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트렌드
'시카'는 상표가 되고 '물염색'은 되지 않았다 - 화장품 네이밍에서 암시와 직감이 갈리는 자리

 

미국의 자외선차단제 브랜드 슈퍼굿(Supergoop)은 제품 이름을 한 가지 방식으로 짓는다. 앞에 단어 하나를 붙이고 뒤에 'SCREEN'을 붙인다. 글로우스크린, 시어스크린, 슈퍼스크린, 징크스크린, 매트스크린. 같은 회사가 같은 구조로 지은 이름인데, 미국 특허상표청에서의 결과는 갈렸다. 글로우스크린(등록 제6049570호), 시어스크린(제6365910호), 슈퍼스크린(제5711292호)은 주등록부에 올랐다. 반면 징크스크린(제5905509호)과 매트스크린(제6060687호)은 보조등록부로 밀렸다.
 

76f913f86f78a.png
“같은 회사, 같은 조어 방식, 갈린 결과 (출처: USPTO TSDR)”


보조등록부는 한국에 없는 제도다. 미국은 상품의 성질을 그대로 설명하는 이름이라도 곧바로 버리지 않고, 나중에 식별력을 갖출 여지가 있는 이름이라면 별도의 등록부에 올려 둔다. 여기 올라가면 등록번호가 나오고 ® 표시를 쓸 수 있으며, 뒤늦게 비슷한 이름을 출원한 사람을 심사 단계에서 막는 근거로도 쓰인다. 다만 침해소송에서 “이 상표는 유효하다”고 먼저 인정받는 이점도, 5년이 지나면 더 이상 다툴 수 없게 되는 보호도 주어지지 않는다. 위조품 수입을 막기 위한 세관 등록도 되지 않는다. 주등록부 상표에 비하면 권리의 두께가 그만큼 얇은 셈이다. 아예 보통명칭이 되어 버린 말은 이 등록부에도 오르지 못한다.

이 다섯 개를 가른 것은 앞에 붙은 단어의 성격이다. 징크(zinc)는 자외선차단제에 실제로 들어가는 성분이고, 매트(matte)는 업계가 공용하는 마감 용어이므로, 이름이 그대로 상품 설명서가 된다. 반면 글로우, 시어, 슈퍼는 제품을 쓴 뒤에 남는 인상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그 인상에서 “자외선을 차단하는 제품”에 도달하려면 한 단계를 건너뛰어야 한다.

 

 

기준은 “가리키는가”가 아니라 “몇 단계인가”

브랜드를 만드는 기업이 자주 갖는 오해가 있다. 성분명이나 효능어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 기준은 그보다 미묘하다.

우리 상표법에는 이런 규칙이 있다. 상품의 원재료나 효능, 용도처럼 그 상품이 어떤 물건인지를 그대로 말해 주는 이름은 상표로 등록해 주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독점시키면 같은 물건을 파는 다른 사업자가 그 말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조문으로는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3호에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대로 말해 준다”는 대목이다. 성질을 가리키기만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그 이름을 보고 성질을 곧바로 알아채는가가 기준이다. 실무에서는 이렇게 곧바로 알아채는 것을 '직감'이라 하고, 성질을 그대로 적어 놓은 이름을 기술적 표장(descriptive mark)이라고 부른다.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상품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한 번 생각을 거쳐야 한다면, 그 이름은 성질을 '암시'했을 뿐 '표시'한 것은 아니다.

특허법원이 이 경계를 설명한 문장이 있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의 국제등록상표 'CICABIO'(국제등록 제939039호)를 무효로 해달라는 심판에서,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CICA'가 병풀(Centella Asiatica)의 학명이나 흉터를 뜻하는 라틴어의 약칭임을 알아차리려면, 표장을 'CICA'와 'BIO'로 나누어 보고 그 약칭의 의미를 떠올리는 등 여러 단계의 추론과 연상에 관한 심사숙고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였다. (특허법원 2022. 6. 16. 선고 2021허6245)
 

c16effacf5a2e.png
“이름값의 사다리. 오른쪽으로 갈수록 등록은 쉬워지고 마케팅은 어려워진다.”


지금 '시카'는 한국 소비자 대부분이 아는 성분어다. 그럼에도 이 상표가 살아남은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식별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 시점은 등록 여부를 결정하던 그때다. 이 상표의 등록결정은 2009년에 있었다. 무효를 구한 쪽은 2019년과 2020년의 블로그와 포스트를 증거로 냈지만, 그 시점의 인식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에 네이밍 실무의 시간표가 걸려 있다. 지금은 낯선 성분어도 몇 년 뒤에는 누구나 아는 말이 되고, 그렇게 일반화된 뒤에 출원하면 같은 이름이라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새로운 성분이나 기술 용어를 브랜드에 쓸 계획이라면, 그 용어가 시장에서 일반화되기 전이 출원의 적기다.

 

 

대법원이 경계선을 다시 그은 사건

한국 사례로 경계를 좀 더 좁혀 보자.

'로얄비(ROYAL BEE)'는 화장품·립스틱·바디로션 등 20개 상품을 지정해 2015년 등록된 상표다(등록 제1100724호). 이 등록을 무효로 해달라는 사건에서 특허법원은 20개 중 17개 상품에 대해 등록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로열젤리와 꿀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화장품 원재료이고, ROYAL은 로열젤리를, BEE는 벌을 가리키므로 소비자가 원재료를 직감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 판단이 법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보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든 이유가 네 가지인데, 이 네 가지가 사실상 실무의 판단 기준표다.

첫째, ROYAL과 BEE를 결합해 만든 조어여서 거래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둘째, 로열젤리나 꿀을 쓴 제품 중에 'ROYAL'이 들어간 상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재료를 쓰지 않으면서 'ROYAL'을 쓰는 상품도 다수 존재한다. 그 말이 곧 그 원재료를 뜻한다고 시장이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셋째, 사전적 의미와 거래 관념에 비추어 원재료 사용을 암시한다고 볼 수는 있어도, 곧바로 직감하게 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넷째, 이 표현을 한 사람이 독점한다고 해서 다른 사업자가 자기 상품의 원재료를 표시하는 데 지장을 받지는 않으므로, 독점을 막아야 할 공익상의 이유도 크지 않다.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2후10128)
 

9c711b5f8bbd1.png
캡션: “같은 표장, 갈린 결론 (특허법원 2021허3604 → 대법원 2022후10128)”


네 가지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① 그 결합이 거래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인지, ② 시장에서 실제로 그 성질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지, ③ 소비자가 곧바로 알아채는지, ④ 다른 사업자가 그 말을 못 쓰게 되면 곤란해지는지를 함께 본다. 네 번째가 특히 중요하다. 상표법이 성질표시를 막아 두는 이유가 애초에 거기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 '물염색'이 있다. 모발염색제·모발염료·두피샴푸·헤어린스 등 10개 상품을 지정한 출원이었다(출원 제40-2020-0170419호, 제3류). 특허법원은 이 이름이 물을 섞어 사용하는 염색 제품으로 직감되고, 같은 표현이 거래계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고 보아 거절을 유지했다. (특허법원 2023. 3. 24. 선고 2022허4406) 앞의 네 가지 기준을 대입해 보면 하나도 통과하지 못한다.

ROYAL BEE와 물염색의 차이는 성분이나 효능을 가리켰는지에 있지 않다. 로열젤리에 이르려면 ROYAL이라는 형용사에서 한 번 건너뛰어야 하지만, '물염색'은 우리말 그대로 사용방법을 서술하고 있어 건너뛸 단계가 남아 있지 않다. 수분·진정·톤업·물광처럼 효능을 그대로 옮긴 말을 이름에 얹는 시도는 지금도 흔한데, 이 기준에서 보면 대부분 물염색 쪽에 가깝다.

 

 

미국은 갈림길이 더 많다

같은 문제를 미국은 다르게 처리한다. 한국에서 식별력이 없으면 거절로 끝나지만, 미국에는 우회로가 세 개 있다.

첫째가 앞서 본 보조등록부다.

둘째는 권리불요구(disclaimer)다. 이름 안에 성질을 그대로 말해 주는 부분이 섞여 있을 때, 그 부분만 떼어 독차지하지는 않겠다고 미리 밝히고 이름 전체로 등록받는 방식이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있다. 그 부분이 이름에서 빠지는 것이 아니다. 등록은 어디까지나 이름 전체에 대해 이루어지고, 나중에 다른 상표와 비슷한지 따질 때도 그 부분을 포함한 전체를 놓고 본다. 'FIRST AID BEAUTY'(등록 제4053337호)는 화장품류에서는 'BEAUTY'를, 의약품류에서는 'FIRST AID'를 각각 권리불요구했다. 같은 이름이라도 어떤 상품을 지정하느냐에 따라 독차지를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것을 한 건이 보여준다.

셋째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다. 매출과 광고, 언론 노출 같은 사용 실적을 증거로 제출해 소비자가 그 이름을 특정 회사의 표시로 인식하게 되었음을 보이면, 사후에 식별력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다만 이름이 상품의 성질을 노골적으로 설명할수록 요구되는 증거는 두꺼워진다.

세 장치가 한 건에 모두 등장한 사례가 있다. '글래스 스킨(GLASS SKIN)'이라는 이름이다. 유리처럼 매끈하고 잡티 없이 맑게 비치는 피부를 가리키는 말로, 한국 뷰티 시장에서 쓰이기 시작해 영미권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거쳐 퍼진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미국 뷰티 매체에서도 일반명사처럼 쓰인다.

미국의 한 개인이 2018년 이 이름을 화장품에 출원했다. 2020년 6월 최종거절을 받았으나, 오래 사용해 식별력을 얻었다고 주장하면서 'SKIN' 부분을 권리불요구했고, 그해 11월 주등록부에 등록됐다(등록 제6197879호). 한국 시장에서 만들어진 말이 미국에서는 개인의 등록상표가 되어 있는 셈이다.
 

9517e647cd5f0.png
“미국의 세 갈래 우회로가 한 건에 모두 등장한 사례 (등록 제6197879호, 출처: USPTO TSDR)”


 

 

그래서 네이밍 단계에서 할 일

이름을 짓는 단계에서 확인할 것은 세 가지다.

먼저 후보 이름을 놓고 “이 이름에서 상품에 도달하려면 몇 단계가 필요한가”를 묻는다. 한 단계도 필요 없다면 등록은 어렵고, 두 단계 이상이라면 여지가 있다. 성분명이나 업계 공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과, 사용 후의 인상을 빌리는 것은 결과가 다르다.

다음으로 출원 시점을 앞당긴다. 식별력은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되므로, 지금 새로운 성분어라면 그 신선함이 유지되는 동안이 기회다.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 계획이 있다면 국가별로 다시 본다. 한국에는 미국식 권리불요구 절차가 없다. 대신 등록을 받더라도 그 안에서 성질을 그대로 표시하는 부분에까지 상표권의 힘이 미치지는 않는다고 법이 정해 두었다(상표법 제90조 제1항 제2호). 미국은 등록 단계에서 미리 정리하고, 한국은 다툼이 생겼을 때 그 부분을 빼고 따진다. 사용에 의한 식별력은 양국 모두 있지만 요구되는 증거의 두께가 다르다. 한국에서 무리 없이 등록된 이름이 미국에서 보조등록부로 밀릴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브랜드 담당자가 좋은 이름이라고 판단하는 기준과 심사관이 등록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방향이 반대다. 마케팅은 소비자가 한 번에 알아듣기를 원하고, 상표는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기를 요구한다. 이 긴장은 없앨 수 없다. 다만 어느 쪽으로 얼마나 기울일지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 검토 중인 그 이름은, 소비자가 곧바로 알아듣기를 바라는 이름입니까, 아니면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름입니까? 그리고 그 답을 마케팅팀과 IP 담당자가 같은 문장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BLT 칼럼은 BLT 파트너변리사가 작성하며 매주 1회 뉴스레터를 통해 발행됩니다.
뉴스레터 구독신청

 

필자 소개
정태균 파트너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들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48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상표등록 #식별력 #암시적표장 #기술적표장 #성질표시 #상표법제33조 #브랜드네이밍 #화장품상표 #K뷰티 #뷰티브랜드 #스킨케어 #시카 #성분마케팅 #미국상표 #보조등록부 #권리불요구 #디스클레임 #사용에의한식별력 #해외상표출원 #상표출원타이밍 #브랜드전략 #IP전략 #특허법원 #대법원판결 #특허법인BLT #변리사 

링크 복사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 아티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