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검증 #마케팅 #피봇
1년만에 천만 유저를 모은 창업가, 그가 내렸던 의사결정들

AI 제품은 매일 쏟아집니다. 어제는 이미지 생성, 오늘은 영상 생성, 내일은 또 다른 자동화가 '다음 대세'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중 오래 남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신기해서 한 번 눌러 보는 사람은 많아도, 돈을 내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엘라 장이 창업에서 가장 먼저 부딪힌 것도 바로 그 간극이었습니다.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엘라 장(Ella Zhang)은 AI 마케팅 영상 제작 도구 크리에이티(Creati)의 창업자 겸 CEO입니다. 상품 이미지 한 장만 넣으면 AI가 광고 문구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후처리까지 돕습니다. 촬영팀도 편집자도 없이 광고 한 편을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죠. 출시 1년 만에 다운로드 1천만 건, 연환산 매출 1천만 달러(한화 150억 원)라는 숫자도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이 방향이 처음부터 또렷했던 것은 아닙니다. 엘라가 처음 시장에 내놓은 제품은 민망할 만큼 거칠었습니다. 세련된 화면도 없었고, 영상을 한 번에 여러 개 만드는 기능도 없었습니다.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2주. 그런데 사람들이 썼습니다. 심지어 돈을 냈습니다.

이 글은 그 거칠었던 제품이 어떻게 1천만 다운로드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그 사이 방향성을 잃은 엘라가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1. 허술한 제품에 사람들이 돈을 냈다
  2. 애플에서 배운 건 설문지가 아니었다
  3. 트렌드가 가린 진짜 고객
  4. 300명에게 묻고서야 길이 보였다
  5. 인플루언서가 브랜드를 데려오는 바퀴
  6. 기술이 바뀌어도 남는 것

 

엘라 장, 크리에이티(Creati) 창업자 겸 CEO (출처: EO)

 

허술한 제품에 사람들이 돈을 냈다

크리에이티의 첫 모습은 단출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100명 넘는 사용자가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당시 규모에서는 단숨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었습니다. 아직 작은 숫자였지만, 엘라는 거기서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AI 시대에는 매일 모든 게 바뀌니까요. 너무 오래 기다리면 영영 출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내놓고, 키우고, 동시에 배우면 됩니다."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첫 제품이 부끄럽지 않다면 너무 늦게 내놓은 것이다." 투박한 제품은 사용자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가장 빨리 확인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참고 : 링크드인도 “쪽팔리는 첫 제품”에서 출발했다)

사실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일단 내놓아라"고 말하는 살아남은 사람의 말입니다. 호프먼처럼 성공한 사람이 하면 통찰이 되지만, 똑같이 거친 제품을 내고 조용히 사라진 창업자는 이 자리에서 말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거칠어도 괜찮다"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거친 제품이 그 자체로 정답인 적은 없습니다.

엘라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그 거친 제품에 돈을 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좋아 보인다는 반응은 말로 그치지만, 지불은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둘은 무게가 다릅니다. 갈림길은 완성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지갑을 열었는가에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배운 건 설문지가 아니었다

이 감각의 뿌리는 애플 시절에 있습니다. 

엘라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출발해 1세대 에어팟을 만드는 팀에 몸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에어팟조차 처음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 시작됐습니다. 에어팟 팀은 사람들을 작은 면담실로 불러 묻고 또 물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쓰는 이어폰에서 어떤 점이 불편한지. 거추장스러운 이어폰 연결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은, 사용자가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엘라가 익힌 건 설문보다 대화였습니다. 

온라인 설문에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기보다 빨리 끝내려고 첫 보기를 누르곤 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설문은 우리가 미리 만들어 둔 선택지 안에서만 답을 받습니다. 사용자가 A, B, C 중 하나를 원할 거라 가정하지만, 막상 만나 보면 그 선택지엔 관심도 없고 정작 D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D는 애초에 설문지에 없던 항목입니다. 설문이 그저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도구인 셈입니다. 그에 반해 '대화'는 가설 밖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도구입니다.

엘라를 줄곧 끌고 온 원동력은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집착. 

그 마음이 영상이라는 매체로 뻗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긴 글보다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편이 훨씬 수월했고, 언젠가 배움과 소통을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리라 믿었습니다. 다른 쪽으로는, 막힐 때마다 사용자를 직접 만나는 방향으로 뻗었습니다. 안정적인 애플을 떠나 창업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 생성형 AI를 보며 손쉬운 영상 제작이라는 꿈에 닿을 길이 보였습니다. 영상은 모두가 보고 즐기는데 반해, 정작 영상 제작은 여전히 소수의 전문가에게 묶여 있었습니다. 이 간극을 기술이 좁힐 수 있다고 그는 봤습니다. 다만 꿈은 방향을 줄 수는 있어도, 사업을 성공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그 차이를, 엘라는 첫 제품에서 아프게 배웁니다.

 


 

트렌드가 가린 진짜 고객

엘라가 가장 아팠던 교훈으로 꺼낸 사례는 초기 제품 ZMO.AI입니다. 처음엔 분명 돈을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시 텍스트로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 폭발적으로 뜨거웠고, 모두가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엘라도 그 흐름에 휩쓸렸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열기와 사용자의 필요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만든다는 사실은 보였지만 왜 만드는지, 어떤 상황에서 돈을 낼 만큼 절실한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가입자는 빠르게 느는데 매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지표와 냉정한 지표가 따로 놀기 시작한 겁니다. 어느 순간, 그는 길을 잃었습니다. 누가 왜 돈을 내는지, 왜 대다수는 끝내 지갑을 닫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제품은 자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업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트렌드는 사람들이 어디 몰려 있는지까지는 알려 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머무는지, 무엇에 지갑을 여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300명에게 묻고서야 길이 보였다

막다른 자리에서 엘라가 다시 꺼낸 건 애플에서 익힌 '고객과의 대화'였습니다. 이번엔 신제품을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 흔들리는 제품을 구하기 위한 인터뷰였습니다. 가장 활발하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500명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중 300명과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300명에게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가 구경꾼 사이에 숨은 진짜 고객을 갈라냈습니다. 대다수는 AI가 신기해 들어온 사람들이었지만, 그 안에 규모는 작아도 필요가 분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를 둘 형편이 안 돼 직접 휴대폰으로 상품을 찍어 파는 아마존·이베이·엣시의 판매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상품 사진도 휴대폰으로 찍고, 영상도 휴대폰으로 올리고, 손님도 휴대폰 속 피드에서 만난다고 했습니다. 장사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손안의 화면에서 돌아가는데, 정작 제품만 책상 위 PC에 놓여 있었습니다.

엘라는 두 가지를 바꿨습니다. 타깃을 멋진 이미지를 구경하려는 사람에서 당장 팔아야 하는 사람으로 좁혔고, 무대를 PC에서 모바일로 옮겼습니다. 한 번 써 보고 떠나는 구경꾼이 아니라, 매일 장사를 위해 다시 돌아오는 고객을 향해 제품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크리에이티는 그 전환 위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인플루언서가 브랜드를 데려오는 바퀴

크리에이티가 흥미로운 지점은 영상 생성 기능 자체가 아니라 그로스 구조에 있습니다. 엘라는 크리에이티를 다시 세우면서, 처음부터 이것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플루언서와 브랜드를 잇는 장으로 설계했습니다.

왜 인플루언서였을까요. 

브랜드는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알지만, 어떤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사람을 멈춰 세우는지는 좀처럼 알기 어렵습니다. 반면 인플루언서는 그 문법을 몸으로 압니다. 어떤 첫 장면이 손가락을 멈추게 하고, 어떤 말투가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지 감각으로 압니다. 브랜드에 없는 그 감각이 템플릿이 되어 흐릅니다.

인플루언서가 영상 템플릿을 만든다 → 자기 채널에서 퍼뜨린다 → 바이럴을 본 브랜드가 유입된다 → 브랜드가 광고를 만들며 돈을 낸다 → 그 수익으로 더 많은 인플루언서가 합류한다 → 더 많은 템플릿이 다시 입소문을 타고, 이 과정이 한 바퀴 더 돈다.

여기에는 두 개의 흐름이 겹쳐 있습니다. 콘텐츠가 사람을 데려오고, 브랜드의 지불이 공급자를 다시 늘립니다. 잘 만든 템플릿으로 찍은 영상이 가장 강력한 광고가 되어 브랜드를 부르고, 그 브랜드가 낸 돈이 다음 인플루언서를 불러들입니다. 그렇게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는 영상 생성기라기보다 ‘광고 아이디어가 거래되는 장터’에 가깝습니다. 브랜드는 더 좋은 템플릿 때문에 머물고, 인플루언서는 더 많은 브랜드 수요 때문에 남습니다. 양쪽이 서로를 붙들어 두는 구조가 단단해질수록, 뒤늦게 기술만 들고 뛰어든 경쟁자가 따라오기는 어려워집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남는 것

AI 시장에서 기능은 왕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어제의 차별화 기능이 오늘은 여러 제품에 동시에 들어가고, 최신 모델도 몇 달이면 낡아 보입니다. 엘라는 지금 보이는 AI 제품 대부분이 최종 형태가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래 세운 계획을 고수하는 힘보다, 바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힘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빠른 적응이 자칫 방향 없는 반응이 되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새 모델이 나오면 붙이고, 새 유행이 오면 따라가고, 경쟁사 기능을 급히 복제하다 보면 제품은 바빠지지만 선명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라는 “매일 사용자에게 묻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한두 사람의 큰 목소리는 오히려 길을 흐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돈을 낸 이유조차 나중에야 깨닫곤 하니까요. 그가 500명에게 메일을 보내고 300명을 만난 건, 한 명의 말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반복되는 ‘패턴’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사용자에게서 배웁니다. 어떤 콘텐츠가 입소문을 타는가. 그건 우리 고객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고, 기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요."

 

 

여기서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위가 드러납니다. 

영상 생성 기술은 결국 상향 평준화됩니다. 하지만 업종마다 사람을 멈춰 세우는 첫 장면이 다르고, 구매로 이어지는 영상의 길이와 말투도 다릅니다. 모델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어도, 한 시장에서 반복해 쌓은 이런 감각은 같은 맥락으로 빠르게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엘라가 가리키는 해자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축적된 답입니다.

물론 "빠르게 적응하라"와 "변하지 않는 핵심을 지켜라"는 한자리에 두면 모순처럼 들립니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지, 고정된 공식은 없습니다. 그 경계선은 미리 그어 두는 것이 아니라, 매번 사용자 앞에서 다시 그어지는 선에 가깝습니다.

 


 

제품이 1천만 다운로드를 넘긴 뒤에도, 엘라가 손에서 놓지 않는 일은 하나입니다. 사용자에게 직접 묻는 것. 무엇이 불편한지, 왜 그 영상에 지갑을 열었는지.

엘라에게 남은 것은 빠른 출시도, 화려한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끝까지 캐묻는 집착이었습니다.

트렌드는 사람을 모읍니다. 필요는 돈을 움직입니다.

 

📌 엘라 장이 직접 들려주는 창업 이야기, 더 자세한 내용은 EO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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