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고리듬 기반 여행서비스 ‘여다’를 운영하고 있는 박상욱입니다. ‘여다’는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이 ‘더 좋은 여행’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입니다. 여러분께 1분 안에 맞춤형 여행을 무료로 만들어주는 앱으로 기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첫 글인만큼, 제가 어떻게 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는지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회사를 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전 회사를 닫은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발견한 ‘한국 여행’의 특별함
한국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다, 2016년부터 동일한 회사의 LA오피스로 이동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경영대학원(MBA)을 위해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유례 없이 커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나온 것들을 좋아하고, 한국을 궁금해 하더라고요.
비단 음악, 영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음식, 나이트라이프, 치안 측면에서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은 방문지로서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한국 여행의 큰 잠재력에 대해서 강한 믿음을 갖게 됐죠. 공급 측면에서 ‘진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고급 경험을 제대로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현재로서 없다는 판단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여름, 졸업과 동시에 한국으로 날아와 호기롭게 첫 창업을 했습니다. 회사를 두 개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해외의 학교들과 기업들의 단체 한국 방문만 전문으로 하는 맞춤형 인바운드 여행사였고, 다른 하나는 방한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오디오 가이드 앱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A부터 Z까지 혼자 모든 걸 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 앱을 위한 스토리텔러들을 섭외하고, 직접 오디오 녹음을 따고, 한편으로는 미국 동서부를 오가며 미 전역의 경영대학원을 방문해 여행사 비즈니스를 위한 세일즈를 다녔습니다.
인바운드 여행사는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습니다. 유수의 MBA 프로그램들이 저희의 클라이언트가 됐고, 2020년 봄부터 한국을 방문할 여정의 계약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죠. 그러다 코로나19가 왔습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2020년 2월, 1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코로나가 잠깐 지나가는 해프닝이 아니라는 자각이 든 순간, 빠르게 결정해야 했습니다. 고객들과의 계약을 정리했고, 함께 일하기로 했던 프리랜서 분들께도 일일이 양해를 구했습니다. 사용하던 사무실에서도 짐을 뺐습니다.
초현실적인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니, 어떻게 여행 사업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팬데믹이 옵니까…
어쨌든 앞날을 생각해야 할 차례였습니다. 가장 처음 생각나는 옵션은 자연스럽게도 전 직장이었습니다. 보통 컨설팅사들에서는 프로젝트 단위로 프리랜서들을 채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HR팀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마침 비즈니스가 호황이었고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하실 수 있겠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감사했죠. 그런데 이상하게 고민이 되더라구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후퇴하는 기분이었달까요.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스타트업에 계신 지인들을 찾아봤습니다.
그 중 한 고마운 선배를 통해 C레벨로 계시던 스타트업에서 3개월 계약으로 일했습니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였고, 실력자들도 참 많았습니다. 잘 돌아가는 스타트업의 내부에서 일해본 건 처음이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었습니다. 5년을 해온 컨설팅은 마침 활황이었고, 벤처캐피탈(VC) 친구들이 하는 일도 재미있어 보였어요. 몸담고 있던 스타트업에서도 재미있는 기회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고민이 될 때에는 장기적 관점으로 생각해 보라고 하죠. 제가 그려본 제 장기적인 미래에는, 결국 창업을 하는 저 자신이 있었습니다. 어딜 가도 다시 창업을 하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전 아이템이 남긴 유산들이 있었습니다. 돈과 인연이었습니다. 원래 접을 아이템이었던 ‘외국인을 위한 모바일 오디오 가이드 앱’으로 지자체가 하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서 5천만원 정도의 상금을 받았습니다. 나름 혁신 서비스라고 분류가 돼 신용보증기금이 스타트업 대상으로 하는 보증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뭔가 새로 해보기에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인 스타트업으로 활동하던 중, 신뢰하는 지인께서 주변에 여행에 관심 있는 개발자가 있다며 개발자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실력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믿을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과 함께라면 나 혼자는 못하는 것들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창업이고, 왜 여행이야?
이쯤에서 왜 그렇게 창업이 다시 하고 싶었냐고 누군가 궁금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첫 창업이 오래 가진 않았지만, 이 때 느꼈던 점들이 있습니다.
창업은 가장 인생을 농도 짙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도 될까 말까 한 일입니다. 성장의 밀도, 미칠 수 있는 임팩트와 보상의 크기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일이었습니다. 전 싫증을 잘 내는 성향임에도,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다고 느낀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왜 하필 그 대상이 여행일까요? 실제로 몇 개월 후 한 투자미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에 여행으로 초기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는 힘든데, 팀은 좋아 보이니, 여행 아니라 다른 거 하면 투자를 고려하겠다고요.
솔직히 약간 흔들렸는데요. 곧 정신을 차리고 정중하게 사양을 한 후 자리를 나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보다도 ‘왜 하는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창업은 분명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더 고된 일일 겁니다. 그런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기 위해서는, 창업의 대상이 제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 가치를 믿는 일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이 더 좋은 버전의 자신을 만들어 준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멋진 관계들을 만들어주고,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고, 일상을 새 눈으로 보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록 더 잘 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컨트래리언(역발상)의 힘’을 믿었습니다. 미국 MBA 시절,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계의 거두들의 이야기를 접할 일이 많았습니다. 쉐이크쉑을 만든 대니 마이어, 블랙록의 래리 핑크, 나이키의 필 나이트, 업종은 달라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죠.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것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봤습니다. 에어비앤비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시작됐고, 카카오도 2010년에 시작됐습니다. 보통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여행 창업은 안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올 ‘좋은 날’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겠죠. 만약 그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면요.
그리고 2022년 지금은…
이게 2020년 7월까지 이야기입니다. 2년이 지나, 2022년 7월이 됐습니다. 코로나는 이제 한풀 꺾였지만, 저희 성공했냐고 하면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단서들과 고민들이 공존합니다.
좋은 뉴스는 지금까지 16만개가 넘는 여행일정을 제작했고, 저희 서비스로 여행 일정을 받아본 고객분들 중 60%는 다시 신청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J커브를 그리고 있냐면 아직은 선형적인 성장에 가깝습니다. 고객 만족도를 측정하면 8.3 정도 나옵니다. 9.0쯤 돼야 폭발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비즈니스 모델도 아직은 작동을 앞두고 있고, 앞으로 6개월 내로 쇼부가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년 사이, 저는 “분명 책에서 읽었고, 그래서 나는 절대 안 할 것 같았던” 실수들을 장르 별로 하나씩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방망이 깎는 노인 증후군’, ‘스티브 잡스 증후군’,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요. 이 주제에 대해서도 다음에 글을 하나 써보겠습니다. <하드 씽>,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다 분명히 감명 깊게 읽었는데, 해봐야 배우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거의 매일 밤 편한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재미와 보람이 있기 떄문입니다. 또한 인성도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자발적 퇴사율’이 아직까지 0%입니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가 뭔가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정말 편하고 좋은 여행 경험을 만들기 위한 블록들을 차례대로, 그리고 제대로 쌓아 나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가 1년 후, 2년 후 어떤 모습일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함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종종 기록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QnA
Q.지금 나에게 필요한 ‘역발상’을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