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를 정의했다고 끝이 아니다!
지난 글에서는 솔루션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역추적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이제 명확한 문제정의가 있을 거예요. "30대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메뉴 선택으로 10분을 낭비하는 문제"처럼 구체적인 문장으로 정리되었을 수도 있죠.
그런데 막상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서를 열어보면 막막해합니다. 내 머릿속 문제정의를 어떤 문장으로, 어떤 순서로, 어떤 뉘앙스로 써야 심사위원에게 전달될까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항목에 뭘 쓰고, "솔루션" 항목에는 뭘 써야 중복이 안 될까요?
예비창업패키지와 같은 지원사업 사업계획서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해서는 안 됩니다.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문서죠. 같은 아이디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건 해볼 만하다"와 "음, 잘 모르겠네" 사이에서 갈립니다. 이 글에서 여러분이 정리한 문제정의를 실제 지원서로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뤄볼까 합니다.
심사위원은 지원서를 어떻게 보는가?
먼저 현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심사위원은 여러분의 지원서를 천천히, 꼼꼼히 읽지 않습니다. 아니, 안 읽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한 명이 수십, 수백 개의 지원서를 봐야 하거든요.
1분 안에 첫인상이 결정됩니다
심사위원이 지원서를 처음 펼쳤을 때, 대략 1분 안에 "이거 괜찮네" 혹은 "음, 애매한데"라는 첫인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1분 동안 무엇을 보느냐?
- 첫 문장의 명확성 :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첫 문장이 구체적인가, 추상적인가. "현대인들은 건강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면 그 순간 관심도가 떨어집니다. 반대로 관심도를 높이는 첫 문장은 구체적인 타겟이 누구인지 바로 보이고, 숫자나 비율이 들어가서 문제의 규모가 느껴지며 공감이 생깁니다.
→ “1인 가구의 68%는 냉장고에 상한 식재료를 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 일관성 : 문제-솔루션-고객-차별성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가. 각 섹션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면 "준비가 덜 됐구나" 느낌을 주고, 논리적 비약이 생기거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각 섹션을 따로따로 작성해서 붙여놓으면, 읽는 사람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정렬하면서 읽어야 해요. 심사위원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 현실감 : 시장 규모나 예상 매출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지 않은가. 근거 없이 큰 숫자를 쓰면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심사위원이 찾는 3가지 신호
그리고, 수백 개의 지원서를 보면서 심사위원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신호를 찾습니다.
- "이 사람은 고객을 만나봤구나" : 문제를 설명할 때 고객의 실제 행동, 구체적 상황, 숫자가 들어있으면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 "이 문제는 진짜 있는 문제구나" : 단순히 "불편하다"가 아니라, 그 불편 때문에 사람들이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 대안 시장의 존재, 임시방편의 존재가 문제의 실체를 증명합니다.
- "이 팀은 실행할 수 있겠구나" : MVP 계획이 구체적인가, 첫 고객 확보 전략이 현실적인가. "열심히 마케팅하겠습니다"가 아니라 "XX 커뮤니티에 이미 접촉했고, 베타 테스터 20명을 확보했습니다" 같은 문장.
문제정의를 지원서 문장으로
자, 이제 실전으로 가 볼까요? 여러분이 정리한 문제 정의를 지원서 문장으로 바꿔봅시다.
구체적이지 않은 역방향 문제정의 결과물
역방향 문제정의를 하면서 이런 문장을 만들었을 거예요.
"[타겟]은 [상황]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우리 솔루션은 [방법]으로 [결과]를 제공한다."
보통 저는 이걸 지원서에 그대로 쓰지 않도록 가이드 드립니다. 너무 추상적으로 작성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보다 구체성을 더해야 해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 Before : “30대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메뉴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 After : “30대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매일 점심시간 10분을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데 쓴다. 같은 고민을 반복하지만 결국 익숙한 곳만 가거나, 검색해도 광고성 리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차이가 보이나요? 숫자, 행동, 결과가 구체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추상적 표현 → 구체적 표현 전환
지원서를 쓰다 보면 자꾸 추상적인 단어를 쓰게 됩니다. 이런 표현들은 심사위원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해요.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이 많이 쓰이게 되는 것 같아요.
① “비효율적이다” →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 나쁜 예 : "현재 업무 프로세스가 비효율적이다"
- 좋은 예 : "견적서 작성에 평균 2시간이 걸리고, 그 중 1시간은 이전 파일을 찾는 데 쓴다“
② "불편하다" →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나쁜 예 :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좋은 예 : "고객의 30%가 첫 구매 후 재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배송 조회 과정이 복잡해서다"
③ "필요하다" → 왜 필요한가? 누가 필요로 하는가?
- 나쁜 예 : "이러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 좋은 예 : "소상공인 3명 중 2명은 SNS 관리를 외주 맡기고 싶지만 월 50만원 이상은 부담스러워한다"
④ "많다" → 구체적인 숫자나 비율은?
- 나쁜 예: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겪는다"
- 좋은 예: "관련 커뮤니티에서 주 5회 이상 유사한 질문이 올라온다“
실제 작성 예시 : 같은 아이디어, 다른 문장
같은 아이디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써봤습니다. 어떤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이나요?
버전 A (추상적) :
"현대 직장인들은 건강한 식습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먹는 경우가 많아, 이는 장기적인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버전 B (구체적) :
"서울 오피스 밀집지역 직장인의 42%는 점심을 11시 전 또는 2시 이후에 먹습니다(자체 설문 200명). 이들은 '회의가 길어져서', '마감에 쫓겨서'라고 답했고, 그 결과 오후 3-4시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주 3회 이상 겪습니다."
버전 B가 훨씬 강력합니다. 숫자가 있고, 원인이 구체적이고, 결과가 측정 가능해요.
흔한 실수 Top 3
실제 지원서에서 자주 보는 실수들을 Before/After로 정리했습니다.
실수 1 : 문제를 솔루션으로 표현하기
- Before : "사람들이 실시간 배송 추적을 할 수 없는 문제"
- After : "온라인 쇼핑 구매자의 68%는 '택배가 언제 오는지 몰라서'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부재중으로 재배송을 요청한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한 시간 낭비와 불편은 재구매율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다."
왜 After가 나은가 : Before는 기능을 문제라고 착각한 겁니다. After는 진짜 고객의 고통을 보여줘요.
실수 2 : 시장 규모를 막연하게 부풀리기
- Before : "국내 외식 시장은 100조원 규모로, 이 중 5%만 확보해도 5조원의 매출이 가능합니다."
- After : "서울 강남·서초 지역 직장인 점심 배달 시장은 일 50만 건(배달앱 데이터 추정). 우리는 이 중 기업 단체 주문 니즈(15%)에 집중하며, 1년 차 목표는 일 100건 처리입니다."
왜 After가 나은가 : 5%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작지만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가 신뢰를 줍니다.
실수 3 : 추상적 차별성만 나열하기
- Before : "우리의 강점은 고객 중심 사고, 빠른 실행력, 뛰어난 기술력입니다."
- After : "우리 팀은 이 분야에서 7년간 일하며 고객사 50곳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구축한 벤더 네트워크와 가격 협상 노하우가 경쟁자 대비 20% 저렴한 공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왜 After가 나은가 : "고객 중심", "실행력"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에요. 구체적 경험과 그로 인한 이점이 진짜 차별성입니다.
이 외에도 경쟁자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거나, 한 번에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거나 등 많은 실수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실수 3가지만 짚어 보았습니다.
정리하며
좋은 지원서는 복잡한 아이디어를 최대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문서인데요. "있어 보이는" 문장보다 "바로 이해되는" 문장이 백 배 낫습니다.
여러분이 역방향 문제정의를 통해 정리한 내용은 이미 충분히 좋은 원석입니다. 이제 그걸 심사위원이라는 독자를 위해 가공하는 단계예요.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으로, 넓은 것은 좁게,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바꾸세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완벽한 지원서는 없습니다. 계속 고치고 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정도면 제출할 만하다" 싶은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완벽을 추구하다가 기한을 놓치는 것보다, 80% 완성도로 제출하고 피드백 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지원서는 여러분의 전부를 보여주는 문서가 아닙니다. 심사위원의 관심을 얻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통과 문서예요. 일단 서류를 통과하면 발표와 인터뷰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깁니다. 지금은 그 기회를 잡는 데 집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