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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풀고 싶은 문제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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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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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을 어떻게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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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침마다 누가 두드려 팬 것처럼 등이 아파왔습니다. 자세도 바꿔보고 리뷰가 좋다는 베개도 사봤지만 통증은 그대로였고요. 그러다 브런치 매거진에서 수면브랜드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저와 똑같은 증상을 오래 앓던 두 사람이 쓴 글이었어요. 제품 리뷰도 없고 가격조차 적혀 있지 않았어요. 대신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매트리스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빼곡히 기록해놨더라구요.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써두었죠. “체험관에 들러 직접 누워보시라”고요.

그 글을 쓴 두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재원 대표는 주말도 명절도 없이 일하다 불면증과 공황장애로 무너졌어요. 약을 먹으며 하루 종일 천장만 보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박형준 COO는 다니던 회사가 두 번 연달아 문을 닫는 동안 잠을 잃었고요. 두 사람을 다시 일으킨 건 우연히도 같은 물건, ‘매트리스’였습니다.

2024년, 두 사람은 수면브랜드 슬립부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을 내놓는 기준은 하나였어요. 등과 허리가 남달리 예민한 둘이 “직접 누워보고, 한 명이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내놓지 않는다”. 눈높이를 시중 최고가 제품 수준에 두다 보니 받아줄 공장부터 드물었고, 만들고 누워보고 폐기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창업 10개월 차까지 매출이 없어서 두 사람 다 월급을 못 가져갔고요. 그렇게 만족할만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버틴 끝에 지난 6월, 불경기 한복판에서 1,000번째 고객을 맞이했습니다.

그럼 슬립부스터 이재원 대표와 박형준 COO의 Day 0로 함께 돌아가 보시죠.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잠을 잃었던 두 사람
2. 타인의 미션과 나의 미션
3. 예민함이라는 무기
4.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1. 잠을 잃었던 두 사람

*이재원 대표 = ‘이’, 박형준 COO = ‘박’으로 표기

 

Q. 먼저 재원님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스무 살의 이재원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 생존하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부족한 것 없이 자랐는데, 아버지가 일찍 퇴직하시면서 하필 크게 벌였던 주식 투자까지 실패했고, 어머니가 하시던 일도 잘 안 됐어요.

집이 어려워지면 나타나는 게 있거든요. 부모님이 엄청 싸워요. 화목했던 집이 갑자기 기울면서, 맨날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

그걸 보면서 진로를 고민할 때 그냥 내가 혼자 알아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고3 때부터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스무살에는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바로 취업을 준비했어요.

 

Q.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잡은 일이 휴대폰 대리점 판매였어요. 왜 하필 그 일이었을까요?

이: 그때는 진짜 생존이었어요. 제가 가진 스펙으로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게 휴대폰 대리점 판매였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대리점이 몰려 있는 ‘성지’ 같은 데를 돌면서 상담을 일단 다 받아보고, 세일즈와 상담을 제일 잘하는 매장에 지원서를 넣어 들어갔어요.

 

Q. 거기서 판매 1등을 하면서 월 1,000만 원 넘게 버셨는데, 결국 그만두셨어요. 그만큼 버는 자리를 놓는 게 아깝지 않으시던가요?

이: 웃기게도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그게 어느 정도 충족되니까 ‘내가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림이 잘 안 그려졌어요.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너무 뻔한 미래에 가슴도 안 뛰고 재미도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를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봤어요. 사실 저는 사업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절대 하지 말라고 한 게 주식이랑 사업, 두 가지였어요. 사업하면 무조건 망한다고요. (웃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려면 결국 사업을 해야겠더라고요. 대학을 안 갔으니 먹고살려면 어학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원래는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어요. 그러다 마음 정리하러 간 제주도 여행에서 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를 만났는데, 사업 얘기를 하다가 친해져서 겁도 없이 첫 창업을 시도했죠. 물론 금방 망했고, 그러고 일을 제대로 배워보자 하고 들어간 곳이 스타트업이었어요.

 

Q. 스타트업에서 처음 맡은 자리는 CS 인턴이었어요. 대리점 판매 1등에서 다시 막내가 된 셈인데, 어떤 마음으로 일하셨어요?

이: 제가 원래 자존감이 진짜 낮았거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좋은 대학 나오고, 영어도 잘하고. ‘왜 나는 저렇게 못 했을까’라는 열등감이 되게 많았어요.

그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건 더 열심히 하고, 성과 내는 것에 더 집요하게 구는 것뿐이었어요. 그것만이 나를 증명할 수 있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죠. 그래서 주말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런 태도를 대표님과 동료들이 인정해줬을 때, 솔직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Q. 그때 붙잡은 일이 리뷰콜*이었어요. 모두가 꺼리는 일을 일부러 파고드셨는데, 거기에 계산이 있었을까요?

이: 그게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선택은 아니었던게, 사실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나도 기획하고 싶었죠. 나도 회사에서 중책을 맡거나 중요한 일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게 없고, 잘 모르는데 어떡하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건 고객들 만나서 얘기 잘 듣는 거니까, 그거라도 잘해야지 했던 거예요.

근데 고객이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잖아요. 이 사람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에 어떤 서비스를 이용했고, 그 경험이 어떠했는지. 그걸 제일 빨리 아는 방법이 리뷰콜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거였어요.

초창기 스타트업에서 그런 일은 보통 전부 CS 업무잖아요. 다들 기획 같은 더 멋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CS 업무는 잘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고객 분들을 직접 만나다 보니까, 나중에는 고객 입장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획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결국 그게 회사에 매출을 많이 가져다 주게 됐죠.

*리뷰콜: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용 경험과 후기를 듣는 일

CS 인턴으로 입사한 홈서비스 스타트업 ‘미소’ 재직 시절 이재원 대표
CS 인턴으로 입사한 홈서비스 스타트업 ‘미소’ 재직 시절 이재원 대표

📒 Editor’s Note: 리뷰콜이 매출로 바뀐 건 전화 한 통에서였다.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는 고객에게 이재원 대표는 대리점에서 영업하던 버릇대로 물었다. “만족하셨으면 다음 서비스도 신청해 드릴까요?” 고객은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정기 고객 한 명이 추가됐다. 그날부터 이 대표는 만족했다는 고객마다 같은 제안을 했고, 나중에는 불만을 표하는 고객에게도 제안했다고 한다. 의외로 꽤 많은 인원이 정기 고객으로 전환됐다고. 정기 고객 지표가 띄게 움직이자 대표가 원인을 분석하다가 당시 인턴이었던 이 대표의 성과라는 것을 알게됐고, 얼마 뒤 회사 전체가 같은 업무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던 업무가 그 회사를 1년 만에 업계 1등으로 올린 영업전략이 됐다. 고객을 직접 만나는 자리를 파고들어 다음 수를 찾는 방식은 이후 옮긴 회사들에서도 되풀이됐다. 그렇게 CS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트업 임원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재원 대표의 브런치 매거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Q. 커리어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이루셨어요. 그때의 마음을 돌아보면 어떠셨나요?

이: 마음 속에서는 대학도 안나오고, 경험도 많이 없다보니 열등감이 높아서 항상 외통수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삐끗하는 순간 나는 망한다.’ 성과가 안 나오면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지’, ‘주변에서 나를 더 이상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무도 저한테 그런 걸 강요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거기에 잡아먹혔어요.

성과가 잘 나와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거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닌가, 저 사람들이 잘난 건데 내가 묻어간 게 아닐까.’ 그러한 의심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도 계속됐어요.

그러다 불면증이 오고, 공황장애까지 왔죠. 어렸을 때는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이번에는 제 머릿속에서 맴도는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하게 된 거예요.

 

Q. 이번에는 형준님 차례로 넘어가 보죠. 형준님의 사회생활 출발점이 축구였다고요?

박: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시키는 대로 수능 치고.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우울증이 크게 와서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저를 다시 일으켜준 게 축구였어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서 팀을 만들게 됐는데, 약체팀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회 준우승까지 하게 된거에요.

그때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남들 토익 공부할 때 저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있어서 선수는 이미 글렀으니 지도자가 돼서 더 많은 사람이 축구를 즐기게 만들어보자 싶었죠. 그래서 취업 준비를 위한 첫 단계로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 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어요.

근데 올라오니 당장 먹고살 길이 없잖아요. 경기 영상 분석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주말에는 K리그가 주최한 아카데미를 들었어요. 그렇게 해도 생활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작은 스포츠 스타트업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그게 제 스타트업 커리어의 시작이 됐어요.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다던 시절, K리그 축구산업 아카데미 수료식에서 박형준 COO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다던 시절, K리그 축구산업 아카데미 수료식에서 박형준 COO

📒 Editor’s Note: 박형준 COO의 대학 전공은 ‘고고학’이었다. 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면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추론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본인이 설명해줬는데, 이 추론법이 제품 만드는 일에도 그대로 통한다는 걸 한참 뒤에 알게 됐다고.

 

Q. 다섯 명이 전부인 회사였다고요. 거기서는 어떤 일을 맡으셨나요?

박: 두 가지를 맡았어요. 하나는 지역아동센터에 나가서 스포츠 수업을 하는 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오는 방과 후 학교 같은 곳이거든요. 다른 하나는 그런 센터에 사회공헌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한테 CSR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제안하는 일이었어요.

아이들 수업을 직접 짜서 코칭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제가 짠 기획을 큰 회사가 받아들여 실제로 진행될 때가 제일 보람 있었어요. 그 무렵부터 스타트업에서 누군가의 문제를 푸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일에 재미를 붙여가던 참에, 다니던 회사가 두 번 연달아 문을 닫았습니다.

박: 상황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스스로한테 실망을 많이 했어요. ‘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왜 내가 가는 회사는 다 잘 안 되지’.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고, 마음이 쓰이니까 시간이라도 갈아 넣자 싶어서 밤새 작업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또 일하고. 그게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잠드는 게 힘들어졌어요. 자고 일어나도 의욕이 없고요. 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제일 약했던 시기였죠.

 

Q. 재원도 비슷한 시기에 바닥을 찍으셨습니다. 그때 잠이 어디까지 망가졌고, 어떻게 빠져나오셨나요?

이: 불면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오고 우울증까지, 3단 콤보를 맞고 인생에 없던 바닥을 찍었어요. 돌아보면 잠을 무시하면서부터였어요. 주말도 명절도 없이 일했고,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도 안 자고 일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새벽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못 자니까 몸이 먼저 무너졌어요. 이명이 들리고, 한쪽 귀가 안 들렸어요. 80킬로였던 몸무게가 70킬로까지 빠졌고요. 몸이 상하니까 정신도 금방 따라가더라고요. 결국 약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던 시기가 왔죠. 그때 알았어요. 이게 생존의 문제라는 걸. 이겨내보려고 수면 환경 바꾸는 것부터 명상, 영양, 운동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근데 제 인생에서 매트리스가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매트리스를 하나 바꾸고 잠깐 누웠는데, 금방 잠든 거예요. 자고 일어났는데 너무 개운하고. 저한테는 그렇게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 없던 일이었어요. ‘잘 자고 일어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때 너무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Q. 형준님은 그 시기에 잠이 어떠셨어요? 꺼내준 것도 결국 같은 물건이었다고요.

박: 회사 두 개가 연달아 망하고 나서 불면증이 크게 왔어요. 그전엔 얇은 토퍼를 깔고 잤는데, 아침마다 등을 두들겨 맞은 것 같았거든요. 정신적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자고 일어나면 몸까지 죽겠는 거예요.

극복해보려고 조명도 바꾸고 생활 습관도 손보고 다 해봤어요. 그러다 여행을 갔는데 그 숙소에서의 침대가 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매트리스부터 바꿨더니 수면의 질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혼자 살던 형편에 100만 원 가까운 매트리스는 큰돈이었지만, 누가 “10년 안에 산 물건 중 제일 잘 산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그 매트리스를 얘기했어요.

 

💡 Insight Note

사람이 가장 깊이 이해하는 문제는 자기를 가장 힘들게 했던 문제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잠을 잃었고, 매트리스 하나로 하루가 달라지는 걸 직접 겪었다. 슬립부스터는 그 경험에서 시작됐다.

→ 지금 당신이 앓고 있는 문제 중에서, 직접 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는 문제는 없을까요?

 

2. 타인의 미션과 나의 미션

📒 Editor’s Note: 두 사람의 커리어가 한 회사에서 겹쳐진다. 이재원 대표를 바닥에서 다시 일으킨 매트리스를 만든 수면 스타트업 S사다. 이재원 대표가 먼저 회사에 합류해 성장을 이끌었고, 박형준 COO는 이후에 세일즈 담당자로 들어왔다.

 

Q. 슬립부스터를 보면 미션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그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 느낀 곳도 S사였나요?

이: 솔직히 그전까지 저한테 미션이라는 게 없었거든요. 하고 싶은 걸 해내겠다는 고집만 있었죠. 그게 왜 필요한지 처음 느낀 곳이 S사였어요. 월 매출 1억도 안 나오던 회사가 2년도 안 돼서 연 100억을 찍었거든요.

숫자가 좋아지면 나머지도 따라올 줄 알았어요. 회사에 돈이 도니까 팀원들 보상도 복지도 여유 있게 챙겨줄 수 있게 됐고요. 근데 사람들 마음은 생각만큼 한곳으로 모이지 않더라고요. 각자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이걸 왜 같이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달랐어요.

그때 알았어요. 보상이나 안정적으로 보이는 회사의 모습만으로는 사람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안 만들어진다는 걸요. 빠르게 크는 조직일수록 그 이유를 계속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게 ‘미션’이더라고요.

 

Q. 그다음에 합류한 데이팅 서비스 회사 큐피스트는 정반대였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달랐죠?

이: 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달랐죠. 제가 큐피스트의 안재원 대표님을 멋있어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있어요. 진짜 자기 미션대로 사는 분이거든요. 본인이 좋아하는 서비스만 만들고, 그걸 누구보다 열심히 씁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결핍이 있는 분이라 그 마음을 서비스에 잘 녹여내는 거죠. 대표가 그 정도로 몰입해 있으니까 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요. 계속 좋은 결과가 나오고, 뭘 해도 1등이 되고요.

큐피스트 재직 시절 이재원 대표
큐피스트 재직 시절 이재원 대표

 

Q. 그 회사에서는 보상도 동료도 다 좋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결국 나오셨어요.

이: 네, 진짜 다 좋았어요. 대표님은 제가 요구하기 전에 보상을 먼저 챙겨줬고, 팀원들도 너무 좋았고요.

근데 유일하게 딱 하나가 걸렸어요.

… 

👉 이어지는 인터뷰 전문은 데이제로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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