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8시간씩 개발해서 연매출 100억 만들기까지
디지털 학습지 서비스 '매쓰플랫' 만든 에듀테크 기업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

김지윤
· 에디터

수학을 잘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공부 머리?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버티는 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는 뜻밖의 대사가 나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가장 먼저 포기하고, 그 다음으로 노력만 하는 사람이 나자빠지는 순서라고. 오히려 수학을 잘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문제가 안 풀릴 때는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에 ‘야.. 이거 문제가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한 번 풀어봐야겠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런 게 수학적 용기다.”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중에서

프리윌린을 창업한 권기성 대표가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조곤조근 말을 이어갔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쌩고생’이 담겨있었어요. 피멍이 들도록 혼났던 수포자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수학학원 쌤이 매일 18시간씩 3년간 코딩을 하고, 빚더미에 앉아서도 다시 교육 현장에 필요한 IT서비스에 도전하고. 

그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매쓰플랫’이라는 서비스가 나왔습니다. 학생의 취약점을 개인별 맞춤으로 분석해서 디지털 수학 문제집을 만들어주는 서비스인데요. 학원이나 학교, 공부방 등에서 B2B 서비스로 유료 구독을 하는데, 대치동 학원 4곳 중 1 곳이 쓰고 있습니다.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했고요. 

 

(출처 : 프리윌린)

 

저라면… 3년간 죽어라 만든 서비스를 갈아엎거나 주변 학원의 유언비어로 인해 적자를 못 면할 때 너무너무 포기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권 대표는 ‘야.. 이거 문제가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에 임했어요. 

어쩌면 풀고 싶은 문제를 발견한 후에 포기하지 않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너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잘하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서,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진 않았나요? 

그렇다면 수학적 용기로 살아온 권 대표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지금 내 인생에 필요한 ‘수학적 용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질문 및 답변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 인터뷰.

 

수포자, 수학 교육에 도전하다

 

Q.원래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나요?

사실 중학교 때는 공부를 못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영어 성적 20점, 수학 성적 28점 받았고. 전교에서 제일 공부 못 하는 애들만 모아서 나머지 공부 시킬 때 항상 거기에 제가 있었어요.

 

Q.어렸을 때는 공부에 뜻이 없었던 것이네요.

학교를 다닐 마음이 없었어요. 꿈이라거나 목표도 없었을 때였죠. (그러다 보니) 선생님께 많이 혼나고 맞았어요. 너무 맞아서 손등이 보라색이 될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때 계곡에서 놀던 어린 시절. (제공 : 권기성)

 

Q.공부에 뜻이 생긴 계기는 있었나요?

컴퓨터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졌어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지원했어요. 컴퓨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목표가 생기고, 같이 성장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점차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습니다.

 

Q.고등학교 때 공부를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그쵸. 수학을 중학교 1학년 이후로 본 적이 없었어요. 남들보다 3년 뒤쳐졌다고 생각하니 맨 첫 장부터 시작해야겠더라고요. 

새벽에 퇴근한 누나 붙잡고 매일 중1 기초 영문법부터 물어보거나 EBS 중학교 전과정을 다 봤어요. 하루에 (온라인 강의를) 20시간씩 보기도 했어요. 영어 단어 외우다가 새벽 2시에 잠들고, 잠깐 눈 뜨면 바로 불 켜고 다시 외우고.

중학교 때는 하루에 16시간씩 자도 학교에서 늘 자는 아이였지만, 고등학교에 가서는 3~4시간만 자고 공부했는데도 전혀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면 다 던져가면서 파고드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잠을 포기하며 공부한 권 대표는 수능을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어요. 물론 좋은 학교에 합격했다고 창업을, 교육 앱을 만드는 건 아니죠. 그가 교육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있습니다. 

 

NGO에서 청소년 학생들과 함께 멘토 활동을 하던 시절. (제공 : 권기성)

 

Q.대학생 때 무료 수학 과외, 새터민 학교 수학 강사 같이 다양한 교육봉사를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혈우병을 앓고 있어요. 피가 나면 멈추지 않는 병이에요. 유전병이라서 평생 안고 살아야 합니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주사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고등학생 때 우연히 약국 영수증을 봤어요. 두 달치 약값이 700만원이더라고요.

되게 충격받았어요. 약값은 의료보험으로 모두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생각이 많아졌어요. 저 하나 살리기 위해 평생 들어가는 비용이 약 30억원쯤 되는 거잖아요. 아프리카에서 한 끼가 110원쯤 한다는데. 계산해보니까 1600명이 80년간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더라고요.

저 하나 살리려고 드는 돈이 1600명을 살릴 수 있는 돈이구나… 빚진 마음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막연히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갚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지금도 혈우병 때문에 발목이나 연골이 빠르게 안 좋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몸이 불편할 때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나’, 다시 자각하게 됩니다. 

 

Q.특히 교육 분야로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육 봉사를 많이 하면서) 제일 자주 접했던 분야였어요. 혁신할 여지가 많아 보였어요.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의 모습은 거의 변한 게 없잖아요.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하고, 애들은 쭉 앉아서 일방적으로 듣고요. 근데 기술은 150년 전과 지금 완전 딴판이 됐어요. 

 

 

IT가 이렇게 많이 달라졌는데, 이해도가 서로 다른 아이들이 똑같은 프린트물을 보며 교육받는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어째서 선생님은 매 수업마다 같은 콘텐츠를 쓰고 지우길 반복해야 할까 싶었죠. ‘좀 이상하다, 그만큼 혁신의 기회가 많겠다…!’

무엇보다 1600명에게 빚을 갚으려면 창업 말고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큰 회사가 되면 문화를 만드는 힘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을 돕는다면 커다란 기업은 여기에 필요한 돈, 인력, 전문성을 갖출 수 있어요. 다만 스피릿(정신)이 없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스피릿이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시도라고 봤어요.

 

Q.언뜻 사회적 기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NGO(비정부조직) 쪽도 고민했지만 민간기업 쪽을 선택했어요. 스피릿(마인드)을 장착한 채로 가장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형태가 일반 기업이라고 봤어요. 사회적 기업의 경우 3년간 지원금이 나오지만, 그 이후에 자생력이나 성장 동력을 얻기 어려워요. 이 시기가 지나서 망하는 사회적 기업이 적잖아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업자 마인드를 갖게 됐던 것 같아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가 제 삶의 모토에요. 교육 시장을 혁신하려면, 선한 의도를 실현하려면 지극히 현실적어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권 대표는 어머니 덕분에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원래 계획대로는 취업해서 5~10년 사회 경험을 쌓은 후 창업에 도전했겠지만, ‘세상에 이로운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비전이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와 함께. (제공 : 권기성)

 

매일 18시간씩 개발했던 앱이 실패했다

 

Q.바로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어머니 덕분이라니. 흥미롭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어머니는 노후 걱정을 하고 계셨어요. 노후 자금으로 쓰실 돈을 어느 은행 상품에 넣을까 찾아보고 계셨죠. 그러면서 저에게 물어보셨어요. 

“너는 이제 졸업하고 뭐 할 거니?”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을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창업해서 빈민국 마을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요. 어머니가 그 말에 감명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지금 돈이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러면 은행에 투자할 바에 너한테 투자할래!”

당시 어머니께서 2천만 원을 도와주셨어요. 그게 지금의 매쓰플랫을 만든 시드머니가 됐습니다.

 

Q.이 노후 자금을 씨드머니로 받은 후,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원래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앱’을 만들려 했어요. 제가 개발을 할 줄 모르니까 외주 사이트를 돌아다녔습니다. 외주비용이 수 천만 원 단위더라고요. 

근데 저한테 있는 돈은 2천 만원이잖아요. 외주 비용을 들일 바에 차라리 1년간 개발하는 능력을 갖추기로 마음 먹었어요. 직접 개발 공부를 해서 창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개발 공부도 하루에 한 18시간씩 알차게 했어요. 생활코딩 같이 무료로 나온 인강으로 독학하고, 개발 과외도 받았어요. 

 

Q.앱 개발에 주력하셨던 걸까요?

1년 후에는 수학 학원도 차렸어요. 생활비를 벌 목적이었어요. 차곡차곡 100만원씩 벌면서 창업을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지원해주신 시드머니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사무실을 구했어요. 장판, 시멘트, 페인트칠까지 다 직접해서 돈을 아꼈어요. 

수학 학원을 차린 후에는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 10시부터 아침까지 앱을 만들었어요. 근 3년동안 매일 17~18시간씩, 집에서 잠깐 자고 나와서 서비스를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권 대표가 아무리 노력해도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비스 출시는 무산됐고, 학원 사업도 매달 적자를 냈어요. 빚은 1억 3천만 원으로 불어났어요. ‘멋진 인테리어와 선진화한 시스템’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죠.

 

권 대표가 초기에 개발했던 학생용 강의듣기 서비스. (출처 : 프리윌린)
서비스 개발과 병행했던 수학학원 사업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출처 : 프리윌린)

 

Q.처음에 만드셨던 서비스는 현재 운영하는 ‘매쓰플랫’과 다른 것 같습니다.

원래 학생 자기주도형 학습 서비스로 만들었어요. 학생이 본인 아이디로 접속해서 취약점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거나 강의 듣고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어느정도 준비가 된 후에) 처음으로 제 학원 아이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일단 제 강의를 먼저 들은 다음에 교실로 이동하면 독서실 책상마다 태블릿이 한 대씩 비치돼 있어요. 한 학생에게 태블릿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시키고 다른 학생을 살피러 갔어요.

근데 다시 처음 학생에게 와보니까… 아이가 (강의 서비스를) 듣고는 있는데 눈에 초점이 없는 거예요. 전혀 이해하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어요. 이 모델이 작동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 1대1로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 하는 학생에게, 앉아서 이걸 듣고 있으라고 해서 학습이 되지 않는구나.’

 

Q.매일 밤을 새서 준비했는데, 정말 막막하셨을 것 같아요.

이미 창업을 준비할 때부터 막중한 책임이 있잖아요. 어머니 노후자금에 누나, 친구한테 빌린 돈, 정부 보증금. 그 돈을 다 쓰게 되니까 한 3년간 1억 3천만원쯤 빚이 생겼더라고요.

 

Q.생활비를 벌려고 학원 사업도 병행하셨잖아요. 그 사업은 어땠나요?

학원 사업도 매달 마이너스였어요. 동네 학원 중에서 좀 더 발전된 시스템이나 환경을 만들어서 홍보하면 평균 이상은 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었어요. 

학원 오픈할 때부터 옆 학원의 견제가 있었어요. 오픈 첫날 그 학원 친인척을 다 데려와서 1시간동안 깽판을 놓더라고요. 동네 학생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학생들이 저희 학원에 안 오려 했어요. ‘이런 일로도 망할 수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창업은 뭐랄까… 사막 한가운데 던져져서 하나하나 제가 다 만들어가야 되는 일 같아요. 일주일 내내 거의 잠이 안 왔어요. 결국 마이너스를 채우기 위해 주말에 개발 외주를 뛰거나 과외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어요. 매일 17~18시간씩 잠을 줄여가며 혼자 외롭게, 꿋꿋이 계속 일해왔는데도 내 손에 남는 게 빚밖에 없구나, 막막했죠.

첫 서비스를 실패했음에도 권 대표는 개발을 이어갔어요. 선생님으로 일해온 경험을 단서 삼았죠. 수업 현장에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본인이 앱을 만드는 동시에 주요 고객이 됐어요. 이윽고 내가 필요해서 만든 서비스가 남을 돕기 시작했어요.

 


 

새벽에 택시 타고 고객을 만나러 가다

 

Q.약 3년간 준비한 서비스를 포기한 후 바로 피봇팅을 하셨나요?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어요. 물론 애정이 담긴 프로덕트였지만, 학생들이 쓸 만하지 않다면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대신에 아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보다는 학원을 잘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을 고용할 형편이 안 돼서 5년간 제가 수업도 병행했는데요. 

덕분에 선생님으로서 업의 노하우를 쌓고, 학원만의 차별화된 시스템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매쓰플랫 서비스는) 원래 제가 쓰려고 만들었던 서비스였어요. 

 

Q.우리 학원에서 쓰려던 시스템인데, 다른 곳에도 서비스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금의 공동창업자를 만났을 때에요. 여전히 돈이 없어서 제가 개발 외주를 하려고 소개받은 분이었어요. 그 분이 제가 만든 매쓰플랫 서비스를 보고 말했어요.

“이거 괜찮아 보인다. 같이 팔아보자.”

제 입장에서는 ‘누가 이걸 돈 주고 쓸까’ 생각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이 시스템을 외부에 판매하고 수익을 나누는 모델로 출발했어요. 점차 매쓰플랫에 대한 반응이 생기고 사업이 커지려 하니 아예 이쪽으로 전부 방향을 틀게 됐습니다.

 

매쓰플랫 초기 앱 화면. (출처 : 프리윌린)

 

Q.매쓰플랫은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나요?

아뇨. 처음에는 반응이 막 폭발적이진 않았어요.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저희 서비스 나왔어요’ 홍보하는 게 전부였어요. 네이버 키워드 광고나 페이스북 타겟 광고를 할 돈이 없었어요. 처음 글 올리고 한 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그리고 한 이틀 후에 연락이 왔나. 일주일간 3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Q.이 연락이 정말 중요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연락을 주신) 고객을 직접 찾아가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어요. 극초기 고객에게는 1달, 2달 무료 체험기간을 제공해드리고 태블릿도 3개를 그냥 드렸어요. 저희 팀이 학원 홍보물부터 배너, 간판 디자인까지 해드렸어요. 학원 선생님에게 필요한 걸 최대한 서포트 해드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밤 12시에 쌤이 매쓰플랫을 쓰다가 오류가 났다고 연락을 주시면, 제가 바로 사과 드리고 새벽에 택시 타고 그 학원으로 가서 해결해드렸어요. 매쓰플랫 사업 초기에는 제가 유일한 개발팀이자 콘텐츠 팀이자 CS팀 역할이었어요.

어떤 고객님은 매쓰플랫이 너무 마음에 드셔서 매일 1시간씩 정해진 시간에 통화를 했어요. 한 달간 그 분이랑 통화하면서 의견 듣고, 최대한 빠르게 그걸 반영해드렸죠.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고객을 만들었어요.

 

“와 오늘은 태블릿 많이 드리는 날!” (출처 : 프리윌린)
초기 고객과 꾸준히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매쓰플랫. (출처 : 프리윌린)

 

Q.그만큼 절박했던 것이죠.

감사하게도 2명이 체험하면 1분이 유료구독을 해주셨어요. 첫 달에 두 분쯤 가입하고, 다음 달에는 다섯 분, 소소하게 꾸준히 늘어났어요. 6개월이 지나고 보니 저희 고객이 100군데쯤 됐어요. 

돌이켜보면 한 번 가입하시면 이탈을 거의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도 월 재구매율이 97%입니다. 매쓰플랫 론칭 후 5개월이 지나서 처음으로 이탈하는 고객이 발생했을 때도 사정상 학원을 그만두셔서 이탈하는 사례였어요. 

 

Q.여러 경쟁 서비스가 있는데, 매쓰플랫 재구매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매쓰플랫을 처음 만들 때 ‘사용성’을 가장 신경 썼어요. 제가 선생님으로서 쓰고 싶은 기능을 넣었던 서비스에요. 일주일간 밤새서 힘들게 개발한 다음에 수업 때 써보고, 손이 안 간다면 바로 그 기능을 날렸어요.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안 좋은 걸 선생님이 억지로 쓸 순 없어요. 생업을 걸고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당시 수학 학원에서 쓰는 솔루션들을 써봤을 때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시험기간에 한 학생이 수업에 와서 2시간동안 약 100문제를 풀어요. 10명이 같이 수업을 듣는다면 1000문제쯤 풀겠죠. 

선생님이 그걸 하나하나 채점해야 되는데, 시중에 나와있는 프로그램에서는 문제 하나하나 다 바코드, QR코드를 찍어야 했어요. 오답관리 기능을 지원하더라도 그 기능을 쓸 시간이 없어요. 이 프로그램들이 선생님의 맥락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매쓰플랫을 사용하는 학원 강사 미지수 쌤의 사용 후기.

 

그래서 매쓰플랫은 터치 한 번이라도 줄이려 했습니다. 데스크탑(PC)이 아니라 태블릿에 최적화해서 선생님이 태블릿을 들고 수업하실 수 있도록 했고요. 수업 중간에도 학생들에게 필요한 문제를 바로 무선으로 뽑아줄 수 있는 환경을 중시했어요.

어찌보면 (첫 서비스를 만들 때) 책상 앞에 앉아서 기획을 해서 이걸 써보라고 던져줬던 것과 제가 직접 그 유저가 돼서 이걸 쓰려고 만드는 게 완전히 달랐던 것 같아요.

 

Q.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으로서 얻은 경험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됐네요.

애초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사교육 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사교육 시장의 약 97%는 학원, 과외, 학습지로 이뤄져 있어요.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선생님과 수업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선생님이 쓰는 서비스를 아이들도 필수적으로 쓰게 됩니다. 선생님이 학습자료 만들고 숙제 검토해주는 플랫폼에 과제를 제출하게 되는 식이죠.

더군다나 학생들은 입시가 끝나면 사교육 시장에서 이탈을 많이 하는데, 선생님은 꾸준히 플랫폼에 들어와 계세요. 본인 자료와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다 보니 이탈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학원이 망하지만 않으면 계속 매쓰플랫에 들어와 계신 겁니다.

 


 

교육의 미래를 통째로 바꾸는 사람들

 

Q.2021년 50억 규모로 시리즈A 투자를 받으셨어요. 흑자인데도 투자를 유치한 이유가 있나요?

투자를 받은 시점에도 매출액 50억원으로 흑자가 나고 있었어요. 직원 규모도 60명쯤 됐고요. 문제은행 업계에서는 1위가 됐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업을 시작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바꾸고 싶은가.’

지금까지 해온 방향 중에 잘못된 방향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에 처음 그 시점에 좀 더 빠르게,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프리윌린은 교육 분야에서 ‘다음 교육’을 만드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거든요. 지금 이 속도는 우리가 원하는 속도는 아닌 것 같다고 봤어요.

 

 

Q.'다음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요?

앞으로 수업이 개인화, 디지털화하는 모습을 하나씩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번거로운 채점을 자동화한다거나 선생님들이 만들어주신 문제 데이터들로 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야죠. 

(이제는 선생님이 쓰는 매쓰플랫뿐 아니라) 학생들이 쓰는 종이 문제집을 태블릿 안에 넣는 ‘풀리’라는 서비스도 하고 있습니다.

 

Q.처음에 만들었던 학생 자기주도형 서비스와 비슷하네요.

맞아요. 거의 유사한 서비스에요. 시기가 됐다고 판단해서 학생 서비스도 론칭한 거죠. 

교육 업은 필연적으로 개별화, 스마트 교육으로 맞춰 갈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근데 ‘사교육=부정적’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서 ‘학생들이 좋은 교육 콘텐츠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어요. 결국 더 좋은 콘텐츠를 만나고 싶어서 학원에 오고, 개별 케어를 받고 싶어서 과외를 받고. 더 검증된 콘텐츠를 만나려고 고액 과외를 하게 되는 현상이잖아요.

그렇다면 학교나 학원에서나 양질의 콘텐츠를 각 학생에게 맞춰서 바로 제공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실제로 약 20곳에서 학교 수업에 매쓰플랫을 쓰고 계세요.)

IT 기술 없이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다고 단순히 플랫폼 하나 깔거나 문제 콘텐츠만 제공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요. 교육은 효율성만큼 효과성이 중요해요. 업에 대한 이해와 노하우가 필요하죠.

이건 프리윌린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혁신이라고 봅니다. IT 조직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업에 대한,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까요. 매주 선생님들이 쓰시면서 고객 만족도 98.6%을 보이고 있어요. (교육 현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IT제품으로)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교육의 두 축을 디지털화하는 변화에 집중하려 합니다. 

 ‘다음 교육’을 만드는 팀. 프리윌린 구성원들은 서로 ‘쌤’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수업 현장에서 들을 법한 호칭이죠. 팀원간의 존중, 자부심이 느껴져요. 프리윌린의 시리즈A 투자를 이끌었던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도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Q.서로 ‘쌤’이라는 호칭을 쓰시는 게 인상 깊습니다. 프리윌린은 어떤 조직인가요? 

저희는 자유, 책임, 탁월함, 밥이라는 가치를 세운 조직입니다. 프리윌린의 4대 문화적 가치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관점을 제대로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아직 팀원이 채 10명이 안 되던 시점이었어요. 개발자를 뽑아야 해서 수소문하다가 괜찮은 분께 연락을 드리게 됐어요. 만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행복한 회사를 가고 싶어요.”

제 입장에서는 열심히 어필을 해야 하니까 이것저것 얘기했죠. 수평적인 문화가 있고, 급여도 최대한 맞춰 드리고, 연차도 마음 편히 쓸 수 있고. 호칭도 ‘쌤’이라고 쓰고. 헌데 그 분이 하셨던 말은 달랐어요.

“저는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수영장이 있다고 행복한 회사는 아니잖아요."

동료간 존중이 있고, 본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러면서 의미 있는 일에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회사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뺨을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프리윌린 팀 사진. (출처 : 프리윌린)

 

Q.어떤 점에서 큰 충격을 받으셨던 건가요?

직원을 뽑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책임이 크구나’ 깨달았거든요.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이 분과 우리가 삶을 함께 한다는 관점이 생겼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회사가 직원의 삶에 대한 행복에 책임을 갖고 최대한 서포트 해드리는, 직원은 회사에게 본인이 가장 잘하는 전문성을 발휘해서 보답하는 문화를 꿈꾸고 있어요. 

 

Q.그래서 회사의 문화적 가치 중에 ‘밥’이 있는 걸까요? 

저희가 식대 무제한 원칙이 있어요. 멤버들이 무제한 밥값이나 간식비를 걱정해주시면서 먼저 ‘아껴쓰겠다’고 말씀도 해주시는데요. 무엇보다 팀원에 대한 존중과 행복의 의미를 담아서 ‘밥’이라는 가치를 상정한 것입니다. 

 

Q.사전 인터뷰 때 X-Y이론을 언급해주신 것도 흥미로웠어요.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조직행동론에서 더글라스 맥그리거 교수의 X-Y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X, Y로 나뉘는데요. X이론의 전제는 이래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하기 싫어한다.’

인간은 ‘타율적’이라는 시각이죠.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 통제하고 관리할 때(수직 하향 통제) 생산량이 최대치가 된다는 이론입니다. 반면 Y이론의 시각은 달라요.

‘인간은 자아 실현의 일환으로 직업을 선택한다. 최소 안정감을 얻으면 창의성을 발휘하고 책임을 질 줄 안다’

Y이론은 ‘자율적’인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중시합니다. 일과 조직에 대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때(수평 상향 참여) 팀원이 최대한 성취할 수 있다는 이론이에요. 

 

맥그리거 교수의 X-Y이론.

 

프리윌린은 Y이론에 입각해서 Y유형의 인재가 많은 조직을 지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프리윌린 팀원들이 본인 포지션에서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찾아내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조금 더 비용을 아끼고 관리를 잘하는 것보다 임직원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탁월함에 따라 회사의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고 믿고 있어요.

 

Q.프리윌린을 통해 대표님께서 최종적으로 이루고픈 꿈이 무엇이신가요?

프리윌린이 크게 성장해서 나중에는 전세계에서 교육 기회로부터 가장 소외돼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콘텐츠를 만나게 해주는 꿈을 보고 있어요. 그게 가장 보람된 일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1600명에게 빚을 졌으니 최소한 5000명 이상의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는 게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포기하지 않는 것. 어린 시절 만화 주인공들에겐 쉬워 보였던 이 일이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특히나 스타트업은 포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무엇을 포기할지 아는 게 참 어렵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의사결정 단계마다 포기 버튼을 누를지 말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죠. 당장 수입이 없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거기에 매몰되면 회사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기울어 버릴 수 있고. 오랜 기간 준비한 서비스는 (매몰 비용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포기가 안 돼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는 프리윌린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권 대표는 3년간 매일 18시간씩 고생해서 만든 서비스는 포기해도 수업 현장을 혁신해야 한다는 문제만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새벽에 바로 택시 잡아 타고 고객에게 달려갈 수 있었어요. 풀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니까요.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 것 같아요.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비용)구조를 만든다면 언젠가 시장의 반응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프리윌린 창업가 권기성

 

권기성 대표에 말마따나 창업가들은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사는 듯합니다. 적절한 비용 구조를 만들면서 도전 또한 멈추지 말아야 하죠. 유니콘의 꿈을 꾸며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때 스타트업으로 성장합니다. 

이 균형을 맞추려면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꼭 풀어야 하는 문제란 무엇인가요? 혹시 그걸 포기하고 싶다면, ‘야… 이 문제 참 어렵지만 가치가 있구나’ 하며 내일 다시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 본 아티클은 2021년 12월 공개된 <성공하고 싶어서 3년 동안 하루 18시간씩 개발했습니다>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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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Contributor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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