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빌딩
스타트업의 단계와 대표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CTO의 역할

스타트업에서 CTO를 잘못 선택하면 회사는 1~2년을 잃는다. 초기 단계라면 그 1~2년은 단순한 시간 손실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치명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정확한 시점에 적합한 CTO를 세운 조직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제품 완성도가 올라가고, 개발 속도가 안정되며, 투자자와의 대화에서 신뢰가 생긴다. 기술이 조직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아니라 성장의 지렛대로 전환된다.

흥미로운 점은, CTO의 역량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떤 CTO가 “좋다” 혹은 “부족하다”는 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맥락의 문제다. 회사의 규모, 개발자 수, 그리고 대표의 성향에 따라 CTO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다시 말해, CTO는 직함이 아니라 ‘현재 회사의 병목을 해결하는 역할’에 가깝다.

많은 창업자들이 CTO를 단순히 “개발 전문가”로 인식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CTO는 최고 개발자와는 다른 차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기술을 통해 회사의 가장 큰 병목을 제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병목은 시간이 흐르며 계속해서 형태를 바꾼다.

초기 스타트업, 특히 5명 이하의 조직에서는 CTO가 전략가일 필요가 없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제품이 아직 없거나, 있어도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면 CTO의 임무는 명확하다. 빠르게 MVP를 만들고, 완벽하지 않아도 출시하며, 제한된 자원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기술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시기의 CTO는 사실상 공동창업자이자 수석 개발자다. 직접 코드를 작성하고, 서버를 세팅하고, 장애를 처리하며, 기술적 부채를 감수하되 통제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실수가 있다. 체계를 갖춘 CTO를 영입하면 회사가 더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초기 스타트업에 과도한 프로세스는 독이 될 수 있다. 문서와 회의는 늘어나지만 제품 출시 속도는 늦어진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기 조직에서 필요한 것은 정교함이 아니라 민첩성이다. 이 시기의 CTO는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빨리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개발자가 7~10명 수준으로 늘어나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제품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문제는 더 이상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잘 만드는 것”으로 이동한다. 코드 스타일이 제각각이고, 기능 추가 속도가 느려지고, 작은 수정에도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한다면, 이는 개인의 실력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이 시점에서 CTO가 여전히 가장 많은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조직은 성숙하지 못한다. 이제 그는 시스템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아키텍처를 재정비하고, 코드 기준을 수립하고, 배포 프로세스를 체계화하며, 기술 부채를 가시화하고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짜는 코드’가 아니라 ‘누가 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유지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CTO의 역할은 개발 생산자의 위치에서 개발 시스템 설계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조직이 20명 이상으로 커지면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온다. 이때부터 기술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조직의 역량이 된다. CTO는 기술 로드맵을 수립하고, 기술 인력의 채용 전략을 세우며, 팀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투자자 미팅에서 기술적 질문에 명확히 답하고, 보안과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회사의 기술 방향성을 외부에 설득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CTO가 여전히 개발 업무에 과도하게 매달린다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조직의 성장을 제한하게 된다. 모든 결정이 자신을 거쳐야 한다면, 팀은 자율성을 잃고 확장성이 떨어진다. 스케일업 단계에서 CTO는 엔지니어링 임원에 가깝다. 기술을 직접 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 조직을 설계하고 그 조직이 스스로 성과를 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여기에 더해, CTO의 역할은 회사 규모뿐 아니라 대표의 성향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대표가 기술 출신이라면 CTO는 기술 경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조직 운영과 커뮤니케이션, 외부 협력 관리 등 기술 외 영역을 보완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반대로 대표가 영업이나 사업 중심이라면 CTO는 기술적 균형추가 된다. 모든 고객 요구를 수용하려는 압력을 조율하고, 현실적인 일정과 리소스를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이 경우 CTO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술력이 아니라 판단력과 용기다.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전략형 혹은 연구자형 대표 아래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요구된다. 비전은 명확하고 전략은 정교하지만, 실행 단계에서의 세부 설계가 부족할 수 있다. 이 경우 CTO는 전략을 시스템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비전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현재 자원으로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어떤 단계로 나누어야 현실적인 로드맵이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전략이 슬라이드에 머물지 않고 코드와 시스템으로 구현되도록 만드는 것이 CTO의 책임이 된다.

특히 한국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CTO의 역할이 더 복합적이다. 정부 R&D 과제 대응, 각종 보안 인증, 대기업 협업 문서 작성, 특허 전략, 규제 산업 대응까지 기술 외 영역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보안, 해양, 헬스케어처럼 규제가 강한 분야에서는 CTO가 단순 개발자가 아니라 기술과 제도를 동시에 이해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기술적 판단 하나가 법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창업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병목은 무엇인가? 우리는 속도가 필요한가, 구조가 필요한가, 아니면 조직 설계가 필요한가? 그리고 나는 CTO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CTO는 직함으로 채용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는 현재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초기에는 제품을 만들고, 성장기에는 시스템을 만들며,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조직을 만든다. 그러나 모든 단계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은 하나다. CTO는 기술을 통해 회사의 미래를 구조화하는 사람이다.

CTO를 뽑기 전에, 먼저 회사의 단계를 냉정하게 진단하라. 그리고 그 단계에 맞는 CTO를 찾아라. 그것이 스타트업이 시간을 잃지 않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전략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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