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노하우를 공유한다,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신만이 오래, 다양하게 겪은 경험을 되돌아보고 일반화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플레이북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 남태희 대표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남 대표는 과거 변호사로서 1000개 회사 투자에 관여했고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에는 초기 B2B 스타트업 투자에 중점을 둔 벤처캐피털 회사 스톰벤처스(Storm Ventures)를 설립했어요. 스톰벤처스는 300군데가 넘는 B2B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해서 이중 무려 12곳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남 대표는 이렇게 초기 B2B 스타트업의 성공을 함께하는 투자 파트너로서 이력을 쌓아 왔는데요. 여기에 더해 그는 B2B 스타트업 연쇄창업자 CEO 밥 팅커(Bob Tinker)와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를 공동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는 15년 동안 초기 B2B 스타트업들을 함께 창업하고 운영하고 엑시트까지 시킨 두 사람의 경험담과 함께, B2B 스타트업이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지에 관한 방법론도 담겨 있어요. 남태희 대표는 이 내용으로 현재 강연도 진행 중입니다.
💡 남태희 대표와 밥 팅커의 인연 밥 팅커는 에어스페이스(Airespace)와 모바일아이언(MobileIron)의 창업자이자 대표였습니다. 남태희 대표는 에어스페이스의 창업 CEO이자 투자자 겸 이사회 멤버로, 모바일아이언의 투자자 및 이사회 멤버로 참여했어요. 밥 팅커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번 글에서는 남태희 대표의 B2B 스타트업 성공 플레이북을 자세히 다룹니다. B2B 스타트업 대표, B2B 스타트업 마케팅 및 세일즈 팀을 비롯해 B2B 스타트업 고객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익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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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B2B 스타트업들이 겪는 의문점들
B2B 비즈니스는 B2C 비즈니스와 달리 시의성이나 트렌드에 기대어 성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B2C는 일반 대중들이 열광하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잠재적인 니즈를 예상해볼 수 있지만, B2B 비즈니스의 경우에는 B2C처럼 트렌드에 기반해 고객들이 한꺼 번에 몰려드는 니즈를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이죠. 기업 고객에게는 훨씬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게다가 기업 구매자들은 일반 소비자보다 훨씬 신중해서, B2B 스타트업이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에 진출하기가 복잡합니다. 남태희 대표는 이를 ‘위대하고, 두렵고, 외로운 여행’이라고 표현했어요.
남 대표는 그래서 창업자와 대표들은 초기 B2B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물음표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생기죠.
- 초기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무엇인가요?
- 세일즈를 통해 고객 유치에 한계가 있어서 스케일업에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마케팅과 세일즈 팀의 성과를 파악할 핵심 지표와 기준은 무엇인가요?
- 고객사가 늘어남에 따라 세일즈 팀 규모를 확장할 타이밍은 어떻게 잡나요?
초기 B2B 스타트업들 중 다수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찾은 후에도 앞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아쉽게도) 생존 단계에 머물러 버린다고 합니다. 심지어 ‘제품-시장 최적화(이하 PMF, Product-Market Fit)’를 달성하고도 길을 잃기도 하고요. 다시 말해, 많은 B2B 스타트업들이 PMF 단계(생존)를 넘어도 스케일업 단계(번창)로 전환하긴 꽤나 어렵습니다.
💡 PMF의 의미 스타트업의 제품이 시장의 수요와 완벽히 일치할 때 PMF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
남태희 대표는 B2B 스타트업이 번창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장 진출 최적화(이하 GTM FIT, Go-to-Market Fit)’를 거쳐야 한다고 해요. GTM FIT은 마케팅 팀과 세일즈 팀의 핵심 비즈니스 지표를 연결하고 반복 가능한 성장 환경을 내재화하는 일입니다.
남 대표에게는 밥 팅커 대표와의 경험이 해당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는데요. B2B 스타트업 성장 단계별로 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첫 B2B 고객 10곳과 PMF
B2B 스타트업들에게 “첫 10곳의 고객을 어떻게 확보했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지인, 전 회사에서 확보한 고객, 네트워크, 지인 등이라고 답합니다. 밥 팅커는 (이런 답변들은 물론 사실이지만) 어쨌든 스타트업으로서 누구도 써보지 않은 제품을 누군가에게 권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고 하죠.
그는 “지인에게든, 누구에게든 ‘어떻게 설득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때 설득에 용이한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는데요. 바로 ‘긴급함(urgency)’와 ‘페인포인트(pain)’입니다.
그는 B2B 스타트업들은 다른 회사들이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페인포인트를 풀어내는 솔루션을 만든 것이 맞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야만 그들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듣도 보도 못한 스타트업이 내미는 제품을 써볼 의향을 갖게 된다고요.
나아가 밥 팅커는 일단 고객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단순히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1)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2) ‘어떤 피드백’을 귀담아 들을지, (3) 피드백 수용의 ‘기준’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들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야 고객에게 자사 솔루션을 교육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초기 B2B 스타트업들에게 첫 고객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자사 제품이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고객들은 불만덩어리일 수 있지만, 이때 회사가 고객의 말을 듣고 솔루션을 바로바로 수정하는 등 관계를 잘 쌓으면 PMF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모바일아이언의 예시가 그랬습니다. 남태희 대표는 처음에 30~40곳의 기업을 타깃 고객으로 잡았고 금융, IT, 교육 등 서로 다른 버티컬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연락해서 현재 그들의 비즈니스 상황, 모바일아이언의 솔루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스프레드 시트에 결과를 수집, 분석했다고 해요.
이중 고객 교육 대상이 될만한 스타트업 10~15곳을 추려 베타 버전 솔루션을 사용해보기를 권했어요. 이때 보통의 B2B 스타트업들은 타깃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 피칭을 하는데, 남태희 대표와 밥 팅커는 조금 달랐어요. 그들은 모바일아이언 비즈니스의 핵심만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해요.
- 여러분의 기업에서 스마트폰과 연관된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여러분은 어떤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나요?
- 앞으로 12개월 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여러분은 그에 따라 어떻게 변할까요?
그들은 기업 고객이 느끼는 지금의 페인포인트와 1년 후 페인포인트를 파악하고자 했어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모바일아이언이 제품을 개선하고 기능을 추가할만한, 혹은 다른 제품을 만들만한 가능성이 무엇인지 보기 위함이었고요. 둘째, 타깃 고객 기업들이 자사 페인포인트를 모바일아이언의 솔루션과 연관시켜서 베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밥 팅커는 해당 미팅에 갈 때 주의할 점도 조언했는데요. (1) 미팅은 언제나 잘못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그들의 진짜 페인포인트를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2) 프로토타입을 빌딩해 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모바일아이언은 베타 사용 고객 중 5곳의 유료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PMF라고 봤고요. 이제 ‘진짜’ B2B 기업을 만들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밥 팅커는 이때를 ‘더 큰 물’에서 대기업들과 놀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왜 이 작은 스타트업 솔루션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듣는 시기라고 회상했어요. 그래도 일단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다른 대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써보기 시작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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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F 후 필요한 건 슈퍼히어로가 아닌 GTM
한 B2B 스타트업이 PMF를 찾았고 첫 10곳의 유료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고객들은 모두 솔루션에 만족스러워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창업자들은 이제 ‘번영할 길’을 찾습니다. 많은 투자자와 동료 스타트업 창업자 및 대표들은 이때 “마치 창업자처럼 열정 넘치게 일할 수 있는 영업사원들을 뽑으라”라고 조언하죠.
그러나 ‘사람 몇 명을 채용한다’는 말로 퉁치기에는 모자란, B2B 스타트업 성장의 필수 코스가 있습니다. 해당 단계를 미리 알지 못하면 계획을 잘못 잡게 되고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상황까지 갈 수 있어요. 그러면 조직은 흔들리게 되죠.
B2B 스타트업들이 놓쳐서는 안될 이 단계가 바로 남태희 대표가 정의하는 ‘GTM FIT’입니다.
“GTM FIT는 창업자나, 창업자에 준하는 사람들, 창업자와 비슷한 사람들(clone founders)이 아닌 사람들을 채용해도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PMF를 찾은 B2B 스타트업들은 단순 반복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세스(simple, repeatable, scalable process)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 대표는 B2B 스타트업이 창업자의 세일즈만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성장이 정체될 때 창업자가 회사를 구할 것처럼 나타나서 한 분기에 새로운 10개 고객과 계약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한 분기에 100곳, 500곳, 천 곳이 넘는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면 그 방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분석 플랫폼을 만드는 ‘1조 기업’ 앰플리튜드(Amplitude)의 창업자 겸 CEO 스펜서 스케이트(Spenser Skates)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앰플리튜드가 PMF를 찾고 급속도로 성장해 나가며, 어떤 영웅적인 노력이나 단건의 거래들이 더이상 마법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모멘텀을 맞이했어요. 회사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에요. 대규모의 조직을 반복적인 프로세스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중략) 세일즈를 더 활성화했고 제품 판매 예상치를 추적해서 정확도를 향상시켰으며 조직 내 성공 사례들을 복제할 수 있는 제작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어요.”
모바일아이언 역시 GTM을 달성해야 할 모멘텀을 맞았어요. 밥 팅커는 10곳~15곳의 유료 고객을 확보한 뒤 ARR(Annual Recurring Revenue, 앞으로 1년간 발생할 매출), 영업효율성 지표, 파이프라인 내 거래 수 증가세, 유료 고객 전환 수 등 지표를 봤어요. 결정적으로 영업팀이 행복해하는 것을 봤을 때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이때가 창업자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고 지금 돌아봐도 소름이 쫙 돋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GTM은 어떻게 찾을까요? GTM은 결국 고객이 솔루션을 경험하는 여정의 단계, 단계마다 서비스 제공자인 B2B 스타트업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개념입니다. 이를 제대로 정립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플레이북을 만들어야 합니다. 플레이북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 화이트보드 맨 위에 고객 여정의 단계를 그립니다.
- 각 단계 아래에 데모나 평가 프로세스에서 타깃 고객사가 보고 싶어하는, 해결하고 싶어하는 ‘긴급한 페인포인트’를 적습니다. 피칭을 할 때 고객들이 더 들어보고 싶어해서 질문하는 1~2개가 여기 포함될 수 있습니다.
- 타깃 고객사의 임원들이 구매를 결정하는 데 중요했던 사안들이 무엇이었는지 적습니다. 그들이 동료나 상사를 미팅에 데려온 결정적인 포인트를 찾거나 고객 여정 중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했던 이유를 찾습니다.
- 고객사의 성공에 제품이 어떤 도움이 됐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적습니다.
- 고객사의 제품 이용 후기, 피드백을 적습니다. 제품이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찾습니다.
GTM FIT 플레이북은 보통 문서 한 두 장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요. 모바일아이언은 고객사마다 GTM FIT 플레이북을 만들어 관리했고요. 새로운 구성원이 와도 이 플레이북을 주고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르게 해서 새로운 고객사들을 확보했다고 해요.
밥 팅커는 GTM FIT 플레이북 덕에 B2B 스타트업 성장의 단초를 찾아 상장까지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를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고 해요. 엔지니어, 마케팅, 세일즈 부서 등 모두가 ‘GTM FIT 플레이북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액션 플랜을 만들었기 때문에요.
이렇게 B2B 스타트업 성공 플레이북을 살펴봤습니다. 첫 유료 고객 10곳을 PMF로 찾고, 유력한 지표들을 연결하고 창업자의 감을 믿으며 성장의 모멘텀을 맞을 때, GTM FIT 플레이북을 따라 성장의 길로 나아간다는 내용입니다.
남태희 대표는 ‘받은 도움을 전수하는(Pay it Forward)’ 특별한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B2B 스타트업 투자사를 창업하고 운영하며 이러한 성공 비결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실행은 더더욱 어렵겠지만, 남태희 대표가 제안하는 프로세스가 B2B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B2B 스타트업 플레이북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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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장혜림
편집|김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