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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걸 잃은 순간,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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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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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쿠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식감, 잔뜩 씹히는 초콜릿, 그리고 입안에 오래 남는 달콤함. 보통은 1~2개만 먹어도 든든한 묵직한 간식일 겁니다. 하지만 Tate’s Bake Shop을 지금까지 사랑받은 초콜릿 쿠키는 전혀 다릅니다. 얇고 바삭하며, 고소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이 특징이죠.

오늘은 이 쿠키로 시작해 연 매출 약 1억 8,000만 달러(한화 약 2,500억 원)를 만들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미국 내 주요 마트 10곳 중 7곳에서 판매되며, 글로벌 시장까지 섭렵한 Tate's Bake Shop의 창업자 캐슬린 킹(Kathleen King)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녀는 어떻게 1980년대 대량 생산 쿠키의 늪에서 벗어나, 프리미엄 수제 쿠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창업자 캐슬린 킹(Kathleen King)의 Day 0, 1960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남다른 쿠키를 굽던 초등학생, 고객을 사로잡다 : 집 앞 가판대의 첫 판매
2. 식어도 맛있다? 모두가 놀란 작은 쿠키의 반란 : Kathleen's Bake Shop을 열다
3. 내 손으로 만든 쿠키, 내 손으로 잃다 : 남은 건 해고, 30만 달러의 빚더미
4. 모든 걸 잃은 42살, 절망 끝에서 다시 반죽하다 : Tate's Bake Shop의 출발점
5. 젊은 시절도 반죽해낼 수 있을까? : 실패 끝에 깨달은 균형

1. 남다른 쿠키를 굽던 초등학생, 고객을 사로잡다 : 집 앞 가판대의 첫 판매

뉴욕 롱아일랜드 사우샘프턴 근처, 노스 시 팜스(North Sea Farms)라는 큰 농장에서 캐슬린은 네 남매 중 막내로 자라났습니다. 축구장 17개를 합친 만큼 넓은 땅에서 소 30~40마리를 키우며, 아이들 또한 달걀을 모으고 채소를 따며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일상과 같았습니다.

집 앞마당에는 가판대가 있었습니다. 채소와 달걀, 그리고 쿠키를 구워 판매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쿠키를 팔아 내년 학교 갈 옷을 직접 사렴”이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쿠키 판매는 캐슬린의 몫이 되었습니다.

11살 소녀는 Nestlé 초콜릿칩 봉지 뒷면의 Tollhouse 레시피를 보고 쿠키를 만들었습니다. 그대로 따라 해도 대견했을 텐데,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달라야 팔린다.” 그래서 성인 손바닥만 한 거대한 쿠키를 구웠습니다. 맛있고 큰 쿠키는 금세 입소문을 탔고, 이 쿠키만을 사러 오는 손님까지 생겼습니다. 내향적인 그녀에게 쿠키 굽기는 꼭 맞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름방학마다 하루 10시간씩 주방에 서 있었고, 그 수입으로 결국 첫 차까지 스스로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판대만에서 판매할 순 없는 노릇이었죠. 대학에 다니면서도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여름이면 다시 돌아오는 딸에게 어머니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번 여름이 여기서 쿠키를 굽는 마지막이 될 거야.”

독립심을 중시하던 부모는 딸이 스스로 자립할 길을 열어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980년 5월, 캐슬린 킹의 첫 번째 제과점 ‘Kathleen’s Bake Shop’이 문을 열었습니다.

 

2.식어도 맛있다? 모두가 놀란 작은 쿠키의 반란 : Kathleen's Bake Shop을 열다

첫 여름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가족들이 그녀의 시작을 도왔고, 지역 특성상 여름이면 휴가지 손님들로 북적였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뉴욕타임스의 음식 칼럼니스트 플로런스 패브리컨트가 가게를 찾았고, 쿠키에 만족해 신문에 소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호황의 여름이 끝나고 사람들이 떠나자 가게는 점점 한산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쉴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이 상황이 계속되자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쇼핑백에 쿠키를 담아 들고 뉴욕 시내로 직접 나갔습니다. 단골 손님들이 자주 들른다는 고급 식품점을 기억해 두었다가 Balducci, Zabar’s, Dean & DeLuca 등을 차례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다음 주에 100봉지 가져와 보라”는 허락을 받기도 했고, “이런 쿠키는 우리 엄마도 구워”라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쿠키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여름 외 전부 비수기였던 사우샘프턴에서 살아남을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트 진열대 위 테이트 베이크 샵 쿠키 (출처 : 구글이미지)

선택지가 넘치는 뉴욕에서 그녀의 쿠키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언제나 뻔함 속에서 돋보일 요소를 고민했습니다. 11살 가판대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당시 1980년대는 대량 생산된 프랜차이즈 쿠키가 주류였습니다. 그 속에서 고급 버터와 직접 만든 홈메이드 쿠키를 마트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발견’이었습니다. 또 그녀는 고객들을 관찰하며 원하는 쿠키를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끊임없이 수정했습니다. 모든 걸 크게 넣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작고 바삭하면서도 식어도 맛있는 쿠키를 만들었습니다. 또 그녀만의 평가 기준도 있었습니다.

직원이 시식을 하고 “맛있다”고만 말하고 돌아서면 실패, 하지만 다시 와서 한 입 더 먹는다면 성공.

 

3.내 손으로 만든 쿠키, 내 손으로 잃다 : 남은 건 해고, 30만 달러의 빚더미

캐슬린 킹 (출처 : 구글이미지)

캐슬린 베이크 샵은 1990년대 초반 연매출 300만 달러(약 30억 원)를 올리며 소규모 베이커리로서는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기위해 그녀는 20년 동안 주 6일, 하루 18시간을 일했고 그렇게 40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여유와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이었죠.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운영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녀는 회계사인 밥 웨버(Bob Weber)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그는 “형인 케빈 웨버(Kevin Weber)도 함께”라는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당시 합의한 자세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분은 각자 1/3씩, 두 형제는 사업 확장을 맡고 캐슬린은 대표로서 운영을 지속한다. 그리고 약 90만 달러의 대금은 장기 분할 상환으로 처리한다. 불편한 조건이었지만 그녀는 함께해온 회계사에 대한 신뢰 그리고 부담을 덜고 싶다는 바람을 섞어 이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계약 직후 그들은 돌변했습니다. 버지니아에 공장을 세우더니, 그녀가 제공한 레시피를 무시하고 값싼 재료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품질은 급격히 무너졌고, 애플파이에 사과를 통째로 넣는 수준의 부실한 제품까지 나왔습니다. 급여는 자신들부터 챙기면서 지역 공급업체 대금은 미루는 일이 반복되었고, 캐슬린은 제과점 수익으로 그들의 미지급금을 메워야 했습니다. 제품 품질과 지역 커뮤니티와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겨 온 그녀에게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충돌은 파국으로 향했습니다. 지분 3분의 2를 쥔 웨버 형제는 2000년대 초에 캐슬린을 해고했습니다. 그녀는 수입을 잃었을 뿐 아니라, 회사가 떠안은 60만 달러의 빚 중 1/3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법적 공방 끝에 2000년대 중반 합의가 이루어졌고, 웨버 형제는 ‘Kathleen’s Bake Shop’ 상호를 가져갔으며, 캐슬린은 약 20만 달러의 채무를 떠안았습니다. 그렇게 20년을 바쳐 키워 온 회사와 이름을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 Editor’s note: 웨버 형제는 1999년 경영권과 Kathleen’s Cookies라는 이름을 가져갔고, 대량 생산을 시도했지만 결국 3년 이내에 사라졌다고.

 

4.모든 걸 잃은 42살, 절망 끝에서 다시 반죽하다 : Tate's Bake Shop의 출발점

캐슬린 킹 (출처 : 구글이미지)

한 번의 섣부른 결정으로 치르게 된 대가는 상당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순간이 이어졌습니다. 완전이 바닥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의 나이는 4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든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좌절 속에서 고마운 순간들로 위로 받았고 분노는 오히려 재도약을 위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키워온 사업인 만큼, 사람들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그녀의 편에 서서 격려와 응원을 쏟아냈습니다. 누군가는 빼앗긴 ‘캐슬린 베이크 샵’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또 다른 사람은 관광객들에게는 “이제 이 가게는 테이트라고 불려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순간을 두고 “마치 영화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내 하루를 이 두 사람의 악의에 집중하며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렇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친절함에 집중하며 보낼 수도 있겠구나.

좌절 속에서 감사한 순간을 발견한 것처럼, 그녀는 잃어버린 것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동안 밟아온 길, 바로 그 길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건물의 주인은 캐슬린 자신이었기에, 같은 자리에서 제과점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Tate's Bake Shop’. 지역성과 진정성, 그리고 친절한 이미지를 담고자 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별명 ‘Tate’를 붙여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테이트 베이크 샵과 캐슬린 킹 (출처 : 구글 이미지)

여름 성수기 전 가게를 열기 위해 캐슬린은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다시 필요한 자금은 가게를 담보로 마련했습니다. 이전처럼 매장에서 직접 베이킹을 하고, 도매 납품도 했지만, 큰 상실을 겪은 후에는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과거 그녀는 스스로의 성공과 브랜드에 깊은 애착을 가지며, “나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사람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상실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이제는 ‘포기하는 법’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본능만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캐슬린 베이크 샵을 운영하던 시절의 저라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재앙이, 결국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됐죠.

그녀는 비즈니스 초반부터 수익 구조를 제대로 세우기로 결심했고, 적합한 인재를 영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즈니스 매니저 마이클 네이미(Michael Namie)를 고용했습니다. 그는 제품별 수익률을 분석하며 이윤이 남는 제품에 집중하도록 도왔고, 캐슬린은 단순한 생존형 운영이 아닌 비즈니스로서의 성장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 초반 캐슬린은 과거의 ‘캐슬린 베이크 샵’을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앞서 만들었던 차별화된 쿠키에서 다시 한 번 차별화를 시도해야 했고, 롱아일랜드와 뉴욕시 전체의 유통망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20년간 거래했던 업체조차 ‘Tate’s’라는 새 이름을 단 그녀를 처음 만난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뒤이어 식품 업계를 지배하는 대기업과도 경쟁해야 했습니다. 선반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형 유통망을 뚫어야 했죠. 뛰어난 영업가였던 마이클은 계약 협상을 도왔고, 초창기처럼 직접 트럭으로 쿠키를 배달하며 특정 지역에서 브랜드를 키워갔습니다. 점차 Whole Foods, The Fresh Market 같은 중대형 고급 유통망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테이트 베이크 샵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때 학교였던 폐건물을 매입해 쿠키 공장으로 개조했고, 그곳에서 하루 150만 개의 쿠키를 찍어내며 전국으로 유통했습니다. 매년 30% 이상 성장하는 프리미엄 쿠키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방송 Cooking Across America에도 소개되었고, Consumer Reports에서는 ‘최고의 쿠키’로 선정되며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즈음 캐슬린의 나이는 55세. 사실 그녀는 42세에 다시 시작할 때 이미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퇴출 전략’인데요.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우되, 55세가 되면 반드시 삶의 균형을 찾기로 다짐했던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키워가며 그녀와 마이클은 이 문제를 끊임없이 논의했습니다. 마침내 때가 왔다고 판단했고, 그녀는 준비된 자세로 매각에 임했습니다.

테이블 위의 1센트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했어요.

출처 : 구글이미지

2014년, 그녀는 프라이빗 에쿼티 회사 리버사이드(Riverside)에 지분 80%를 매각했습니다. 매각 금액은 무려 1억 달러(1,350억 원). 그리고 불과 4년 뒤, 리버사이드는 테이트 베이크 샵을 오레오를 만드는 거대 식품기업 몬델리즈(Mondelez)에 **5억 달러(약 6,750억 원)**에 재매각했습니다.

이 인수로 테이트 베이크 샵은 몬델리즈의 글로벌 유통망과 자금력을 만나 더욱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인수 후에는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며 프리미엄 쿠키 시장의 입지를 굳혔고, 2023년 기준 **연매출 1억 8,0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기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캐슬린은 계획대로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세운 품질에 대한 집념과 브랜드 스토리는 여전히 테이트 베이크 샵의 핵심 가치로 남아, 업계 안팎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5.젊은 시절도 반죽해낼 수 있을까? : 실패 끝에 깨달은 균형

캐슬린은 ‘쿠키’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열정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본능은 삶 속에서 양날의 검이 되었습니다. 20년을 바친 회사를 잃은 뒤, Tate’s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회사에 자신의 피를 전부 쏟지 않겠다고. 뒤돌아보니 가장 아쉬웠던 건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젊음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이루려면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젊음을 불태우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평가받곤 하지요. 하지만 캐슬린은 말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정말 밤낮없이 몰입해야 하죠. 하지만 그런 몰입이 “나만큼 이걸 잘할 사람은 없어”라는 집착이 된다면, 그 사람을 가둬버려요.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일정 기간의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라는 것. 그 균형은 내가 하는 일 속에서도, 또 일과 내 삶의 관계 속에서도 존재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판단력을 잃고, 그것이 집착으로 자라나지 않도록 내려놓는 용기. 때론 도움을 청하거나,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달리던 발을 잠시 멈추고 균형을 잡기 위해 주변을 돌아본다면, 그 멈춤의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끌어 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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