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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하나 못 팔던 동생을 보고, 시장을 좁혔다

지난 편에서 문제의 넓이 이야기를 했어요. 너무 넓게 잡으면 손에 안 잡히고, 너무 좁게 잡으면 확장할 곳이 안 보인다고요. 그리고 초기에는 오히려 좁게 시작하는 게 유리할 때가 많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좁게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는 말, 이론으로만 들으면 선뜻 와닿지 않아요.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늘은 실제로 아주 좁은 데서 시작해 크게 넓힌 회사를 하나 놓고, 그 좁게 시작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같이 뜯어볼게요. 같이 뜯어볼 기업은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예요. 서비스 9년 만에 누적 거래액 1조 원을 돌파한 플랫폼이지만, 시작은 손바닥만 했어요.

 

(출처 : 포브스코리아)

 


 

7천 원짜리 파우치가 준 감각

 

아이디어스를 만든 김동환 대표에게는, 손으로 만든 물건의 특별함을 처음 몸으로 느낀 작은 경험이 있었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누군가 직접 만들어 파는 7천 원짜리 파우치를 보고, 게시자에게 부탁해 그걸 샀대요. 공장에서 찍어낸 것도 아니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그 사람이 손으로 만든 단 하나의 물건이요.

 

 

제 추측이지만 그는 그 파우치를 소중하게 여겼을 거예요. 누가 “그거 나도 갖고 싶다”고 하면,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괜히 으쓱했겠죠? 별것 아닌 파우치 하나였지만, 그는 거기서 ‘손으로 만든 것’이 주는 특별한 감각을 몸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이 감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건, 이게 아이디어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에요. 김동환 대표는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머리로 분석해서 안 게 아니라, 소비자로서 직접 느껴본 사람이었어요. 이 점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어요.


 

동생의 도자기는 왜 안 팔렸을까?

 

그에게는 사촌동생이 있었어요. 6수 끝에 도예과를 졸업한, 도자기를 빚는 사람이었죠. 둘이 자취를 함께 하던 시절, 그는 사촌동생이 겪는 일을 매일 옆에서 지켜봤어요.

동생은 땡볕이 내리쬐든 한파가 몰아치든 밖에 나가 도자기를 팔려 했지만, 하나를 파는 것도 어려웠어요. 온라인에 올려봐도 소용없었어요. 값싼 저가 제품들과 같은 기준으로 가격 경쟁을 해야 했거든요. 정성껏 손으로 빚은 작품이,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과 같은 자리에서 오직 가격으로만 비교당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앞선 파우치 경험이 힘을 발휘해요.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동생의 도자기가 저가 공산품과 나란히 놓여 값으로만 재단당하는 상황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보였어요. 문제는 도자기의 품질이 아니라, 그걸 제값에 알아봐 줄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문제는 동생 한 명만의 것이 아니었어요. 알아보니 매년 공예를 전공하고 졸업하는 사람이 2만 명인데, 그중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했어요. 나머지 열에 아홉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든 걸 팔 곳이 없어서 작가의 길을 접고 있었어요.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정처럼 보였던 게, 사실은 수만 명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였던 거예요.


 

온라인 쇼핑이 아니라 ‘핸드메이드’를 골랐다

 

문제를 봤다고 바로 사업이 되는 건 아니었어요. 동생 한 명의 딱한 사정인지, 비슷한 사람이 충분히 많은지부터 확인해야 했죠. 6편에서 말한 ‘넓이’를 따져본 거예요.

주변을 살펴보니, 비슷한 상황에 놓인 공예 작가가 적지 않았어요. 오프라인에서는 가판이나 프리마켓에 의존해야 했고, 온라인에서는 저가 공산품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해야 했어요. 게다가 당시 오프라인 수공예 프리마켓은 늘고 있었지만, 온라인 전용 핸드메이드 마켓은 거의 없었어요.

겪는 사람은 많은데 마땅한 자리는 없는, 딱 빈 곳이었죠. 미국의 엣시(Etsy), 일본의 미네(minne) 같은 해외 사례도 이 영역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줬어요. (엣시는 이후 2015년 나스닥 상장까지 가면서, 이 좁아 보이는 니치가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줬고요.)

그렇다고 ‘모든 걸 파는 또 하나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드는 건 답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하면 동생의 도자기가 겪은 그 일, 저가 공산품과 가격으로 비교당하는 상황으로 결국 되돌아갈 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디어스가 고른 판은 ‘온라인 쇼핑’ 전체가 아니라 ‘핸드메이드’ 하나였어요. 문제가 가장 선명하게 존재하는 영역만 딱 잘라낸 거예요.


 

좁아서 오히려 가능했던 것

 

시작은 정말 작았어요. 하지만 좁게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과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었어요. 좁혔기 때문에 가능해진 게 세 가지 있어요.

첫째, 다른 판(field)을 깔았어요. 아이디어스의 고객은 “싼 물건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도자기가 저가 공산품과 가격으로 비교당하는 일이 없었어요. 같은 도자기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두니 제값을 받을 수 있었어요. 사촌동생의 도자기가 묻혔던 그 문제가, 판을 바꾸니 사라진 거예요.

 

 

둘째,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어요. 아이디어스는 물건을 파는 사람을 ‘판매자’가 아니라 ‘작가’라고 불러요. 단순히 상품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창작자의 이야기와 정성이 담기는 곳으로 만든 거예요. 이건 “누구나 뭐든 파는” 넓은 쇼핑몰이었다면 절대 지킬 수 없는 색깔이었어요.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고객이 물건을 고르는 기준 자체가 바뀌었어요. 보통 온라인 쇼핑에서는 가격, 배송, 리뷰, 스펙을 놓고 비교해요. 그런데 아이디어스에서는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얼마나 독특한지,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돼요. 시장을 좁히자 경쟁의 규칙이 달라진 거예요. 이제 저가 공산품과 같은 잣대로 겨루지 않아도 됐어요. 이게 이 사례의 진짜 핵심이에요. 단순히 ‘시장을 작게 잡았다’가 아니라, 좁히니까 경쟁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

 

 


 

좁게 시작해, 흔들리지 않고 넓혔다

 

그렇다고 아이디어스가 계속 좁은 채로 머문 건 아니에요. 여기가 넓이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좁게 시작하되, 뿌리를 지키며 옆으로 넓혀간 거예요.

처음엔 액세서리, 도자기, 향수 같은 손으로 만든 ‘물건’이 중심이었어요. 그러다 수제 먹거리로 넓혔어요. 손으로 만든 잼, 쿠키, 청 같은 것들이요. ‘핸드메이드’라는 뿌리는 그대로 둔 채, 그 아래 가지를 하나씩 늘린 거예요. 지금은 손으로 만든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됐고요.

 

 

여기서 눈여겨볼 게 있어요. 아이디어스의 확장은 아무 데로나 뻗어간 게 아니에요. 한마디로, 상품의 범위는 넓혔지만 ‘누가 만드는가’라는 기준은 넓히지 않았어요. 액세서리든 수제 먹거리든, 파는 물건은 달라져도 “손으로 만든 것, 작가가 만든 것”이라는 조건은 그대로 둔 거예요. 넓히는 내내 “작가가 잘되게 한다”는 원칙 하나를 붙잡았고요. 작가에게 판매 노하우를 가르치고, 원부자재 구매를 돕고, 해외 판매까지 도왔어요. 확장의 방향이 언제나 ‘작가’를 향해 있었던 거죠.

만약 이 중심을 놓고 “그냥 다 팔자”며 일반 공산품까지 들였다면 어땠을까요. 다시 저가 경쟁을 하는 평범한 쇼핑몰로 돌아갔을 거예요. 동생의 도자기가 묻혔던 그 자리로요. 6편에서 말한 킹핀이 여기 있어요. 여러 방향으로 넓힐 수 있어도,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 작가가 잘되게”라는 핵심 하나를 붙잡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은 거예요.


 

이 이야기가 주는 것

 

아이디어스의 궤적을 넓이로 정리하면 이래요.

7천 원짜리 파우치에서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몸으로 느낀 사람이, 동생의 도자기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걸 보고 문제를 정의했어요. 그리고 큰 시장으로 뛰어드는 대신, ‘핸드메이드’ 하나로 좁게 시작했어요. 좁혔기 때문에 대상이 또렷해졌고, 다른 판이 생겼고, 그 색깔이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다음엔 그 뿌리를 지키며 옆으로 하나씩 넓혀, 지금의 큰 플랫폼이 됐고요.

이게 지난 편에서 말한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넓이의 실제 모습이에요. 중요한 건 처음부터 큰 시장을 잡는 게 아니었어요. 가장 선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에서 시작하고, 그 문제를 풀며 얻은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옆으로 넓혀가는 것이었죠. 아이디어스는 ‘핸드메이드’라는 좁은 입구로 들어갔지만, 그 안에서 작가와 고객을 모았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갔어요.

그래서 오늘 이 질문을 남기고 싶어요.

  • 우리는 지금 커 보인다는 이유로 너무 넓은 시장에 곧바로 뛰어들려 하고 있진 않나요?
  • 우리만의 또렷한 대상, 좁게라도 확실히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 나중에 넓힌다면, 그 중심에 두고 끝까지 지켜야 할 하나는 무엇인가요?

 

크게 시작하는 것보다, 작지만 또렷한 데서 시작해 넓혀가는 게 오히려 멀리 가는 길일지도 몰라요. 사촌동생의 도자기 하나가 안 팔리는 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거기서 남들이 못 본 문제를 읽어낸 그 시선을,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의 “성장”을 기획합니다. 기획하는별 (블로그 : https://sparkle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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