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공부 떠먹여드립니다.에 발행 되었던 글입니다.
브랜드, AI, 인사이트 이야기를 떠먹어드려요.
피클 하나로 실리콘밸리 투자자를 사로잡은 두 여자 이야기
마트 매대에서 가장 오랫동안 아무 변화도 없었던 코너를 하나 꼽으라면, 아마 피클 코너일 겁니다. 그 심심한 코너를 2년 만에 완판 행렬과 셀럽 협업, 수백만 달러 밸류에이션으로 바꿔놓은 브랜드가 있어요. GOOD GIRL SNACKS라는 브랜드인데요. 오늘은 이 브랜드가 "제품도 없이" 어떻게 팬덤부터 만들었는지 뜯어봅니다.
시작은 첫 직장에서의 무료함이었다
리아 마커스(Leah Marcus)와 야사만 바흐티아르(Yasaman Bakhtiar)는 대학 동기로 만나 7년째 절친이었어요. 졸업 후 각자 첫 직장(리아는 테크 스타트업, 야사만은 아트 업계)에 다니고 있었는데, 둘 다 일에 별 재미를 못 느끼고 하루 종일 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둘이 동시에 이상한 패턴을 발견합니다. 틱톡에서 "#피클" 관련 해시태그 조회수를 더하니 무려 95억 회에 달했던 거예요. 여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피클을 아삭아삭 씹어먹는 영상이 곳곳에서 터지고 있었죠.
야사만이 먼저 리아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우리 피클 회사 하나 차려볼까?"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시장 조사를 시작했고, 며칠 만에 도메인부터 구입했어요. 다만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기까지는 몇 달이 더 걸렸다고 하고요.
제품이 나오기 두 달 전부터, 이미 "브랜드"는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이 브랜드는 팔 물건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콘텐츠부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실제 제품 출시(2024년 2월)보다 두 달 이상 앞서 두 사람은 매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보통 식품 브랜드라면 예쁜 패키지 사진, 레시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카메라 앞에 자기 얼굴을 직접 드러내고, 콘텐츠의 주제도 "피클을 어떻게 먹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왜 회사를 그만두고 피클 회사를 차렸는가"**였어요. 브랜딩 과정, 창업 스토리, 두 친구가 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왔는지를 솔직하게 풀어낸 영상 몇 개가 며칠 만에 팔로워 1만 명을 끌어모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 페이스는 이어져서, 유료 광고나 유료 인플루언서 없이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을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어요. 고객 획득 비용(CAC)이 사실상 0원이었던 셈이죠.
플랫폼마다 역할을 다르게 나눴다
단순히 "매일 열심히 올렸다"는 게 다가 아니에요. 두 사람은 채널별로 명확한 역할 분담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 틱톡 · 인스타그램 릴스: 짧은 숏폼 영상으로, 알고리즘과 탐색 피드(For You 페이지)를 타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성장" 채널. 같은 영상을 두 플랫폼에 동시에 올렸어요.
- 인스타그램 피드(정적 게시물): 브랜드 무드와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브랜드 채널". 이벤트 사진이나 룩앤필을 정돈해서 보여주는 용도예요.
- 인스타그램 스토리 · 커뮤니티 채널(단체 메시지/텍스트): 찐팬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커뮤니티" 채널. 브랜드를 언급해준 사람은 스토리에 리포스트해주고, 커뮤니티 채널 구독자에게는 신제품 소식이나 얼리 액세스 같은 특별 대우를 해줬다고 해요.
즉 "넓게 퍼뜨리는 채널"과 "깊게 관계 맺는 채널"을 처음부터 구분해서 운영한 거죠.
돈 대신 "진짜 팬"에게 제품을 보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남달랐어요. 유명세만 보고 돈을 주고 광고를 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피클을 좋아하던 크리에이터들을 찾아 무료로 제품만 보냈다고 합니다. 이 방식으로 알릭스 얼(Alix Earle), 할리 배철더(Hallie Batchelder), 키트 키넌(Kit Keenan) 같은 인플루언서들의 자발적인 포스팅을 얻어냈고, 여기서도 지불한 비용은 0원이었어요.
이 전략이 얼마나 잘 먹혔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팔로워 수백만 명의 알릭스 얼이 Hot Girl Pickles 영상을 올렸는데, 정작 영상 내용의 대부분은 병뚜껑을 못 열어서 낑낑대는 모습이었다고 해요. 창업자들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몇 시간 뒤 이 상황 자체를 소재로 반응 영상을 찍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쇼피파이 스토어에 주문이 폭주했다고 하고요. "위기처럼 보이는 순간도 결국 콘텐츠 소재로 바꿔버린다"는 게 이들의 원칙 중 하나였던 셈이에요.
투자자들도 결국 지갑을 열다
이렇게 커뮤니티부터 다진 뒤, 브랜드는 최근 프리시드(pre-seed) 투자 라운드를 마감했습니다. Collab Fund가 리드했고, 샐러드 체인 스윗그린(Sweetgreen) 공동창업자 니콜라스 자메트도 개인 투자자로 참여했어요. RiverPark Ventures, Strand Equity, Nucleus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누적 300만 달러(약 40억 원)를 조달한 상태고요.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
- 출시 9개월 만에 소셜 팔로워 약 10만 명 돌파
- 에르완(Erewhon), 홀푸드(Whole Foods), 브리스톨팜스(Bristol Farms) 등 미국 서부 프리미엄 마트 입점, 1년 안에 에르완 입점 성사
- 뉴욕 해피어 그로서(Happier Grocer) 등 독립 매장 판매
- 클로이 카다시안과 콜라보 진행
- CNBC는 이들이 피클 브랜드 하나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만들어냈다고 평가
소규모 브랜드가 가져갈 인사이트
이 사례가 특히 곱씹을 만한 이유는, 큰 광고 예산이나 이미 확보된 팔로워 없이도 재현 가능한 원칙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 제품보다 사람이 먼저다. 예쁜 제품 사진 대신 "왜 이걸 만드는가"라는 서사를 먼저 보여주면,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팬을 모을 수 있어요.
- 완벽함보다 꾸준함이다. 두 달 동안 매일 포스팅한 게 핵심이었지, 한 편의 대박 영상이 전부가 아니었어요.
- 채널마다 역할을 나눠라. 도달(틱톡/릴스), 브랜드 이미지(피드), 관계(스토리/커뮤니티)를 하나의 채널이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 광고비 대신 '진짜 팬'을 찾아라. 이미 그 카테고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품을 선물하는 게, 유명세만 보고 광고비를 태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관계를 만듭니다.
- 돌발 상황을 콘텐츠로 바꿔라. 병뚜껑 사건처럼 예상 못한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 커뮤니티가 투자 유치보다 먼저다. 이 브랜드는 팬덤과 매출 증거를 먼저 만든 다음 투자를 받았어요. 순서를 뒤집지 않은 게 포인트예요.
작은 브랜드일수록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핑계를 대기 쉬운데, Good Girl Snacks는 그 반대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