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 너머를 보자
최근 일명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특정 약국에 처방전을 몰아주거나(알선), 약국을 직접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업계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혁신의 싹을 잘랐다”, “제2의 타다 금지법이다”라며 정부와 국회의 성급한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정부가 스타트업의 ‘스케일업(Scale-up)’ 사다리를 너무 일찍 걷어찬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수익화를 위해 시도하는 효율화 과정을 원천 봉쇄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냉철하게 한 걸음 물러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닥터나우는 규제를 뚫을 만큼의 ‘불가피한 사회적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냈을까요?”
많은 스타트업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외치지만, ‘있으면 좋은 서비스(Nice to have)’와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 서비스(Must have)’의 무게감은 다릅니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규제 산업에서는 단순 ‘편리함’ 이상의 압도적인 데이터와 논리가 필요합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기득권과 정부의 합작품’으로만 치부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번 규제는 스타트업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서비스는 고객의 니즈를 넘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안전성과 공공성을 숫자로 증명했는가?”라고 말이죠.

유니콘을 꿈꾸던 비대면 진료, 왜 벽에 부딪혔을까?
먼저, 이 사태의 주인공인 닥터나우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왜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닥터나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태어난 국내 1위 비대면 진료 플랫폼입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와 약 배송을 받을 수 있는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누적 가입자 수 600만 명을 넘기는 등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일명 ‘닥터나우 방지법’은 이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핵심은 ‘플랫폼이 환자에게 특정 약국을 추천(알선)하거나, 도매상 등을 통해 직접 약국 영업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배경과 원인] 닥터나우는 왜 유통 자회사 ‘비진약품’을 만들었나?
이 사태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닥터나우가 처한 ‘비즈니스의 딜레마’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닥터나우는 누적 가입자 600만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나 병원으로부터 ‘중개 수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버비와 운영비는 나가는데, 정작 돈을 벌 구멍은 막혀있는 기형적인 구조였습니다.
“수수료를 못 받으면 어디서 돈을 벌지?” 이 절박한 질문 끝에 닥터나우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의약품 유통 자회사, ‘비진약품’의 설립이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 앱에서 수수료를 못 받고 광고로도 한계가 있으니, 의약품 유통 마진(B2B)으로 수익을 내자.
- 이를 위해 자회사 비진약품을 세우고, 여기서 약을 납품받는 제휴 약국들을 확보하자
- 앱 이용자들의 처방전을 이 제휴 약국들로 연결(매칭)해주면, 제휴 약국은 매출이 늘고 비진약품은 납품 수익이 생긴다.
이는 스타트업 관점에서 보면 매우 영리한 수직계열화(Vertical Integration) 전략이었습니다. 수익성 문제뿐만 아니라, “동네 약국에 갔더니 재고가 없어서 약을 못 탔다”는 고객들의 고질적인 불만(UX)도, 재고가 확보된 제휴 약국 매칭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신의 한 수’가 규제의 덫이 되었습니다. 약사회와 국회는 이 구조를 플랫폼이 특정 약국에 일감을 몰아주는 ‘불공정 행위’가 될 수 있고, 사실상 약국을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는 ‘기업형 사무장 약국’의 형태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닥터나우의 생존을 위한 BM 고도화 시도가, 역설적으로 ‘닥터나우 방지법’이라는 규제의 방아쇠를 당긴 원인이 된 셈입니다.

1%의 벽, ‘안전’이라는 명분을 넘지 못했다
닥터나우를 비롯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그동안 화려한 숫자로 자신들의 성장세를 증명해 왔습니다. “누적 이용자 수 OOO만 명”, “앱 다운로드 1위” 같은 지표들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미래 가치’였겠지만, 보수적인 입법자들의 계산기에는 다르게 찍혔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그 1%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필수 의료보다는 탈모, 다이어트 약 처방 등 ‘편의성 위주의 경증 진료’가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입법부의 ‘리스크 계산(Risk Calculation)’이 작동합니다. 입법자와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혁신’이 아니라 ‘국민 안전’과 ‘시스템의 안정성’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편리함은 주지만, 약물 오남용이나 특정 약국 쏠림 현상 같은 ‘시스템 교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만약 비대면 진료가 전체의 20%, 30%를 차지하며 국민 생활의 필수 인프라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국회는 혼란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안전장치’를 마련해 서비스를 유지시키는 방향을 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작 1%입니다. “편익은 작고(1%), 잠재적 위험(안전 이슈)은 크다.” 입법자 입장에서 이 계산의 답은 명확합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시스템을 고치기보다는, 위험 요소를 제거해 ‘안전한 현행 시스템’을 지키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결국 스타트업은 ‘많은 사람이 호기심에 써봤다(가입자 수)’는 것은 증명했지만, ‘이 서비스가 안전하며,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불안한 1%의 혁신보다는 확실한 안전”을 택한 입법부의 결정은, 어쩌면 데이터가 예고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규제 산업의 창업자들에게, ‘편리함’ 그 이상을 증명하라
이번 닥터나우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가 아닙니다.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모든 예비 창업자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입니다.
특히 헬스케어, 핀테크, 모빌리티 등 규제가 얽힌 시장에 진입하려 한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규제’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고 있는가? 많은 스타트업이 규제 샌드박스나 한시적 허용에 기대어 사업을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 "혁신이니까 이해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규제가 원상 복구되거나 강화되었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Plan B(우회로)’가 초기 BM 설계 단계부터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닥터나우에게 '비진약품'은 Plan B였겠지만, 그것조차 규제의 사정권 안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편리함(Convenience)’을 넘어 ‘공공성(Public Value)’을 증명할 수 있는가? 닥터나우는 편리했지만, ‘이 서비스가 없으면 의료 취약계층이 위험해진다’는 절박함을 데이터로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입법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편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고 사회에 이득이 되는가’입니다. 단순히 사용자가 좋아하는 것을 넘어, 우리 서비스가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어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객관적 수치로 입증해야 합니다.
셋째, IR(Investor Relations)만큼 GR(Government Relations)을 준비했는가? 투자자를 설득하는 논리(성장성, 수익성)와 정부를 설득하는 논리(안전성, 공공성)는 다릅니다. "우리는 유니콘이 될 기업입니다"라는 말은 국회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막으면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는지", "우리가 기존 시스템의 위험을 어떻게 보완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어 논리를 사업 초기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마치며, 혁신은 언제나 기존 질서와의 충돌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 충돌을 돌파하는 힘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한 ‘증명’에서 나옵니다.
이번 사태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뼈아픈 교훈이 되기를, 그리고 앞으로 나올 혁신가들이 더 단단한 논리로 세상의 벽을 넘어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