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감독 선임 논란
스포츠 경기의 매력은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도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광화문광장에는 붉은색 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저 역시 출근길에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대표팀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결과는 32강 탈락.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이후 국가대표팀 운영을 책임지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습니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뽑는 과정이 공정하고 제대로 이루어졌는가'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2024년부터 이어졌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에 관한 특별 감사를 시행했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축구협회는 별다른 변화 없이 월드컵을 치렀고,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한축구협회의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특정 인물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해당 사례 분석은 자체 개발한 의사결정 진단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진행되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감사보고서와 국회 특별청문회 속기록을 종합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조직 의사결정에서의 세 가지 핵심 오류가 도출되었습니다.
첫째, 감독을 평가할 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둘째, 참여자에 부여된 역할과 권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셋째,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해진 절차보다 개인의 직감에 의존했다.
축구협회 감독 선임 과정의 3가지 핵심 오류
현실적으로 모든 결정을 완벽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시간과 정보, 인력에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한계를 이유로 절차를 하나둘 생략하다 보면, 조직에 가장 필요한 선택보다 결정하는 사람이 가장 쉽고 편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 나타난 세 가지 문제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류 1. 사전 평가 기준의 부재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는 각급 대표팀 감독을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추천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 결과, 실제 감독을 뽑을 때 사용할 구체적인 세부 기준이나 지침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는 전술 능력, 선수 육성, 경험, 소통 능력, 리더십, 코칭스태프 구성, 성적 등 여러 가지 평가 요소를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각각을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리 기준을 정해놓지 않으면 같은 후보자를 두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위험이 커지게 됩니다. 실제로 최종 후보자 3명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외국인 감독 2명에게는 PPT 발표, 전술 검증, 거주 조건 확인 등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면접과 평가를 진행했고 관련 자료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반면 국내 감독 후보자에게는 PPT나 미리 준비한 질문 없이 밤늦은 시간에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별도의 평가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조사 결과 해당 면담은 후보자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히려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같은 감독 후보자를 평가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평가 기준이 달라지면 후보자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나중에 그 결론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탁월한 결정은 결론을 먼저 정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먼저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비교해야 합니다.
오류 2. 의사결정 참여자의 역할 무시
축구협회의 규정에는 감독을 뽑는 과정에서 각 조직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감독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감독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추천하는 기능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기능을 구분하여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결정이 이뤄지도록 만든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2024년 2월 구성된 전력강화위원회는 5차례 회의를 거쳐 97명의 후보자를 11명으로 좁혔습니다. 이후 면접을 진행해 최종 후보로 외국인 감독 2명을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후보자를 검토해 최종 3명을 추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갑작스러운 사퇴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이에 축구협회장은 최종 후보자를 검토하고 추천하는 일을 전력강화위원회가 아니라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기술이사에게 맡겼습니다. 그 결과 감독 후보자를 검토하고 추천해야 할 위원들이 최종 후보를 고르는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 위원들은 감독이 내정된 후에야 그 사실을 통보받았고, 일부 위원들은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축구협회는 이사회에 최종 감독 선임에 관한 승인을 받기 전에, 이미 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실을 대중에 먼저 공개했습니다. 이후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규정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각 주체별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역할대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는지는 다음 오류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류 3. 긴급 상황에서의 직관 의존
감독 선임 과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우선협상 대상이었던 외국인 감독 후보자들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였습니다. 당시는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을 불과 두 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새로운 감독을 뽑고 선수들을 모아 전술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여기에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까지 사퇴하면서 축구협회는 상당한 시간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협회장은 기존 절차를 따르는 대신 평소 신뢰 관계가 두터운 기술이사에게 감독 추천과 협상 업무를 맡겨 빠르게 선임을 추진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장 좋은 선택보다 당장 하기 쉬운 선택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가능성입니다. 처음부터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외국인 감독보다 국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국내 감독이 상대적으로 편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외국인 감독 후보자에게는 철저한 검증을 진행하면서 국내 감독 후보자에게는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던 점을 비춰보면, 축구협회장은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해당 국내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가 처음 후보자 명단을 만들 때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긴급해지자 실행하기 쉬운 선택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급해질수록 복잡하게 따져보기보다 자신의 직감에 의존해 쉬운 선택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직감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직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오랜 경험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접했고, 자신의 판단이 맞았는지 계속 확인하고 배워온 분야여야 합니다. 반면 축구처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직감도 쉽게 빗나갈 수 있습니다. 선수의 컨디션, 상대팀의 전술, 부상, 경기 당일의 변수처럼 미리 알기 어려운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황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개인의 직감에 따른 판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급한 상황일수록 제대로 결정하기 위해 원칙과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조직 리더를 위한 의사결정 시사점
이번 사례는 축구협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업에서도 CEO와 임원, 이사회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됩니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거나, 핵심 인재를 뽑거나, 조직을 크게 바꾸는 일처럼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결정일수록 이런 위험은 더 커집니다. 이번 사례에서 리더들이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보 수집 전에 평가 기준부터 확립하라
탁월한 결정은 무작정 정보를 많이 모으는 것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사전에 평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대안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서로 다른 대안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쁜 경우에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뒤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먼저 평가 기준부터 명확하게 수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각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까지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참여자의 역할을 정의하고 절차를 관리하라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정하는 상황이라면 각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 누가 대안을 평가할 것인가?
- 누가 대안을 추천할 것인가?
-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등
대안을 검토하기에 앞서 이 질문들에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역할을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결정 과정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지켜져야 합니다. 리더의 자리에 있다 보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많은 리더들이 그럴만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리더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결정 과정을 관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우리 조직이 더 나은 답을 찾으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입니다.
위기일수록 직관을 멈추고 원칙을 사수하라
시간에 쫓길수록 분석과 검토보다는 직감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커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급한 상황이 되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대안보다 내가 잘 알고 있고 당장 실행하기 쉬운 대안을 선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일수록 평소에 만들어둔 원칙이 중요합니다. 최소한의 평가 기준,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 반대 의견을 듣는 방법, 최종 승인 권한 등을 미리 정해두면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결정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탁월한 결정 시스템은 평소보다 위기 상황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 화재대피 훈련을 반복해서 하듯이, 의사결정 절차를 따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이 아닌 과정을 관리하는 리더
탁월한 결정은 리더 개인의 경험이나 명성, 권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대안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서로 다른 생각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따라 참여하도록 하고, 리더의 개인적인 선호가 결정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탁월한 결정은 경험 많은 리더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타고난 리더의 덕목도 아닙니다. 경험이 부족한 리더여도 훈련을 통해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