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사라지는 사람들
"5분만 쉬고 다시 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스마트폰을 집어 든 지 얼마나 됐을까요? 시계를 보니 40분이 지나 있습니다. 분명 5분만 쉬려고 했는데,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두른 것 같은데 늦었고, 여유 있게 준비한 것 같은데 또 늦었습니다. "내가 뭘 했지?" 싶을 정도로 시간이 증발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자신에게 실망하며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라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시간맹(Time Blindness)'은 뇌의 시간 측정 장치가 일반인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꾸물거리지 않았는데 지각하고, 서두른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맹이란 무엇인가?
시간맹은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뇌의 전두엽과 소뇌 기능 약화로 인해 내적 시간 감각이 일반인과 다르게 작동합니다. 마치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우리 뇌 속의 '내적 시간 측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죠.
전두엽은 총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측정하는 역할을 하고, 소뇌는 1초, 3초, 5초와 같은 미세한 시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ADHD에서는 이 두 영역의 기능이 약해져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시간맹을 겪는 사람들은 "시간을 뇌로 계산하는 순간 도파민 부족으로 왜곡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아무리 의식적으로 시간을 체크하려 해도 감각 자체가 틀어져 있는 것입니다.
시간맹의 두 얼굴: 과잉 추정과 과소 추정
흥미롭게도 ADHD의 시간 인식 왜곡은 시간의 길이에 따라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짧은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과잉 추정
실제로 한 실험에서 ADHD를 가진 사람에게 눈을 감고 속으로 10초를 세어보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약 8초 30초만에 "10초가 지났다"며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반면 비ADHD 참가자는 12초 84초에 손을 들었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의 뇌 속 시계는 실제보다 빠르게 째깍거린다는 것입니다. 10초가 마치 15초처럼 느껴지는 거죠.
이런 과잉 추정은 일상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만듭니다:
신호대기가 지옥처럼 느껴진다 운전 중 빨간 신호등 앞에서 30초를 기다리는 것이 3분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많은 ADHD 운전자들이 신호 대기를 유난히 괴로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조금만 공부해도 "많이 했다"고 느낀다 20분 공부했을 뿐인데 뇌는 "벌써 1시간이나 했잖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라는 생각에 쉽게 집중력이 무너지고 책상을 떠나게 됩니다.
참고 기다리는 모든 순간이 고통이다 병원 대기실, 은행 번호표, 택배 기다리기. 짧은 대기 시간도 실제보다 훨씬 길게 느껴져 내적 고통이 몇 배로 커집니다.
긴 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과소 추정
반대로 긴 활동을 할 때는 시간이 실제보다 짧게 느껴집니다. 같은 실험에서 40초 동안 책을 읽게 했을 때, ADHD 참가자는 "30초 정도 지난 것 같다" 또는 "1분도 안 된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과소 추정은 더욱 심각한 일상의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의 함정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15분이 남았습니다. "아직 시간 많네, 잠깐만 누워있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출발 시간 5분 전. "분명 5분밖에 안 지났을 텐데..." 하며 황급히 옷을 입지만 결국 지각입니다.
양말 신다가 10분이 사라진다 양말을 신으려고 서랍을 열었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납니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양말을 신으려 하는데,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나있습니다. "어? 내가 뭐 했지?" 싶을 정도로 시간이 증발해버린 것이죠.
준비 시간을 항상 과소평가한다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하루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실제로는 3일이 걸립니다. 이사 짐 싸기에 "2시간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했다가 6시간이 걸립니다. 매번 시간을 과소평가해서 마감에 쫓기고, 남들에게 "계획성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과소 추정이 발생하는 핵심 이유는 주의 집중력 유지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ADHD를 가진 사람은 한 가지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주의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 순간순간은 뇌에서 시간으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마치 영화 필름에서 몇 장면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그 시간은 뇌 속에서 증발해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40분이 지났어도 실제로 집중한 시간은 15분 정도에 불과하고, 뇌는 그 15분만을 기억합니다. 나머지 25분은 "딴생각", "멍때림", "다른 자극에 반응"으로 사라져버린 시간이니까요.
시간맹이 만드는 악순환
이런 시간 인식의 왜곡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삶 전체에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1. 지각과 미루기의 반복 시간을 과소평가하니 항상 준비가 부족합니다. 약속 시간에 늦고,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다가 실수를 합니다. "꾸물거린 것 같지 않은데" 늦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게으르다", "무책임하다"는 오해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맨날 늦어?", "왜 미리미리 안 해?",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데 왜 그래?" 같은 말을 듣습니다. 본인도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책합니다.
3. 자존감의 하락 반복되는 실패 경험은 자존감을 갉아먹습니다.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내 뇌의 시간 감각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댓글의 한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의식적으로 뇌로 시간계산을 아예 안하려고" 하는 것, 즉 내 감각 대신 외부 기준에 의지하는 것이 답입니다.
1. 외부 기준에 의지하기
뇌 속 고장 난 시계를 믿지 말고, 실제 시계와 타이머를 믿어야 합니다.
타이머를 생활화하라 침대에 누울 때, 스마트폰을 볼 때, 휴식을 취할 때 무조건 타이머를 켭니다. 3분, 5분, 10분 단위로 자주 알람을 설정하세요. "5분만"이라는 생각은 절대 믿지 마세요.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당신의 뇌는 모릅니다.
시각적으로 시간을 보이게 만들어라 숫자로만 표시되는 디지털 시계보다 아날로그 시계나 타임 타이머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도구가 더 효과적입니다. 빨간색 영역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아, 시간이 정말 흘러가고 있구나"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2. 시간을 구체적인 블록으로 만들기
추상적인 "오후 3시에 회의"보다 "2시 50분부터 3시까지 회의실로 이동, 3시부터 4시까지 회의"처럼 시간을 구체적인 블록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뽀모도로 기법 활용하기 25분 집중 + 5분 휴식을 한 블록으로 만들어 타이머와 함께 움직입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각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머라는 객관적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일의 소요 시간을 기록하고 학습하기 "이 일은 30분 걸릴 것 같아"라고 예상한 뒤, 실제로 타이머를 돌려 시간을 측정하세요. 그리고 실제 소요 시간을 기록합니다. 이런 식으로 "내 예상"과 "실제"의 격차를 확인하며 점차 시간 감각을 교정해 나갈 수 있습니다.
3. 버퍼 타임을 넉넉히 두기
당신의 뇌는 시간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그러니 모든 일정에 최소 1.5배에서 2배의 시간을 할당하세요.
- 30분 걸릴 것 같은 일: 1시간 확보
- 1시간 걸릴 것 같은 준비: 2시간 확보
- 출근 준비 30분: 실제로는 아침 1시간 확보
"시간 낭비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번 쫓기고 스트레스받고 실수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4. 아치 캘린더로 시간을 '보이게' 만들기
시간맹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치 캘린더는 캘린더와 태스크를 하나로 통합해서, "이 일을 언제 할 것인가"를 단순히 목록이 아닌 시간 블록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이 일 해야 해"가 아니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이 일을 한다"는 구체적인 시간 블록
하루 일정이 한눈에 들어와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이 일을 할 시간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 가능
예상 소요 시간과 실제 소요 시간을 비교하며 시간 감각 교정
ADHD를 가진 많은 사용자들이 아치 캘린더를 쓰면서 "처음으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더 이상 증발하지 않고, 구체적인 블록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바로 7일만, "시간을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기
이번 주는 7일만 실험해보면 어떨까요. 아치 캘린더에서 매일 딱 한 가지 일을 블록으로 올리고, 그 블록 앞뒤로 5분 버퍼를 붙입니다. 블록이 끝나면 노트에 한 문장만 남깁니다. 그리고 하루가 끝나기 전에, 오늘 만든 블록이 실제로 얼마나 지켜졌는지 가볍게 한 번만 봅니다.
- 매일 아침
- 오늘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만 선택
- 아치 캘린더에 시간 블록으로 등록
- 앞뒤로 5분 버퍼 추가
- 블록 등록이 끝나면
- 노트에 한 문장만: "예상 30분 → 실제 45분" - 하루가 끝나기 전
- 오늘 블록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1분만 확인
평가 아닌 관찰입니다
관찰이 쌓이면, 시간 감각은 "믿음"이 아니라 "데이터"가 됩니다. 시간 지각의 어려움이 반복되는 사람일수록, 이 데이터가 자책을 줄이고 다음 행동을 쉽게 만들어줍니다.
시간맹은 종종 삶의 모든 영역을 건드립니다. 일, 관계, 돈, 건강까지요.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생산성 팁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어려움이 오래 지속되고 생활 기능을 크게 떨어뜨린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입니다. 반대로 지금은 진단 여부와 무관하게, "시간이 흐려지는 순간"을 자주 겪는다면, 그건 이미 실험해볼 가치가 있는 신호입니다.
시간은 원래 똑같이 흐르지만, 우리는 똑같이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더 잘 보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