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문제를 얼마나 '깊이' 보느냐를 이야기했어요. 표면에서 멈추지 말고 아래로 파고들라고요.
그런데 문제엔 방향이 하나 더 있어요. '넓이'요.
좋은 문제는 얼마나 커야 할까요? 크게 잡으면 멋있어 보이는데, 너무 크면 손에 안 잡혀요. 그렇다고 잘게 쪼개면 이번엔 "그거 겪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싶고요. 문제 정의에서 중요한 건 크기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을 또렷하게 그리면서도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닿는 범위를 찾는 거예요. 오늘은 이 넓이 이야기를 해볼게요.
깊이와 넓이는 다른 축이다
먼저 짚고 갈게요. 깊이와 넓이는 다른 방향이에요.
깊이는 아래로 파는 거예요. "매출이 안 난다" 밑에 뭐가 있나, 그 밑엔 또 뭐가 있나. 앞의 편들에서 계속 한 이야기죠.
넓이는 옆으로 재는 거예요. 내가 잡은 문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문제인가. 같은 깊이로 파고들고 같은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의해도,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같은 '혼자 먹는 저녁' 문제를 이렇게 좁혀볼 수 있어요.
- 자취하는 사람이 저녁 한 끼가 고민이다.
- 자취하는 20대가 저녁 한 끼가 고민이다.
- 자취하는 20대 중 채식하는 사람이 저녁 한 끼가 고민이다.
세 문장은 다 비슷한 정도로 담백하게 썼어요. 달라진 건 서술의 상세함이 아니라, 포함하는 사람의 범위예요. '자취인 전체 → 20대 자취인 → 채식하는 20대 자취인'으로 대상이 계단처럼 줄어들죠. 위로 갈수록 그런 사람이 많고, 아래로 갈수록 적어져요. 이게 문제의 넓이예요.
그리고 이 넓이를 잘못 잡으면, 아무리 깊이 판 문제라도 사업으로 잇기가 어려워져요.
여기서 하나 분명히 짚어둘게요. 문제의 넓이가 곧 시장의 크기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겪는 문제라고 반드시 돈을 내는 시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다들 불편해하지만 아무도 지갑은 안 여는 문제도 많죠), 반대로 아주 좁은 문제라고 사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고객 몇 곳이 큰돈을 내는 B2B처럼요). 오늘 이야기하는 넓이는 어디까지나 '이 문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존재하는가'를 보는 축이에요. 시장성이나 사업성은 그다음에 따로 따져야 할 문제고요. 다만, 문제를 겪는 사람이 지나치게 적으면 사업으로 키우기가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넓이를 봐야 하는 거고요.
한 가지만 미리 짚어둘게요. 넓이와 헷갈리기 쉬운 게 '해상도'예요. 같은 문제를 얼마나 또렷하게 쓰느냐, 즉 "사람들이 외롭다"처럼 뭉뚱그리느냐 아니면 구체적으로 그리느냐의 문제죠. 이것도 중요하지만 넓이와는 다른 축이라, 오늘은 넓이에 집중하고 해상도는 다음에 따로 다뤄볼게요. 오늘은 "얼마나 또렷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문제냐"에만 초점을 맞춰볼게요.
자, 그럼 양쪽 극단을 하나씩 볼게요.
너무 넓으면, 손에 안 잡힌다
문제를 크게 잡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워요. 커 보이니까요. "우리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해결합니다", "우리는 교육 불평등을 없앱니다." 사업계획서에 이렇게 적으면 뭔가 대단해 보여요.
그런데 이렇게 큰 문제는 손에 안 잡혀요. "외로움을 해결한다"고 하면 대상이 온 세상 사람이 돼요. 그런데 노인의 외로움, 20대의 외로움, 육아하는 부모의 외로움은 다 성격이 달라서, 하나의 솔루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대상이 너무 많고 제각각이면, 결국 "좋은 얘긴데 그래서 누구를 위해 뭘 하겠다는 거죠?"라는 질문 앞에서 무너져요.
IR이나 심사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봐요. 비전은 웅장한데, 막상 "첫 고객이 누구예요?"라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문제를 너무 크게 잡으면, 정작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할지가 안 보이거든요.
너무 좁으면, 시장이 작아진다
그럼 반대로 최대한 좁히면 될까요? 그것도 함정이에요.
문제를 지나치게 좁히면, 그건 진짜 문제여도 사업으로 키우기가 어려워져요. 예를 들어 "왼손잡이이면서 안경을 쓰는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겪는 불편"이라고 잡으면, 문제는 아주 선명해요. 대상도 또렷하고요. 그런데 "그게 몇 명이나 되나요?"라는 질문에 막혀요. 문제가 선명한 것과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충분히 많은 건 다른 얘기거든요.
물론 좁다고 무조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앞서 말했듯 좁아도 한 명이 큰돈을 내는 구조라면 사업이 되죠. 다만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상이 너무 적을 때 확장할 곳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예요.
깊이만 신경 쓰다 보면 이 함정에 잘 빠져요. 계속 파고들어 아주 구체적인 한 사람의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도달했는데, 정작 그 상황에 놓인 사람이 세상에 몇 없는 거예요. 깊이 팠지만 넓이가 없는 경우죠.
그럼 어떻게 잡나
정답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방향은 있어요. 좋은 문제는 한 사람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 충분히 많은 문제예요.
아까 좁혀본 저녁 문제로 돌아가 볼게요. "자취하는 20대가 저녁 한 끼가 고민이다" 정도를 예로 들어볼게요. 대상이 또렷하게 좁혀지면서(막 독립한 20대가 매일 저녁 뭘 먹을지 고민하는 그 장면이요), 동시에 그런 사람은 도시에 아주 많죠. "자취인 전체"처럼 너무 넓지도, "채식하는 20대 자취인"처럼 너무 좁지도 않은 곳이에요.
그런데 문제를 이렇게 적당한 넓이로 바라보다 보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겨요. 그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 여러 개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때 필요한 게 '킹핀'이에요.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내려면 맨 앞에 보이는 1번 핀을 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게 하면 뒤쪽 핀이 남아요. 진짜 노려야 하는 건 한가운데 숨어 있는 5번 핀, 이른바 킹핀이에요. 이 핀을 정확히 맞히면 나머지가 연쇄로 우르르 쓰러지거든요. 문제도 그래요.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이것저것 병렬로 늘어놓지 말고, "이거 하나를 풀면 나머지가 따라서 풀리는" 핵심 문제 하나를 찾는 거예요. 그 핵심 문제가 우리가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를 정해줘요. 문제를 여러 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하나로 구조를 세우는 거죠.
깊이와 넓이가 만나는 곳
이제 앞의 이야기들과 연결해볼게요.
지금까지 다섯 편에 걸쳐 문제를 깊이 파는 이야기를 했어요. 고객의 말 아래를 듣고, 현상 아래 원인을 찾고, 제대로 검증하는 것까지요. 오늘은 거기에 넓이를 더했어요. 문제가 너무 크면 손에 잡히지 않고, 너무 작으면 확장할 곳이 안 보이니까요.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래요. 좋은 문제는 한 사람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 충분히 많은 문제예요. 깊이만 파다 보면 너무 좁아질 수 있고, 넓이만 넓히다 보면 손에 안 잡히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깊이와 넓이, 둘 다 필요해요.
그래서 오늘 이 질문을 남기고 싶어요.
- 우리가 잡은 문제, 한 사람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나요?
- 그런 사람이 충분히 많은가요?
- 여러 문제를 늘어놓고 있진 않나요? 그중 핵심 하나는 무엇인가요?
깊이 파는 데 익숙해졌다면, 이제 한 걸음 물러나 넓이도 함께 봐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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