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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5조 기업을 만들며 배운 것|웹플로우 CEO 인터뷰

EO 글로벌팀은 2024년 웹플로우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블라드 막달린을 만나 그가 직장인에서 창업자가 된 계기, 여러 실패 끝에 웹플로우를 5조 가치의 스타트업으로 만든 과정과 3명의 자녀를 키우며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소회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번 글은 막달린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출처 : EO Global

 

안녕하세요, 저는 블라드 막달린(Vlad Magdalin)입니다. 저는 웹플로우(Webflow)의 CEO이자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입니다. 

웹플로우는 사용자가 전문적인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웹 개발 플랫폼입니다. 시각적인 웹 개발 플랫폼으로, 기업, 프리랜서, 에이전시가 매우 정교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합니다. 현재 20만 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연 매출은 1억 달러(한화 약 1450억 원) 이상입니다. 주요 웹 플랫폼 중 하나지만, 워드프레스(WordPress)나 다른 대형 플랫폼에 비하면 여전히 성장 단계에 있습니다.

 


[아티클 미리 보기]
1.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2.3번의 실패, 4번의 도전 끝에 얻은 기회 
3.YC 배치에 도전하며 겪은 우여곡절들
4.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창업자로 사는 것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저는 우연히 부모님과 함께 난민으로 미국에 왔어요. 제가 디자이너나 비주얼 아티스트처럼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아버지는 부업으로 몇 가지 사업을 시도하려 하셨고, 그 중에선 카탈로그를 영어에서 러시아어로 변환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걸 해드리는 과정에서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배워야 했고, 나중에는 러시아 아메란 미디어라는 곳에 취직하게 되었어요. 거기는 고객을 위해 랩 디자인을 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광고 명함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3D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다가 대학에 처음 진학했을 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어요.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이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그게 수익성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줬거든요. 1 년 동안 그렇게 공부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전공을 잠시 중단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3D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어요. 

 

토이 스토리 시리즈 - 나무위키
출처 : 픽사

 

3D 애니메이션에 특히 빠져든 계기는 아무래도 픽사 때문이었어요. 2001~2002년 픽사가 만든 모든 어마어마한 영화를 보며 큰 영감을 받았어요. 관련해서 저는 웹에서 3D 모델링을 하는 방법을 배웠고, 모든 튜토리얼을 통해 장면을 만들고 3D 공간으로 변환한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웠어요. 

저는 제가 이야기를 끝까지 만드는 데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저에게 좀 더 흥미로웠던 것은 3D 및 영화 산업에서 사용되는 정교한 3D 애니메이션 도구와 그 기술이었어요. 관련 기술을 배우고 튜토리얼을 익히면서 마치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쉽게도 이후 학비가 너무 비싸서 미술 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공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전에 웹 디자인 에이전시에 취직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시작했는데, 그 직장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포토샵으로 웹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인 팀과 함께 일했고, 그 디자인을 웹의 HTML CSS로 변환하는 일을 인턴처럼 했어요.

그 일을 하면서 아이디어 하나가 번쩍 떠올랐어요.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에서 모든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버튼을 누르면서 라이브 화면으로 수행할 수 있는데, 웹 디자인에는 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웹플로우로 연결되는 초기 영감은 웹 디자인을 위한 3D 애니메이션 도구와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후 바로 창업을 하진 않았어요. 다른 직장을 구하고 일을 했지만, 이미 퇴근 후나 주말, 또는 공동 창업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부업으로라도 프로덕트를 만들어야지 싶었어요. 솔직히 비즈니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지도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단지 뭔가 단단히 잘못돼 있다거나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게 보였어요. 

 

출처 : EO Global

 

만약 내가 그걸 만들어낸다면 누군가가 내가 만든 툴에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처럼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어요. 학생이었을 때도 일부 소프트웨어에 돈을 지불했던 것처럼 말이죠.

(제 아이디어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수익을 만들 방안은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실제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어요.  일단 내가 이걸 구축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당시에는 솔직히 1인 기업이 될 것이라고 봤어요. 아마도 몇몇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가 팔리겠지 짐작했고요. 수백 명은커녕 여러 직원이 있는 회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세부 사항은 몰랐죠. 순진했지만, 누구보다 먼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상황을 개선하는 더 나은 솔루션을 만들고 싶었을 따름이었어요.


 

3번의 실패, 4번의 도전 끝에 얻은 기회 

처음에 겪은 부침은 굳이 ‘거대한 실패’라고 여기진 않았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상의하면서 ‘진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부업처럼 일을 병행하려면 밤에도 주말에도 계속 일해야 할 것 같아서 1년간 프로덕트 만드는 걸 잊고 지냈어요. 

두 번째 시도에서도 밤낮 없이 같이 합심해줄 공동창업자를 찾아보려 했는데 쉽지 않았고, 결국 이러한 시도도 시들해져서 그만뒀어요. 

세 번째 도전에서는 확실히 ‘실패’라는 감각이 무엇인지 체감했어요. 실제로 자금을 조달하고 법인을 세우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어요. 다른 공동 창업자도 2명 모았어요. 

처음에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어요. 헌데 투자 피칭까지 돌고 나서 알고 보니 상표권에 문제가 있었어요. 이미 ‘웹플로우’라는 상표를 다른 회사에서 쓰고 있었고, 규제 당국에서도 이걸 쓰지 않아야 한다고 통보했죠. 

 

출처 : EO Global

 

크게 낙담했지만 일단 리브랜딩 작업부터 시작했어요. ‘마크업’ 같이 새로운 이름으로 갈아탔죠. 그러는 과정에서 공동창업자들이 의욕을 잃었고 “이 회사에 모든 걸 다 위험하다”며 주저하게 됐어요. 그 와중에 경쟁사에서 2천만 달러 어치 자금을 조달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린 돈이 없는데 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쯤에서 포기해야 한다고 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1년쯤 지나자 다시 웹플로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경쟁사가 우리가 만들려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들이 우리가 구상한 것과 완전히 동일한 제품을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엔지니어로서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2011년 말, 저는 이미 베이 에어리어의 마운틴 뷰에서 새크라멘토로 이사한 상태였고, 둘째 아이도 태어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웹플로우의 상표권 증서였어요. 아마도 원래 이 상표를 소유했던 회사가 상표권 기한을 연장하지 않았거나 폐업하면서 저에게 상표권이 넘어온 것 같았습니다. 

그때도 저는 여전히 본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제 동생 세르게이(Sergey)와 함께 부업으로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었어요. 

이윽고 저희는 웹플로우의 초기 버전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마치 운명이 정해진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웹플로우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 일은 저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2012년에 본격적으로 창업을 시작할 자금을 마련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EO Global

 

이건 100% 아이디어에서 비롯됐어요. 단순히 3D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게임 디자인, 영상 편집, 영화 제작 같은 다양한 산업에서도 복잡한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직접 조작할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하는 걸요. 예를 들어, 헤어 시뮬레이션이나 강체(rigid body) 시뮬레이션 같은 고급 기능을 이미 그때도 사용할 수 있었죠. 단순히 포토샵에서 스케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도구들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웹 디자인에도 "이런 시스템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했어요. 물론 몇몇 기업들이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어요. 드림위버(Dreamweaver) 같은 툴이 있었고, 어도비(Adobe)도 과거에 이런 시도를 했죠. 하지만 그들은 너무 일찍 시장에 나왔고,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도비나 매크로미디어(Macromedia) 같은 대형 기업도 실패했으니, 이런 기술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라고 단정짓게 됐어요.

하지만 저는 3D 애니메이션에 제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술이 (웹 디자인 영역에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봤어요. 투자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런 부정적인 의견을 거의 무시했어요.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죠.

물론, 가끔은 이런 확신이 단점이 되기도 했어요. 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아이디어의 단점을 분석했어야 했는데 당시 그러지 못한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제게는 지금까지 웹 디자인을 해온 방식이 명백하게 잘못되었고,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겠다는 결심을 1,000%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아내에게도 이렇게 말했어요. 

"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난 스타트업을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정말 그랬어요. 만약 이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저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서 만족스럽게 일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웹플로우의 개념만큼은 반드시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YC 배치에 도전하며 겪은 우여곡절들

2011년 말, 웹플로우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공식 승인을 받은 후부터 제 머릿속에서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기 시작했어요. 

"다시 도전해야 할까?"

그러다가 결국 네 번째 시도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습니다. 2012년 초, 브렛 빅터(Bret Victor)라는 사람이 만든 <Inventing on Principle>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저는 모든 창업자가 반드시 봐야 할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상은 예술, 디자인, 프로그래밍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강연의 절반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당신은 왜 이 일을 하는가? 당신의 직업적 목표와 노력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가?"

그 내용이 웹플로우의 비전과 너무 맞닿아있다고 느꼈고,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이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그리고 이 일이 나에게 깊은 의미와 성취감을 주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영상을 본 바로 다음 날 아침, 저는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후 우리는 제품의 데모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명확했죠.

"우리에게 남은 자금은 3개월치 생활비뿐이다. 이걸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할까?"

그래서 우리는 Kickstarter(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투자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여기에 걸기로 하고, 회사를 법적으로 등록하고, 킥스타터 영상 제작을 시작했어요. 동시에 제품 디자인도 구상했죠. 킥스타터 영상에서 사람들이 웹플로우가 어떤 모습일지 보고, 가능성을 믿고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계산을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킥스타터 영상이 거의 완성될 무렵, 해당 플랫폼에서는 '호스팅 기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즉, 우리가 만들려던 웹플로우는 킥스타터 서비스 약관에 맞지 않았던 거죠. 

 

출처 : EO Global

 

결국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킥스타터를 통한 자금 조달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은 모두 낭비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데모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시에 와이콤비네이터(YC)에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데모 버전을 완성한 후, YC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어요. 정말 충격적이고 낙담할 만한 일이었죠. 최소한 인터뷰 기회라도 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YC 측에서는 “너희는 아직 너무 초기 단계야. 단순한 데모만 있을 뿐, 실제 제품도 없고 사용자도 없잖아.”라는 식의 피드백을 줬어요.

이건 우리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었어요. YC 다음 지원 기회는 6개월 뒤였고, 이미 자금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어요.

"초절약 모드로 가자. 최대한 돈을 아끼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우리는 극한의 절약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용카드 한도를 최대로 늘리고, 가능한 모든 대출을 알아보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차를 팔고 리스로 전환하며 현금을 마련했어요. (대략 3만 달러, 한화로 약 4천 만원의 빚이 생기기도 했어요.)

(참고 : $30,000 In Debt To Building A $4 Billion Company: The Story Of How Three Cofounders Beat Impossible Odds At Webflow)

 

$30,000 In Debt To Building A $4 Billion Company: The Story Of How Three  Cofounders Beat Impossible Odds At Webflow
출처 : 포브스

 

이 6개월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열정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밤낮 없이 디자인을 만들고, 코드를 짜고, 실제 작동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았어요.

"지금 이걸 성공시키지 못하면 끝이다."

그 절박함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2013년 3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디자이너 커뮤니티에 보여줄 수 있는 데모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레딧, 디그(Digg), 그리고 당시 존재했던 디자이너 뉴스(Designer News) 같은 플랫폼에 올려봤어요. 하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죠.

그러던 중, 우리는 해커뉴스에 웹플로우 소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거기는 주로 개발자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였어요. 그래서 사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게 개발자들에게는 관심을 못 끌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웹플로우는 디자이너가 개발자 없이 웹사이트를 만들도록 돕는 도구잖아. 혹시 개발자들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해커뉴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개발자들이 웹플로우의 아이디어에 깊이 공감했어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웹플로우는 개발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줄여줬거든요.

예전에는 엔지니어가 직접 디자이너가 만든 포토샵 파일을 HTML과 CSS로 변환해서 CMS에 적용하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이 과정은 매우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이런 번거로운 작업에 얽매이곤 했죠.

예를 들어, 한 개발팀이 본래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마케팅 팀에서 "우리 새로운 캠페인 페이지가 필요해요! 이 피그마 디자인을 기반으로 웹페이지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될까요? 개발자들은 본업을 중단하고, 단순히 마케팅 페이지를 HTML과 CSS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그들은 더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정작 시간은 단순 반복 작업에 빼앗기고 있었죠.

웹플로우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줬어요. 디자이너가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개발자들은 더 중요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웹플로우가 만들어내는 코드는 매우 깔끔하고 성능이 좋은 코드였어요. 기존의 다른 웹사이트 빌더들이 생성하는 코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죠. 이때부터 우리는 첫 번째 큰 반응과 사용자 유입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우리는 YC에 지원했고, 배치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었죠. 덕분에 계속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출처 : EO Global

 

처음 아이디어를 세상에 선보이고 웨이팅리스트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실패를 여러 번 겪고 나서, 이제 정말 돈이 다 떨어진 시점에 하는 마지막 시도였기 때문에 압박감도 컸지만요. 다행히 프로덕트를 실제로 출시했죠. 

대기자 명단에 있던 30,000명 가량을 고객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할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앱에 등록한 고객은 40명 또는 50명 뿐이었어요. 

'30,000명 중에 40명 또는 50명이라니…?'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죠. 어떻게 수만 명이 관심을 가졌던 프로덕트임에도 몇 명만 결제하게 만들었을까? 이래저래 걱정스러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고객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들과 가까워지며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서 점차 더 많은 고객 기반을 쌓을 수 있었죠.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심오한 프레임워크라기보다는 고객 중심 마인드셋일 뿐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미션을 계속 실현할 수 있을지, 고객들의 말을 계속 듣고 그들에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조금 더 공식적인 프레임워크가 있었는데, 저는 사이먼 시넥의 <무한 게임>(The Infinite Game)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서는 각 사업의 책임을 다음과 같은 구조로 설명했어요.

  1. 정당한 미션을 추진하는 것. 즉, 세상에 10배 더 많은 가치를 주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웹플로우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소프트웨어로 10달러를 벌 때, 우리 고객은 아마도 1,000달러를 벌고 있었죠. 그들은 웹플로우를 사용해서 고급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자기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2. 비즈니스 결정을 내릴 때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것. 팀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을 어떻게 이 생태계 속에 초대하고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단지 회사 내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사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야 했어요. 우리의 비즈니스 구조를 어떻게 만들고, 그 구조가 사용자와 지역사회,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깊이 생각하고 그에 맞춰야 했죠.
  3. 세 번째 책임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일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예요. 즉,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미션을 계속 발전시키고,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야 했죠.
     

저는 초창기부터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우리의 미션을 계속 추진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웹 개발의 힘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죠. 

이때 항상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었어요.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들을 채용하고 회사 내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었죠. 결국, 고객을 생각하는 것과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팀을 생각하는 것이 (리더로서) 가장 중요했어요. 나머지 모든 것은 세부사항일 뿐이에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과 확장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항상 중심에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고객과 우리의 미션을 위해 존재하는 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 

 

출처 : EO Global

 

가장 큰 동기부여는 이 아이디어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에요. 또 다른 동기부여는 제가 9살 때 가족과 함께 난민으로 이곳에 왔고, 3년 동안 복지 혜택을 받으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셨고,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어떤 직업이라도 제가 소련에서 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 성공했다고 느꼈죠. 남들이 우러러보는 엔지니어링 직무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돈을 더 벌겠다는 갈망은 없었어요. 그저 제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을 찾고 있었죠. 

그게 제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금전적 또는 재정적인 결과를 더 끌어올릴지 고민하지 않았어요. 이미 제 삶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는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로는 어떻게 하면 이걸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를 주로 추구했죠. 이걸 비즈니스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만 집중한 셈이에요.

웹플로우를 시작할 때, 네 번째 도전에서도 사실 우리 팀은 3~4명이 조그마한 제품을 만들고 점점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면서 작은 에이전시를 운영할 거라고 짐작했어요. 모두 한 테이블에 앉아 프로덕트를 만들었죠. 그런데 결국 그 아이디어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커졌어요. 계획된 일이 아니었고, 그냥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전달하려고 한 결과였어요.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창업자로 사는 것

가장 좋은 조언은 스타트업을 시작하거나 아이를 낳기에 완벽한 때는 없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언제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웹플로우 팀이 시작될 때, 저는 투자자나 어드바이저들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 부모가 되면서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사실이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동시에 두 가지를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추세가 되어가는 걸 보게 돼 기쁩니다. 

 

출처 : EO Global

 

두 가지를 모두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아마도 제가 아이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회사 문화가 형성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일하고, 훌륭한 복지를 제공하며,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 함께 일하게 되었어요. 그들은 대체로 경험이 더 많은 사람들이었죠. 신입 졸업생들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요. 

물론 (이런 팀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확실히 어려웠지만, 이 수많은 훌륭한 회사들이 부모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여러 훌륭한 창업자들이 사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녀를 가졌어요. 결국 그들 모두 무사히 해냈다는 점을 짚고 싶어요. 중요한 점은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고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맞추는 거예요. 가족과 일을 둘 다 잘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후에 저와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을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한동안 웹플로우가 셋째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두 아이가 조금 더 자라자,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기도 했죠. 그때는 정말 아이를 더 낳을지 말지 결정하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셋째를 낳은 건) 참 옳은 결정이었어요. 

만약 스타트업을 시작하거나 아이를 갖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거예요.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여러 면에서 매우 보람 있고 충족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이가 있으면 창업하기 불가능하다'거나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절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 않아요. 

어차피 (본인이 만족할 만큼) 안정될 때까지는 절대 안정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정리된 완벽한 때는 없어요. 그러니 인생에서 정말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추구하세요. 보통 두 가지, 창업과 가족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원하고 필요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 웹플로우의 공동 창립자이자 대표인 블라드 막달린(Vlad Magdalin)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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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eo · 에디터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용기를 얻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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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본인이 만족할 만큼) 안정될 때까지는 절대 안정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정리된 완벽한 때는 없어요. 그러니 인생에서 정말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추구하세요"

정말 와닿는 말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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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stib.ee/lcoG
워드프레스에서 Webflow로 갈아타서 5년째 만족하며 잘 사용중입니다
대표 마인드가 좋네요
계속 잘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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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eo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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