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카페에서 노트북 펴고 있는데 카톡이 왔습니다. 대학 동기인데, 작년에 퇴사하고 비개발 직군으로 스타트업 취업한 친구예요.
"야, 너 개발자잖아. 이거 좀 봐줄 수 있어?"
PDF 파일 하나가 딸려왔어요. ”견적서_쇼핑몰앱_v1_5.pdf”
열어봤습니다. 커머스 플랫폼 MVP 견적서였어요. 정부지원사업 붙어서 개발 외주 맡기려는 거였습니다.
총 5,200만원.
저는 한 10초 정도 화면만 봤어요.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응?"
“이거 계약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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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만나서 노트북 펴고 견적서를 같이 봤습니다.
친구가 말했어요. “정지사 예산이 6,000이거든. 여기서 5,200 부르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 근데 확신이 안 서서...”
저는 견적서를 훑어봤어요. 첫 줄부터 이상했습니다.
- 회원가입/로그인 기능: 5일 (500만원)
- 소셜 로그인 연동 (카카오, 네이버): 3일 (300만원)
"야, 이거 로그인 기능 5일이래."
"응. 그게 어때서?"
"요즘 Supabase 쓰면 반나절이야."
"...뭐?"
"소셜 로그인 3일? SDK 붙이면 두 시간이야."
친구가 멍하니 쳐다봤어요. “그게... 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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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 내려가 봤습니다.
- 상품 목록 페이지: 4일 (400만원)
- 상품 상세 페이지: 3일 (300만원)
- 장바구니 기능: 5일 (500만원)
- 결제 연동 (PG사): 5일 (500만원)
- 관리자 대시보드: 15일 (1,500만원)
관리자 대시보드 15일. "야, 이거 어드민 패널 라이브러리 쓰면 3일이면 돼."
친구가 물었어요.
"그러면 이 견적이 다 뻥튀기야?"
"아니, 전부 그런 건 아닌데, 요새 AI가 개발 관련해서 다 갈아엎고있거든."
“?????”
"바이브코딩이라고 알아?"
"어, 그거 요즘 많이 들어. Cursor? Bolt? 그런 거?"
"응. 비개발자도 AI한테 말로 설명하면 코드 만들어주는 거야. 요즘 개발자들도 거의 다 써. 나도 이거 없으면 일 못 해."
“그거 쓰면 뭐가 좋은데??”
"코드를 AI가 대신 짜줘. 예전에 하루 종일 걸리던 거, 지금은 두 시간이면 돼."
"그럼 외주사들도 그거 쓰는 거 아니야?"
"당연히 쓰지."
"...근데 왜 견적은 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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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사가 나쁜 건 아니야. 근데… 네가 모르잖아. 굳이 말 안 해주는 거지. AI로 3일 만에 끝낼 수 있어도, 견적서엔 10일이라고 써도 너는 몰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친구가 가만히 있었어요. 한참 뒤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 어떻게 해야 돼? 정지사 일정도 있고,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내가 정리해줄게."
노트북으로 견적서를 뜯어봤어요. 항목 하나하나.
- 회원가입/로그인 5일? → Supabase Auth 쓰면 반나절. 적정 1일.
- 소셜 로그인 3일? → SDK 붙이면 끝. 적정 0.5일.
- 상품 목록/상세 7일? → 요즘 프레임워크 쓰면 금방. 적정 2일.
- 장바구니/결제 10일? → 장바구니는 간단하고, PG 연동은 토스페이먼츠 문서 따라가면 됨. 적정 4일.
- 관리자 페이지 15일? → React Admin 쓰면 하루 만에 틀 나옴. 적정 5일.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줬어요.
[견적 분석]
현재 견적: 5,200만원
적정 범위: 2,000~2,500만원
협상 가능 금액: 약 2,500~3,000만원
"...이게 진짜야?"
"응. 물론 변수는 있지. 디자인 퀄리티나 기획 복잡도에 따라 달라지긴 해. 근데 MVP 수준이면 저 정도가 맞아."
"그러면 나 3,000만원 더 낼 뻔한 거야?"
"뭐, 그렇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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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야. 외주 게발회사가 나쁜 건 아니야."
"...?"
"나도 외주 프로젝트 하잖아. 근데 진짜 어려워."
"뭐가?"
"네가 '로그인 기능' 말하면, 나는 Supabase Auth를 떠올려. 근데 너는 그게 뭔지 모르잖아."
"응, 몰라."
"그리고 나는 네가 뭘 모르는지 몰라. '이 정도는 알겠지' 하고 넘어가거든. 근데 너는 모르지. 나중에 '이거 왜 이래요?' 하면 '말씀 안 하셨잖아요.'"
"그래서 외주 개발이 자주 싸우는거야. 나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대화가 안 되는 거지."
"아... 그래서 주변에서 외주 망했다는 얘기 많이 듣는 거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물어봐. 내가 정리해준 거 들고 가서 물어봐. '이 기능, 왜 5일이에요? Supabase 쓰면 반나절 아닌가요? 근거가 뭐예요?'"
"...그래도 돼? 나 개발 하나도 모르는데."
"당연하지. 네 돈이잖아."
“근데 이상한 사람 취급 안 해? 갑자기 기술 얘기하면...”
"왜? 정상적인 질문인데? 대답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진짜 실력 있는 데는 다 설명해줘. 왜 이만큼 잡았는지. 설명 못 하면 그냥 찍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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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에 카톡이 왔어요.
"야."
"어, 어떻게 됐어?"
"3,400만원에 됐어."
5,200만원에서 3,400만원. 1,800만원 깎은 거예요.
"오 어떻게 했어?"
"니가 보내준 거 그대로 말했어. 이 기능은 이 정도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근거 달라고."
"뭐래?"
"조정해준대."
"근데 신기한 게, 물어보니까 오히려 외주사 대표님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더라. 뭘로 개발할 건지, 왜 이렇게 잡았는지."
"그치. 제대로 된 데는 그래."
"오히려 더 믿을 수 있게 된듯?"
"야, 진짜 고마워. 밥 살게."
"소고기."
“ㅋㅋㅋㅋㅋ 알았어. 1,800 아꼈는데 소고기는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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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고기 먹으면서 얘기했어요.
"근데 야, 아까 바이브코딩 얘기했잖아. 그러면 나도 그냥 직접 만들면 안 돼? Bolt로 쇼핑몰 만들었다는 글 봤거든."
"할 수 있어. MVP 수준이면."
"그러면 외주 왜 맡겨?"
저는 고기 뒤집으면서 말했어요. "바이브코딩으로 만든 코드, 니가 읽을 수 있어?"
"...아니."
"그게 문제야. 만들 순 있어. 근데 나중에 뭔가 안 되면? 결제 오류 나면? 보안 문제 생기면? AI한테 '고쳐줘' 해도 이상하게 고쳐. 왜 그런지 모르니까 확인도 못 해. 땜빵에 땜빵이 쌓여."
친구가 물었어요. "그러면 바이브코딩 믿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초기 검증용으로는 좋아. 아이디어 테스트하고, 시장 반응 보고. 근데 진짜 돈 받고 서비스 운영하려면 코드 퀄리티가 중요해. 보안, 확장성, 유지보수. 바이브코딩은 거기까지 아직은 안되더라."
"그래서 어쨌든 외주는 맡겨야 하는 거구나."
"꼭 맡겨야한다는건 아닌데 바이브코딩 시대라고 외주가 사라지는 게 아니야. 오히려 뭘 외주 맡기고 뭘 직접 할지 판단이 더 중요해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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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야, 나 같은 사람 많지 않아?"
"뭐가?"
"비개발 창업자. 개발 모르는데 개발 외주 맡겨야 하는 사람."
"당연히 많지. 대부분 그렇지."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
"그냥 내지 뭐. 개발자 아는 사람 아니면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원래 이 정도 하나보다' 하고 계약해."
친구가 한숨을 쉬었어요. "나 니 아니었으면 그냥 냈겠다. 1,800만원을... 그 돈이면 초기 마케팅 비용인데."
"근데 주변에 창업하는 애들 보면 다 이런 고민하더라."
"뭐가?"
"외주 견적 받았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비교할 기준이 없다. 물어볼 데가 없다."
"특히 정부지원사업 받은 애들."
"왜?"
"예산이 정해져 있으니까 견적이 예산 안에만 들어오면 그냥 하는 거야. 적정한 건지 아닌지 모르고. 남는 예산으로 더 할 수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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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 가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개발자니까 봐주면 되지. 근데 개발자 친구 없는 창업자는? 5,000만원, 8,000만원, 1억. 그냥 내는 거야? 그게 적정한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리고 생각했어요. 외주사가 나쁜 것도 아니야(우리도 했으니까…). 걔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근데 정보가 비대칭인 시장이잖아. 아는 쪽이랑 모르는 쪽이랑 그 사이에서 갭이 생길 수 밖에 없지. 그냥 구조가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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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어요. "야, 나 외주 견적 받았는데 좀 봐줄 수 있어?" 창업한 지인들이 종종 연락이 왔어요.
봐줄 때마다 비슷했어요. 과다 산정된 항목. 협상 가능한 포인트.
어떤 분은 9,800만원 → 7,200만원으로 낮췄어요. 어떤 분은 3,500만원 → 2,100만원. 물론 “이 견적 적정해요"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안심하고 진행하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느꼈어요. "이거 나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개발 좀 아는 사람이 5분만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모르는 사람은 수천만원을 그냥 내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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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팀원들이랑 얘기했어요. "이거 서비스로 만들면 어때?"
저희 팀이 원래 외주 개발을 3년 했었거든요. 서울대, 포항공대 출신 개발자들 모여서. 그때 느꼈어요. 이 바닥이 얼마나 불투명한지. 고객은 모르고. 개발사는 굳이 설명 안 하고. 그 사이에서 오해가 쌓이고. 서로 억울해하면서 끝나는 프로젝트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희 팀이 열심히 만들고 있죠.
외주 견적서 보내주시면 기능별로 적정 공수 분석해드리고 협상 포인트 알려드리는 서비스.
근데 중요한 건, 저희는 개발 안 해요. 개발사가 견적 검토하면 "우리한테 맡기세요"로 끝나잖아요. 저희는 분석만 해요. 그래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 외주사 괜찮아요." "이 외주사는 좀 이상해요." 이해관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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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저희 서비스 안 쓰셔도 돼요. 외주 개발 앞두고 계신 분 있으면 이것만 기억하세요.
1. 견적은 협상 가능해요. "원래 이 정도 합니다"는 진짜가 아닐 수 있어요. "이 기능 왜 5일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시나요?" "AI 도구 사용하시나요?" 근거를 물어보세요. 대답 잘 하면 믿을 만한 곳이에요. 못 하면 다시 생각해보세요.
2. 기능별 공수를 요구하세요. "총 5,000만원입니다." 이것만 적힌 견적서는 위험해요. "기능별로 며칠씩 잡으셨는지 명세서 주세요." 이거 못 주면 이상한 거예요.
3. 비교 견적은 필수예요. 최소 3군데는 받아보세요. 그래야 감이 생겨요. 근데 주의할 점, 제일 싼 데가 좋은 게 아니에요. 싼 데는 뭔가 빠뜨렸을 수 있어요. 비싼 데는 뻥튀기일 수 있고. 왜 그 가격인지 설명을 들어야 해요.
4. 바이브코딩으로 될 건지 물어보세요. 2026년이에요. 어떤 기능은 Bolt나 Lovable로 30분이면 만들 수 있어요. 어떤 건 진짜 개발자가 해야 하고요. "이 기능, 바이브코딩 툴로 안 되나요?" 물어보세요. 진짜 실력 있는 데는 솔직하게 말해줘요. "이건 되는데, 이건 직접 해야 해요." 뭐든 다 어렵다고 하면 의심해보세요.
5. AI 활용 여부를 물어보세요. 개발자들 대부분 AI 도구 써요. "Cursor나 Copilot 같은 거 쓰시나요?" 쓴다고 하면서 공수가 예전이랑 똑같으면 뭔가 이상한 거예요.
6. 개발자 아는 사람 있으면 물어보세요. 이게 제일 확실해요. 견적서 한번 봐달라고 하세요. 밥 한 끼 사면 돼요.
근데 그런 사람 없으면... 연락주세요. 봐드릴게요.
저희 서비스 링크도 던지고 갑니다.
아니면 그냥 댓글로 물어봐주셔도 돼요. 아는 선에서 답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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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개발 앞두고 계신 창업자분들.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개발자가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근데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면 그만큼 돈이 새요. 정지사 예산이든, 투자금이든, 자기 돈이든. 아까운 건 마찬가지잖아요.
물어보고, 확인하세요. 그게 내 돈 지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