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는 나무를 유통하는 회사, 루트릭스 이야기를 했어요. 표층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고객을 만나며 방향을 틀고, 계속 아래로 파고들어 근원까지 내려간 회사였죠.
그런데 문제의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에요. 루트릭스가 '고객을 만나 방향을 튼' 경우라면, 이번엔 정반대예요. 하나의 본질을 붙잡고, 그것만 끝까지 파고든 회사. 알람 앱 '알라미'를 만든 딜라이트룸이에요.
이 회사가 특별한 건, 창업 이래 외부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고 흑자로 성장했다는 점이에요. 국내에선 흔치 않은 경우죠. 그런데 저는 그 '투자 없는 성장'의 뿌리에도 결국 문제를 깊이 파고든 힘이 있다고 봐요. 어떻게 그랬는지 따라가 볼게요.
못 일어나서 시작된 이야기
시작은 창업자 신재명 대표 본인의 문제였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뭔가 하는 걸 좋아했는데, 정작 자신이 잘 못 일어났대요. 새벽 알람을 맞춰두고 꺼버린 뒤 다시 자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장면이요.
그러다 한 가지 방법을 찾았어요. 알람을 맞춘 휴대폰을 화장실에 두고 자는 거예요.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끄려면 어쨌든 화장실까지 가야 하잖아요. 간 김에 샤워까지 하고 나면 확실히 깼고요. 효과는 있었는데, 매일 밤 휴대폰을 화장실에 갖다 두는 게 너무 귀찮았대요.
그래서 이걸 앱으로 만들었어요. 지정한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만 알람이 꺼지는 기능. 이게 알라미의 시초예요.

여기까지가 1층이에요. "알람을 맞춰도 못 일어난다"는, 누구나 아는 흔한 불편. 사실 알람 앱은 이미 세상에 수백 개가 있었어요. 여기서 멈췄다면 알라미도 그냥 '그중 하나'가 됐을 거예요.
‘울리는 것’과 ‘깨우는 것’은 다르다
알라미가 갈린 지점은 여기예요. 신 대표는 알람이 해야 할 일을 다르게 봤어요.
대부분의 알람 앱은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것'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리를 내면 임무 끝. 하지만 신 대표는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소리가 아니라고 봤어요. 사람들이 정말 원한 건 확실히 깨어나는 것, 그러니까 문제가 진짜로 해결되는 것이었어요.
이건 아무도 입으로 또박또박 말하지 않은 2층이에요. 사용자는 "알람이 안 울려서 못 일어났어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알람은 울렸거든요. 진짜 문제는 "울렸는데도 꺼버리고 다시 잤다"는 거였어요. 즉 필요한 건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도저히 다시 잘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였어요.

그래서 알라미는 지독해졌어요. 알람을 끄려면 침대에서 나와 지정된 장소를 사진 찍거나, 스쿼트를 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해요. 도저히 안 일어나고는 못 배기게요. '악마의 알람'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배터리를 빼서 알람을 끄려다 안 되니 아예 배터리 일체형 휴대폰으로 바꿨다는 사용자까지 있었대요.
핵심은, 알라미가 "확실히 깨우는 것" 하나에 집요하게 집중했다는 거예요. 신 대표는 이렇게 생각했대요. 비즈니스 모델도, 디자인도 다 중요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깨워주는 것만큼은 확실해야 한다고. 그 본질을 못 채우면 나머지는 의미가 없다고요. 수많은 알람 앱 사이에서 알라미가 살아남아 100여 개국에서 1위에 오른 건, 바로 이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이에요.
당연한 걸 의심하게 된 순간
여기까지도 충분히 훌륭한데, 알라미는 한 층 더 내려가요. 그 계기가 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어느 날 중국 사용자들에게서 이상한 피드백이 왔대요.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데 왜 알람이 안 울리냐"는 거였어요. 처음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대요. 전원이 꺼져 있으면 당연히 알람도 안 울리는 거니까요. 무시하려다가, 그래도 한번 찾아봤어요.
알고 보니 중국의 어떤 제조사가 만든 기본 알람 앱은, 꺼진 전원을 스스로 켜면서 알람을 울리는 기능이 있었던 거예요. 그걸 써온 사용자들에겐 "알람은 전원이 꺼져 있어도 울리는 것"이 당연했던 거죠.
신 대표는 여기서 깨달았대요.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 사용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허투루 넘기면 안 되겠구나.
이게 3층으로 가는 문이에요. 1편에서 말했듯이, 가장 깊은 층은 '당연한 전제'를 의심할 때 열려요. 알라미에게 그 당연한 전제는 이거였어요. "알람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다.“

신 대표는 이 전제를 뒤집으면서, 사용자가 진짜 원한 게 뭐였는지 다시 봤어요. 사람들이 알람에 바란 건 '제시간에 울리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아래엔,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더 깊은 바람이 있었어요.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서 좋은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는 것. 사용자조차 "나는 좋은 하루의 시작을 원해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매일 아침 알람과 씨름하던 그 마음의 밑바닥엔 그게 있었어요. 이게 고객도 시장도 언어화하지 못한 근본 문제, 3층이에요.

알라미가 알람 앱에 머물지 않고 수면과 웰니스로 나아간 건, 이 3층을 봤기 때문이에요. 잘 깨우는 것을 넘어 잘 자는 것까지 책임지겠다는 거죠. 흔히 이걸 '알람이라는 업을 재정의했다'고 말하지만, 순서를 보면 반대예요. 업을 먼저 바꾼 게 아니라, 고객의 근본 문제를 봤더니 업이 따라서 넓어진 거예요. 아무도 알람을 이렇게 보지 않을 때요.
두 갈래 길, 같은 방향
루트릭스와 알라미를 나란히 놓으면 재미있는 게 보여요.
루트릭스는 고객을 직접 만나면서, 자기가 만든 기술이 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방향을 틀었어요. '반전'의 이야기죠. 알라미는 반대로, "확실히 깨운다"는 하나의 본질을 붙잡고 그것만 끝까지 파고들었어요. '집중'의 이야기예요.
방식은 정반대인데, 도착한 곳은 같아요. 둘 다 고객이 말한 표층 문제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루트릭스는 "정보가 없다"의 아래에서 '신뢰'를 찾았고, 알라미는 "알람이 안 울린다"의 아래에서 '확실한 깨어남'을, 다시 그 아래에서 '좋은 하루의 시작'을 찾았어요. 표층에서 근원으로 내려가는 그 길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걸어간 거예요.

알라미가 투자 없이도 흑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으니 마케팅으로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사용자가 스스로 찾아왔고, 군더더기 없이 그 본질에만 집중했으니 돈을 태우지 않고도 굴러간 거예요. 좋은 문제정의는 이렇게 사업의 체력까지 바꿔요.
그래서 저는 이 두 이야기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우리 고객이 진짜 원하는 건, 우리가 지금 풀고 있는 그 문제가 맞을까요?
알라미의 사용자가 "제시간에 울리는 알람"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진짜 바란 건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듯이, 우리 고객도 입으로 말한 것 아래에 더 깊은 문제를 품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아래엔, 고객 자신도 아직 모르는 근본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고객은 원래 이걸 원해"라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 바로 거기를 한번 의심해보면요.
우리가 풀고 있는 게 정말 고객의 진짜 문제가 맞는지, 오늘 한번 되물어보면 좋겠어요.
스타트업의 “성장”을 기획합니다. 기획하는별 (블로그 : https://sparkle3.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