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의 글로벌 사업은 2020년 영국에서 시작하자마자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표류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가을, 당근은 해외 사업과 관련해 온라인 광고를 모두 끄고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위기의 상황에서 김용현 당근 창업자 겸 공동 대표는 캐나다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 2022년 토론토로 이사를 갔고, ‘캐롯(Karrot)’이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했죠.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그는 창업가이자 사업가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어요. 결과적으로 그는 캐롯 캐나다로 2025년 2월 기준 누적 가입자 2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김용현 대표의 창업자 정신은 그의 어록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크리스 주크(Chris Zook)의 책 <창업자 정신>을 기반으로 김용현 대표의 말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시를 통해 성장하는 기업의 방향성을 잡는 데 기여하는 창업자 정신이 무엇일지, 나는 ‘창업자 정신’에 비춰볼 때 어떤 창업자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 힌트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아티클 네비게이션]
- 창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반역적 사명의식, 현장 중시, 주인의식
- 반역적 사명의식 - ‘적당한 효율화가 아니라 판을 뒤엎어야 합니다
- 현장 중시-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는 비전이 성공합니다
- 주인의식 - ‘주도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창업까지 하는 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창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반역적 사명의식, 현장 중시, 주인의식
크리스 주크는 장기간 수익을 내며 성장한 기업들의 공통점이 직원들 모두가 사명과 초점을 명확히 알고 있고 복잡성과 관료주의를 거부하며 전략을 명확하게 실행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 방식의 뿌리가 대개 창업 초기에 방향을 제대로 잡은 창업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그가 정의하는 ‘창업자 정신’입니다.
주크는 창업자 정신의 결정적인 특성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았고 하위 특성도 각각 세 개씩 정의했어요.
- 반역적 사명의식
- 대담한 임무
- 비 타협성
- 무한한 지평현장 중시
- 현장 중시
- 현장 직원 중시
- 개별 고객 중시
- 사업의 세부 사항 중시
- 주인의식
- 관료주의 배척
- 행동 지향
- 강력한 비용 절감
기업이 성장할 때 조직과 체계가 복잡해지기 마련인데요. 주크는 이것이 불가피하지만 언젠가 소리 없이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면서, 조직 전반에 자리잡은 창업자 정신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요.
반역적 사명의식 - ‘적당한 효율화가 아니라 판을 뒤엎어야 합니다’
반역적 사명의식이란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기존 시장의 규칙을 재정의하고 판을 바꾸어 고객의 니즈를 해결하려는 창업자 정신의 핵심이 변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입니다. 또 기업이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것을 넘어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려는 사명감이기도 해요. ‘우리 조직이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과감하게 제시하고 이끄는 리더십이죠.
이에 관해 당근의 글로벌 진출을 예시로 생각해 보면, 김용현 대표의 다음과 같은 어록에 주목해봄 직합니다.
“한국 IT 기업 발전 과정을 보면 우리 세대에 주어진 숙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서비스로 성공하는 거라 생각해요. 골프의 박세리 선수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처럼 한번 사례를 만들면 수많은 도전자와 성공 기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처음 길을 닦는 것이 어렵고 외롭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4/05/15, 중앙일보 인터뷰)
창업자들은 미래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판을 뒤엎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김용현 대표도 앞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IT 스타트업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갖고 글로벌 진출을 강행했습니다.
“10년 뒤 당근은 북미 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에서 모두 사업을 하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회사가 되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돈을 잘 버는 국내 회사로 머물기보다는 글로벌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가 되어 한국 스타트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회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3/09/25, 당근 CEO 인터뷰)
김용현 대표는 기업 가치 3조 원 이상의 유니콘 창업자인데도 여전히 돈을 벌면 어떻게 글로벌 확장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당근이 2019년 ‘수익성 없는 플랫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을 때도 끊임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영국 시장에 진출하고야 말았죠.
그는 창업자로서 해외에 새 판을 깔고자 했던 것입니다. 국내에서 적당히 효율화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는 해외에서 제로베이스로 시작해 당근을 지금보다 5배, 10배 확장시켜서 광고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려 합니다.
“글로벌 흑자 전환은 10년, 어쩌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하면 지금 하는 광고 모델만으로도 매출을 10배 이상 올릴 수 있습니다. 삼성, 현대가 처음 글로벌에 투자할 때도 ‘미친 짓’처럼 보였지만 오너의 의지로 (결국) 해냈습니다.” (2023/09/25, 중앙일보 인터뷰)
창업자들은 남들이 안된다고 할 때 오히려 ‘go’를 외치는 고집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를 갖고 있어요. 보통 컨트래리언(contrarian)이라고 불리는 특성이에요.
그래서 종종 다른 사람들은 창업자들의 의지와 결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미친 짓’이라고 해요. 하지만 창업자들은 오히려 이를 통해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기도 합니다.
(참고 : 10명 중 6명이 반드시 다시 찾는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현장 중시-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는 비전이 성공합니다’
창업자 정신에서 현장을 중시한다는 것은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얻은 통찰을 기업 운영에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기업의 규모가 커져도 일선 직원들과 고객의 목소리를 경영 전략에 포함할 때 그 의미가 더 커집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창업자의 고집이 스타트업의 한 끗 차이를 만드는 셈이죠.
“제품 측면에서 보아도, 로컬의 가치에 집중하는 서비스가 글로벌에서 그렇게 많지 않아요. 구글맵 정도가 있는데, 지도 혹은 배달 등의 서비스를 떠나서 당근처럼 ‘로컬 시장’에 집중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당근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2023/09/25, 당근 CEO 인터뷰)
(현장을 중시하는 창업자 정신에 비춰봤을 때) 당근 김용현 대표가 몰입했던 또 하나의 키워드는 ‘로컬’입니다. 당근에게 로컬은 사람 사이의 연결이기도 해요. 그가 고객에게 궁극적으로 선사하고자 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또 당근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찾은 보편적인 가치이기도 해요.
“동네 주민과 더 잘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입니다. 당근마켓은 기술로 사람과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언택트 시대에 지역 공동체와 이웃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서비스입니다.” (2021/10/27, 전자신문 인터뷰)
창업자들은 이렇게 ‘진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의 근본적인 니즈를 찾는 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물론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죠.
따라서 김용현 대표는 로컬에서의 연결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일단 당근 서비스 자체가 사용자 위치 기반이기 때문에 내재적으로 개별 고객의 상황에 따라 니즈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용현 대표는 당근마켓 서비스 초기에 중고 거래 사용자의 니즈를 세부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사용자들이 실제로 중고 거래를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있고, 중고 거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당근마켓 팀에서 하는 노력들은 모두 따뜻한 거래 경험을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동네에서 따뜻한 거래를 경험한 사용자들은 기존의 차갑고 의심 많은 택배 거래 경험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는 결국 서비스 리텐션과 트래픽으로 돌아오고 당근마켓의 플라이휠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8/12/02, 김용현 대표 미디엄 블로그)
주인의식 - ‘주도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창업까지 하는 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인의식의 경우,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구성원들은 모두 창업자처럼 생각하고 독려받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창업자 정신이에요. 이는 강력한 책임감과 함께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가 전체의 성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이해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창업자들은 기업의 특성에 따라 구성원들이 ‘어떤 주인의식’을 가지면 좋을지 고민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주인의식을 불어 넣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창업하면 어떤 식으로든 5~10억 원 가량이 들기 마련인데, 카카오에 다닐 때 받은 스톡옵션으로 그걸 충당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 덕에 직원들에게 주식을 많이 나눠주고 있어요. 잘 되면 창업을 하시라면서요.
직원을 채용할 때도 기업가 마인드가 있는 분들을 선호합니다.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분보다는 정말 회사에 들어와서 해보고 싶은 게 있는 분이 오셔서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으로 창업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회사의 성장을 직원들과 나누는 게 사풍(社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20/08/16, 동아일보 인터뷰)
당근은 2022년 5월 전 임직원에게 근무 개월 수에 비례해서 1인당 평균 5천만 원 상당의 회사 주식을 증여했어요. 행사 기간에 대한 별도 구속력이 없이 바로 행사 할 수 있는 주식이었기 때문에 더 주목 받았죠.
당시 두 명의 공동 대표는 구성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말로만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실제 주주(株主)가 되어 진정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하게끔 성과를 나눈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어요.
그렇다면 당근만의 주인의식은 무엇일까요. 김용현 대표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게 재미없는 회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회사가 커지면 다양한 이유로 일 자체가 재미없어질 수 있는데 당근은 그런 회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요.
주도성과 일에 대한 몰입, 이 두 가지가 지금까지 당근을 있게 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서비스가 크고 조직이 커진다고 이런 문화가 깨진다면, 곧 회사가 성장한 비결도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2023/09/25, 당근 CEO 인터뷰)
창업자들은 구성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합니다. 그들은 기업의 경영 전략에도 이를 반영해요. 예를 들어 김용현 대표는 ‘글로벌 진출을 해서 더 재밌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죠.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전략을 실행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3명의 개발팀이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발자와 PM, 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단위 팀은 직접 목표를 설정합니다. 경영진과는 분기에 한 번씩 목표 워크숍을 통해 팀의 목표를 회사의 방향에 맞춰 조정하고 보완만 합니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만큼 검증을 철저히 해서 채용 과정도 오래 걸립니다. 당근은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라’고 담당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2021/09/13, 이데일리 인터뷰)
당근은 2023년 기준 436명의 구성원이 1인당 매출 2억9천만 원을 달성했습니다. 이 결과가 전적으로 주인의식을 부여하는 창업자 정신 덕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창업자가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하면 이런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회사가 커져도 일선의 상황을 운영 전략에 포함하고,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게끔 회사를 운영하는 창업자 정신은 기업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시 말해, 창업자 정신은 결국 조직이 어떤 단계에 있든지 방향을 제시하고 원동력이 되는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아티클을 읽고 여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같은 창업자 정신의 특성이라도 각자 어떻게 다르게 발휘했는지, 이외 다른 창업자 정신의 특성이 있다면 무엇일지 등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아가 독자 여러분도 이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 장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