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은 모두 거대한 핵융합로입니다.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며 빛과 열을 내뿜는 방식, 태양이 46억 년 동안 타온 원리도 핵융합입니다. 인류는 그 불꽃을 지구에서 피워내려고 70년 넘게 매달렸지만, 아직 아무도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JC.B는 그 문제에 뛰어든 창업자입니다. 그는 열아홉 살에 대학 지원서 대신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가 만들려던 건 앱도, 또 하나의 AI 서비스도 아니었습니다. 핵융합, 지구 위에서 태양을 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2019년 열아홉 살에 세운 미국 핵융합 스타트업 퓨즈(Fuse Energy Technologies)는 이후 5,200만 달러 넘는 투자를 유치했고, 2024년 라운드에서 기업가치 2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퓨즈에서 내놓은 실험 결과는 네이처 계열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렸고, 미국 정부·국방 분야와도 협업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퓨즈가 파는 건 핵융합으로 만들어낸 전기가 아닙니다. 핵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펄스파워 장비와 방사선 시험 서비스를 먼저 사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긴 연구 기간을 버틸 자금을 스스로 마련한 셈입니다.
지금부터 풀어낼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대학 안 간 청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격을 먼저 얻고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시작해서 스스로를 증명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자격은 받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것
- 문명이 다음 단계로 가는 열쇠, 에너지
- 창업가는 위험을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자격은 받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것
JC.B는 열아홉 살에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입학 원서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 입학을 위해 노력하고, 입학 후에는 4년 동안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 JC.B에게는 굳이 거쳐야 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손에 쥐는 건 졸업장 한 장입니다. JC.B는 그 시간에 직접 무언가를 해내서 스스로를 증명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인생은 짧고, 세상에는 8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그는 문명의 방향을 바꿀 만한 일에 인생을 걸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창업이 그 일에 가장 빠르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봤습니다.
JC.B는 핵물리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궁금해했고,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파고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학계에 머무는 게 기술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직접 회사를 차렸습니다.
퓨즈를 창업하기 전 JC.B는 교육 분야에서 비영리 단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는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습니다. 열여덟 살이 안 되면 신용카드조차 발급받을 수 없으니까요. 쇼피파이(Shopify)에서 온라인 스토어 하나 여는 것도 안 됩니다. 십 대가 해낼 수 있는 건 그렇게 많다고들 하면서, 정작 카드 한 장, 온라인 스토어 하나조차 막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십 대들이 나이에 막히지 않고 마음껏 도전하고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단체를 시작했습니다. 구글과 캐나다 정부가 후원했고, 제법 규모 있는 프로그램으로 키웠습니다.
젊다는 건 경쟁력입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니 겁이 없고, 체력과 에너지도 넘칩니다.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하면 제대로 해낼 기회도 그만큼 많아지고, 일찍 거둔 작은 성공은 자유가 어떤 것인지 미리 맛보게 해줍니다. 설령 실패해서 쓴맛을 본다 해도 괜찮습니다. 죽거나 감옥에 가는 것만 아니라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버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만들고 싶은 게 있고 끝까지 가는 끈기가 있다면, 결국 해냅니다.
문명이 다음 단계로 가는 열쇠, 에너지
기술의 진보든 문명의 발전이든, 결국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되느냐와 맞물려 왔습니다. 산업혁명을 연 건 석탄이었고, 그다음은 석유와 화학의 시대였습니다. JC.B는 핵융합이 인류 번영의 다음 단계를 열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AI도, 양자기술도 전부 에너지가 있어야 돌아갑니다. 더 많은 사람이 풍요를 누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데이터센터는 무엇으로 돌릴까요. 에너지 없이 어떻게 AI를 쓰겠습니까. 누군가의 집 불을 꺼야 데이터센터를 돌릴 수 있는 미래라면, 그건 답이 아닙니다. 인류에겐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핵융합은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강력한 한방입니다.
JC.B가 본인의 믿음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게 타이탄(Titan)입니다. 동종 장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력과 에너지를 내는 장치입니다. 쉽게 말하면 거대한 배터리입니다. 모아둔 에너지를 10억분의 1초 만에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그는 회사를 만들 때 꼭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일은 연구 프로젝트인가, 아니면 진짜 사업인가.
어떤 일은 회사를 차려서 일하는 것보다 정부 지원금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본질을 따져 묻습니다. 퓨즈에서는 타이탄을 개발하며 부품과 하위 시스템의 80퍼센트 넘게 사내에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개발 과정을 수직 계열화한 덕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내에서 바로 풀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키우는 일은 운영체제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과 같습니다. 쉬지 않고 버그를 잡고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6개월에 한 번꼴로 새 버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JC.B는 일부러 시간을 내 스스로를 들여다봅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 이 회사는 예전의 그 회사가 아닙니다. 핵심은 그대로지만 운영 방식이 다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단계에 강한 사람이 있고, 성장 단계에는 다른 역량과 문화가 필요합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을 데려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짚어내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조직을 다듬는 동안에도, 퓨즈는 자본이 거의 바닥난 순간을 몇 번 겪었습니다. 어떤 기술이 계획대로 가지 않기도 했고, 돈이 떨어져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팀인지는 바로 그런 순간에 드러났습니다. 팀으로서 단단해지고 회복력이 쌓인 게 거기서부터였습니다.
창업가는 위험을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흔히 창업가를 큰 판돈을 거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뛰어난 창업가는 위험을 아주 잘 줄이는 사람입니다. 회사를 시작하는 날 가장 큰 위험을 짊어집니다. 그다음부터 할 일은 그 위험을 하나씩 없애는 겁니다. 무엇부터 줄일지 까다롭게 골라, 그 순서를 틀리지 않는 것. 그게 창업자의 일입니다.
JC.B는 젊은 창업자였지만, 정부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과 팀을 꾸렸습니다. 그가 만난 가장 뛰어난 사람들 중 일부가 이제 한 팀이 되었고, 각자 다른 역량을 가진 채 같은 방향을 향해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보완해줄 사람을 데려오는 건 본인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나아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대담하되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약점이 어디인지 인정하면, 그 자리를 채울 사람도 보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태도가 마음의 평화를 지켜주고, 뛰어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됩니다.
퓨즈가 먼저 찾는 사람은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끝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움직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이 일에 진심인 사람. 이뤄내야 하는 미션이 생기면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나오는 사람. 필요하면 자기 일이 아니어도 바닥의 쓰레기까지 줍는 사람. 진심으로 달려들어 어떻게든 끝내는 데만 집중하면, 정말 많은 걸 해낼 수 있습니다.
JC.B의 이야기는 '대학 대신 창업해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무용담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학문이 쓸모없다는 말을 한 게 아닙니다. 결국, 직접 해내서 증명하라는 것. JC.B는 그 방법으로 검증된 길 대신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골랐을 뿐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모험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창업가는 위험을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씩 지워가는 사람이라고 했으니까요. 가장 큰 모험가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은 위험을 가장 잘 계산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지구에 별을 만드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별처럼 타오르는 핵융합의 불꽃은, 자신을 증명해 낸 사람의 손에서 피어날 것입니다.
📌 JC.B가 직접 들려주는 퓨즈의 이야기, 더 자세한 내용은 EO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편집자의 말]
이 아티클을 마무리지으며, 이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분명 이 글에는 댓글이 달리겠구나. 어쨌든 한국이 아니라 미국 이야기 아니냐고, 아버지가 핵물리학자니까 가능한 일 아니냐고.
실제로 JC.B의 인터뷰 영상 댓글에도 “그의 아버지가 핵물리학자라서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달립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유관 분야에서 연구자로 일하고 있기에 훨씬 더 가깝게 핵물리학을 접하고, 거기서 기회를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사업에 필요한 인맥을 만나고, 그들과 협업해 또 다른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높고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에 실패에 관대한 편이고,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을 심산이 큽니다.
하지만 반대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핵물리학자라는 사실은 그가 일종의 ‘네포베이비’라는 꼬리표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저명한 교수이니 부담감이 함께 따를 수도 있고, ‘어디 잘 해내나 두고 보자’는 주목을 받기도 하고요.
또한 미국은 분명 실패에 열려 있지만, 미국이라고 대학 타이틀이 안 중요한 건 아닙니다. 스탠포드, MIT, 하버드 출신 창업가를 우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학교 자퇴 신화’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에만 해당한다고 보는 미국인도 적잖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인맥이 대학 네트워크을 대체해, 창업가의 기반이 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창업가도 그걸 부정하진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잘나간다 해서 반드시 ‘기업가’로 거듭나라는 법은 없습니다. 차라리 연구를 해서 학맥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게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JC.B가 대학이 아닌 창업을 택한 이유, 창업에 뛰어든 후 문제를 풀며 회사를 키우는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지점입니다.
무엇보다 그가 ‘에너지’라는 키워드를 택한 맥락에서 일론 머스크의 ‘제1원칙’ 사고법이 떠올랐습니다. 가설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 “AI도, 양자 기술도 전부 에너지가 있어야 돌아간다”는 통찰은 아무리 핵물리학자를 아버지로 뒀다 해도 쉬이 갖기 어려운 관점입니다. JC.B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도달했다는 건, 실제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는 건 그만큼 오랜 고민과 고행의 시간을 스스로 거쳐왔다는 의미겠죠.
대학에 가지 않아도 핵물리학자 아버지를 통해 사업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었으리라는 예측, 미국이니까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창업을 결정하기 수월했으리라는 짐작을 모두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약점’까지 충분히 파악해 그걸 보완하는 방식으로 팀을 일구고 사업을 일으켰다는 데서 우리는 국적과 인종과 나이를 초월해 무언가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의사결정은 충분히 가치 있는 참고자료입니다.
이 이야기가 창업가들에게 더 많은 용기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