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사결정의 정점, 버크셔해서웨이
전 세계에서 의사결정을 가장 잘하는 기업을 꼽으라면,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버크셔해서웨이를 언급합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60년 넘게 이끌어온 버크셔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약 19.8%의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의 누적 수익률을 무려 390배 이상 뛰어넘는 압도적인 성과입니다.
하지만 의사결정 전문가들이 버크셔해서웨이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단지 뛰어난 실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례적일 만큼 합리적인 판단 체계를 구축하고, 그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수십 년간 직접 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2013년 주주총회에서 한 청중이 버크셔해서웨이의 경쟁 우위를 묻자, 워런 버핏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 점은 이례적일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잡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경쟁 우위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오랜 시간 탁월한 성과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합리적 판단을 향한 경영진의 철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합리적으로 판단하려 애쓰지만, 이를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막상 실천하려 하면 방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 여러 대안을 비교 평가하는 고차원적 사고 과정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낍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결정을 빠르게 내리지 못한다는 조급함마저 뒤따릅니다. 결국 수많은 경영자가 합리적 판단 대신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직관, 혹은 외부 조언에 의존해 서둘러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놀라운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들은 오랜 훈련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면서도, 그 과정을 극도로 효율화했습니다. 워런 버핏은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도 단 5분 만에 결정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2005년 포레스트리버가 인수 제안을 담은 팩스 2장을 보내오자, 워런 버핏은 이튿날 바로 인수를 추진했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계약을 마무리했습니다.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투자는 단 두 차례의 짧은 회의로 결정했고, 쇼인더스트리 역시 논의 시작 후 두 달 만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처럼 버크셔해서웨이는 언제나 신속하게 판단했고,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겼습니다.
흔히 신속한 결정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속도를 내다보면 정작 중요한 점검 요소를 놓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크셔해서웨이는 중요 요소를 생략해서 빠른 것이 아니라, 핵심을 정확하면서도 빠르게 검토하는 역량을 갖췄습니다. 양궁 선수가 수없는 반복 훈련 끝에 불과 5초 만에 과녁 정중앙을 꿰뚫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단지 빠르게만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건 60년간 거둔 성과가 명백히 증명합니다.
앞으로 2부에 걸쳐 합리적 결정의 정점에 오른 버크셔해서웨이의 의사결정 방식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1부에서는 워런 버핏 시대를 지탱한 의사결정 원칙을 다루고, 2부에서는 버핏 이후 시대를 대비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했는지 조명합니다. 이 글을 통해 일시적인 운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의 기본 단계
버크셔해서웨이의 의사결정 방식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합리적 의사결정의 기본적인 개념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이성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직관이나 기분에 의존하지 않고, 명확한 근거와 원칙을 바탕으로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와 대비되는 방식은 직관적 의사결정입니다. 직관적 의사결정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신속하게 작동합니다. 따라서 직관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빠르게 확신을 갖도록 하지만, 그 선택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즉, 합리적 의사결정은 과정이 명확하고, 직관적 의사결정은 결론에 확신을 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통상적인 합리적 의사결정은 아래의 6가지 세부 단계를 거칩니다.
- [문제 정의]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 [역할 배분] 누가 참여하고, 결정하는가?
- [목표 설정] 어떤 상태를 달성해야 성공인가?
- [대안 발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지?
- [비교 평가]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최선의 대안은 무엇인가?
- [실행과 복기] 어떻게 성과를 내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처럼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는 이유는 이성이 지닌 치명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성은 정확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탁월하지만, 인지적 한계로 동시에 여러 가지 사고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다양한 아이디어를 늘어놓는 ‘대안 발굴’ 단계에서는 확산적 사고가 필요한 반면, 최선의 선택지를 추려내는 ‘비교 평가’ 단계에서는 수렴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고를 동시에 요구받으면, 뇌는 과부하에 걸려 어느 쪽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집니다. 세부 단계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이성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합리적 프로세스를 철저히 따르는 기업은 놀라울 정도로 드뭅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조직 내에서 체계적인 합리적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활용한다고 응답한 리더의 비율은 단 2%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여전히 과거의 경험이나 직관, 혹은 순간적인 느낌에 의존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의 차이는 매우 극명했습니다. 2%의 체계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따른 리더들은 그렇지 않은 리더들에 비해 성과 지표가 약 20% 높았을 뿐만 아니라, 회의 토론 시간은 평균 10시간, 전체 의사결정 소요 기간은 10일가량 단축되었습니다. 합리적 절차를 갖추는 것이 오버헤드가 아니라, 오히려 속도와 성과를 모두 잡는 가장 빠른 길임을 증명한 셈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바로 이 상위 2%의 기업 중에서도 합리적 의사결정의 정점에 선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버크셔해서웨이가 6가지 의사결정 단계별로 어떻게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떤 비결을 통해 ‘정확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워런 버핏 시대, 버크셔해서웨이의 단계별 의사결정 방식
[1단계, 문제 정의]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
버크셔해서웨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업집단 중 하나입니다. 게이코(보험), BNSF(철도), BHE(에너지) 등 수십 개의 자회사를 지배하며 연간 매출 약 500조 원, 임직원 수는 38만 명에 달합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복잡도 역시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창업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단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바로 ‘자본 배분을 통한 수익률 제고’입니다.
투자 대상과 방식 역시 철저할 정도로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뛰어난 기업의 주식을 인수하여 소유권을 확보하고, 해당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을 통해 자본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한 번 인수한 우량 자산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향후 100년간 높고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할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어느새 수백 개의 사업을 거느린 거대 제국이 되었지만, 버크셔해서웨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늘 하나였습니다.
“보유 자본을 투입해 더 높은 이익을 가져다줄 최고의 기업은 어디인가?”
[2단계, 목표 설정] 63년간 유지해 온 단 하나의 목표
버크셔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63년간 단 하나의 성과 지표를 절대적 목표로 관리했습니다. 바로 주당순자산가치(Book Value Per Share, BPS)입니다. 버크셔는 이 BPS의 증가율이 미국 대표 인덱스펀드인 S&P 500의 수익률을 넘어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 목표 설정은 버크셔해서웨이 입장에서 대단히 불리하고 엄격한 도전이었습니다. 주가는 시장의 거품이나 분위기에 따라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 있지만, BPS는 기업이 실제로 이익을 내서 유보금을 쌓거나 자산 가치를 늘려야만 상승하게 됩니다. 또한, S&P 500 지수는 세전 기준으로 산출되는 반면, 버크셔의 BPS는 투자 이익 및 자산 매각 시 발생하는 법인세가 이미 차감된 세후 기준입니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오직 자신들의 순수한 자본 운용 실력으로 성과를 증명하겠다는 배수진이었던 셈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매년 연차보고서 첫 페이지에 이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왔습니다. 이는 경영진과 직원, 그리고 주주 전체가 동일한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만든 강력한 장치였습니다.
[3단계, 역할 설정] 화려한 스펙 대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참여자 구성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의사결정 조직은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극히 단순하게 운영되어 왔습니다. 주로 버핏이 결정을 주도하고 멍거가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두 사람은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판단하고 고민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때 투자은행(IB)이나 컨설팅사 등 외부 전문가의 조언에 의존하곤 합니다. 하지만 버크셔해서웨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를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이는 버핏과 멍거가 스스로 더 뛰어나다고 자만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의 '인센티브 구조에 따른 편향'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대개 외부 자문역들은 거래가 성사되어야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 경우 투자 대상의 매력도를 과장하거나 투자를 반드시 성사시키는 방향으로 조언할 위험이 큽니다. 워런 버핏은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의 왜곡된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를 불필요한 리스크로 보았습니다.
대신 버크셔해서웨이는 주주와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인물로만 의사결정자로 참여시켰습니다. 워런 버핏은 개인 재산의 99% 이상이 버크셔 주식이었으며, 성과급 없이 수십 년간 연봉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만을 받았습니다. 찰리 멍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은 보상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신의 자산 대부분이 회사 주식에 매여 있는 두 사람이야말로 주주 관점에서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주체였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이사회 구성 방식에서도 동일한 철학을 적용했습니다. 대다수 기업이 유명 인사와 스펙상의 전문성을 기준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반면, 버크셔해서웨이는 자신의 개인 자금으로 버크셔 주식을 의미 있게 보유한 주주 중에서 사업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이사로 선임했습니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도널드 키오(전 코카콜라 사장), 토마스 머피(전 캡티비티/ABC 회장), 수잔 데커(전 야후 사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이사회 수당에 흔들리지 않으며,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뛰어났으며, 무엇보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로서 회사의 성패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명목상의 독립성이나 외부 전문가라는 이름 뒤에 숨지 않았습니다. 실제 주주의 입장에서 책임을 함께 지고 회사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이들로 의사결정 기구를 구성함으로써, 편향 없는 객관성과 탁월한 주주 가치 극대화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4단계, 대안 모색] 타협하지 않는 원칙과 만족할 때까지 찾는 인내심
대부분의 기업은 눈앞에 주어진 선택지 중 그나마 나은 대안을 고르는 수동적 의사결정에 그치곤 합니다. 하지만 버크셔 해서웨이는 시장이 제시하는 조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확고한 기준을 먼저 세운 뒤 이에 부합하는 대안을 능동적으로 탐색했습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투자 대안을 모색하는 데 압도적인 시간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버핏의 일과는 단순했습니다. 매일 사무실에서 기업 보고서를 탐독하며 대상 기업의 본질과 내재가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명성이 확립되기 전에는 두 사람이 직접 발로 뛰며 인수 기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1986년에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낸 광고에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찾는 투자 후보에 대한 기준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검증된 수익성, 양호한 자기자본이익률, 훌륭한 경영진, 기초산업 여부, 적정한 가격 등입니다. 이 기준들은 매년 연차보고서에도 투명하게 공개되어 왔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한 번 매수한 자산은 팔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안을 모색하는 기준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향후 100년 동안의 현금흐름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했고, 급격한 기술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강력하고 오래가는 경쟁 우위'를 갖춘 기업이어야 했습니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오래전부터 버크셔해서웨이의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었음에도, 기술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대신에 코카콜라와 질레트 같은 변화가 크지 않은 사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버크셔는 기업 인수 후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현장 경영진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인수 후 새로운 경영진을 앉히고,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혁하는 일반적인 사모펀드나 대기업과 달리, '자신들의 개입 없이도 탁월하게 작동할 문화와 경영진을 이미 갖춘 기업'만을 대안으로 선별했습니다.
이처럼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대안을 고집했기에, 수많은 기업을 검토하고도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건 1년에 겨우 몇 건에 불과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경쟁력은 단순히 좋은 선택을 내린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진짜 우량 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끊임없이 찾아 탐색하고 인내한 시간에서 나왔습니다.
[5단계, 비교 평가] 눈앞의 수익을 넘어 미래의 기회비용까지 계산
수많은 투자 후보 중 우선순위를 매기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절대적인 기준은 기회비용이었습니다. 앞서 확립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우량 기업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투자가 실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00개의 훌륭한 대안이 존재하더라도, 가장 우수한 1~2개 대안의 가치가 나머지 98개보다 뛰어나다면 다른 후보들은 즉각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적용한 기회비용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기존 최고 투자 자산과의 비교였습니다. 워런 버핏은 새로운 투자 기회가 발견되면, 언제나 "이 기업이 우리가 이미 보유한 애플이나 코카콜라보다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규 대안이 기존 최고 자산의 기대수익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기준은, 미래에 대한 기회비용이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2026년 1분기 기준, 버크셔해서웨이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500조 원에 달합니다. 이 현금을 20년 만기 국채에만 묻어두어도 연 4~5%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며 단기 순이익을 대폭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크셔가 단기 채권이나 어중간한 기업 인수로 현금을 모두 소진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자금을 묶어둘 경우 향후 찾아올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잡지 못하는 거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버핏은 2003년 주주총회에서 "미래에 보다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있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10% 미만의 수익률을 내는 거래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버크셔해서웨이의 비교 평가는 단순히 현재 상황에서 ‘A와 B 중 어디가 나은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현재의 대안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기회비용까지 고려하여 평가를 해왔습니다.
[6단계, 실행과 복기] 상식의 실천이 만든 무한한 신뢰
버크셔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투자 성과뿐만 아니라, 결정 이후의 실행과 복기 과정에서 보여준 정직함과 책임감 덕분입니다. 스스로 내세운 원칙과 약속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주주와 시장, 그리고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굳건한 신뢰를 확보했습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투자 결정의 배경과 이유를 연차보고서와 주주총회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워런 버핏이 직접 작성하는 연차보고서는 복잡한 금융 공학 용어 대신 건전한 상식의 언어로 자본 배분의 판단 근거를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매년 4만 명 이상의 주주가 모이는 주주총회에서도 비판적인 언론인과 분석가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수시간 동안 즉석에서 답변하며 주주에 대한 설명 책임을 다합니다.
또한, 피인수 기업에는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회사를 절대 되팔지 않는다는 약속을 철저히 이행해 왔습니다. 실제로 버크셔해서웨이는 1970년 이후 인수한 자회사를 모두 보유하며 영구 보유 원칙을 증명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사모펀드처럼 기업을 인수해 쪼개어 되파는 대주주에게 지친 오너들에게 버크셔해서웨이는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줄 최적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RC 윌리나 페치하이머 같은 우량 가족기업들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경쟁사들을 제쳐두고, 버크셔해서웨이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많은 회사들이 버크셔해서웨이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워런 버핏은 자신의 실수와 한계를 대중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했습니다. 1993년 인수한 신발 업체 덱스터슈가 저가 수입산과의 경쟁으로 무너지자, 버핏은 2007년 주주 서한을 통해 "덱스터슈 인수는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라고 자백했습니다. 궤변을 늘어놓거나 거시 경제 탓으로 회피하지 않고, 자신이 경쟁 우위를 잘못 판단한 지점을 명확히 복기하며 주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이러한 솔직함은 장기적으로 시장이 워런 버핏의 말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실행과 복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판단을 책임감 있게 설명하고, 한 번 내세운 약속은 끝까지 지키며, 잘못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사과하는 상식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연한 행동 덕분에 버크셔 해서웨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신뢰받는 의사결정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 시대, 버크셔해서웨이 의사결정의 3가지 주요 특징
워런 버핏이 재직하는 동안 버크셔해서웨이의 의사결정 구조 중심에는 언제나 그 자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스스로 합리성을 지켜내기 위해 아래의 세 가지 요소를 가장 강조했습니다.
1. 단순한 본질에 집중
버크셔해서웨이는 복잡한 대기업 구조 속에서도 의사결정의 핵심 기준을 극도로 단순화했습니다. 수십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면서도 다뤄야 할 문제를 “보유 자본을 투자해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 기업은 어디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집약했습니다. 또한 60년 넘게 '주당순자산가치(BPS) 성장률'을 S&P 500 지수와 비교하는 단 하나의 지표로 성과를 관리하며, 경영진과 주주 모두가 오직 시장 평균을 뛰어넘는 자본 효율성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2. 철저한 원칙 고수
버크셔해서웨이는 시장의 유혹이나 분위기에 타협하지 않고 수십 년간 스스로 세운 엄격한 기준을 일관되게 지켰습니다. 사업 구조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영속적인 경쟁 우위를 지닌 기초산업 기업만을 인수의 조건으로 삼았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대안은 단 5분 만에 걸러냈습니다. 또한 당장의 단기 수익에 만족해 자금을 묶어두기보다, 향후 찾아올 압도적인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 수백조 원의 현금을 보유하며 기다리는 인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아가 1970년 이후 인수한 자회사를 영구 보유하고 경영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켜 피인수 기업과의 굳건한 신뢰를 확보했습니다.
3. 냉철한 객관성 유지
또한 버크셔해서웨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편향을 제거하고 주주 관점에서 엄정하고 정직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거래 성공 보수를 노리고 투자를 부추기는 외부 전문가나 컨설턴트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대신 자산의 대부분이 회사 주식에 매여 있는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그리고 주주들로 사외이사를 구성하여 주주와 완벽하게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판단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덱스터슈 인수처럼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는 궤변을 늘어놓거나 거시 경제 탓으로 회피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수를 솔직하게 자백하고 복기하는 냉철함을 유지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러한 3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마치 직관적 판단처럼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 이후, 버크셔해서웨이의 의사결정 구조는 어떻게 변할까?
2026년, 워런 버핏이 공식적으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그렉 아벨 신임 CEO 체제가 막을 올렸습니다. 워런 버핏이 이사회 의장으로 남아 여전히 사무실로 출근하며 조언자 역할을 이어가고 있지만, 60년 넘게 이끌어 온 그의 퇴임은 버크셔해서웨이의 의사결정 구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버크셔해서웨이의 자본 배분 결정은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라는 두 거장의 압도적인 개인 역량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외부 자문역이나 복잡한 관료주의 절차를 배제한 채, 단 몇 분 만에 수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던 신속하고 독특한 체제는 이 두 사람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최고결정권자가 바뀐 현재, 버크셔해서웨이가 마주한 핵심 과제는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워런 버핏이 없는 상황에서도 기존의 합리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2인 체제가 가졌던 한계를 넘어 시스템으로서의 의사결정 구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그렇다면 워런 버핏은 이러한 승계를 준비하며, 자신이 떠난 후에도 의사결정 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어떤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을까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준비 과정은 2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