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유치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생님한테 "이런 건 배울 필요도 없다"고 대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직접 게임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고, 부모 몰래 페이팔 계정까지 만들어 돈을 벌었습니다. 대학을 자퇴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미쳤냐."
30세에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가 된 루시 구오(Lucy Guo)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은 크리에이터 수익화 플랫폼 패시스(Passes) 창업자이자 AI 데이터 라벨링 기업 스케일AI(Scale AI) 공동창업자인 루시 구오의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클럽 정기권도 실패했고, 의료 앱도 망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했는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 스케일AI는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라벨링하는 서비스입니다. 오픈AI,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AI 기업들이 고객이며, 2016년 루시 구오와 알렉산더 왕(Alexandr Wang)[2026년 2월 기준 메타 Chief AI Officer(CAO). Scale AI CEO를 역임했으며, 24세에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됨]이 공동창업했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유치원에서 쫓겨난 반골, 게임으로 돈을 벌다
- 대학 자퇴, "미쳤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 스냅에서 배운 것 — 2주 안에 출시하고 반응을 보라
- 긴 슬럼프 끝에 다시 창업하며 세운, 팀빌딩의 4가지 원칙
유치원에서 쫓겨난 반골, 게임으로 돈을 벌다
루시 구오는 유치원을 다니다 쫓겨났습니다. 중국에서 이민 온 부모님이 집에서 주판 대회를 준비시키며 곱셈과 나눗셈을 가르쳤는데, 학교에서는 알파벳을 배우고 있었으니 지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루시 구오의 부모님은 중국 이민 1세대로,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Fremont)에서 전기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두 분 모두 이공계 출신이었지만, 딸이 기술 분야로 가는 건 반대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평범하게 결혼하고 손주를 안겨주길 바랐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와 루시의 인생은 처음부터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네오펫츠(Neopets)에 빠진 뒤 자기만의 가상 펫 사이트를 만들려 했고, 게임을 하다 직접 게임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현금을 숨기고 압수하자, 페이팔(PayPal) 계정을 몰래 만들고 선불 비자(Visa) 카드를 구해 온라인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대학 시절, 해커톤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mHacks, HackMIT 등 거의 모든 해커톤에 참가하며 밤새 코딩하고, 제한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중에 스케일AI의 초기 멤버가 됩니다.
"처음 채용할 때 해커톤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들은 별다른 의심도, 질문도 하지 않고 합류하기로 결정해줬어요. 사실 그 상황에서는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물어봤어야 하거든요. 밤새 함께 해킹하면서 쌓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루시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게 된 건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대학 입시 커뮤니티 칼리지 컨피덴셜(College Confidential)에서 한 익명의 사용자가 "네 과외활동을 보면 컴퓨터공학(CS)으로 지원하는 게 합격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 것. 그렇게 카네기 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에 입학합니다.
대학 자퇴, "미쳤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그런데 막상 졸업을 1년도 안 남겨두고 대학을 그만뒀습니다. 주변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미쳤냐." 부모, 친구, 심지어 모르는 사람까지. 졸업까지 4과목밖에 안 남았는데 왜 그만두냐는 거였습니다.
2014년, 피터 틸(Peter Thiel)[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팔란티어 회장.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후원자로, 2025년 현재 부통령 JD 밴스를 비롯해 정부 내 다수의 인물이 그의 네트워크 출신]이 만든 틸 펠로십(Thiel Fellowship)에 선발되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22세 미만의 청년 창업자에게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를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대학 졸업 대신 사업에 도전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루시의 계산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한테 최악의 시나리오요? 취직이었어요. 그다음으로 최악은 대학으로 돌아가는 거였고요. 저는 어디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지 따져봤습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건 이론이었고, 실제로 제가 배운 건 전부 해커톤에서였으니까요."
물론 취직이 최악이라고 했지만, 배울 게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갔습니다. 페이스북 인턴, 스냅챗(Snapchat) 첫 여성 디자이너를 거쳐 쿼라(Quora)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알렉산더 왕을 만났고, 점심시간에 "언젠가 같이 창업하자"고 나눴던 대화가 스케일AI 공동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스케일AI를 만든 건 아닙니다. 첫 번째 창업 아이템은 클럽 정기권 서비스였습니다. 헬스장 멤버십처럼 클럽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해주는 구독 모델이었는데, 정작 클럽에 다니는 20대 대신 VC들만 구독하는 서비스가 되면서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는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앱. 역시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템으로 Y Combinator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YC 프로그램 기간 중 아이템을 완전히 바꿔 스케일AI가 탄생합니다.
루시는 아이디어가 나빴다는 걸 인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스냅에서 배운 것 — 2주 안에 출시하고 반응을 보라
스케일AI를 창업하기 전, 루시 구오는 스냅(Snap)에서 첫 여성 디자이너로 일하며 스냅챗 공동창업자 겸 CEO 에반 스피겔(Evan Spiegel)의 제품 철학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처음에는 에반이 아마존, 구글과 경쟁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아무도 스냅이 아마존이나 구글과 경쟁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가 제품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반이 그런 비전을 갖고 일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걸 배웠습니다. 완벽하게 만들려고 3년을 쓰지 말고, 90% 완성한 시점에 출시하라."
스냅 맵(Snap Map)이 좋은 예입니다. 스냅 맵은 친구들의 위치를 지도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여기서 화면을 축소(zoom out)하면 더 넓은 지역의 친구들과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이 줌아웃 기능은 회사에서 아무도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에반은 이 줌아웃 기능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이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UX가 됐습니다.
‘소비자 서비스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릅니다. 바보 같아 보여도 일단 해봐야 합니다. 2주 안에 디자인하고 출시하세요. 반응이 있으면 그때 다듬으면 됩니다.’
첫 여성 디자이너로서 스냅의 초창기부터 성장과 함께한 루시. 하지만 결국 퇴사를 결심합니다. 합류하면서 약속받은 스톡옵션을 포기하면서까지요.
"스냅에서 1억 달러를 벌 수 있었다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요. 그건 인생이 바뀌는 돈이니까요. 하지만 수백만 달러는 제 배움을 포기하게 할 정도의 돈은 아니었어요."
루시가 퇴사를 결심한 판단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인생을 바꿀 수준의 기회인가.
긴 슬럼프 끝에 재창업하며 세운, 팀빌딩의 4가지 원칙
스케일AI를 떠난 후 루시는 벤처캐피털 회사 '백엔드 캐피털(Backend Capital)'을 설립해 100개 이상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다시 창업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첫 성공이 운이었다고 생각할까 봐, 두 번째는 실패할까 봐 무서웠어요. 이미 성공한 창업자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 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 희박한 확률이 저를 몇 년간 투자자라는 안전한 자리에 머물게 했습니다."
루시는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창업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들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열정이 루시에게도 옮겨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친구가 AI 회사의 CEO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을 때, 거절하면서도 자신이 다시 창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실패하면 어때. 그렇게 되더라도 내 인생은 괜찮을 거야.'
두 번째 회사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실패할 거면 최소한 재미있는 걸 하자.' 그래서 B2B 엔터프라이즈 대신 소비자 서비스를 택했습니다.
크리에이터 친구들에게 서비스 아이디어를 설명하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며 배운 것 — '빠르게 만들고, 반응을 보고, 방향을 바꾸는 것' — 을 이번에는 제대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패시스(Passes)가 탄생했습니다.
패시스는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팬으로부터 직접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돕는 플랫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팬딩이나 투네이션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독, 유료 메시지, 1:1 통화, 독점 콘텐츠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가 플랫폼 의존 없이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습니다.
루시가 패시스 아이디어를 투자자들에게 피칭하자 24시간 만에 투자가 결정됐습니다. 2022년에 설립된 패시스는 시리즈 A까지 총 5,000만 달러(약 7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NBA 스타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체조 선수 올리비아 던(Olivia Dunne) 등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패시스를 운영하면서 루시가 정립한 팀 운영 원칙이 있습니다. 스냅에서의 경험, 스케일AI 초기 멤버들과 밤새 해킹하던 시간, 그리고 두 번의 실패에서 배운 것들이 녹아 있습니다.
첫째, 움직여라. 스냅에서 배운 '2주 안에 출시하라'는 원칙의 연장입니다. 스타트업에서는 2주 만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데, 대기업에서는 같은 제품을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엔지니어들은 자기 일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체감할 때 가장 크게 동기부여 됩니다.
둘째, 직접 하라.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 일을 직접 해봐야 합니다. 새 고객 파일럿이 들어오면 엔지니어, CEO 할 것 없이 워룸(상황실)에 모여서 데이터 라벨링을 합니다. 고객 지원 티켓도 직접 처리해봐야 담당자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끈기를 택하라. 해커톤에서 밤새 함께했던 친구들이 스케일AI 초기 멤버가 된 이유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회사에 임팩트를 줄 수 없습니다. 크리에이터가 새벽 2시에 버그를 보고하면, 엔지니어가 전화를 받고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친절하게 대하라. 좋은 엔지니어가 떠나도, 아쉬운 엔지니어가 떠나도, 그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20대의 자신에게 조언한다면, 동료에 대해 불평하는 대신 그들을 알아가고 응원하는 데 시간을 쓰라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루시 구오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화려한 성취담이 아닙니다.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뭔데?’라는 질문 하나 덕분이었습니다.
어디서 더 배울 수 있는지 따지고, 멈추지 않고, 90%면 일단 출시하고, 그 과정에서 함께한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것. 그렇게 루시는 유치원에서 쫓겨난 반골에서 30세에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오늘도 루시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부티크 피트니스 체인 배리스(Barry's)로 향합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는 대신, 몸을 움직이는 것을 택한 거죠. 언제나처럼 ‘최선’을 선택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를 잘 보여줍니다.
👆 스케일AI 공동창업자이자 패시스 CEO인 루시 구오가 말하는, 유치원에서 쫓겨난 반골이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되기까지의 진짜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