스트 스티브 잡스』(골든래빗, 2026) 이야기입니다. 원제는 'Steve Jobs in Exile'. 직역하자면 '유배된 스티브 잡스'입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우리가 아는 잡스는 절반 뿐이다
- 애플에 복수하려고 세운 회사
- 어제의 영웅, 오늘의 쓰레기
- 돌아온 잡스가 가장 먼저 바꾼 것
- "잡스라서 통한 것 아닌가요?"
- 잡스가 살아 있다면, 그리고 그를 죽인 것
※ 이 아티클은 골든래빗의 유료 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잡스는 절반 뿐이다
Q. 스티브 잡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넘칩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렇죠. 스티브 잡스를 다룬 글은 이미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취재해 보니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반쪽뿐이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스티브 잡스는 실제 그의 절반에 불과해요. 늘 검은 터틀넥을 입고 무대에 올라 아이폰을 발표하는 모습, 누구나 아는 성공한 시절의 스티브 잡스 말입니다.
저는 잡스 커리어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봤어요. 애플에서 쫓겨난 뒤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차렸을 때입니다. 잡스는 이 기간에 인생 최대의 실패를 겪어요. 훗날 애플에서의 성공과 아이폰으로 이어진 모든 것이 이 넥스트 시절에서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던 시기였던 거죠. 그가 그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깊이 파헤쳐보고 싶었습니다.
Q. 애플 초창기의 잡스는 어떤 리더였나요?
오늘날 우리는 잡스를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잡스는 회사를 운영하거나 사람을 이끌 줄 몰랐어요. 경영자가 아니라 창업가였고, 그게 그의 본질이었거든요. 사실 초창기 애플에서 그는 CEO였던 적이 없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매킨토시 사업부의 수장이었을 뿐이에요.
그의 주된 역할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컴퓨터, 바로 매킨토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컴퓨터가 당시 역사를 바꿨고요.
Q. 매킨토시로 컴퓨터 역사를 바꿨지만 뒤이어 장담한 매킨토시 오피스 사업은 실패했고, 애플 안에서는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했죠?
정확해요. 결코 함께 일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고 애플에 타격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사회가 잡스를 매킨토시 사업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사건은 잡스에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 그는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어요. 크게 상처받고 무너졌죠.
훗날 그는 1985년의 여름을 이렇게 회상했어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애플 밖에는 자신의 삶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사가 곧 자기 자신이었으니, 애플은 그의 인생이었고 이뤄온 모든 것이었죠. 그렇게 실존적인 고민과 위기에 빠집니다. 애플에서 나온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 넥스트라는 새 회사를 세우며 인생의 2막을 열어요.
애플에 복수하려고 세운 회사
Q. 애플을 나온 잡스는 넥스트에서 무엇을 만들고 싶었나요?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세운 이유는 당시 최첨단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애플 다음으로 내놓을 야심작을 원했던 겁니다. 애플에서 매킨토시를 만들었듯 이번에는 넥스트 큐브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정육면체 모양이라서 큐브라고 불렀거든요. 고급 애플리케이션을 돌리자는 구상이었는데,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이때가 1986년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잡스는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AI 혁명이 오리란 걸 알아본 겁니다. 그래서 이 컴퓨터로 AI와 과학 실험, 고등 수학은 물론 현실 세계 시뮬레이션까지 다루려 했어요.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가 이 컴퓨터를 택한 데는 그저 훌륭한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속내가 있었습니다. 애플에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기가 여전히 성공했다는 걸,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이제 애플은 필요 없다고요. 그건 회사를 세울 좋은 이유가 아니죠.
Q. 책을 읽으며 특히 놀란 대목은 돈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공장을 짓기로 한 결정이었는데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게 바로 스티브 잡스다운 거대한 비전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단순히 컴퓨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든다고 여겼습니다. 페라리 같은 차를 사는 사람들은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조립 라인에서 차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잖아요. 페라리를 정말 좋아한다면 그럴 수 있죠.
잡스는 넥스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컴퓨터의 예술성과 디자인, 장인정신을 아끼는 사용자라면 직접 비행기를 타고 와 조립 라인을 견학한 뒤, 완성된 컴퓨터를 그대로 들고 집에 갈 거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합리적인 소비자는 그런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페라리라면 통할 수도 있어요. 워낙 팬층이 두껍고 브랜드의 힘이 센 데다 차의 품질도 뛰어나니까요. 하지만 컴퓨터를 살 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죠. 잡스는 이 지점에서 계속 헷갈리며 발목을 잡혔어요. 자기 비전이 워낙 똑똑하고 아름다우니 남들도 그 아름다움을 알아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Q. 잡스는 컴퓨터 본체를 만드는 일, 하드웨어에 왜 그렇게 집착했나요?
그는 하드웨어를 사랑했어요. 잡스에게 하드웨어는 곧 예술이었습니다. 넥스트 큐브를 보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40년 전에 디자인되었음에도 아직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돼 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큐브는 여전히 산업 디자인의 기본으로 꼽혀 대학과 디자인 스쿨에서 가르칩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엄청난 도약이었죠.
문제는 그가 너무 고집을 부리며 임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임원들은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오고 있으니 새 하드웨어 회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조언했어요. 애플과 IBM이 이미 시장을 장악했다는 거죠. 그러니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하며, 싸워야 할 상대는 하드웨어 기업이 아니라 윈도우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듣지 않았어요. 하드웨어 사업은 계속 실패했지만 그는 끝내 조언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넥스트가 실패로 미끄러진 이유 중 하나예요.
Q. 하드웨어가 계속 실패하는데도 왜 멈추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여전히 스티브 잡스라는 걸, ‘진짜 스티브 잡스’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자신이 역사의 일부가 될 거라고 믿었고요. 컴퓨터를 만들 때도 '이것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이것이 제대로 굴러가는 사업이 될지는 고려하지 않았죠.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질문인데도요.
잡스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자주 쓰던 표현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현실 왜곡장'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는 누구든 설득할 수 있는 뛰어난 세일즈맨이었거든요.
문제는 그 현실 왜곡이 거꾸로 작동하기 시작해서 그 자신에게도 영향을 줬죠. 남들뿐만 아니라 자기 아이디어가 최고라고 스스로마저 설득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넥스트는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유통망, 가격, 일반 사용자가 쓰기 편한지 같은 사업의 기본은 모두 놓치고 말았습니다. 얘기하자면 너무 많죠.
케인은 이 책이 잡스가 '잡스병'을 "어떻게 다뤘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다뤘다고 말했습니다. 그 12년의 기록은 『넥스트 스티브 잡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제의 영웅, 오늘의 쓰레기
Q. 넥스트 시절 잡스와 일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스티브 잡스에게는 이런 성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과 쓰레기 롤러코스터'라 불렀어요. 특히 넥스트 시절에 이런 면모가 유독 두드러졌고요.
무슨 뜻이냐면, 어느 날은 직원을 영웅처럼 대하다가도 다음 날은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겁니다. 뭔가 훌륭한 성과를 내면 세상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가, 다음 날엔 당장 해고하고 싶은 형편없는 사람으로 깎아내렸죠. 그 사이 중간은 없었어요. 극단을 오갔기에 직원들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에 최고의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하고 싶어 했어요. 교향곡처럼 아름답게 들리기를 바랐습니다. 이때가 1988년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당시로서는 무척 새로운 시도였거든요.
하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는 이 요구를 해내지 못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생겨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재앙 같은 상황이었어요. 잡스는 소리쳤죠. "너희 정말 형편없어." 그리고 한 엔지니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까지 못 고치면 자손을 못 볼 거야."
결국 그들은 해냈어요. 성공이었죠. 잡스가 발표 무대에서 그 사운드를 자랑했을 때 말입니다. 그날 밤 잡스가 그에게 전화해서 말했어요. "잘했어." 하루아침에 다시 영웅이 된 겁니다.
Q. 넥스트는 결국 하드웨어 사업을 접고 임원들이 말하던 소프트웨어로 방향을 틉니다. 잡스에게는 정말 가혹한 결정이었을 텐데요.
넥스트에서 하드웨어 부문을 잃은 일은 잡스에게 정말 잔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유독 힘들어했던 이유는 개인이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 일반 소비자에게 팔고 싶어 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거든요. "누구나 기숙사 방에서 쓰며 암을 고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반면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대기업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혹은 정부나 고속 매매 기능을 원하는 금융 기관을 고객으로 삼아야 했죠. 그래서 군에 팔았습니다. CIA와 NSA에도요. 위성 정찰에 쓰려고 했던 겁니다.
잡스의 머릿속에서는 하드웨어만이 일반 소비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였어요. 소프트웨어만 남아 기업과 정부 기관에 제품을 팔게 된 건 그가 원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는 늘 회색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요. IBM이나 미국 정부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어요.
물론 큰돈을 벌 기회도 있었습니다. IBM과 계약이 잡혀 있었거든요. 넥스트의 소프트웨어를 모든 IBM 워크스테이션에 탑재하기로요. 그 계약이 실현됐다면 넥스트의 소프트웨어가 지금의 윈도우 자리를 차지했을 겁니다. 애플의 iOS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겠죠. 잡스가 소프트웨어의 진짜 힘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깨닫고 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1996년 12월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잡스는 넥스트의 소프트웨어와 함께 애플로 돌아와 이듬해 임시 CEO를 맡았죠. 이 소프트웨어는 훗날 맥 운영체제와 iOS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돌아온 잡스가 가장 먼저 바꾼 것
Q.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사람을 대하고 고르는 방식이 달라졌나요?
그렇죠. 애플로 돌아갔을 때 그는 리더로서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훨씬 객관적이고 성숙한 피드백을 주었죠. 무작정 칭찬하지도, 함부로 깎아내리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을 믿는 법을 배운 거예요. 어떤 일을 맡기려고 사람을 뽑았다면 그가 제대로 해내리라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또한 믿는다는 건 잘 대해주는 거예요. 사람을 깎아내리면 곁을 떠나버리기 마련이니까요. 직원에게는 상처가 아니라 영감을 줘야 합니다.
Q. 잡스가 넥스트 시절 인수한 픽사의 공동창업자 에드 캣멀은 책 말미에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씁니다. 그런데 잡스는 정말 변했다고요?
결국 넥스트 시절은 잡스가 과거의 스티브 잡스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는 시기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어요. 애플 1기 시절의 잡스와 애플 2기 시절의 잡스입니다. 물론 공통점도 많지만 그사이에 일어난 변화의 폭이 워낙 컸어요. 만약 두 시절의 잡스를 나란히 앉혀두고 대화해 본다면 성격이 꽤 달라서 어쩌면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넥스트에서 비롯된 정말 큰 변화였죠. 그는 이곳에서 비전뿐 아니라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성숙함도 배웠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본질은 미학과 비즈니스의 융합입니다. 그는 넥스트에서 비즈니스와 예술을 결합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이 두 가지가 만나면 강력한 위치에 서게 되거든요. 위대한 모던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완성도를 가져와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 비즈니스로 만드는 겁니다.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집어 들고 쓸 수 있는 제품 말이에요.
이 두 영역 모두에 뛰어났던 잡스만이 해낼 수 있는 융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애플 1.0 시절의 그에게 컴퓨터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예술이었어요. 매킨토시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요. 훗날 애플로 돌아갔을 때는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비즈니스와 예술이 만나 비즈니스가 예술이 된 거죠.
잡스 같은 사람은 없어요. 빌 게이츠는 예술가가 아니라 사업가고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프 베조스 역시 예술가는 아니고요. 일론 머스크도 잡스와는 결이 다릅니다. 관심사가 넓게 퍼져 있으니까요. 잡스는 정반대예요. 한 곳에 고도로 집중하는 예술가로서 예술과 비즈니스를 결합해 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대부분은 어느 한쪽만 갖추고 있으니까요. 그는 인류에게 한 번 오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잡스가 등장하기까지는 몇 세기가 걸릴지도 모르고요.

"잡스라서 통한 것 아닌가요?"
Q. 이 책을 읽은 현직 창업자들에게서 질문을 받아 왔습니다. 잡스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분들인데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집을 성공 공식처럼 말하는데 그건 스티브 잡스라서 통한 게 아닐까요? 다른 창업자가 따라 하면 오히려 위험하지 않나요?"
비전과 고집은 다릅니다. 비전이 있다면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 비전을 팔 수 있어야 해요. 너무 고집을 부리며 자기 비전에만 매달리면 사람들은 금방 지쳐버리거든요.
잡스도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CEO의 자리는 피라미드 맨 꼭대기가 아니라 사실 맨 밑바닥에 있다고요. CEO가 해야 할 일은 최고의 사람을 찾아 곁에 두는 것이니까요. 보스라고 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인이라는 거죠. 최고의 직원을 붙잡지 못하면 결국 사업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Q. 한국에는 그런 리더를 두고 아예 '잡스병'이라는 말도 씁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잡스 신드롬이죠. 정작 잡스 본인은 그 병에서 어떻게 벗어났나요?
비전은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잡스조차 너무 고집을 부렸을 때는 커리어 전체를 잃을 뻔했어요. 고집을 꺾지 않고 주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은 탓에 넥스트가 거의 파산할 뻔했죠.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잡스 신드롬과는 정반대입니다. 잡스가 그 병을 어떻게 다루고 고쳤는지를 보여주니까요. 애플로 돌아갔을 때 잡스는 잡스 신드롬처럼 행동하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왜 사업을 하는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지를요. 자아가 나르시시즘이 되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업을 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고집을 버려야 해요. 그것이 비즈니스에서 고집이 뻗어나오는 뿌리니까요.
잡스가 살아 있다면, 그리고 그를 죽인 것
Q. 넥스트에서 AI를 구상했던 잡스가 살아 있다면 이 미친 AI 시대를 정말 즐기고 있겠죠?
AI에 아주 집중했을 겁니다. 다만 다른 기술 리더들과는 접근 방식이 달랐을 거예요.
샘 올트먼 같은 리더들은 AI를 최우선으로 내세우죠. 하지만 잡스는 기존 애플 제품에 AI를 통합할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이 AI를 쓴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드는 거예요. 그것이 잡스가 제품을 바라보는 방식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으면 의식하지 못하니까요.
단순하고 쓰기 쉬운 것, 그것이 성공한 제품의 신호입니다. 맥북을 열고 AI 에이전트를 쓰면서도 사용자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거예요. 어디에도 AI 에이전트라는 설명이 적혀 있지 않을 테니까요.
Q. AI 다음으로 잡스의 관심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애플 이후의 잡스라면 환경이나 유기농 식품 분야로 눈을 돌렸을 것 같아요. 원래도 환경주의자 같은 면모가 있었으니까요. 늘 직접 채소를 심고 길러 먹었습니다. 아내 로렌도 관심사가 비슷했고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제 추측일 뿐이에요. 확실히 말할 순 없죠. 하지만 아마 애플의 제품 라인업에 슬슬 지루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요. 주기적으로 새로운 혁명을 목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폰 다음은 뭘까? AI 다음은 뭘까?' 이렇게 늘 한발 앞을 내다보는 사람입니다.
Q. 유기농 식품과 환경도 잡스 철학의 일부라고 하셨는데요.
네, 안타깝게도 그 철학이 잡스의 삶을 단축시켰죠.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완전 채식으로 병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의학적 치료를 거부한 채 당근 주스를 많이 마셨고요. 그렇게 하면 병세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결국 암을 이길 순 없었습니다.
저는 전기 작가로서 늘 깨닫는 점이 있어요. 성공을 만든 것들이 실패를 만든 것들이기도 하다는 거죠.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성향과 성격이 있어요. 우리의 좋은 면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도 있죠. 좋은 성향에 빛을 비추면 그 뒤에는 늘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 성향의 부정적인 부분, 즉 좋은 것이 왜 나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잡스에게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그것이 성격의 핵심이었어요. 하지만 그 의지의 그림자가 바로 의학적 치료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습니다. 강한 의지가 결국 그를 죽였어요. 조기에 암 치료를 받았다면 그는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 <넥스트 스티브 잡스> 저자 제프리 케인의 말
인터뷰 끝자락에 시청자에게 전할 한마디를 부탁하자 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기억하세요. 지금 벌어지는 일이 영원한 건 아니에요. 시험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잡스가 그 시험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케인은 이렇게 말을 이었죠.
"스티브 잡스가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보고 남을 믿게 됐을 때 자기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만들었고 애플 CEO가 됐죠."
우리가 아는 검은 터틀넥의 잡스는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광야에서 12년을 헤매며 남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던 사람이었습니다.
📌 복수심으로 세운 회사에서 남의 말을 듣는 리더로 거듭나기까지. 잡스의 12년을 추적한 제프리 케인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케인은 이 책이 잡스가 '잡스병'을 "어떻게 다뤘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다뤘다고 말했습니다. 그 12년의 기록은 『넥스트 스티브 잡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