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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AI 시대에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기어코 해낸 경험'입니다

챗GPT에 무엇이든 질문하면 몇 초 만에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AI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반대의 일을 시킵니다. 계산기를 켜는 대신 종이를 펼치게 하고, 코드를 돌리는 대신 수식을 한 줄씩 손으로 쓰게 하죠.

톰 예(Tom Yeh) 교수는 콜로라도대학교 볼더(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의 컴퓨터과학과 부교수입니다. 트랜스포머나 어텐션처럼 복잡해 보이는 AI의 핵심 개념도 예외가 아닙니다. 슬라이드 몇 장과 간단한 설명으로 금방 넘기는 대신, 직접 개념을 그리고, 쓰고, 틀리면 다시 풀게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답을 빨리 얻는 일과 그 답을 진짜 아는 일은 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톰 예 교수가 강조하는 건 AI를 더 빨리 쓰는 법이 아니라, AI 앞에서 이해를 건너뛰지 않는 법입니다. 그가 느린 학습을 고집하는 이유와, 도구가 매년 바뀌는 시대에 붙들어야 할 본질, 그리고 'AI 네이티브'라는 유행어에 그가 품은 의구심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톰 예, 콜로라도대 컴퓨터과학과 부교수 · AI by Hand 창립자 (출처: EO)

 

💡 AI by Hand: 인공지능 모델 속 수학과 알고리즘을 손으로 직접 써 가며 익히도록 돕는 톰 예 교수의 교육 프로젝트. AI가 '마법의 블랙박스'가 아니라 누구나 한 단계씩 따라갈 수 있는 계산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게 목표입니다. (byhand.ai)

 


[아티클 내비게이션]

  1. 딥러닝을 놓친 교수가 만든 'AI by Hand'
  2. 느림은 결함이 아니라 장치다
  3. 답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4. 모두 불타버려도 남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기초’
  5. 조금 수상한 'AI 네이티브'라는 단어

 

딥러닝을 놓친 교수가 만든 'AI by Hand'

톰 예 교수는 처음부터 딥러닝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 표현을 빌리면 오히려 '한발 늦은' 쪽이었습니다.

"학생일 때 저는 딥러닝을 배울 기회를 통째로 놓쳤어요. 그래서 서포트 벡터 머신 같은 전통적인 머신러닝만 공부했죠. 그러다 교수가 됐는데, 갑자기 다들 딥러닝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딥러닝이 막 떠오르던 시기에, 그는 이미 학생 시절을 지나 강단에 선 뒤였습니다. 남들이 한참 앞서 달리는데 본인은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다시 묶는 처지였던 셈입니다.

💡 딥러닝과 그 이전: 서포트 벡터 머신(SVM)은 딥러닝 이전 시대를 대표하던 머신러닝 기법입니다. 톰 예 교수는 학생 시절 그 흐름 속에서 공부했고, 딥러닝의 급부상은 교수가 된 뒤에야 다시 따라잡아야 할 변화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수식을 종이에 그리고, 숫자가 어디서 어디로 옮겨 가는지 손으로 일일이 따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말로만 들으면 막연하지만 실제 장면은 꽤 구체적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문장을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배운다 칩시다. 톰 예 교수는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를 '토큰'으로 놓고, 그 토큰이 여러 숫자로 이루어진 벡터로 바뀌는 과정을 작은 칸 안에 그려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네 번째 토큰을 보고 있다'고 짚어가며, 그 숫자들이 다음 단계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칸씩 옮겨 적습니다. 한 걸음씩 손으로 짚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손으로 벡터를 계산해 보는 'AI by Hand' 예시 (출처: AI by Hand)

 

그렇게 손수 필기하며 개념을 정리하던 중, 어느 순간 이해된다는 느낌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AI를 배우면서 비슷한 막막함을 느끼던 수많은 사람에게도 통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어요. '손으로 하나씩 풀어주는 이 방식이 정말 좋다'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걸 그냥 'AI by Hand'라고 부르면 되겠다."

AI by Hand의 시작은 자신감이 아니라 "나도 이거 잘 모르겠다"는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느림은 결함이 아니라 장치다

왜 굳이 손으로 풀까요? AI가 알아서 계산해 주는 마당에 사람이 종이에 숫자를 적고 있으면, 누가 봐도 비효율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톰 예 교수에게는 바로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전환점은 한 강의 평가였습니다. 프로그래밍 입문 수업을 진행하던 시절, 그는 학생들로부터 '교수님이 너무 빨리 나간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짧은 강의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 했던 효율성이 학생에게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로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습니다. 한 학기 분량의 C++ 수업을 라이브 코딩 대신 칠판에 직접 손으로 적어가며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1. 교수가 손으로 쓰는 속도 이상으로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학생들도 칠판에 적히는 내용만큼만 따라오게 되어 딱 소화할 수 있는 속도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3. 학생들이 노트를 옮겨 적는 동안에는 스마트폰으로 SNS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세 번째 변화는 앞의 두 가지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학습이라기보다 주의 통제에 가깝고, 이해를 돕기보다 딴 데로 샐 손을 붙잡아 두는 목적이 큽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두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그 자리에 머무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느림은 무능이 아니라 그가 의도적으로 만든 마찰이었습니다. 손으로 쓰는 방식 하나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속도를 같은 자리에 묶어 둔 것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서 그는 한층 골치 아픈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애초에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요? AI는 답을 줍니다. 빠르고 그럴듯하며 때로는 실질적으로 유용합니다. 하지만 답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는 감각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학위도 살 수 있고 자격증도 살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정말 내 것이 됐나요?"

톰 예 교수가 말하는 배움의 핵심은 직접 부딪치며 체득한 자신감입니다. 한 학기 동안 손으로 쓰고 틀리고 다시 계산한 사람에게는 결과물 말고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걸 버텨서 익혀냈다"는 기억입니다.

물론 시간을 오래 쏟았다고 다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헤맨 시간과 이해한 깊이는 다른 문제니까요. 다만 그가 가리키는 건 시간의 양이 아니라, 한 번 끝까지 가 본 사람만이 갖는 특유의 감각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AI 시대에 속도는 분명한 경쟁력이고, 직접 손으로 풀지 않아도 트랜스포머 모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엔지니어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손으로 쓰는 필기가 늘 더 낫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도 조심해야 합니다. 톰 예 교수의 칠판 실험 역시 엄밀히 말하면 보편적인 처방이라기보다 한 교육자가 자기 수업에서 발견한 방법에 가깝습니다. 속도가 곧 실력인 분야에서는 그의 느린 처방이 오히려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반론에 대해 톰 예 교수가 완벽한 해답을 내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경계하는 건 속도 자체가 아니라, 이해를 건너뛴 채 결과만 손에 쥐려는 습관입니다. 빠른 도구를 쓰되, 적어도 지금 무엇이 빨라지고 있는지 정도는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수식을 풀어 가며 AI 모델을 설명하는 'AI by Hand' 방식

 


 

모두 불타버려도 남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기초’

톰 예 교수가 강조하는 건 '기초'입니다. 요즘의 기술 담론에서는 다소 심심하게 들리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오래 버티는 것들은 대개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학부 시절 선형대수학을 수강했습니다. 행렬 곱셈을 대체 왜 배우는지 그때는 도무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행렬 곱셈이 시대가 바뀔 때마다 계속 돌아왔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컴퓨터 그래픽이 주목받던 때도 필요했고, 빅데이터 시대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기본 언어가 되었습니다. 머신러닝에서도 오늘날의 AI에서도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유행하는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밑바탕에는 늘 같은 수학이 깔려 있던 것입니다.

"도구는 계속 바뀝니다. 하지만 정말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아요. 한때 화제였던 기술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지만, 트랜스포머 같은 주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중요성을 유지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 경복궁에 들렀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궁궐이었어요. 그런데 역사를 좀 더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건물은 전부 불타 없어졌지만 돌로 된 기초만은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후대에 바로 그 기초 위에 궁을 다시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경복궁은 그 토대가 남아있었기에 다시 지을 수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뒤 오랜 시간 폐허로 남았다가, 19세기 흥선대원군 때 다시 중건된 경복궁. 톰 예 교수는 경복궁에서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울 수 있게 하는 '바닥'의 힘을 보았습니다. 탄탄한 기초만 있으면 새 기술이 와도 그 위에 다시 지으면 되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능만 좇으면 기댈 바닥 없이 집을 계속 새로 짓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톰 예 교수가 드는 예는 소박합니다.

"어릴 때를 떠올려 보세요. 부모님 권유로 축구를 하거나 피아노를 배웠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려운 것을 끝내 익혀낸 경험입니다."

새로운 도구를 외면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정 도구의 사용법보다 그것을 정복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피아노든 축구든 체스든 한 번이라도 몸에 새겨 본 사람은 자기 안에 단단한 증거 하나를 품게 됩니다. '나는 시간을 들이면 어려운 것도 배워내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입니다. 그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낯선 도구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톰 예 교수 자신이 그 사례에 가깝습니다. 딥러닝 분야에 한참 뒤처져 있었음에도 어려운 주제를 인내심 있게 손으로 풀어내던 오랜 습관 덕분에 결국 따라잡았으니까요. 그래서 그가 학생에게 바라는 지향점도 세월이 흐르며 달라졌습니다.

"솔직히 학생들이 1년 뒤엔 제가 가르친 수식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죠. 스스로 그 순간 이것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 블랙박스를 기꺼이 열어 보려 했다는 것. 바로 그 의지가 차이를 만듭니다."

공식을 외웠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때 나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버텼고 결국 해냈다"는 경험이 핵심입니다.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벽 앞에서도 다시 한번 부딪혀 볼 힘을 얻게 됩니다.

 


 

조금 수상한 'AI 네이티브'라는 단어

그래서 그에게 'AI로 과제를 했느냐'는 질문은 표면적입니다. 더 깊은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학생이 정말 이해하려 했는가 아니면 이해한 척할 결과물만 챙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물음은 그가 오래 씨름해 온 부정행위 문제로 이어집니다.

프로그래밍 과제를 내면 답안 공유 사이트가 따라붙었고 교수들은 매 학기 그 빈틈을 막느라 씨름했습니다. 한때 그는 그런 사이트가 사라지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라질 위기가 왔습니다. AI가 훨씬 편리한 부정행위 도구로 등장하면서 기존 답안 공유 사이트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도구만 바뀌었을 뿐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였습니다.

"사이트가 사라졌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부정행위를 합니다. 장담하건대 언젠가 AI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는 부정행위를 원인이 아니라 증상으로 봅니다. 진짜 병은 시간을 들여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제대로 점수를 주지 않는 구조에 있다는 것입니다. 답만 요구하는 시스템에서는 사람도 답만 들고 옵니다. 그러고 나서 "왜 과정이 사라졌느냐"고 탄식하는 것은 순서가 조금 이상합니다. 애초에 과정에 충분히 점수를 주었는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 시선은 채용으로 이어집니다.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이 어긋나 있다면 사람을 뽑는 방식이라고 온전할까요. 톰 예 교수가 사람을 볼 때 챙기는 것은 화려한 AI 도구 목록이 아닙니다.

"사람을 뽑을 때 제가 보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람이 성실한가, 문제를 잘 푸는가, 함께 일할 줄 아는가. AI를 다루는 능력은 그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도구도 결국 자기 방식으로 익혀냅니다. 그러니 "우리는 AI 네이티브를 원합니다"라고 굳이 강조해야 한다면 질문을 한 번 뒤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문제 해결자를 제대로 보고 있던 것이 맞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AI는 게으른 사람을 성실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프롬프트를 쥐여 준다고 협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도구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I는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AI를 바꾸는 건 사람이에요."

 

"AI는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AI를 바꾸는 건 사람이에요." (출처: EO)

 


모두가 더 빠른 모델과 더 그럴듯한 자동화를 말하는 사이, 톰 예 교수는 오늘도 칠판 앞에서 분필을 듭니다. 손이 닿는 만큼만, 학생이 따라오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수식을 씁니다.

그가 남기려는 것은 트랜스포머 공식 한 줄이 아닙니다. 어려운 것을 끝까지 붙들어 본 사람만 아는 감각, 즉 "내가 이것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확신입니다. 도구의 이름은 내년에도 또 바뀌겠지만, 그 감각만큼은 쉽게 낡지 않습니다.

AI는 답을 대신 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을 내 머릿속에 넣어 주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지금 손에 쥔 것은 답일까요, 아니면 이해일까요?

 

 📌 톰 예 교수가 직접 말하는 'AI를 손으로 배우는 법', 더 자세한 이야기는 EO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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