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사업전략
믿어 달라고 하지 마라. 의심을 견디게 만들어라.

회의실 불이 꺼집니다.

드론이 공장 위를 날고, 첼로가 깔리고, 직원들이 웃으며 카메라를 봅니다. 자막이 뜹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꿉니다."

10초 뒤, 투자자는 핸드폰을 봅니다.

영상은 훌륭했습니다. 조명도, 편집도, 음악도 프로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영상 때문에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설득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 실패를 "영상이 별로였다"로 읽으면 다음번엔 더 좋은 촬영감독을 씁니다. 그리고 똑같이 실패합니다.

진짜 문제는 더 근본적입니다. 우리는 투자 콘텐츠의 목적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좋은 투자 콘텐츠는 믿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심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믿게 만들려는 콘텐츠는 감정을 쌓습니다. 음악을, 드론 샷을, 감동적인 카피를 쌓습니다. 의심을 견디게 만드는 콘텐츠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공격받을 지점을 먼저 찾고, 거기부터 지웁니다.

이건 영상만의 얘기가 아니다

피치덱도 같은 시험을 받습니다. 40장짜리 덱은 투자자를 믿게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이 "이것도 봐주세요, 이것도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투자자가 실제로 하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어디를 공격하면 무너지는지 찾는 겁니다.

IR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숫자를 더 많이 넣는다고 신뢰가 쌓이지 않습니다. 숨기고 싶은 숫자를 먼저 꺼내놓았을 때, 그제야 나머지 숫자가 읽힙니다.

CEO 인터뷰도 같습니다. "저희는 확신합니다"를 반복하는 창업자보다, "이 리스크는 아직 못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창업자가 더 오래 신뢰받습니다.

웹사이트도, 투자자 미팅도 다르지 않습니다. 좋아 보이려는 페이지는 스크롤 몇 번에 잊힙니다. 의심 하나를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는 페이지는, 그 의심을 갖고 있던 사람의 뇌리에 남습니다.

투자자보다 더한 심사관이 있다

이건 투자자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글로벌 파트너 앞에서는 이 시험이 더 가혹해집니다.

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와 라이선싱을 논의할 때, 상대는 당신 회사의 감동적인 스토리보다 데이터의 빈틈을 먼저 봅니다. 무엇이 실패했고, 왜 실패했는지. 아직 풀지 못한 리스크가 무엇인지. 그 실패를 숨기지 않고 먼저 꺼내놓는 회사가, 오히려 다음 미팅으로 넘어갑니다.

투자자는 당신 회사 하나에 돈을 겁니다. 글로벌 파트너는 자기 회사의 파이프라인, 규제 리스크, 수십 년 쌓은 브랜드를 함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의심은 투자자보다 한 겹 더 깊습니다. 투자자 앞에서 통했던 감동적인 내러티브가, 글로벌 파트너 앞에서는 오히려 의심을 키웁니다. "왜 이렇게 좋은 얘기만 하지?"

심사관의 일은 믿는 게 아니다

투자자든 글로벌 파트너든, 그들이 하는 일은 원래 믿는 게 아닙니다. 리스크를 가격 매기는 겁니다. 그들의 뇌는 당신을 좋아하려고 켜져 있지 않습니다. 어디가 약한지 찾으려고 켜져 있습니다.

예쁜 것과 버티는 것은 다른 기술이다

예쁜 것과 설득력 있는 것은 다른 기술입니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것과, 의심을 견디는 것도 다른 기술입니다.

예쁜 콘텐츠는 첫인상을 만듭니다. 설득력 있는 콘텐츠는 논리를 만듭니다. 의심을 견디는 콘텐츠는, 그 논리에서 약한 고리를 스스로 먼저 찾아내고 인정한 콘텐츠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첫 번째만 만들고 멈춥니다.

그래서 도발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마케팅의 시작과 끝을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기면 안 됩니다. 회사소개 전략 영상의 시작과 끝도 미디어 제작사에게 맡기면 안 됩니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마케팅 전문가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는 법을 압니다. 미디어 제작사는 그것을 더 잘 보이게 만드는 법을 압니다. 둘 다 진짜 기술입니다.

문제는 그 전에 있습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무엇을 말하지 않으면 의심받을 것인가. 투자자라면 어디를 공격할 것인가. 글로벌 파트너라면 무엇부터 검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카피를 쓰고 카메라를 들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출발점이 틀린 겁니다.

마케팅도 필요합니다. 좋은 촬영감독도 필요합니다. 다만 시작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90초가 끝난 뒤 투자자는 다시 숫자를 봅니다. 파트너는 다시 리스크를 봅니다.

그때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의심해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가.

 

데이비드 김 

투자은행가 (30년)  → 외신 테크 칼럼니스트 → 비주얼 스토리텔러 | 필름메이커 

AN Lab → https://alphanarrativelab.com/

더 많은 글과 작업 →  https://davidkim.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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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Kim (데이비드) AN Lab · CEO

Capital. Tech. 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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