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없어서 지원하는데, MVP가 없으면 떨어진다고요?”
12월이 되면서 내년 예비창업패키지를 준비하는 분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예비창업자분들이 심사 평가 트렌드를 듣고는 억울함을 토로하십니다.
“심사위원들이 MVP(최소 기능 제품) 테스트 결과나 고객 검증 데이터가 없으면 선정이 어렵다고 하던데요. 아니, 돈이 없어서 정부지원금을 받으려는 건데 지원 전부터 개발해오라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합니까? 돈 없는 사람은 창업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자본이 부족한 초기 단계에서 그럴듯한 앱이나 웹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이 요구하는 ‘MVP’와 ‘검증’이 과연 수천만원짜리 ‘개발’을 의미하는 걸까요?

심사위원은 ‘코드’가 아니라 ‘확신’을 원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심사위원들은 여러분의 코딩 실력을 보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보고 싶은 것은 “이 사업이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증거입니다.
대부분의 탈락하는 사업계획서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자금을 지원받으면 내년 6월까지 앱을 개발하고, 9월에 출시하겠습니다.”
반면, 합격하는 사업계획서는 다릅니다.
“이미 수기(수동)로 서비스를 운영해 본 결과, 100명 중 30명이 구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시스템 개발이 필요합니다.”
즉, 돈 들이지 않고 빠르고 가볍게 핵심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 12월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글이 일하는 방식, ‘스프린트(Sprint)’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구글은 어떻게 5일 만에 실패 확률을 줄일까?
그렇다면, 개발 없이 어떻게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구글 벤처스(Google Ventures)가 고안한 문제 해결 방식인 ‘스프린트(Sprint)’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프린트는 보통 몇 달이 걸리는 제품 개발 과정을 단 5일로 압축하여,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프로세스입니다.

- 월-수 : 문제를 지도처럼 펼치고, 솔루션을 스케치하고, 가장 좋은 안을 결정합니다.
- 목 : 프로토타입 제작. 실제 제품처럼 보이지만 제한된 작동만 하는 모형을 하루 만에 만듭니다.
- 금 : 테스트. 진짜 고객 5명을 만나 반응을 살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글도 불확실한 아이디어에 처음부터 막대한 개발비를 쏟지 않습니다. 대신 ‘겉모습만 그럴듯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고객이 지갑을 여는지, 버튼을 누르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목요일(프로토타입)’과 ‘금요일(테스트)’의 마인드셋입니다.

개발 없는 검증, ‘컨시어지 MVP’
구글 스프린트의 핵심이 “완성품 만들기 전에 반응부터 본다”라면, 이를 돈 없는 예비창업자가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컨시어지(Concierge) MVP’입니다.
호텔 컨시어지가 고객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듯, 겉으로는 자동화된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뒤에서 수작업으로 운영해보는 방식입니다. 거창한 프로토타입 툴을 다룰 줄 몰라도 괜찮습니다.
- 앱 개발 대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고객을 모으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 웹 사이트 구축 대신 노션(Notion) 페이지나 구글 폼으로 주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복잡한 매칭 알고리즘 대신 엑셀을 켜고 직접 연결해 줍니다.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 누가 씁니까?”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작업 검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유니콘 ‘원티드랩’도 시작은 엑셀과 구글 폼이었습니다
제가 예전 글(MVP는 반드시 완성된 제품이어야 할까?)에서도 다룬 적 있는 ‘원티드랩(Wanted)’의 사례를 다시 한번 꺼내보겠습니다.
지금은 고도화된 AI 매칭 기술을 자랑하는 채용 플랫폼 원티드지만, 2015년 창업 초기 모습은 구글 스프린트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 가설 : “지인이 추천해주면 채용 성공률이 높을 것이고, 보상금을 주면 추천이 활발해질 것이다.”
- 검증 방법 : 개발자 채용이나 앱 개발? 하지 않았습니다.
1) 페이스북에 채용 공고를 올림 (프로토타입)
2) 구글 폼으로 추천 정보를 받음(데이터 수집)
3) 엑셀로 지원자를 정리하고, 직접 기업에 이메일을 보냄(수동 운영)
이 과정은 ‘노코드(No-Code)’, 아니 ‘노머니(No-Money)’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 허술한 과정에서 확보한 ‘실제 유저 데이터’와 ‘매출 발생 가능성’이 투자자와 심사위원을 설득한 결정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컴퓨터를 끄고 고객을 만나세요
2026년 예비창업패키지의 합격의 열쇠는 ‘화려한 사업계획서 디자인’이나 ‘완벽한 개발 로드맵’에 있지 않습니다.
구글처럼, 원티드랩처럼 “돈이 없어서 개발을 못했다”는 핑계 대신,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며 검증했다”는 데이터를 가져오십시오. 심사위원은 그 땀방울과 숫자에 점수를 줍니다.
어떻게 가설을 세우고, 어떤 방식으로 검증해야 할지 막막하신가요? 제가 여러분의 사업계획서에서 부족한 ‘Go-to-Market 전략’과 ‘검증 시나리오’를 점검해 드립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전문가의 시선으로 내 사업의 빈틈을 채워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