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15년 밥 먹고 술 마셨는데 — 위기의 순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관시는 우정이 아니라, 채무 장부다.

몇 년 전 상하이의 한 회의실. 합작 공장 문제로 오랜 파트너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한국인 사업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10년 넘게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고,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술자리마다 건배를 나눈 상대였다. 신호가 갔다. 받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도, 다음 날에도. 그의 얼굴에서 무너진 건 사업이 아니라, 15년 동안 자신이 뭔가를 쌓았다는 확신이었다.

관시 연구자들의 정의는 명확하다. 관시는 호의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상호 의존과 채무 의식을 만드는 장치다. 감정이 아니라 기록이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빚졌고, 그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의 문제다.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중국에서 크게 실패하는 외국인일수록 인심은 후하다. 소개해주고, 조건을 양보하고, 일정도 맞춰준다. 정작 본인은 거의 요청하지 않는다. 서구식 감각으로는 '민폐 안 끼치는 좋은 파트너'다. 관시의 장부에서는 애초에 원 안에 들어온 적 없는 사람이다. 빚이 없는 관계에는, 위기 때 갚을 것도 없다.

명함 5000장은 네트워크가 아니다. 당신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사람 한 명이 네트워크다.

이런 오독은 월마트조차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에서 신뢰의 상징이던 '매일 저렴한 가격'이 중국 대도시 소비자에게는 낮은 품질의 신호로 읽혔다.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적어도 하나였다.

질문은 하나로 돌아온다

당신이 관계라고 믿고 있는 것은, 실제로 상대방에게 행동의 의무를 만들어냈는가.

일본은 정반대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관시가 빚이라면, 일본은 프로세스다. 첫 미팅에 계약서를 들고 간 한 유럽 기업은 6개월간 미팅만 다니다 연락이 끊겼다. 결정은 회의실이 아니라, 네마와시라 불리는 사전 조율에서 이미 끝나 있었다. 그 과정을 건너뛴 순간, 그는 파트너가 아니라 위험한 외부자가 됐다.

한국은 더 교묘하다. 반응은 빠르고, "좋습니다, 추진해보죠"라는 말도 잘 나온다. 그래서 착각한다. 실무진의 호의는 출발점일 뿐, 결재 라인 상단에 닿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내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공기가 바뀔 때까지, 그 프로젝트는 실제 의사결정권자의 레이더에 오른 적조차 없다.

 

셋 다 답은 같다. 

시간을 쌓았다고 믿었지만, 상대에게 아무 의무도 지우지 못했다.

좋을 때 만나는 사람이 고객이다. 나쁠 때 움직이는 사람이 파트너다.

 

세 가지 착각

 

패턴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다.

첫째, 활동을 전략으로 착각한다. 밥을 몇 번 먹었는지, 술자리에서 안부를 몇 번 물었는지를 관계의 깊이로 오해한다. 실제로 그건 존재 증명일 뿐이다. 상대의 기억 속에 당신이 있다는 뜻이지, 위기 때 그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둘째, 문화를 하나의 덩어리로 본다. '중국 비즈니스 문화' 책 몇 권을 읽고 베이징과 광둥을 같은 룰로 대한다. '아시아 정서'라는 말로 상하이와 도쿄와 서울을 하나로 묶는다. 관시, 네마와시, 결재 라인 — 셋은 전혀 다른 언어인데, 같은 사전으로 셋 다 읽으려 한다.

셋째, 시간을 저축처럼 여긴다. 오래 알고 지내면 잔고가 쌓여서 언젠가 자동으로 내 편이 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관시도, 네마와시도, 한국의 결재 라인도 저축이 아니라 조건부 자산이다. "이번에도 룰을 지켰는가"를 매번 다시 증명해야 잔고가 유지된다. 증명을 멈추는 순간, 잔고는 소급 적용되지 않고 그냥 사라진다.

당신의 전화기를 봐라

15년간 몇 번 만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당신에게 진 빚은 무엇인가.

당신 때문에 자신의 조직 안에서 움직여준 적이 있는가.

내일 문제가 터지면, 누구에게 전화할 것인가.

그 사람은, 정말 전화를 받을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신뢰의 총알은 많지 않다. 

어쩌면, 남은 총알은 단 한 발(One bullet)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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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Kim (데이비드) AN Lab · CEO

Capital. Tech. 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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