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문제가 뭐냐고요?"
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다 보면 이런 창업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미 구현하고 싶은 서비스나 제품이 명확한데, 정작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라고 물으면 말이 막히는 경우. 혹은 "음... 불편해서요?"라는 애매한 답변이 나오는 경우.
요즘 예비창업패키지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원서를 작성하다 보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는 부분에서 막히시는 분들이 꽤 계세요. 특히 이미 솔루션 아이디어는 있는데, 그걸 문제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니 어렵다는 고민을 자주 듣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이 글을 정리해봤습니다.
많은 스타트업 가이드는 "문제부터 찾으세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기술 배경을 가진 창업자는 기술로 뭔가 만들고 싶어서 시작하고, 특정 분야 경험자는 "이렇게 하면 더 좋을 텐데"라는 솔루션 아이디어로 시작합니다. 이게 나쁜 건 아닙니다.
왜 솔루션부터 떠올리게 될까
먼저 이해해야 할 건, 솔루션부터 생각하는 게 창업자의 결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 기술 드리븐 아이디어의 경우 : "AI/블록체인/IoT로 뭔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로 시작합니다. 기술의 가능성이 먼저 보이고, 그걸 어디에 적용할지 고민하게 되죠.
- 경험 기반 아이디어의 경우 : 본인이 겪은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먼저 떠올립니다. "내가 이렇게 했더니 좋더라"는 솔루션이 먼저고, 그게 얼마나 보편적인 문제인지는 나중에 고민하게 됩니다.
- 벤치마킹 기반 아이디어의 경우 : 해외 서비스나 타 산업 모델을 보고 "우리나라/우리 업계에도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검증된 솔루션을 들여오는 거니까 문제는 당연히 있다고 가정하죠.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투자나 지원사업을 준비하는 단계가 되면, 명확한 '문제 정의'를 요구받는다는 겁니다. 그제야 "아,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는 거예요.
역방향 문제정의 : 솔루션에서 문제 찾아가기
이미 솔루션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문제를 역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억지로 문제를 끼워 맞추자는 게 아니라, 솔루션 속에 내재된 가정을 명확하게 끄집어내는 과정이에요.
1단계 : 솔루션이 전제하는 '현재 상태' 정의하기
당신의 솔루션이 없는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 지금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
- 현재 쓰이는 대안은 무엇인가? (경쟁자가 아니라 대체 행동)
-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능한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예를 들어, "맛집 추천 AI 앱"이라는 솔루션의 방향성이 이미 있다면
- 지금은 어떻게 맛집을 찾나? → 포털 검색, 인스타 해시태그, 지인 추천
- 대안들의 문제는? → 광고성 리뷰, 취향 불일치, 매번 검색하는 번거로움
- 안 찾으면? → 익숙한 곳만 가거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실망
2단계 : 현재 상태의 '고통점' 구체화하기
현재 상태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찾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당신이 느낀 불편'이 아니라 '타인도 느끼는 불편'인지 확인하는 거예요.
-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시간/돈을 쓰고 있나?
- 불편을 해소하려는 임시방편이나 해킹이 존재하나?
- 이 불편 때문에 포기하는 것, 참고 넘어가는 것이 있나?
여기서 핵심은 '행동'입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이미 뭔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로 드러나거든요.
3단계: 문제의 '빈도와 강도' 측정하기
문제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게 비즈니스가 될 만큼 중요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빈도 체크
-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 문제인가?
- 하루, 일주일, 한 달에 몇 번?
- 특정 상황에서만 발생하나, 지속적으로 발생하나?
강도 체크
- 이 문제로 인한 실제 손실은? (시간, 돈, 기회비용)
-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절박함을 느끼나?
빈도는 높은데 강도가 약한 문제(예: 엘리베이터 버튼 두 번 누르기)는 유료 서비스가 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강도는 높은데 빈도가 낮은 문제(예: 이사)는 비용 지불 의향은 높지만 시장이 작을 수 있어요.
4단계 : 당신의 솔루션이 제공하는 '가치'를 문장으로 정리하기
이제 솔루션과 문제를 연결할 차례입니다. 다음 문장을 채워보세요.
"[타겟]은 [상황]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우리 솔루션은 [방법]으로 [결과]를 제공한다."
이 문장이 매끄럽게 완성되지 않는다면, 아직 문제와 솔루션의 연결고리가 약한 겁니다. 각 요소를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역방향 문제정의를 할 때 주의할 점
함정 1: 기능을 문제로 착각하기
"사람들이 실시간 알림을 못 받는 게 문제다" ← 이건 문제가 아니라 당신 솔루션의 기능입니다. 진짜 문제는 "중요한 정보를 놓쳐서 손해를 본다" 같은 것이겠죠.
함정 2: 너무 넓은 문제 정의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 같은 건 문제가 맞지만, 너무 넓어서 당신의 솔루션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함정 3: 문제를 과장하기
시장을 크게 보이려고 문제를 과장하면, 나중에 실제 고객 검증에서 무너집니다. "90%의 직장인이 겪는 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특정 직군의 특정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어요.
다음 단계 : 검증으로 이어가기
역방향으로 문제를 정의했다면, 이제 그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1차 검증: 외부 자료로 문제의 실체 확인하기
먼저 객관적 데이터로 문제의 존재와 규모를 확인하세요. 인터뷰보다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 통계 자료 찾기 : 공공기관, 협회, 리서치 기관의 보고서에서 관련 데이터 확인
- 시장 규모 추정 : 기존 대안 시장의 크기로 문제의 심각성 역추정
- 검색량 분석 : 네이버 키워드 광고, 구글 트렌드로 사람들의 관심도 확인
- 커뮤니티 리서치 : 관련 커뮤니티/카페에서 불만이나 질문의 빈도 체크
- 경쟁/대안 존재 여부 : 이미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는가?
예를 들어, "직장인 점심 메뉴 추천"이라는 문제를 정의했다면
- 배달앱 시장 규모 → 외식 시장의 크기
- "점심 메뉴 추천" 검색량 → 사람들이 얼마나 고민하는가
-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오늘 점심 뭐먹지" 글의 빈도
- 유사 서비스들의 존재와 한계
이 단계에서 문제의 규모나 심각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문제 정의를 다시 해야 합니다.
2차 검증: 필요시 인터뷰로 깊이 파고들기
외부 자료로 문제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면, 이제 구체적인 맥락과 뉘앙스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세요.
- 정의한 문제를 겪고 있는 5-10명과 대화하기
- 그들이 현재 쓰는 대안과 그 대안의 한계 확인하기
- 당신의 솔루션 컨셉을 보여주고 반응 관찰하기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정의한 문제가 맞다"를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놓친 게 뭔지" 찾으려는 자세입니다. 역방향 문제정의는 시작점일 뿐, 실제 문제는 시장에 나가서 찾게 될 거예요.
정리하며
솔루션부터 떠올렸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 단계를 밟는 거예요. 역방향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그걸 검증하고, 필요하면 솔루션을 피벗하는 유연함. 그게 있다면 어디서 시작하든 괜찮습니다.
대신 한 가지 기억하세요. 문제정의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고객을 만나고, 시장을 탐색하면서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해요. 지금 당장 완벽한 문제정의서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검증 가능한 가설을 세우고 시장에 나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