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우리는 커리어의 시작은 넓게 탐색하고, 방향이 잡히면 한 번쯤 깊이 파고드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나는 과연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단일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파바로티처럼 노래를 부르고, 손흥민처럼 축구를 하고, 김연아처럼 피겨스케이팅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재능과 환경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커리어에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 한 명만이 살아남는 세상은 아니다. 바로 그래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융합적 인재’라는 길이다.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커리어 성공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갈고닦아 최고 수준에 이르는 모습을 연상한다. 연구자라면 세계적 저널의 논문, 개발자라면 독창적인 알고리즘, 의사라면 희귀 수술의 집도 경험 등. 분명 이 길도 귀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이런 ‘단일 심층 전문가의 길’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좁고 험한 길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의 실무 현장은 다양한 역할과 전문성이 얽혀 돌아간다. 결국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는 여러 영역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융합적 사고와 소통 능력’이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옆 분야를 품어보는 전략
필자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 필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길을 시작했다. 개발자로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코드를 다루는 일은 익숙했고, 한동안은 이 전문성을 중심으로 커리어가 흘러갔다. 그러나 창업을 계기로 커리어의 방향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서비스 기획과 PM 역할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면서, 사용자 경험과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고객이 쓰게 되는가’를 고민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이자 사업 책임자의 입장에서 시장을 보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졌다. 결과적으로, 개발자의 시각과 기획자의 시각, 사업적 감각이 함께 어우러지는 경험이 축적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창업과 코파운더 경험을 거치면서 창업자의 입장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스타트업 창업은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몸으로 겪었고, 투자 유치, 팀 빌딩, 수익모델 설계 등 다양한 경영적 고민을 경험해야만 한다. 이렇게 쌓인 경험 덕분에 이후 초기 스타트업 자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기술 역량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기술 자문을, 사업 운영 경험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사업 자문을 제공하며 각각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한편, 선박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가면서 또 다른 융합의 지점을 만났다. 해양 산업 도메인은 전통적으로 기계공학과 해사 운영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필자는 기술경영학 박사를 취득하면서 연구해온 기술정책, 기술경영, 창업학적 시각을 이 도메인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기존 해양 연구에서는 다소 다루어지지 않았던 조직적, 정책적, 산업적 측면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 융합적 접근이 연구에서 나름의 차별성과 깊이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융합형 커리어가 빛을 발하는 이유
현대 산업의 문제들은 더 이상 한 분야의 지식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AI와 의료, 데이터와 금융, 환경과 정책, 기술과 경영 등 서로 전혀 다른 분야들이 얽혀 돌아간다. 이때 융합적 인재는 서로 다른 전문가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이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조율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융합형 인재는 각 분야를 얕게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최소한 본진 하나는 깊이 파본 경험이 있기에 상대 분야 전문가들과 “서로 통하는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실전에서 신뢰를 얻고, 결국 문제를 끝까지 해결로 이끌 수 있다.
융합적 인재는 만들어진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융합적 인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본진을 깊이 파고, 이후 주변 분야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조금씩 품어가면 된다. 주 전공과 옆 분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실무에서 꾸준히 부딪혀보면 융합 능력은 축적된다. 이런 의미에서 융합형 커리어는 오늘날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
커리어의 여정은 한 줄로 가지 않는다. 처음엔 넓게, 그 다음엔 깊이, 그리고 옆으로 가지를 치며 넓혀간다. 이 교차 속에서 융합적 인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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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설계①-탐색]시작은 넓게: 방향을 찾는 탐색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