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주 품는 기대가 있다. 티파니의 파랑이나 에르메스의 오렌지처럼, 우리 브랜드의 색 하나를 상표로 등록해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써야 인정받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2026년 8월 말, 태평양 양쪽에서 녹색 하나를 둘러싼 서류가 오갔다. 8월 25일 미국 상표심판원(TTAB)은 측량용 삼각대의 다리에 쓰인 녹색을 상표로 등록받으려던 출원에 대해, 심사관의 거절이 옳다고 판단했다. 하루 뒤인 8월 26일, 한국에서는 올리브영이 자사의 녹색에 대해 받은 거절이유 통지에 의견서를 냈다. 두 사건 모두 색 하나가 상표가 될 수 있는지를 다루지만, 걸린 지점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색을 자산으로 만들려는 기업이 알아야 할 전부다.
색은 상표가 될 수 있다, 다만 문턱이 둘이다
색깔 하나만으로도 상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미국에서 오래전에 정리된 문제다. 1985년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은 오웬스코닝의 분홍색 단열재 사건에서, 오랜 사용으로 소비자가 그 색을 특정 회사의 표지로 인식하게 됐다면 등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5년 연방대법원은 Qualitex 판결에서 색채 단독 상표가 원칙적으로 등록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기능적인 색은 안 된다는 한계를 함께 그었다.
그래서 색을 등록하려는 브랜드 앞에는 문턱이 둘이다. 하나는 식별력이다. 색은 그 자체로는 출처를 알려주지 않으므로, 오래 쓰고 많이 알려서 소비자가 그 색만 보고 브랜드를 떠올리게 됐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하나가 기능성이다. 그 색이 제품의 성능이나 안전, 사용의 편의에 기여하고 있다면 상표로 독점할 수 없다.
두 문턱 사이에는 순서가 있고, 앞에 놓인 것은 기능성이다. 기능적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그 뒤에 아무리 두꺼운 사용 실적을 쌓아 두었어도 등록에 이르지 못한다. 식별력은 시간과 마케팅 비용으로 채울 수 있는 요건이지만, 기능성은 그렇게 넘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국 사건이 걸린 곳은 앞쪽 문턱이었다
문제된 출원은 팬톤 2297C 녹색을 측량용 삼각대의 다리에 적용한 표장이었다(출원번호 98404066, 지정상품 “건설·측량용 삼각대”). 출원인은 이 표장을 미국의 보조등록부(Supplemental Register)에 올리려 했다. 보조등록부는 아직 식별력이 충분하지 않은 표장을 예비적으로 등재해 두는 제도로, 한국 상표법에는 대응하는 제도가 없다.
그런데 심판원은 식별력을 따지는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 미국 상표법 제23조 (c)항에 따른 기능성 거절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는 색을 삼각대 다리에 쓰는 것은 건설·측량 현장에서 시인성을 높여 안전에 기여하므로, 그 색은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본 것이다. 기능적인 표장은 보조등록부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 결정에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에 관한 판단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기능성을 뒷받침한 것은 특허 문헌이나 기술 자료가 아니라 출원인 자신의 판매 자료였다. 회사 웹사이트는 이 제품을 “자외선에 강한 고시인성으로 다른 제품보다 뛰어나고 작업 현장에서 눈에 띈다”고 소개하면서 “모든 환경을 위해 설계된 최초의 고시인성 헤비듀티 복합소재 삼각대”라고 적고 있었고, 유통 채널의 상품 설명에도 고시인성이 판매 포인트로 올라 있었다. 제품을 팔기 위해 쓴 문장이, 그 색이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의 증거로 그대로 인용된 것이다.

한국 사건이 서 있는 곳은 뒤쪽 문턱이다
같은 주에 한국에서 진행된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씨제이올리브영은 2026년 자사의 상징색인 녹색을 제35류 소매업 서비스에 대해 단일 색채 상표로 출원했다(출원번호 40-2026-0065496). 지식재산처는 5월 27일 거절이유를 통지했고, 올리브영은 제출기일이었던 7월 27일에 앞서 기간연장을 신청한 뒤 8월 26일 의견서를 냈다.
통지서가 든 거절이유는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6호와 제7호다. 식별력이 없는 표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심사관의 설명은 두 갈래로 읽힌다. 하나는 “단일색채표장으로 간단한 표장에 해당”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색채는 일반 수요자들이 상품의 출처표시가 아닌 지정상품의 디자인 정도로 인식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그 색을 보고 어느 회사의 서비스인지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디자인으로 볼 것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서 미국 사건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올리브영의 녹색에 대해서는 그 색이 소매업에서 무슨 기능을 한다는 지적이 없다. 앞쪽 문턱에서 걸린 흔적이 없고, 지금 다투고 있는 것은 뒤쪽 문턱이다. 삼각대의 녹색은 안전이라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막혔지만, 매장의 녹색은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툴 여지가 남는다. 색이 쓸모없을수록 상표가 되기 쉽다는, 다소 역설적인 구조다.
이런 거절이유는 넘어설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색이 본래 식별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은 사용에 의한 식별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공법이고, 우리 상표법도 출원 전부터 사용한 결과 수요자가 특정인의 출처 표시로 인식하게 되었다면 등록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다. 문제는 그 인식을 무엇으로 증명하느냐다.
심사 실무가 요구하는 자료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그 색을 어떤 상품에 어떤 형태로, 얼마나 오래, 어느 지역에서 계속 써 왔는지가 첫 번째다. 그 기간의 매출액과 시장점유율, 광고와 홍보를 어떤 방법으로 얼마 동안 얼마의 비용을 들여 해 왔는지가 두 번째다. 그리고 소비자가 실제로 그 색을 그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인지도 조사 결과가 세 번째다. 색을 자산으로 만들려는 브랜드가 지금부터 모아 두어야 할 목록이 바로 이것이다.
이 길을 실제로 통과한 국내 사례도 있다. 한국인삼공사가 정관장 제품의 색채 조합에 대해 받은 등록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위아래로 나뉘고 금색 선이 들어간 구성으로, 문자도 도형도 없이 색만으로 이루어진 상표다. 2019년 7월 출원했으나 2020년 12월 식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됐고, 특허심판원에서 거절결정이 취소된 뒤 2022년 10월 등록에 이르렀다. 앞서 기재한 자료를 갖추고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출원부터 등록까지만 3년이 넘게 걸렸다. 다국적 브랜드 하리보의 금색에 이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 나온 색채만으로 된 상표 등록으로 알려져 있다.
두 국내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차이가 하나 보인다. 정관장이 등록받은 것은 색채의 조합이었고, 올리브영이 출원한 것은 단일 색채다. 그리고 올리브영 출원 건의 의견제출통지서는 “단일색채표장으로 간단한 표장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식별력 판단에 함께 얹었다. 색 하나를 통째로 요구하는 것이 색채상표에서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상징색을 가진 브랜드들은, 색을 어떻게 확보하고 무엇을 더 얹었는가
그렇다면 이 문턱을 넘어선 브랜드들은 실제로 무엇을 손에 쥐었을까. 먼저 확인해 둘 것은, 이들이 색채상표를 실제로 확보하기는 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이른 사례가 앞서 본 오웬스코닝의 분홍색이다. 건축자재라는, 색이 미감보다 기능으로 읽히기 쉬운 분야에서 분홍색은 단열 성능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회사는 오랜 기간 그 색만 써 왔다. 주목할 것은 등록의 형태다. 2000년 8월 29일 등록된 이 상표의 표장 설명은 “이 표장은 상품 전체에 적용된 분홍색으로 이루어진다. 상품의 점선 윤곽은 표장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표장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등록 제2,380,742호, 제17류 건축용 단열재). 색 하나를 추상적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에 어떻게 입혀진 색인지를 문언으로 못박은 것이다.
티파니 역시 1998년부터 티파니 블루를 색채상표로 등록해 두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2001년에는 이 색을 팬톤이 티파니만을 위해 만든 전용 커스텀 컬러로 표준화했다. 일반에는 판매되지 않는 이 색의 이름은 창립연도를 딴 ‘1837 블루’다.
여기까지만 보면 “색을 등록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이들이 실제로 한 일을 조금 더 따라가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어느 브랜드도 자기 상징색의 보호를 색채상표 하나에만 맡기지 않았다. 색채상표는 여러 겹 중 한 겹이었고, 그 옆에 성격이 다른 권리를 나란히 세워 두었다.
티파니는 우선 색의 이름을 문자상표로 따로 잡았다. “TIFFANY BLUE”는 2015년 9월 1일 등록됐고(등록 제4,804,204호), 지정상품을 “보석, 그리고 파랑을 필수 구성요소로 하는 보석”으로 적었다. “TIFFANY BLUE BOX” 역시 별도 등록이다(등록 제4,550,678호, 2014년 6월 17일 등록). 색채상표는 상대가 비슷한 색을 썼을 때 그 색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다투어야 하는 반면, 문자상표는 상대가 “티파니 블루”라는 말을 쓰는 순간 훨씬 단순한 싸움이 된다. 색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이름은 그럴 수 없다.
그리고 한 겹이 더 있다. 티파니는 그 색이 입혀진 물건 자체를 한국에서 입체상표로 확보해 두었다. 표장 견본은 티파니 블루로 착색된 종이 쇼핑백을 정면과 측면, 비스듬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 세 장이고, 등록공보에는 “본 상표는 입체이므로 원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국제등록 제1208903호, 국제등록일 2013년 12월 19일, 등록일 2017년 5월 30일). 지정상품은 제3류부터 제35류까지 열세 개 류에 걸쳐 있고, 제16류에는 “인쇄된 종이 쇼핑백”과 “포장용 종이봉투”가 그대로 들어 있다. 색 하나를 떼어 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색이 입혀진 쇼핑백이라는 물건의 형상을 통째로 잡은 것이다. 색채상표가 가장 어려운 길이라면, 이쪽은 같은 색을 지키면서 훨씬 일찍 갈 수 있는 길이다.
루부탱의 레드솔은 등록의 범위가 나중에 좁혀진 사례다. 2008년 1월 1일 등록될 당시(등록 제3,361,597호, 제25류 여성 하이패션 신발) 표장 설명은 “이 표장은 신발의 붉은 래커 밑창으로 이루어진다”였고, 빨강이 표장의 요소로 청구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2년 9월 제2연방항소법원은 이 권리가 갑피와 대비되는 빨간 밑창에만 미친다고 보고, 등록 자체를 그 범위로 한정하도록 명했다. 그 결과 지금의 표장 설명은 “이 표장은 신발의 붉은 래커 밑창으로 이루어지며, 인접한 갑피 부분의 색과 대비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발 전체가 빨간 경우까지는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색이 놓이는 부위와 조건을 스스로 좁혀 두지 않으면, 법원이 대신 좁힌다.
에르메스의 오렌지는 관할을 옮기면 답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 나라에서 색채상표 등록을 받아냈지만 유럽연합지식재산청은 2005년 식별력 부족을 이유로 같은 출원을 거절했다. 유럽 상표 심사가 느슨하다는 인상과는 반대되는 결과인데, 사실 두 이야기는 층이 다르다. 유럽연합지식재산청은 선행 상표와 충돌하는지는 직권으로 심사하지 않고 권리자의 이의신청에 맡기지만, 식별력이 있는지는 직권으로 심사한다. 그리고 색채처럼 본래 식별력이 없는 표장이 사용에 의한 식별력으로 등록에 이르려면 그 인식이 유럽연합 전역에 걸쳐 있어야 한다. 한두 나라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나머지 회원국에서 같은 증명이 되지 않으면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색채상표의 유지 단계에서 특정 회원국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권리가 흔들린 사례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랜드의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요구되는 증명의 지리적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내 브랜드가 지금 손댈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색을 정하기 전에 그 색이 무엇에 입혀질지를 정한다. 오웬스코닝은 “상품 전체에 적용된 분홍색”, 루부탱은 “신발의 붉은 래커 밑창”이라고 등록 문언에 적었다. 색을 허공에 놓고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적용 대상과 부위를 문언과 도면으로 확정한 것이다. 파란색이 아니라 파란색 포장상자, 초록색이 아니라 초록색 간판과 쇼핑백. 대상이 좁아질수록 증명할 범위도 줄고 상대가 다툴 지점도 준다.
둘째, 시점에 맞는 그릇을 고른다. 같은 색을 담는 그릇은 셋이고, 각각 요구하는 시점이 다르다. 가장 앞에 오는 것은 색과 형상이 결합된 디자인권이다. 제품이나 포장을 공개하기 전에 출원해야 하지만 몇 달이면 확보된다. 그다음이 그 색이 입혀진 물건 자체를 잡는 입체상표다. 앞서 본 티파니의 종이 쇼핑백이 정확히 이 자리에 있다. 상표법은 입체적 형상도 표장으로 인정하므로 포장상자나 종이가방, 용기의 형상을 그 색과 함께 출원할 수 있고, 색 하나만 떼어 내 요구하는 것과 달리 형상이라는 식별 요소가 하나 더 붙어 있어 심사에서 다툴 여지가 넓다. 마지막에 오는 것이 색채상표다. 사용 실적이 쌓인 뒤에야 시도할 수 있고, 정관장의 경우 출원부터 등록까지만 3년이 넘게 걸렸다.
순서를 반대로 잡으면 디자인권은 신규성을 잃고 색채상표는 증거가 모자라 거절된다. 반대로 순서대로 가면 앞의 두 권리를 쓰는 동안 쌓인 매출과 광고가 그대로 색채상표의 증거가 된다. 셋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권으로 시작해 색이 입혀진 포장의 입체상표로 버티고, 끝에 색채상표까지 손에 넣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다.
셋째, 색의 이름과 증거를 함께 쌓는다. 티파니가 “TIFFANY BLUE”를 별도 등록해 둔 것처럼, 브랜드가 자기 색에 붙인 이름은 일반 문자상표 심사를 받으므로 훨씬 빨리 권리가 된다. 동시에 앞서 본 입증 항목을 색이 바뀌지 않은 기간 단위로 정리해 둔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이 마케팅 문서다. 그 색을 “잘 보여서”, “성분을 보호해서”라고 설명해 온 문장은 기능성의 증거가 되고, 브랜드의 이야기로 설명해 온 문장은 식별력의 증거가 된다. 같은 색을 두고 마케팅팀이 쓰는 문장이 권리의 방향을 정한다.

소비자가 매대에서 제품명을 읽기 전에 먼저 보는 것은 색이다. 그런데 그 색을 쓰는 이유가 “눈에 잘 띄어서”라면, 그 이유는 언젠가 등록을 막는 근거가 되어 돌아온다. 당신의 브랜드가 그 색을 쓰는 이유는, 기능인가 이야기인가?
BLT 칼럼은 BLT 파트너변리사가 작성하며 매주 1회 뉴스레터를 통해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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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태균 파트너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들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48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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