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여다 (주식회사 스토리시티) · CEO
크리에이터 아티클
#마인드셋
2억짜리 수업에서 내가 배운 것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 동안 와튼스쿨에서 MBA를 했다. 입학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구심이 있었다. 

사실 웬만한 수업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대체가 가능하지 않나?

코세라(Coursera)만 가도 웬만한 좋은 학교들의 전공 수업들이 다 있고, 유튜브에도 놀라울 정도로 깊은 컨텐츠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예 리모트를 전제로 하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 운영되는 미네르바스쿨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대면 수업이란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두 푼을 내고 가는 학교도 아니다. 

결과만 말하자면, 내가 2년간 와튼에서 들었던 25개 남짓의 수업들 중 70%는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 교수가 일방향으로 수업하는 스타일의 수업일수록 그렇고, 대형 강의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2020년 가을학기부터 비대면으로 운영된 MBA 프로그램도 덜컹덜컹 거리면서도 어쨌든 돌아가는 게 아니겠나.

그러나 돌아보면 5개 남짓한 수업들은, 결코 온라인으로는 재현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수업들은 대부분 너무 좋아서, 내가 이걸 하러 MBA를 온 거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수업들의 공통점은, 1) 강의자-학생, 학생-학생 간의 쌍방향 인터액션이 수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2) 배움이 대부분 즉각적인 피드백 루프로부터 나오는 수업이었다. 

오늘은 이런 수업 중 하나였고, 졸업하고도 가장 요긴하게 도움이 된 협상 수업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안 들었다면 후회했을 '2억짜리 수업'

 

Negotiations (MGMT 291–409)

와튼에서 협상 수업은 인기가 많다. 그래서 수업도 여러 슬롯이 열린다. 난 심화 과정까지 총 두 학기를 들었다. 형식이 좀 특별하다. 수업 시간의 80% 정도가 강의가 아닌 실제 협상에 쓰인다. 즉, 매 강의마다 새로운 협상 미션이 주어지고, 학생들을 짝지어 (보통은 1:1이지만 때로는 2:2, 3:3 협상일 때도 있다) 협상을 하러 보내는 것이다. 학생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협상의 배경과 역할 설명, 그리고 목표가 적힌 종이를 미리 받게 된다. 그리고는 40~60분 동안 조그만 스터디룸으로 흩어져 협상을 시작한다. 

 

요런 방에서, 빡세게 한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다 보니 협상은 매우 치열하다. 그리고 MBA에 온 애들은 원래 경쟁심에 불타는 Type A들이 많기도 하다. 마치 이 협상의 결과로 자기 돈을 얻고 잃는 듯, 실전처럼 한다. 언성이 높아지거나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웬 말도 안되는 액수냐”, “그 조건은 별로인 걸 넘어 모욕적이다” 같은 말들이 오갔다. 

어쨌든, 정해진 협상 시간이 끝나고 나면 가능한 결과는 두 가지다. 합의에 도달했거나, 도달하지 못했거나. 그리고 합의한 친구들은 합의한 사항(예: 매물의 가격, 약속한 행동 등)을 들고 가서 교수에게 보고한다.

그 다음 나머지 45~60분은 큰 강의실에 모여 '디브리프'를 한다.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첫째. 학생들이 협상을 하면서 느낀 점을 얘기하고(“제 상대방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상대방들도 느낀 점을 얘기한다.(“전 오히려 제가 너무 퍼주는 것 같았는데요?”) 

둘째로는, 협상이 실제로는 어떻게 설계돼 있었는지, 각자가 받은 역할과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공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그룹들과 개인의 결과(또는 협상 성과)를 취합해 그래프로 보여준다. 클래스의 평균값, 중간값, 최대값, 최소값. 그리고 각자의 스코어도. 이 과정을 매 수업마다 반복하면서 두 가지 큰 배움이 있었다. 

 

디브리프는 요런 느낌

 

협상 수업의 큰 교훈

 

배움 하나) 세상의 많은 것들은 2차원적 줄다리기가 아니라 3차원에 가깝다

예시로, 초반부에 했었던 입사조건 협상이 있다. 회사 HR팀과 입사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협상은, 겉보기에는 ‘연봉’ 협상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실제로는 급여 액수만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도록 설계돼 있었다. 입사하는 직원 역할을 맡은 한 학생에게는 근무시간의 유연성이, 누군가에게는 직함이, 누군가에게는 육아를 병행하며 리모트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연봉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이것을 얻어냈는지 여부로 협상 결과표에서 더 가중치 점수를 주는 식이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 반대편의 상대방은 이걸 전혀 모르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 보통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연봉)가 상대방에게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협상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돈만 놓고 보면, 양쪽이 모두 만족하는 딜을 하기가 쉽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협상이 끝나고 학급 전체의 결과를 봤을 때 가장 큰 가치의 딜을 만들어낸 친구들, 즉 협상조 양쪽의 점수 총합이 다른 협상조보다 높았던 친구들은, 보통 위의 언급된 여러 종류의 바게닝 칩들을 활용해서 합의점을 찾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이 바게닝 칩이라는 것도 모른 채로 협상장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이걸 이루었나? 

공통점은 하나였다. 대화를 많이 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고(내가 가진 어떤 바게닝 칩으로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생산적인 대화에는 한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그건 바로 신뢰다. 상대방이 필요한 걸 정직하게 얘기하고, 나도 내가 가진 걸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상호간의 믿음. 이게 없다면, 공통의 미들그라운드(타협점)를 찾는 게 시작부터 매우 힘들어진다. 내가 평소에 알던 친구이거나, 또는 그 친구의 친구라면 신뢰도는 애초부터 상당히 높게 형성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좋은 친구의 소개 → 투명성과 신뢰 → 투명성과 신뢰로부터 비롯되는 많은 대화 → 그로부터 파악된 서로의 윈윈(win-win) 지점 → 이걸 이룸으로써 더 강화되는 신뢰 → 그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소개”라는 선순환을 믿는다. 일단 지난 2년 간 실험해본 바로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The Wharton School on Twitter: "40 #MBA students went to Beijing during  spring break for an immersive learning experience about #marketing to the  Chinese consumer, blending classroom knowledge and cultural learning. Read

 

배움 두 번째) 지금 좀 덜 가지면 나중에 더 많이 가지게 된다. 

각 협상이 끝나고 학급 전체의 성과표를 통계로 공유한다. 처음 몇 개의 협상을 마치고 나서 난 학급 통계와 내 성과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그래도 말 많이 하는 직업도 여러 해 했고 협상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중간값의 아래였던 것이다. 믿음과 달리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충격을 딛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건 내 성향과도 관련이 깊었던 것 같다. 

나는 ‘좋은 사람 컴플렉스’가 어느 정도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내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 같으면 딜의 추진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아니, 딜을 할 수는 있는데 자신감이 꽤 떨어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성과를 극대화하는 (예를 들면 정보를 애매하게 상대방에 줘서) 친구들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결과값이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호구를 잡히며 살게 될 운명인가. 

그러다가 큰 깨달음이 마지막 수업에서 왔다. 종강 기념으로 학급 내에서 투표를 했다. ‘가장 협상을 잘하는 사람’과, ‘가장 협상하고 싶은 사람’. 나는 ‘가장 협상을 잘하는 사람’에서는 한 표도 얻지 못했지만, ‘좋은 협상 파트너’ 분야에서 Top 5 안에 들었다. ‘그렇지. 역시 다들 호구와 협상을 싶어하는군.’ 

그때 교수님은 그 순위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졸업생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가장 협상을 잘하는 사람’ 순위권에 들은 학생들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다는 것. 그런데 ‘좋은 협상 파트너’에서 순위권에 든 친구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다고. 오예!

 

무료 실행하는 두 사람의 실루엣 스톡 사진

 

교수님에 따르면 이유는 이렇다. ‘가장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개별 협상에서 성과를 극대화하지만, 협상장에서 지속적으로 환영받는 상대는 아니다. 반면에 ‘좋은 협상 파트너’들은 개별 딜에서 성과를 극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딜을 가진 사람이 계속 그 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이 성공하게 돼 있다고. 

생각해보면 인생은 하나의 협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커리어는 수십년 이어진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수많은 협상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협상가’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좋은 협상 파트너’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호구 성향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이후로 이 성향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은 들지 않게 되었다. 

 

맺음말

Negotiation 수업은 ‘협상’에 관한 수업이지만 내가 얻은 건 단순히 협상에 대한 이해만은 아니었다. 더 큰 배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성격, 그리고 강약점을 파악해서, 이후의 삶- 커리어 안과 밖에서-에서 더 효과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은 지금도 매일매일 용이하게 쓰인다. 그것은 지식보다는 어떠한 믿음과 태도다. 

내가 가진 게 10이고 상대방이 가진 게 10이라면, 우리는 30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투명하게 많이 대화함으로써 신뢰를 쌓겠다는 태도. 마지막으로, 우리 협상장에 100만큼의 가치가 올려져 있고, 이걸 둘이 나눠야 한다면 나는 많아도 55, 60만 가져가겠다는 태도.

당분간은 이렇게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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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박상욱 여다 (주식회사 스토리시티) · CEO

1분 여행일정 서비스 '여다'를 만드는 박상욱입니다.


댓글 11
와튼 스쿨 정말 좋은 경험이 되셨네요 👍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답글   ·   약 2달 전
좋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준규 대표님!! :)
답글   ·   약 2달 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답글   ·   약 2달 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June님 !
답글   ·   약 2달 전
협상에 높은 가치를 둔 글을 읽으니 좋네요. 저도 www.snrlab.com 을 통해 협상을 확산 시키고 있습니다. 
답글   ·   약 2달 전
사람들이 더 좋은 협상가가 되도록 돕는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
답글   ·   약 2달 전
박상욱 님의 글이 이오플래닛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지금 바로 EO레터에서 확인해보세요.

확인하러 가기
답글   ·   약 2달 전
Give and Take에서 최상위 성과자는 Giver라는 얘기가 떠오르네요~
답글   ·   2달 전
이 글을 쓰면서 그 생각도 났습니다! Give and Take 저자인 애덤 그랜트 교수님도 마침 와튼의 교수인데 이 교수님은 그 개념을 발전시켜서 '서로 호혜적인 관계가 되는 giver들의 그룹'을 실험해 보고 계시더라구요. 관련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www.fastcompany.com/40545869/adam-grant-can-help-you-coax-generosity-out-of-your-grumpiest-coworker
답글   ·   약 2달 전
기업은 1+1이 2가 아닌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마법이 있는 듯 합니다. 저는 이것이 곧 기업과 개개인의 생산성이라고 보는데 이 기반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게 정말 중요한듯 해요!
답글   ·   2달 전
동의합니다. 대부분의 성공적인 조직들이 이 원칙에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손해를 볼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먼저 주는 사람들이 필수적인 것 같아요 :)
답글   ·   약 2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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