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전원 퇴사. 망해가는 스타트업을 되살리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창업자의 곁을 마지막가지 지키려 하는 사람도 있다. 그 회사에 투자한 초기 투자자가 그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퓨처플레이 권오형 대표와 휴이노 창업자 길영준 대표의 인연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자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무실도 없어진 회사를 회생하기 위해 투자자가 나서서 동분서주하고, 창업자의 멘탈을 붙잡기 위해 함께 가족여행까지 계획할 정도로(!)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는 긴밀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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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플레이는 2014년에 휴이노에 첫 투자를 했다. 휴이노는 원격으로 고혈압 측정을 하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다. 미국에서 창업했다. 보스턴에 체류하고 있던 권 대표(당시 투자 파트너)는 휴이노의 초기 팀빌딩을 위한 리쿠르터를 자임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9년이 흐른 2023년에 이르러 휴이노는 상장을 앞둔 유망주로 성장했다.
지금의 휴이노를 보면 이 회사가 빚더미에 앉아 창업자 외에 모든 팀원이 퇴사한, 소위 ‘망해가는’ 스타트업이었다는 걸 믿기 어렵다. 쓰러진 회사를 함께 일으키며 권 대표는 초기투자자의 역할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다고 한다. 이오스쿨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초기 투자자는 등반가와 함께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셰르파와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퓨처플레이는 ‘We Create Future’(우리는 미래를 만든다)는 비전으로 벤처 투자와 컴퍼니 빌딩을 하는 액셀러레이터다. 2023년 기준으로 총 자산운용(AUM) 규모는 2150억원였다. 액셀러레이터로서는 이례적으로 벤처캐피털(VC) 라이선스도 획득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다. |
1.발목을 붙잡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회사의 자금 소진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빨랐다. 2017년 중반 무렵 휴이노는 투자금을 거의 다 소진했다. R&D나 제품 개발 속도로 미뤄볼 때 회사를 유지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잔고가 마이너스선을 넘으니 빚이 불어났다. 30여명 규모였던 팀에서 창업자 1명만 남았다. 당장 폐업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스타트업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가?’
퓨처플레이 권오형 대표이 직면한 질문이었다. 거의 매주 휴이노 길 대표와 만나 절박함으로 대화했다. 오늘 사업을 접어야 하나, 아니면 난세를 돌파해야 하나.
창업자가 끈을 놓는다면 초기 투자자라도 어쩔 수 없다. 허나 권 대표는 휴이노의 비전이 아직 살아있다고, 기술과 제품과 창업자와 시장 기회를 믿는다면 창업자와 함께 “끈기를 갖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상황을 돌파하기로 했으니 그 길을 찾을 차례. 사무실이 없었던 휴이노와 초기투자자의 미팅은 수서역 역사, 혹은 길 위에서 이뤄졌다. 대안이 무엇일까,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가 등등 구체적인 극복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재개됐다.
일단 가장 시급한 건 투자처를 찾는 일이었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망해가는’ 듯한 스타트업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권 대표는 유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을 찾아갔다. 투자금이 필요하다, 엔젤투자자가 돼 줄 만한 사람이 없느냐 사정했다. 권 대표의 지인을 통해 몇몇 학부형이 휴이노의 브릿지 엔젤 투자자로 참여했다.
숨통이 트인 휴이노는 기사회생 했다. 2017년 서울혁신챌린지에서 ‘손목시계형 심전도장치 활용 심장 관리 서비스’로 100여팀을 제치고 1등을 수상했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CT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으로 지정됐다.
애플워치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길 대표를 찾는 연락이 늘어났다. “당신 말이 다 맞더라”는 회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2022년부터 휴이노는 병원에 심전도 웨어러블을 납품하는 최초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야말로 전세역전이었다.
(참고 - ‘2017 서울혁신챌린지 결선 및 시상식’ 개최)
(참고 - [AI 기업人] 웨어러블 심전도 기기로 국내 최초 보험수가 인정받은 휴이노 길영준 대표)
2.어떤 벤처 투자자가 될 것인가
이처럼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곧 창업자가 겪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창업자만큼 힘들진 않더라도 불확실성을 함께 견디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퓨처플레이 권 대표는 조언한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자는 단지 돈을 넣고 가치가 오르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험난한 성장 곡선을 함께 그려나가는 조력자다.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 사업의 본질에 관해 대표와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 (ex : 구조조정, 투자유치 등)
- 객관적으로 스타트업을 평가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전략가
- HR, 사업개발 및 회사/제품을 알리는 에반젤리스트
또한 스타트업 투자라 해도 투자자마다 유형은 다양하다. 시드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지, IPO 이전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인지 여부에 따라 투자금 회수 기간부터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역량이 달라진다. 제너럴리스트인지, 아니면 특정 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지 기준으로도 ‘벤처투자자’라는 커리어가 갈린다.
그러므로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자신이 어떤 가치를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지 먼저 답해야 한다.
일례로 스타트업 초기 투자자가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출신에 따라서도 저마다 조금씩 방향성과 강점이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자 중에는 창업가 출신이 적잖다. 창업이라는 특수한 경험, 사업과 조직과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무기가 된다. 산업 전문성을 가진 투자자의 경우 초기 기업에 필요한 혜안을 제공한다는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세콰이어 캐피탈의 경우 타임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마이클 모리츠가 설립했던 벤처투자사였다. 테크 기업의 세일즈팀에서 일하다가 전설적인 VC를 설립했던 사례도 존재한다. 결국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가’ 자문했을 때 저마다 스타트업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제공하고 있는지에 따라 탁월한 투자자로 거듭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3.스타트업 투자를 일종의 예술이다?
혹자는 말한다. 무슨 일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로 올라가면 소위 ‘예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 발달과 격차에 따라 투자자도 변화해야만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해서, 혹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놓쳐버린 투자 기회들도 뼈아프게 기록된다. 권 대표는 투자자로써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투자 방법”에도 변천사가 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은 ‘누구나 이용하는’ 인프라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러한 투자를 할 순 없다. 그것만이 능사라고 할 수도 없다. 미래의 “경향성”을 예측하며 지금 시점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를 할 때 투자자로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다.
즉 시대의 패턴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권 대표는 이오스쿨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심사역이라면) 미래를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흐름에 따라 시장점유율 1위 자리는 계속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당장 20세기 IT 시장과 21세기 IT 시장의 강자부터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무쌍함을 기꺼이 받아들인 투자자만이 “파도를 만들 순 없더라도 서핑보드 위에서 팔을 저어가며 파도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게 권 대표의 지론이다.
물론 아무리 전력을 쏟아도 벤처투자자가 항상 100%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보통은 빠르게, 획기적으로 성장할 초기 기업을 발굴하지 못 하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에어비앤비의 경우 2010년 1월에 회사가 제시한 기업가치가 4월에 1.5배로 껑충 뛰기도 했다. 1월에 에어비앤비를 퇴짜 놓은 투자자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성장 속도다.
퓨처플레이 권오형 대표 또한 “투자했는데 잘 풀리지 않은 경우보다는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던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걸 지켜보며 ‘그때 왜 투자 결정을 하지 않았는가’ 곱씹어 본다”고 이야기했다. 그 유니콘 스타트업에 초기에 투자했더라면, 힘을 실어줬다면 등등 의사결정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곧 투자자의 숙명이다.
타이밍의 미학부터 투자자의 자세까지. 벤처투자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그래서 쉽지 않다. 아트의 영역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VC심사역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거기서 성장의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 아닐까. 쓰러져가는 회사를 일으키며 반전의 드라마를 쓴 권 대표와 휴이노의 일화처럼 오늘도 벤처투자자들은 씨앗을 뿌릴 대지를, 가능성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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