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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본질은 기대관리"... 커리어, 리더십 조언 A to Z|이오서재 Ep.4

"저질러 보고 후회해라" 
리더가 되기 싫은 시대의 리더십 연습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는 고민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승진해 봐야 일과 책임만 늘어난다는 거죠. 

커리어 30년이 넘은 한기용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리더가 되기 싫으면 안 되어도 좋지만, 연차가 쌓이면 영향력만큼은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기용님은 삼성전자에서 5년을 엔지니어로 일하다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야후와 유데미, 폴리보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산호세주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스타트업 자문과 커리어 코칭을 하고 있습니다.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책 『실패는 나침반이다』에 이어 올봄 '실리콘밸리 25년차 리더의 리더십 실천 노트'를 부제로 단 『리더십 연습』을 펴냈고, 그 책을 들고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EO의 북 팟캐스트 '이오서재'를 찾았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1. 더하기의 리더가 아니라 곱하기의 리더로
  2. 리더십의 본질은 기대 관리
  3. 서포터, 롤모델, 그리고 평판의 중요성
  4. AI 시대에도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더하기의 리더가 아니라 곱하기의 리더로


 

Q. 주변에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과 책임만 늘어나는 '쾌락 없는 책임'이라는 겁니다.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오늘 오전에도 딱 그런 고민을 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어요. 제가 한 얘기는 "저질러 보고 후회해라"였어요. 기회가 왔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거든요. 내가 먼저 리더가 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매니저나 그 위의 상사가 리더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면 그걸 피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는 '내가 리더를 잘할까' 하고 자기 검열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조직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제안이 왔을 때는 저질러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알 수 있고요. 물론 처음에는 헤매겠죠. 6개월이나 1년 하고 그만둘 생각만 아니라면 조금 긴 호흡으로 봐야 해요. 처음에는 못할 거라고 믿고, 내 판단이 아니라 나에게 기회를 준 사람들의 판단을 믿고 저질러 보는 거죠. 시도가 성공하지 않아도 관점이나 여러 가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일을 할 때 분명하게 도움이 될 거예요.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Q. 한국에서는 연차가 쌓이면 떠밀리듯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합니다. 리더가 되는 걸 조금 미루면 안 되냐는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직급이 올라가고 연차가 쌓이면 분명히 만들어야 하는 건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향력을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리더 역할을 하는 거죠. 영향력이라는 게 기본으로 주어지니까요. 

리더를 하기 싫다고 해도, 개인으로 일을 계속한다고 해도 영향력은 만들어내야죠. 개인기 부려서 일을 조금씩 더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주변의 역량이 더 올라가야 하고요. 때로는 "이런 일은 하지 맙시다"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하죠. 더하기를 하는 모드에서 곱하기와 빼기를 하는 모드로 바뀌어야 해요. 개인으로 남건 리더로 변신하건, 연차가 쌓이면 꼭 생각해 봐야 할 포인트라고 봐요.

물론 굉장히 커다란 회사에서는 이런 게 잘 안 보일 거예요. "미국이라서 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런 댓글 많이 봤어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세상이 계속 지금과 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히 조금 더 유연하게 일하고 조직 구조가 작아지는 형태로 바뀔 거고요.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리더 역할을 해보는 거죠. 지금 내가 보는 경험에서는 안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런 방향으로 바뀌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환경이 안 바뀐다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더 건강하지 않나 싶어요.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리더십의 본질은 기대 관리


 

Q. 리더로서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리더로서 성장한 순간에는 늘 아픔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야후 다닐 때 처음 직원을 해고했던 경험이고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때 깨달은 건, 앞단의 불편한 대화를 하면 할수록 모든 게 편해지는구나. 갑자기 해고를 통보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피드백을 주는 거죠. 그러면 바뀔 사람은 결국 바뀌고, 안 바뀌는 사람도 헤어질 때 덜 놀라겠죠.

저는 리더십의 본질이 기대 관리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기대를 어떻게 잘 맞추느냐가 중요하죠. 불편하니까 뒤로 미루고 미루다 보면 간극이 점점 커지고, 나중에 그 기대가 맞지 않았을 때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죠. 

어떻게 보면 인간의 성향과는 반대로 가는 거지만, 앞단의 불편함을 많이 견디고 내 생각을 호기심을 가지고 빨리 얘기하는 게 좋아요. 여기에서 시행착오가 필요한 거고, 그걸 겪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편해지는구나. 그걸 야후 다닐 때 느꼈죠.

 

Q. 두 번째로 리더십을 배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의사소통 비용이라는 걸 많이 생각해 본 건 유데미 다닐 때예요. 고속 성장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요. 근데 성장이 늘 우상향하는 건 아니에요. 확 성장했다가 확 내려가기도 하죠. 올라갈 땐 다들 나이스해요. 잔칫집이잖아요. 그러다가 성장이 좀이라도 멈추면 숨어 있던 부정적인 의견들이 다 앞으로 나온단 말이에요. 그럼 그때부터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의사소통 비용이 올라가는 거죠. 

제가 처음 컨설팅 시작했을 때는 20명에서 30명 사이였고 그만둘 때는 500명, 600명이었으니까 거의 20~30배 늘어난 거네요. 그사이 들락날락한 사람 다 치면 800명, 1,000명 정도 있을 거예요. 결국 스타트업은 사람이 계속 들고 나게 돼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팀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거기에 매몰되면 리더 역할 하기 쉽지 않거든요. 멘탈 흔들리죠.

그때 많이 느낀 건, 어떻게 의사소통 비용을 줄이는 팀을 만들까.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좀 바뀌었죠. 그전까지는 기술적인 전문성이 뛰어나면 된다, 성격이 안 좋아도 태도가 안 좋아도 기술력이 뛰어나면 어느 정도 내가 참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유데미 다닐 때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인성이 되어 있어야, 태도가 좋아야 같이 일할 때 시너지가 나는구나.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방향이 다르면 마이너스가 되잖아요. 

고차원적으로 얘기하면 비전이 맞는가,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면 공동의 목표가 분명한가. 특히 시니어일수록 면접하는 단계, 처음 일을 할 때 체크해 봐야 하는구나.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그때 더 확실하게 느낀 건 방향이 맞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그 방향을 내가 제시해야 하는구나. 큰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뽑았는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구나. 

꼭 그 사람들만의 잘못은 아니죠. 그 비전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알아서 잘할 거라고 착각했던 제 잘못도 있고요. 또 그분들도 작은 회사에 올 때 약간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내가 큰 회사만 다녔으면 약간 깔보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면 들어와서 그 조직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컨설팅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거예요.

 

Q. 그 '의사소통 비용'을 지금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제가 생각하는 의사소통 비용은 회사가 방향을 바꿀 때 구성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느냐예요.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은 방향이 계속 바뀌어요. 오늘 왼쪽으로 가자고 하고 내일 오른쪽으로 가는 일이 빈번한데, 그때마다 구성원들을 모두 설득하느라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쓰면 결국 속도가 안 나죠. 

여기에는 강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팔로우십이 없으면 안 되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disagree and commit”이죠.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진 않지만 헌신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의사소통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요즘처럼 세상의 변화가 빠를수록 이 비용을 줄이는 게 엄청나게 중요해지거든요.

 

Q. 회고나 불편한 대화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 같습니다. 그런 연습을 어떻게 계속해 왔나요?

제가 앞에 얘기했던 아파봐야 된다는 게, 실수하고 실패해 봐야 동기부여가 생기죠. 순탄하게 가면 그럴 여유가 없잖아요. 중요한 거는 나에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거. 아파도 회복할 시간이 있다는 거죠. 내 삶을 산다면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어요. 남의 삶을 산다면 사실 시간이 얼마 없고요. 앞으로 어떻게 더 잘 살까 그렇게 바라봤으면 좋겠고, 주변에 서포터가 많으면 좀 더 편해질 거고요.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서포터, 롤모델, 그리고 평판의 중요성


 

Q.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어떻게 실리콘밸리로 건너가게 되셨나요?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삼성전자에서 5년 일했는데, 그 시점에는 커다란 꿈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1999년 말에 대학 동기가 스탠포드에 유학을 갔다가 석사 마치고 창업을 해서 흔히 얘기하는 대박을 쳤어요. 닷컴 버블이 꺼지기 전에 1조가 넘는 금액에 회사를 팔았죠. 그 친구가 두 번째 회사를 창업하면서 미국으로 오지 않겠냐고 한 거예요. 갑자기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거죠. 

마침 제가 결혼한 지 1년 좀 넘었을 때였는데, 삼성전자에서 입사 동기로 만난 아내한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했더니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가서 한번 살아보자고 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아내가 제 서포터였던 거죠. 제가 내린 거의 모든 결정에 "안 돼"라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Q. 20대의 자신에게 조언을 하나 해준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요?

제가 20대로 돌아가서 한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요. 예전에는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오래 할 방법을 찾아라, 습관으로 만들어라, 강한 동기부여와 재능이 필요하다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모든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그런 관점에서 또 중요한 게 주변에 서포터가 있느냐예요. 내가 이 길을 간다고 했을 때 "괜찮아, 가도 돼" 해주는 사람,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편하겠죠. 만나서 힘이 빠지면 그 사람은 서포터는 아닌 거거든요. 

특히 좀 표준적인 삶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변에 서포터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고, 또 주변 사람들의 서포터가 되는 것도 중요하죠.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Q. 개인이 장기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주변 사람들은 앞서가는 것 같고, 조직은 1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환경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까요?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그 조직에서 잘하고 싶다면 그 조직에 맞는 인재상이 되어야죠. 

그 인재상이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커리어라는 게 개인기를 부려서 꼭 성장하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어느 시점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줄 알아야죠. 혼자 일하던 모드에서 그룹으로 일하면서 영향력을 갖는 모드로 마인드셋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포인트가 분명하게 있고요. 

뭐를 하건 내가 꼭 인정받아야 한다고 하면 굉장히 점점 힘들어질 거고, 함께 오래 갈 생각을 하는 거죠. 길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나랑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한 5년 정도 앞서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이 롤모델이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제가 미국에서 되게 큰 도움을 받은 건 같은 동아시아권 리더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실리콘밸리에서 리더 한다고 꼭 외향적이고 영어를 엄청나게 잘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구나. 

롤모델이 앞에 있느냐 없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로 보여져요. 내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를 알게 모르게 결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지금도 기억에 남는 좋은 롤모델은 누구였나요?

첫 번째는 야후에서 만났던 네 명의 매니저예요. 다 나름대로 다른 장점을 가진 좋은 리더들이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네 명 다 아시안들이었고요. 중국, 홍콩, 베트남, 이란. 

첫 번째 매니저는 결정의 명확성이 있었죠. 명확하게 결정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걸 알았고요. 

두 번째 리더는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그 분한테는 엔지니어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배웠고요. 

세 번째 분은 멘탈이 정말 강한 분이었고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웃고 농담하고. 아 그게 가능하구나, 그걸 많이 배웠어요. 

마지막 매니저랑은 짧게 같이 일해서 제가 많이 보고 배울 시간은 없었는데, 굉장히 여유 있고 R&D 쪽으로 오래 일하셨던 분이에요. 

그 네 분하고 일했던 경험이 롤모델이 됐기 때문에 제가 리더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 커다란 동기부여가 됐죠. 커리어가 발전할수록, 특히 리더십 역할을 할수록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걸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Q. 그 서포터와 네트워크는 실제 커리어에서 언제 힘을 발휘했나요?

제가 처음 제대로 리더십으로 가게 된 건 창업했을 때예요. 비전과 미션이 왜 중요한지 그때 바로 알겠더라고요. 회사 다닐 때는 아무리 누가 얘기해도 "그게 왜 필요하지?" 싶었거든요. 제가 조직을 리딩하는 입장이 되니까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구나, 그게 비전이고 미션이구나 그걸 깨달았고요. 

그다음 제대로 된 경험은 야후에 들어가서 한 거예요. 팀 빌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될 기회가 있었고, 롤모델이 보였기 때문에 그걸 마다하지 않았어요. 

다른 많은 깨달음들은 나중에 얻은 거예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때 저질러 봤던 게 잘한 거였구나. 그때 한 6개월 하고 그만둘까 생각했던 포인트들이 있었는데, 결국 시행착오 겪으면서 이런 경험도 복리처럼 쌓이는 거구나. 그걸 좀 늦게 깨달았고요.

네트워크의 중요성, 평판의 중요성 같은 것들도 그 당시에는 몰랐죠. 매일매일 바쁘게 사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2012년에 11개월 정도 쉬면서 잠깐 커리어를 복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돌아보니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서 들어간 회사가 한 곳도 없더라고요. 전부 지인 추천으로 들어갔어요.

평판의 중요성은 1년 놀 때 옛날 동료들한테 연락이 오면서 깨달았죠. 아 내가 평판이 좋았구나, 평판이 좋으니까 이런 일들이 생기는구나. 

좋은 평판은 어쩌면 주니어 때는 알기 힘들어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 그게 제 관점에서 좋은 평판이고요. 

커리어 후반기에 제가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엔젤투자하고 기업 자문하고 커리어 코칭하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생각해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누군가 10년 전에 저한테 지금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거예요. 회사하고 집하고 두 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바빴다고요.

근데 그때부터 경험적으로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주변 지인들이 이런 거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 시작했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저질러 봤던 거죠. 그리고 저지를 때 기대 수준이 높지 않았던 거. 저질렀을 때 막상 기대 수준이 높으면 오래 하기 힘들어요. 실망하니까요. 

저는 저지를 때 항상 마인드셋은 좀 헤맬 거다, 그리고 약간 손해 볼 거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 시작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죠.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그런 것들이 이어져서 엔젤투자를 18개 정도 회사에 했고, 자문도 지금 다 합치면 한 40개 정도 했을 것 같고요. 학교에서 가르치게 된 것도 학과장님이 알던 지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분이 옛날부터 와서 좀 가르치라고 했는데, 그때 얼마 주냐고 물어봤더니 금액이 너무 작은 거예요. 그 정도로는 못 한다 그랬는데, 한 2년 반 전부터는 다른 관점에서 뭔가 기여하고 싶은 생각도 생겼고요. 

이런 변화들이 옛날부터 계획해서 생긴 게 전혀 아니에요. 매일매일 실천해야 하는 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 최선을 다해보고 이 환경이 나랑 안 맞는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접고, 다음 환경을 찾아서 거기에서 또 집중해 보는 거죠. 제가 얘기하는 집중은 거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건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판단을 하라는 거죠.

 

Q. 좋은 평판을 만들라고 하면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평판과 인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리더십도 생각해 보면 처음에 실수했던 포인트 중 하나가,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거예요. 뭔가 약간 인기 콘테스트 하는 걸로 착각했던 거죠. 그런 착각이 결국 불편함을 피하게 만든단 말이에요. 누군가는 나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거.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내 정신건강에도 좋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도 좋고요.

평판은 (제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맡은 일의 결과를 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데서 나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과 사이가 아주 좋을 수는 없죠. 그래도 나만의 원칙이 있느냐, 공동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느냐가 관건이죠. 

좋은 평판을 강조하면 자기 검열이 심한 분들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모든 사람에게 잘해야 하는 걸로 착각하더라고요. 거기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결과가 안 나올 수 있죠.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AI 시대에도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Q. 실리콘밸리에서는 요즘 수백, 수천 명 단위의 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AI가 개인의 커리어와 조직, 그리고 리더십을 어떻게 바꾸고 있다고 보나요?

하나 분명한 건 뭔가를 만드는 비용이 확 줄었다는 거예요. 만드는 전문성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죠. 뭔가 하나를 아주 깊게 파면 안전해지지 않을까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인가. 하나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한 조직이 기획부터 고객 서포트까지 다 해야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을 한 개인이 맡아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려면 조직의 구조가 없어야죠. 이건 큰 회사에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방법이에요. 미국이건 한국이건 이미 조직 구조가 전문성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이런 변화는 작은 회사들, 새로 생기는 회사들에서만 할 수 있는 거고, 그런 회사들에게는 AI가 기회가 되겠죠.

AI 시대에도 리더십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보여지고요. 다만 판단력은 훨씬 더 중요해지겠죠. AI의 결과물을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여러 방향 중에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냐를 정해야 하니까요. AI 시대에는 지식이나 정보가 주는 희소성은 높지 않잖아요. 하지만 판단력은 여전히 사람이 맡아야 하는 영역이에요. 무엇을 왜 하는가.

 

Q. 전통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 전문성의 중요도는 이제 떨어지는 걸까요?

기술적인 전문성은 덜 중요해지는 것 같고요. 오히려 특정 산업과 현장을 아는 도메인 전문성이 중요해진다고 보여져요. 

이번에 부산 가서 수산물 쪽 일하시는 분들하고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게, 이분들이야말로 도메인 전문성이 있구나. 이분들이 AI를 쓰면 다음 레벨로 가겠구나. 그게 로봇을 쓰는 것이건 무엇이건요. 분명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도메인 지식이 있단 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AI를 쓰겠다는 의지, 처음에 약간 헤매도 계속 쓰겠다는 자세만 있으면 훨씬 더 큰 결과를 낼 것 같거든요.

기업 관점에서는 오프라인이면 오프라인일수록 더 좋을 것 같고요. 오프라인으로 인한 마찰이건 규제로 인한 마찰이건 이미 그걸 뚫었고, 영업망과 유통망이 있는 곳들이 AI를 쓰면 훨씬 더 잘하겠구나 싶었어요. 결국 둘이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도메인을 잘 아는 사람과 이런 기술을 잘 아는 사람.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Q. 원하는 것을 계속 원하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덕질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관점이나 팁이 있을까요?

그건 진짜 힘든 것 같아요. 하나 분명한 건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물론 언제 중단해야 하는지는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충분히 하지 않고 포기하면 후회할 확률이 확실히 높은 것 같아요. 뭐가 됐건 후회가 안 남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보는 거. 그 기준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노력의 정도가 될 수도 있겠죠. 

또 하나는 이런 걸 꼭 혼자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표현을 되게 좋아하는데, 같이 할 사람들이 있으면 덜 외롭단 말이에요. 서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고요. 그래서 이런 것도 같이 할 사람들을 찾아보는 거죠.

 

Q. 개인이나 작은 조직에는 기회가 커 보여도 이미 규모가 있는 조직은 현장의 혼란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을 만나면서 실제로 어떤 얘기를 듣고 있나요?

결국은 채용, 평가,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 관점에서 AI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근데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회사들은 조직 구조가 안 바뀌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큰 회사들이 좋은 해답을 갖기 힘들 것 같고요. 한 스무 명만 넘어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한 열 명만 넘어도 사람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조인하잖아요. 

내 바운더리, 그 바깥의 일을 할 생각이 있냐. 한 80% 정도의 사람은 그런 생각이 없을걸요. 그냥 나는 주어진 일 하나만 할 건데. 그래서 그 나머지 20%한테는 기회가 되는 세상이 될 것 같고요. 빌더가 될 마인드셋을 갖고 있는 사람. 나는 기획부터 만들어서 고객까지 끌고 간다.

 

Q. 연착륙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존 조직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 회사를 이끄는 대표 본인이 AI를 쓰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고요. 그 앞단에서 해야 하는 건 작게라도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뒷단의 백오피스에서 돌아가는 업무 같은 것들부터 자동화해 보는 거죠. 그 결과를 인정하고, 회사에 공유하고, 조금씩 확장하고. 

당연히 오늘 한 얘기가 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I 시대에는 큰 회사들이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분명한 해자를 가진 회사들이 안 나오면요.

 

한기용, 『리더십 연습』 저자 (출처: EO)

 

Q. 이런 변화 속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석사과정 학생들이에요. 미국에서 취업하려고 온, 미국인이 아닌 친구들이 90%가 넘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데, 취업이 잘 안 되죠. 비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문제가 더 많아요. 

그래도 취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긴 있죠. 그 친구들의 공통점은 일단 안에서 공부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밖으로 많이 나가고 뭔가 만들어보고요. 

이력서 한 백 개 내고 취업될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고 천 개 단위로 내야 하는 것 같거든요. 이걸 확률 싸움으로 봐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 한 스무 개 내고 안 된다고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결국은 멘탈이 좀 강한 친구들이 더 잘 되는구나.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취업이 더 잘 되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돼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인도 친구였는데, 처음 만날 때부터 자기가 다른 학생들하고 같이 살다 보니까 거기서 생기는 충돌이 많다는 거예요. 누가 빨래할 거냐, 누가 음식할 거냐, 누가 치울 거냐. 그런 걸 정리해 주는 앱 같은 걸 만들더니, 나중에는 그런 아이디어들이 생길 때마다 뭔가를 만들더라고요. AR VR 글라스 가지고 뭐 하는 앱도 만들고, 그다음에는 학교 연구실에 자원해서 로봇 관계된 일도 하고요. 

이 친구는 학습 능력이 일단 뛰어났어요. 수능 공부하듯이 공부하는 건 아닌데 실전적으로 배우고 바로바로 만드는구나. 이런 학생들한테는 여전히 기회가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냥 공부로 승부 보려고 하는 학생들한테는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라고 보여지고요. 학벌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구나.

 

Q. 모두가 빌더가 되고 AI를 활용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가 정말 온다면 어떨 것 같나요?

글쎄요, 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AI를 나에게 맞게 매일매일 쓰는 게 필요하고요. 저는 지금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용도로 많이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니까 커리큘럼 만들고 자료 만들 때 또 많이 쓰죠.

 

Q. 마지막으로, 리더십을 연습해야 하는데 막막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요?

긴 호흡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 현재에 집중할 줄 알았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하나 드리고 싶은 얘기는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거예요. 주변에 친구, 선배, 롤모델, 멘토 등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여러 고민을 나눠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떤 변화가 있건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하는 그런 꾸준함, 평정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리더십 연습> 저자 한기용 님의 말

인터뷰 끝자락에 '리더십을 연습하려니 막막하다'는 토로를 듣고 한기용 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건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하는 그런 꾸준함, 평정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리더로 한 뼘 자라는 순간에는 언제나 쓰라린 경험이 따랐다고 합니다. 30년 커리어를 돌아보니 결국 남은 것은 일단 저질러 본 경험과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었다고요. 기회가 오면 기꺼이 헤맬 각오로 부딪혀 보고 아파도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는 태도. 인터뷰 중반에 건넨 한마디가 그 단단한 마음의 이유를 짐작게 합니다.

"내 삶을 산다고 하면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는 거고, 남의 삶을 산다고 하면 사실 시간이 얼마 없는 거죠."

리더십을 연습한다는 건 결국 남이 짠 시간표에 쫓기는 대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온전히 내 몫의 시간을 쓰며 뛰어들어 보는 일 아닐까요.

 

📌 직함 없이 영향력을 만드는 법부터 AI 시대의 리더십까지, 30년 커리어가 담긴 한기용 님의 조언을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인터뷰 진행·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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