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의 깊이와 넓이, 강도와 빈도를 바탕으로 우리가 풀려는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한 가지를 짚었죠. 이 문장은 아직 우리 책상 위에서 만든 ‘문제 가설’이라는 것.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그럴듯한 문제라도, 고객이 실제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예요.
오늘은 그 문장을 들고 밖으로 나가볼게요. 솔루션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고객의 현실에서도 확인되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찾으러 가는 것과 확인하러 가는 것은 달라요
4편에서도 고객을 만나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는 고객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방법을 살펴봤죠. 우리의 솔루션부터 설명하지 않고, 고객의 과거 경험과 행동을 통해 실제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었어요.
이번에는 조금 달라요. 이제 우리 손에는 여러 번 고민하고 다듬은 문제 문장이 하나 들려 있어요.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왜 그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나름의 가설도 정리되어 있죠. 이번 만남에서는 그 가설을 고객의 실제 경험과 비교해보려는 거예요. 우리가 정의한 문제를 고객도 실제로 겪고 있는지, 그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느기는지, 혹시 우리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를요.
그렇다고 우리가 예상한 답만 찾아다녀서는 안 돼요. 확인하러 갔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 이야기가 우리가 정의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단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만남의 목적은 고객에게 우리 문장이 맞는지 묻는 게 아니라, 고객의 실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정의한 문제를 다시 판단하는 거예요.
문장 속 가정, 하나씩 확인해보세요
가장 흔한 실수는 완성된 문장을 고객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이런 문제를 겪고 계시죠?”라고 묻는 거예요. 잘 다듬은 문장일수록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에 고객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요. 4편에서 이야기했던 그 예의 바른 “네”죠. 고객이 우리 문장에 동의했다고 해서 실제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어요.
대신 문장 속에 담긴 가정을 하나씩 꺼내 고객의 실제 경험과 비교해보세요. 지난 편에서 정리했던 반려인 문제 문장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평일 낮 동안 집을 비우는 1인 가구 반려인은 반려견에게 필요한 활동량을 꾸준히 확보하지 못하고, 마땅히 맡길 대안도 찾지 못한 채 매일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이 문장에는 여러 가정이 담겨 있어요. 평일 낮 동안 집을 비운다는 것, 반려견의 활동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 마땅한 돌봄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이제 각각의 가정이 고객의 실제 생활에서도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지난주 평일에는 반려견이 몇 시간 정도 혼자 있었는지, 평소 산책이나 놀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활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들어보는 거죠. 필요하다면 실제 활동량이나 반려견의 상태도 함께 살펴볼 수 있고요.
이때 우리가 적어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만 볼 게 아니라, 고객이 그 상황을 얼마나 문제로 느끼는지, 왜 기존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해요. 예를 들어 펫시터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기 어려워요. 정말 맡길 곳이 없었던 건지, 맡길 곳은 있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낯선 사람에게 맡기는 게 불안했던 건지에 따라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문장에 적어둔 내용을 먼저 설명하지 말고, 고객의 경험을 충분히 들은 다음 그 이야기가 우리 문장과 어디까지 일치하는지 살펴보세요.
어떤 경험이 문제 정의의 근거가 될까?
고객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반응이 나와요. 어떤 고객은 우리가 생각했던 문제를 바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도 있고, 어떤 고객은 비슷한 상황에 있지만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고객이 우리 문제에 동의했느냐보다, 실제로 어떤 경험을 했고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봐야 해요.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고객이 실제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가. “네, 저도 불편하죠”라는 대답만으로는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자주 문제를 겪는지 알기 어려워요. 대신 최근에 겪었던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보세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당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상황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요. 반려인 사례라면 “산책을 자주 못 시켜줘서 미안해요”라는 대답에서 멈추지 않고, 지난주 실제로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이 있었는지, 그날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까지 들어보는 거예요.
둘째, 그 문제가 고객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문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고객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에요. 조금 불편하지만 그냥 참고 넘어갈 수도 있고, 기존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하고 있을 수도 있죠. 반대로 이미 시간이나 돈을 쓰고 있거나 자기만의 임시방편을 만들어 쓰고 있다면, 그 문제를 중요하게 느끼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산책을 나가거나, 펫시터를 알아보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반복해서 돌봄을 부탁하고 있다면 그 행동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8편에서 이야기했듯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문제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럴 때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지까지 들어봐야 합니다.
셋째, 비슷한 고객에게서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나는가. 한 고객에게서 중요한 문제를 발견 했다고 해서 우리가 정의한 고객군 전체가 같은 문제를 겪는다고 볼 수는 없어요. 평일 낮 동안 집을 비우는 다른 1인 가구 반려인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요, 아니면 앞서 만난 고객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상황일까요? 여러 고객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반복되는 문제와 개인적인 상황을 구분해보세요. 이 과정에서 같은 고객군 안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이 보일 수 있어요. 같은 1인 가구라도 반려견의 나이나 건강 상태, 근무 형태, 기존 돌봄 환경에 따라 겪는 문제가 다를 수 있겠죠. 그런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문제 정의를 더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건 고객이 우리 문장에 얼마나 많이 동의했느냐가 아니에요. 고객의 구제적인 경험과 행동을 통해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 문제가 고객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문장이 바뀌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고객을 만나고 나면 처음 정리했던 문제 문장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반려인 사례로 다시 생각해볼게요. 우리는 처음에 반려견의 활동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봤어요. 그런데 실제로 고객을 만나보니 활동량에 대한 걱정보다 “낮 동안 반려견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어요. 혹은 1인 가구 반려인을 중심으로 문제를 정의했는데, 맞벌이 부부에게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 무게가 더 크게 확인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처음 정의했던 문제의 핵심이나 고객 범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반대로 고객을 만났다고 반드시 문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니에요. 여러 고객의 실제 경험이 우리가 정의한 문제와 일치하고, 그 문제를 중요하게 느낀다는 근거도 충분히 모였다면 기존 문장을 유지해도 좋습니다. 핵심은 문장을 바꿨느냐가 아니라, 고객에게서 얻은 근거를 바탕으로 문제를 다시 판단했느냐니까요. 다만 예상과 다른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오는데도 처음 정한 문장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면, 고객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어요.
2편에서 살펴봤던 루트릭스를 떠올려보세요. 처음에는 정밀한 나무 데이터가 고객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고객을 만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더 필요한 건 여러 농장의 나무를 한 번에 찾고 구매할 수 있는 편리함이라는 걸 알게 됐죠. 처음 생각했던 문제를 그대로 붙잡았다면 고객에게 더 중요한 문제를 알아채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러니 고객을 만나고 돌아왔다면 처음 작성했던 문제 문장을 다시 꺼내보세요. 고객의 경험이 우리 문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그대로 유지하면 돼요. 일부 가정이 달랐다면 문장을 수정하고, 새롭게 정의한 문제를 다른 고객에게도 확인해보면 됩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실제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이미 충분히 해결되고 있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된다면, 문제 자체를 다시 탐색해야 할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고객의 현실과 비교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사실들이니까요. 정말 아까운 건 처음 가설이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틀렸다는 걸 확인하고도 그 가설을 붙잡은 채 솔루션을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그럼 언제 솔루션으로 넘어가도 될까?
여기까지 왔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고객을 얼마나 만나야 솔루션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요?”
완벽한 확신을 얻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모든 고객을 만나볼 수도 없고, 솔루션을 실제로 써보게 하기 전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몇 번 했느냐보다, 우리가 정의한 고객과 문제를 뒷받침할 근거가 충분히 모였느냐가 기준이에요. 넘어가기 전에 이 네 가지만 짚어보세요.
- 정의한 고객군에서 비슷한 경험이 반복해서 확인됐나요?
- 고객이 그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지, 경험과 행동으로 확인했나요?
- 고객이 기존에 어떤 방법을 시도했고, 왜 그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거나 이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고 있나요?
-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 차이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나요?
특히 세 번째를 놓치기 쉬워요. 고객이 문제를 겪고 있더라도 기존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하고 있다면,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찾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고객마다 반응이 크게 다르다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 더 살펴봐야 해요. 예를 들어 장시간 집을 비우는 반려인에게서 문제가 특히 크게 나타난다면, 그 고객군을 중심으로 문제를 다시 확인해볼 수 있어요. 반대로 여러 고객군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면, 각 고객군이 겪는 상황과 문제의 중요도를 비교하면서 어디에 먼저 집중할지 판단할 수 있겠죠.
물론 이 질문들에 답했다고 해서 앞으로 만들 솔루션까지 검증된 건 아니에요. 지금 확인한 건 고객이 겪는 문제이지, 우리가 만들 해결책을 고객이 선택할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이야기입니다.
이제야 솔루션을 이야기할 차례예요
여기까지 열 편에 걸쳐 문제 정의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문제에 여러 층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했죠. 고객이 말한 불편에서 한 겹씩 내려가고, 우리가 해결할 문제의 범위를 정하고,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자주 발생하는지도 살펴봤어요. 그렇게 모은 재료로 하나의 문제 문장을 만들었고, 오늘은 그 문장이 고객의 현실에서도 확인되는지 살펴봤습니다.
돌아보면 순서는 단순했어요. 찾고, 고르고, 정리하고, 확인하기.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건 잘 다듬어진 문제 문장 하나만은 아니에요.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왜 기존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는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모은 거예요.
물론 여기까지 왔다고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솔루션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새롭게 드러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다시 문제 정의로 돌아와도 괜찮아요. 문제 정의는 한 번 작성하고 끝내는 정답지가 아니니까요. 다만 이제는 무엇을, 왜 해결하려는지에 대한 근거를 갖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볼 차례예요.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우리가 생각한 방법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고객이 그 해결책을 선택할 이유는 무엇인지. 문제 정의 노트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노트에서 이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혹시 지금 검증하고 있는 문제가 있나요? 고객을 만나면서 처음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기획합니다. 기획하는별 (블로그 : https://sparkle3.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