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0일, 미국의 특허 항소사건을 전담하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이 선례적(Precedential) 판결 하나를 선고했다. 분쟁의 구도는 이렇다. 프랑스의 치과 AI 기업 Dental Monitoring은 치열 이미지를 딥러닝으로 분석하고, 이미지의 상태를 판단해 필요한 경우 다시 촬영하도록 안내하는 기술에 관한 미국 특허 제10,755,409호를 보유하고 있다. 투명교정장치 '인비절라인'으로 잘 알려진 Align Technology는 이 특허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PTAB)에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PTAB은 여러 선행기술을 조합하면 그 분야의 기술자가 이 발명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보아 청구항 1~15를 특허받을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Dental Monitoring이 불복해 항소했고, CAFC는 PTAB의 판단을 취소하며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항소심에서 승부를 가른 쟁점이 AI 기술의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Align이 내세운 선행기술 하나가 과연 '언제부터 선행기술이 될 수 있는가'였다.


상대 특허가 등록된 뒤에 공개된 문헌이 선행기술로 쓰였다
날짜부터 정리해 보자. Dental Monitoring의 '409 특허는 2017년 7월 21일을 우선일로 하여 출원되었고, 2020년 8월 25일에 등록되었다. 그런데 Align이 무효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 선행문헌은 그보다 한참 뒤에 세상에 나왔다. 미국 특허소송에서는 선행문헌을 발명자의 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에서 'Carrier'라고 불린 미국 공개특허문헌(US 2021/0068923 A1)의 공개일은 2021년 3월 11일이다. '409 특허가 등록되고도 반년이 지난 시점이다. 참고로 이 문헌의 출원인은 다름 아닌 Align 자신이다.
공개가 이렇게 늦은 문헌이 어떻게 선행기술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미국 제도의 특징이 있다. 미국 특허법 제102조(a)(2)에 따르면, 미국 특허와 공개특허문헌은 '공개된 날'이 아니라 '유효출원일(effectively filed date)', 즉 출원일을 기준으로 선행기술이 될 수 있다. 출원 후 공개되기 전까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기간에 대해서도, 일단 공개되고 나면 출원일로 거슬러 올라가 선행기술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한국 특허법에도 비슷한 장치가 있다. 먼저 출원되고 나중에 공개된 타인의 출원을 근거로 후출원을 거절하는 '확대된 선출원' 규정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그 '출원일'이 정확히 어느 날인지가 다시 문제가 됐다.
Carrier 문헌의 계보는 2016년 11월 4일에 제출된 가출원에서 출발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409 특허의 유효출원일은 Carrier의 가출원 출원일과 그 이후 정규출원의 출원일 사이에 있었다. 그렇다면 계산은 단순하다. Carrier의 기준일이 정규출원일이라면 Carrier는 '409보다 늦어 선행기술이 될 수 없다. 반면 가출원일인 2016년 11월 4일로 소급된다면, '409의 우선일보다 여덟 달 넘게 앞서므로 선행기술이 된다. Align이 Carrier의 가출원 날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CAFC도 이 사건에서 Carrier 가출원 날짜가 중요한 이유는 Carrier 자신의 권리를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Dental Monitoring 특허를 공격할 더 이른 선행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히 짚었다.
법원이 요구한 기준: 그 문헌 스스로 우선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PTAB은 Carrier의 가출원에 Align이 선행기술로 이용하려는 기술내용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가출원 날짜를 인정했다. 하지만 CAFC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제102조(d)(2)는 문헌이 더 앞선 출원일의 이익을 받으려면 그 날짜에 대해 우선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을 것(entitled to)'을 요구하는데, 법원은 이 자격을 가출원 우선권의 근거 조문(제119조(e))에 따라 판단했다. 즉 가출원의 기재가 발명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것(제112조(a))을 요구하는, 모든 출원인이 자기 출원의 우선일을 인정받을 때 통과해야 하는 바로 그 기준이다. 결국 Carrier 가출원에 필요한 기술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Carrier 가출원이 Carrier 공개문헌의 적어도 하나의 청구항을 실제로 뒷받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PTAB이 이 부분을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CAFC는 자명성 판단을 취소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이 기준에는 배경이 있다. 미국은 2011년에 제정되어 2013년부터 시행된 개정 특허법(America Invents Act)으로 선행기술 관련 조문을 크게 바꾸었는데, 개정 전 법 아래에서 나온 2015년 '다이내믹 드링크웨어(Dynamic Drinkware)' 판결은 "가출원이 뒷받침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 그 가출원의 날짜만 끌어와 선행기술을 만들 수는 없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조문이 바뀐 뒤에도 이 원칙이 살아 있는지를 두고 실무 견해가 갈려 왔는데, 이번 판결은 개정법의 문언 자체에서 같은 요구를 도출하면서 그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선례로 확인했다.
가출원의 품질은 '빨리'보다 '어디까지 담았는가'에서 갈린다
법원이 쓴 잣대가 '우선권을 주장할 자격'이라는 점은, 이 판결이 남의 분쟁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가출원은 정규출원보다 형식이 유연하고 청구항을 반드시 작성할 필요도 없어서, 기업들이 논문 발표나 제품 공개를 앞두고 우선 날짜부터 확보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한다. 이 전략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가출원을 냈으니 그 날짜는 확보됐다'고 믿는 데 있다. 이번 판결이 보여주듯, 가출원의 날짜는 가출원의 기재가 뒷받침하는 범위에서만 힘을 갖는다. 내 특허가 자신의 우선일을 지켜야 할 때도, Align의 Carrier 문헌처럼 내 출원이 훗날 경쟁사를 공격하는 선행기술로 쓰일 때도, 통과해야 하는 관문은 같다.
특히 AI 기술은 최초 아이디어와 실제 제품에 적용되는 기술 사이의 변화가 큰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단순히 "AI로 이미지를 분석한다"는 수준이었던 기술이 개발 과정에서 입력 데이터의 구성, 전처리 방식, 복수 모델의 역할 분담, 판단 로직이나 피드백 방식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가 1년 뒤 정규출원에서 사업의 핵심 청구항이 되었음에도 초기 가출원에는 충분히 드러나 있지 않다면, 가장 먼저 확보했다고 생각했던 날짜가 그 청구항을 지켜주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출원 단계에서 1년 뒤의 최종 청구항을 모두 예측해 작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주요 구성과 그 관계뿐 아니라 대체 가능한 구현 방식과 확장 가능성까지 충분히 남겨두는 것이다. 필자는 가출원의 품질을 페이지 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핵심 청구항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는 구조로 최초 명세서를 설계했느냐이다. 가출원은 단순히 날짜를 찍어두는 문서가 아니라 향후 특허 포트폴리오의 가장 오래된 뿌리가 될 수 있다.

경쟁사 특허를 볼 때는 '날짜의 계보'까지 봐야 한다
이 판결의 또 다른 시사점은 분쟁에서 선행기술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보통 선행기술을 검토할 때 가장 먼저 "이 문헌에 우리 특허의 기술이 들어 있는가"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전에 하나의 질문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문헌은 필요한 시점에 정말 선행기술이었는가." 특히 미국 특허는 가출원, 정규출원, 계속출원 등이 긴 계보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표지에 오래된 날짜가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 문헌이 모든 기술내용에 대해 그 날짜를 자동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arrier 문헌이 바로 그 사례다. CAFC는 Align이 Carrier를 더 이른 선행기술로 사용하려면 Carrier 가출원이 Carrier의 적어도 하나의 공개 청구항을 제112조(a) 수준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경쟁사가 제시한 선행특허가 가출원이나 복잡한 계속출원 계보에 의존한다면, 최초 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날짜가 실제로 유지되는지를 검증하는 작업이 무효전략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문헌에 기술이 있는지를 넘어 '그 기술을 어느 날짜부터 사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특허분쟁의 또 다른 승부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판결로 Dental Monitoring의 특허가 최종적으로 살아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련 사건에서 청구항 1, 7, 12는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인지를 따지는 별도의 요건(특허적격성) 문제로 이미 무효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PTAB도 환송심에서 이 청구항들을 다시 판단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선행자료인 Maninis 논문이 공개된 문헌으로 인정되는지도 별도 사건에서 이미 정리됐다. 결국 환송심의 핵심은 나머지 청구항에 대해 Carrier 문헌이 가출원 날짜를 선행기술의 날짜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있다. Carrier 가출원의 기재가 충분하다고 인정되면 자명성 판단이 다시 성립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Carrier에 기대고 있던 무효 논리도 흔들릴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가출원을 잘 작성해야 한다는 익숙한 교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업은 자신의 가출원이 미래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지만, 동시에 경쟁사가 들고 나온 선행특허의 가장 빠른 날짜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미국 특허분쟁에서는 기술의 유사성만큼이나 그 기술이 언제부터 존재했다고 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가출원의 진짜 가치는 가장 빠른 날짜를 적어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날짜를 끝까지 지탱할 수 있는 명세서를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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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태균 파트너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들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48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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