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7년차 실리콘밸리 개발자가 ‘10번의 이직’ 후 알게 된 것들
‘삼성전자, 야후 엔지니어, 유데미 데이터 팀까지’ 한기용 님의 인생 스토리

김지윤
eo · 에디터

10번 이상 이직해본 사람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시작해 2000년도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민을 온 후 스타트업 창업부터 야후 시니어 개발자까지, 30년 가까이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오늘 eo가 쓰는 스타트업 관찰 일지, 바로 한기용 님 이야기입니다.

커리어를 개척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라곤 하지만 여전히 이직은 어렵습니다. 이직 자체를 해도 될까 고민하게 되죠. 기용 님은 수 십년간 직접 이 문제에 부딪쳐봤습니다. 

“10번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요(?!), 더 빨리 많이 도전해보지 않은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기용 님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깨달음을 얻은 걸까요?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실리콘밸리에 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간이라는 가장 유한한 자원을 ‘사람’에게 쓰고 싶다는 한기용 님의 인생 스토리를 정리해봤습니다.  

 

(출처 : eo스튜디오)

 

모범생이 삼성전자 그만두고 실리콘밸리로 떠났던 이유

 

Q.안녕하세요. 먼저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한기용입니다. 오늘은 27년동안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일하며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젊은 시절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러 나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커리어를 짧게 말씀드리자면, 한국에서 학사 및 석사를 마친 후 삼성전자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5년간 일했습니다. 2000년도에 미국에 넘어와서 야후 등의 회사에서 검색 엔진 개발을 했고요. 

이후 데이터 분야에 도전하면서 유데미 초기에 합류해 데이터팀을 30명까지 키우며 4년쯤 일했습니다. 현재는 개발자 채용 플랫폼 그렙(Grepp) 미국 지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K그룹이나 심플스텝스와 같은 비영리단체와도 협업을 해왔어요. 멘토링도 하고 엔젤투자도 하고, 다양한 컨설팅도 수행했네요. 

 

Q.와, 정말 다양한 일을 해오셨는데요. 원래 이렇게 열정적이셨나요?😲

젊었을 때는 이렇게 살 줄 몰랐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그냥 평범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딴 짓 안 하는 그런 친구였죠. 다만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쯤 아버지께서 애플2 컴퓨터를 사주셨습니다. 게임을 많이 해봤어요. 그러면서 막연히 컴퓨터 쪽 일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수를 해서 카이스트 전산과 89학번이 됐습니다.

 

 

Q.당시 대학교 분위기는 어땠나요?

다들 대기업 가는 분위기였죠. 창업이라는 게 지금처럼 활성화돼 있지 않았고요. 컴퓨터에 대한 관심도 이제 막 생겨날 때였어요. 제 주변에도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놓고는 나중에 취업할 때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법시험을 본다거나 변리사가 된다거나, 그때는 ‘안전하게’ 가는 게 대세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졸업할 때쯤 병역 의무를 지켜야 하니까 삼성전자 병역 특례로 지원했습니다. 약 5년간 일하면 병역이 면제 됐어요. 

 

Q.삼성전자 재직 시절은 어떠셨나요?

처음 2년쯤 재밌었어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고, 팀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재밌게 일하면서 임팩트(영향력)도 내고 승진도 빨리 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난 다음부터는 처음처럼 재밌지는 않았어요. 사실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Q.이윽고 실리콘밸리로 이직을 하셨어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오게 된 건 친구 덕분이었어요. 2000년도쯤 삼성전자에서 병역 특례를 마치고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대학교 때 동기가 스탠포드에 유학을 와서 석사 마치고 창업을 해서 크게 엑싯(exit)*을 했어요. 마이사이먼(mySimon)이라는 회사가 씨넷(Cnet)에 7억 달러(한화 8700억 원)에 인수됐죠. 

이 친구가 다음 창업을 하면서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살아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와이프랑 의논해서 캘리포니아에 살아보기로 하고 삼성전자를 그만뒀습니다. 이민을 오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어요.

 

 

Q.처음 낯선 땅에 와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첫째로 느낀 점은, ‘아 내가 영어를 참 못하는구나’. 입시 제외하고는 영어 공부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더라고요. 더 어렸을 때 공부를 해둘 걸 후회를 했습니다. 그냥 (미국에) 빨리 왔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뭔가 해봤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두번째로 느낀 점은 ‘삼성전자 다니며 배웠던 것들이 여기서는 큰 도움이 안 되는구나’였습니다.

 

Q.두번째 느낀 점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 제대로 된 개발 방법론이라는 게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유닛테스트*라는 것도 없었어요.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회사였으니 소프트웨어 개발은 지원 조직에 더 가까웠습니다. 

실리콘밸리에 넘어와 보니 개발 방식이 아무래도 훨씬 구체화돼 있었고, 테스트 같이 실질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했어요.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죠. 물론 요즘에는 한국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의 개발 역량이 실리콘밸리와 크게 차이가 안 납니다.

 

Q.실리콘밸리에서 새로 합류하신 스타트업은 어땠나요?

검색엔진 개발 스타트업이었어요. 구글을 벤치마킹했던 곳이죠. 결론적으로는 잘 안 됐습니다. 시리즈 B 펀딩을 유치해야 하는 시점에 9.11 테러가 터지면서 투자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어버렸거든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돈을 더 못 받으니 헐값에 매각됐습니다. 

 

 

Q.매각된 후에도 잔류하셨나요, 아니면 나오셨나요?

매각된 회사를 따라가는 옵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창업을 했어요. 그 회사에서 만난 친구 3명과 함께 4명이 창업을 했습니다. 

상장 회사들의 다양한 리포트를 수월하게 검색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돈이 되지 않을까,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검색 기술을 개발해왔으니까 미국 금융감독원(SEC) 파일링을 검색하는 서비스는 시장에 있는 어느 서비스보다 우리가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공돌이적인(?) 마인드로 창업을 했죠. 

 

Q.공동 창업하셨던 회사는 어떻게 됐나요?

회사가 성장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크게 2가지를 간과했더라고요. 첫째, (SEC 문서를 검색해주는) 이 마켓 사이즈가 작다는 것.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어요. 둘째, 금융 회사들과 협업해야 하는데 이 회사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니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업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초기 창업 2번, 야후 합류와 해산을 겪으며 배운 것들

 

Q.초기 창업을 2번이나 겪으셨어요. 정말 느낀 바가 많을 듯합니다.

느낀 게 많죠. 일단, 공동 창업자의 중요성. 마치 결혼과 같아요. 의견이 항상 맞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건강하게 싸워야 될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는 다 젊었기 때문에 의견 불일치를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야기 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라는 게 가진 게 속도 밖에 없으니까 실험을 많이 하면서 당연히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내 모든 걸 걸고 일하다 보니 (그런 상황에)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되기 십상이고요. 

결국 첫 번째 아이디어로 회사가 크지 못하기 때문에 대개 피봇(pivot)*을 합니다. 당시 저희도 한 차례 피봇을 했어요. (SEC 파일링 검색에서) 인사이더 트레이딩 정보를 파는 서비스로 방향을 바꿔서 매달 29.99달러를 받는 서비스로 6개월 만에 유저 1000명까지 늘렸어요. 팀이 능력이 없었던 건 아니었던 거죠. 

이때 창업자들끼리 건강하게 싸울 수 있었다면 여러 번 피봇을 해서 결국 무언가 이룩했을 것 같아요. 사이가 나빠지니 더 일을 할 수 없더라고요. 여러 의견 중 한 의견을 택해서 갔을 때 그게 잘 안 되면 다른 의견이었던 사람이 ‘거 봐라’,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됐어요. 공동 창업을 했더라도 각자 분야별로 최종결정권을 갖는 게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Q.초기 창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큰 조직을 운영할 때 받는 스트레스와 스타트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히 창업자 관점에서는 매일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훨씬 큽니다. 이걸 떠올리면 뭐, 못 할 일이 없어요. 

해봤으니까 (해보지 않았다는) 후회는 없어졌습니다. 다른 생각 안 하고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제 인생을 사는 데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Q.이 다음 행보는 무엇이었나요?

앞서 말씀드린, 인수됐던 첫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근데 제가 돌아간 지 9개월 만에 검색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해당 부서를 없애기로 발표가 났습니다. 이제는 맘 편하게 회사 다니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없어져 버렸던 것이죠. 

이때 제 인생에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막 아이도 태어났는데, 돈 벌어 놓은 것은 없었고. 이젠 정말로 큰 회사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후 여러 군데 면접 인터뷰를 보다가 야후에 웹 검색 엔진 개발을 하는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들어갔습니다. 

 

Q.야후가 어떤 곳인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야후는 구글이 생기기 전에 포털 혹은 검색 시장에서 탑(top)을 달렸던 IT회사입니다. 제가 합류했던 시점에는 아직 구글이 아니라 야후가 가장 손꼽히는 검색 사이트였습니다. 

 

Q.야후에서 직장생활은 어떠셨나요?

제가 맡았던 프로젝트 2개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여러 차례 승진을 해서 디렉터까지 올라갔습니다.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정말 중요한지, 그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해서 빠르게 결과를 낼지’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 시점쯤 검색 시장을 구글이 완전히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야후는 2등 플레이어가 됐어요. 회사 상황이 조금씩 나빠졌습니다. 좋은 동료들이 하나 둘씩 떠났어요. 반면 저는 제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선뜻 잡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페이스북 초기에 합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그냥 걷어차버리는 식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변화를 못 줬던 것 같아요. (회사로부터) 받는 게 많아졌고 자신감은 없었어요. 내가 가진 걸 버려야지만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진 못했죠. (야후에 다닐 당시에는) 하루하루 사는 게 바빠서 몰랐다가 야후를 그만두고 1년간 쉬면서 되짚어보니 제 상태가 그랬던 듯합니다.

 

Q.어째서 자신감이 없다고 느끼셨던 걸까요?

미국 사회가 워낙 다양성이 있다 보니 남과 덜 비교한다지만, 실리콘밸리는 예외라고 봐요. 비교 많이 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워낙 다양한 기회가 있잖아요. 제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퇴사하고 처음 듣는 회사에 입사했는데, 알고 보니 초창기 샤오미 합류거나 우버 10번째 직원이 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 자괴감이 듭니다. 

‘내가 쟤보다 못하는 게 없는데 왜 나는 그냥 큰 회사에 머물러 있지’
‘내가 그런 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물론 기회가 확실하면 모든 사람이 그걸 잡았겠죠.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자신이 가진 걸 내려놓고 불확실성에 온 몸을 던졌던 것이고요. (야후에 다닐 당시) 저는 편안하게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변에 잘 되는 친구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잃었던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회사와 제가 모두 성장하고 있었다면 자괴감이 덜 들었겠죠. 제 관점에서 좋은 조직은 성장하는 회사에요. 성장을 해야 사람도 더 들어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납니다. 하지만 야후가 구글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좋은 사람들은 떠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들었어요. 

조직이 일정 부분 정치적으로 변했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해도 자꾸만 엉뚱한 데에 시간을 낭비하게 됐습니다. 제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런 환경에 있으면 그 상황의 영향을 받게 돼 있어요. 야후에서 보낸 마지막 3년을 하루하루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런 환경에 오래 있다 보니 움츠러 들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중에야 그걸 깨달았습니다. 망하는 조직에 있으면 자신감을 잃게 돼 있다는 것. 나쁜 버릇이 늘어난다는 것. 내가 나를 못 믿게 된다는 것.

 

Q.야후의 내리막길을 보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야후는 비전이 불분명했어요. 야후는 포털로 시작한 회사였기 때문에 이게 미디어 회사인지, 아니면 구글 같은 곳과 경쟁하는 기술 회사인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CEO가 바뀔 때마다 비전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어떤 분이 임명되면 미디어 회사였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테크놀로지로 경쟁하는 회사였다가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인재들이 있어도 전체 방향이 불분명하면 정해져 있는 인력에 비해 하는 일은 너무 많아집니다.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요. (야후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불분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43살,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했습니다

 

Q.이제 야후를 퇴사하셨는데, 그 이후 행보는 어땠나요?

원래 바로 쉬지 않고 작은 스타트업에 합류했습니다. 허나 추가 펀딩에 실패하면서 제가 간 지 8개월 만에 망했습니다.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도대체 미국에서 왜 이러고 살고 있나’

그래서 1년간 쉬는 ‘갭이어’가 시작됐습니다. 어찌 보면 중년의 위기가 온 거죠. 하지만 약 11개월 쉬었던 이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삶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일단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봤던 것 같습니다. 43살에 처음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게 충격이죠. 

한국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해야 될지 생각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봅니다. 저도 삼성전자 다닐 때까지는 별다른 의견 없이 그냥 큰 흐름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미국에 와서도 (제 의지로 살기 시작한 것이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고민해보진 않았던 듯합니다. 

헌데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젊었을 때 소위 ‘헤매던’ 아이들이 많아요. 부모들이 ‘너 이거 해라’라고 강권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요. 나중에 뭐가 됐건 제 방향을 찾으면 더 열심히 할 따름입니다. 자기가 찾은 길이니까 더 행복하게 살아요. (저 또한 그런 걸 지켜보면서) 성공에 대한 잣대가 굉장히 개인적이지 않은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Q.당시 갭이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처음 3~4달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아이들 등하교 픽업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이게 그렇게 피곤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불안했어요. 놀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놀아도 별 문제 없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논다는 소식이 알려지니 예전 동료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풀타임으로 합류할 생각은 없다고 하니 처음으로 컨설팅이라는 걸 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사이드잡을 한 차례 정리하고 한국에서 1달간 가족여행을 다니다가 미국에 돌아와서 다음 스텝을 정했습니다.

 

Q.갭이어를 통해 어떤 걸 느끼셨나요?

내가 그동안 남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구나, 내 인생을 산 게 아니라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에 맞춰서 살았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큰 회사는 안 간다. 무슨 결정을 하든 남의 이목은 생각하지 말고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Q.큰 회사에 가지 않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큰 회사에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제가 낼 수 있는 임팩트의 한계가 있습니다. 속도감 있게 일하기 어렵고요. 그런 측면에서 큰 회사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불확실성이 수반되겠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확실한 건 없으니까 빠르게 움직이면서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된 겁니다.

시간은 어찌 보면 가장 유한한 자원입니다. 이미 40살이 넘은 제가 앞으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깨닫게 되면서 ‘어떻게 시간을 더 잘 쓸까’, 더 많이 실험해보고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Q.갭이어 이후 유데미에서 4년간 일하셨다는 점과 일맥상통 하네요.

유데미와의 인연은 컨설팅에서 시작됐습니다. 유데미 엔지니어링팀 리드가 제 지인이었어요. 일주일에 1~2시간 컨설팅, 멘토링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20명이 안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어요. 10개월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 회사라면 내가 들어가서 재밌게 일할 수 있겠구나.’

제가 이 조직에 들어가서 (재차 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함께 방향을 맞춰 무언가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풀타임으로 합류하고 싶다고 제안해서 4년간 일했습니다. 

 

 

유데미에서 배운 ‘조직과 내가 모두 성장하는 법’

 

Q.유데미에서 일하셨던 시기에 대해 좀 더 들려주세요.

회사가 멀었어요. 하루에 4시간씩 출퇴근에 썼습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일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조직문화가 있었어요. 그래서 유데미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일단 미션이 분명했습니다. 유데미 창업자들은 터키 산골마을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을 줄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출발했더라고요. 저도 이 회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해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거기에 맞추며 커뮤니케이션 하게 됐습니다. 

 

Q.’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그 사람이 성공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을 잘 뽑는 것만큼 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존 멤버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면 그게 안 돼요. 예컨대 스타트업 극초기에 합류해서 내 시간과 온 몸을 다 바쳐 회사를 키웠는데, 이젠 나보다 더 경험 있는 사람을 뽑을 경우 이런 반응들이 나올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내가 키워온 열매를 따먹는 거냐.’

한국계, 미국계 관계없이 어느 스타트업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창업자를 포함한 초기 멤버일수록 회사의 단계마다 다른 인재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해야 하고 나 자신의 문제점, 경험의 제약을 인지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걸 알아도 감정적으로 ‘내가 키워놓은 걸 남이 가져간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유데미에 있던 동료들은 그런 게 별로 없었습니다. 회사가 성장해야 내가 성장하고, 내가 성장해야 회사가 성장하는 조직, 그 문화가 제가 유데미를 좋아했던 이유입니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좋은 사람을 뽑았을 때 그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사람’이에요.

 

 

Q.유데미를 퇴사하신 과정도 궁금해지네요.

매일 200km씩 왕복하려니 힘들었어요. 유데미 4년차에 접어들 때쯤, 혼자 시작해서 팀을 30명까지 키웠으니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도 있지만, 팀원들이나 회사 관점에서 좀 더 다른 시각, 경험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4개월간 후임을 찾았습니다. 마침 적임자를 찾았어요. 처음에는 ‘내 밑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팀 매니저로 일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가 ‘나 이제 그만 둘 거니까 네가 내 자리에 들어오면 어때’ 물어보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 제 보스에게 따로 이야기를 했고, 잘 마무리 해서 퇴사했습니다.

저도 경험이 쌓였으니 이전과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이미 회사는 커졌기 때문에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제가 계속 있다 해도 저도 재미 없어요.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게 막히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이 와서 팀을 다름 레벨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4년간 일하며 받은 주식이 더 값어치 있어야 하잖아요. 

 


 

‘상처로 남지 않는다면 실패도 결국 도움이 되더라’

 

Q.30년 가까이 상당한 커리어를 이어오셨는데, 비결이 있을까요?

분명 운이 좋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요. 무엇보다 11개 회사를 거치면서 빨리 그만둔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오래 다닌 걸 후회했죠. 어쨌든 빨리 그만두게 된 곳은 저와 맞지 않는 곳이었던 겁니다.

추천 엔진 알고리즘 중에 ‘explore and exploit’(탐색 및 제외)라는 게 있어요. 유데미 같은 온라인 강의 사이트에서 유저에게 다양한 코스를 일단 보여주고, 유저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살펴본 다음에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걸 더 보여주는 식입니다.

커리어도 마찬가지에요. 처음에는 내가 뭘 잘 할지 모르니까 젊었을 때 많이 경험해봐야죠. 작은 실패를 하더라도 내게 맞는 걸 찾아서 거기에 깊게 파고드는 게 좋은 커리어 개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왔지만, 더 시도해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뜻입니다.

삼성전자에 다닐 때는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사회생활을 했다’는 느낌이 크지 않습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고 실패도 해봤다면 복구할 수 있는 시간도 훨씬 많았을 텐데, 그 시기에 무언가 해보지 않은 게 가장 큰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Q.약 30년간 일하며 배운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떤 경험이건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면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창업자 분들에게도 이 조언을 많이 합니다. ‘실패를 했어도 거기서 배운 것들이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상처로 남지 않도록 해라’. 저도 1년간 쉬면서 상처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이게 어느 정도 아물면서 도움이 됐으니까요.  

 

Q.‘상처로 남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야후 그만두고 나왔을 때, 자꾸만 제가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려 하더라고요. 계속 ‘야후에서는 안 이랬는데’라는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처가 있다는 걸 인지했죠

혹은 특정 상황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불안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면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나쁜 경험을 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상처를 인지하려면 가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많은 경우 과거의 상처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이 상처가 더 많아집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꼭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서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비용 관리를 못 해서 해고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꾸만 클라우드 탓을 해요. 그래서 새로운 직장에서 클라우드를 쓰자고 내부 제안이 나와도 이렇게 반응이 나옵니다.

‘클라우드는 비싸서 안 돼.’

자신의 왜곡된 경험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생기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처에서 기인한 반응에) 많이 집중했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가 갑자기 불안해지는 이유가 뭘까 되짚어보면 과거의 경험에 근간한 것들이 많습니다.

 

Q.상처로 남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이 변화하는 데에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안 해봤던 걸 해보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싫어하는 걸 다시 해보는 것. 

저 같은 경우에는 정공법으로 부닥쳐 보려 했어요. 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해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갖고 있는) 모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 1년 반 가까이 걸린 듯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처를 인지한다 해도) 쉽게 안 없어집니다.

 

 

Q.멘토링을 하며 만나는 분들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멘토링을 하다 보면 크게 2가지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첫번째 유형은 취업 준비를 하거나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서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 다른 한 부류는 남들이 볼 때 커리어가 잘 만들어지고 있지만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 

첫번째 유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선행학습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겁니다.

‘지금 뜨는 게 뭐에요?’

그게 왜 궁금하냐고 물어보면 ‘그걸 공부해서 전문성을 키운 후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한 6개월 후에는 내가 공부한 게 의미 없을 수도 있어요. 엉뚱한 걸 공부할 확률이 높은 겁니다. 항상 미래에 대해 고민하느라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는 맹점도 있습니다.

딱 수능 보는 느낌과 같습니다. 이런 친구들에게는 현재에 충실할 것, 모든 걸 공부로 해결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라고 제안합니다. 시작점이 아니라 종착점이 중요하니까 몇 바퀴 둘러 간다 여기고 일단 면접을 많이 보면서 기회를 찾아보자고 합니다. 빨리 스타트를 끊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배워보라고 이야기하죠.

 

Q.두번째 유형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이런 경우는 공격 모드가 아니라 수비 모드가 됐다고 볼 수 있어요. 뭔가 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밖에 있는 기회를 잡자니 불확실하다고 여기는 상태입니다. 이때는 ‘one way door, two way door’(일방향 문, 양방향 문)에 대한 이야기를 드립니다.

아마존에서 어떤 기능을 론칭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의 경우 일방향이라고 정의합니다. 양방향 문은 론칭을 했을 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기능을 가리킨 표현입니다. 양방향에 해당하는 기능은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일방향 문이라면 더 논쟁을 해보는 식입니다.

 

 

커리어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해당하는) ‘one way door’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two way door’입니다. 

예컨대 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더라도 이 회사에서 잡음 없이 그만둘 수 있다면 갔다가 돌아오면 됩니다. 실제로 제가 매니저로 일하면서 (다른 회사에 갔다가 돌아온 친구를) 2명쯤 겪었어요. 잘 하는 친구가 돌아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인생의 수많은 결정을 길게 봤을 때 대부분 ‘two way’, 다시 돌이킬 수 있다고 조언해드립니다.

 

Q.그럼에도 주저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커리어 선택을 머리로 하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성적으로 장단점 따지기 시작하면 그 도전 안 하겠다는 얘기랑 똑같다고 느껴지거든요. 

커리어 결정을 논리로만 하긴 힘듭니다. 결국 후회를 최소화하는 프레임워크가 중요하죠. ‘내가 나이가 들어서 내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후회가 얼마나 남을까’, 그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요. 대부분 안 해본 것에 대한 후회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Q.이런 사고의 전환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매니저, 사수가 아니라도 외부에서 멘토를 찾아보세요. 내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해주는, 그럼으로써 내가 가진 방향을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이 됐건 커리어 도전이건 내 방향성을 서포트해주는 게 아니라 힘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매번 나옵니다. 아무리 상대가 좋은 의도를 갖고 있어도 그런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 드려요. 멘토는 결국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이 무언가 더 깨닫게 해주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100%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저는 30대 중반이 돼서야 야후에서 좋은 매니저를 만났던 것 같아요. 좀 더 일찍 내 멘토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요. 제 이야기가 여러분의 멘토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투자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려 합니다.

 

Q.일에 대해 고민하는 주니어에게 하시는 조언이 있나요?

저는 자기검열을 덜 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이런 친구들을 많이 봤습니다.

‘나 승진하고 싶다. 뭐가 부족한지 알려달라.’

본인 능력과 상관없이 이런 대화를 먼저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매니저 입장에서는 일단 조언을 해주게 됩니다. 근데 (보통 동아시아권에서 자란 친구들이) 승진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해요. ‘내가 일단 일을 열심히 해서 뭔가 보여준 다음에 이 얘기를 꺼내자’고 접근하곤 합니다.

이럴 경우 매니저와 내가 생각한 방향이 핀트가 안 맞는 경우가 나옵니다. 매니저가 볼 때 내 강점, 약점이 무엇인지 듣지 않고 본인이 생각한 대로 열심히 하는 거니까요. 특히 주니어 친구들에게 뭐든 일단 요구해봐라, 네가 판단하지 말고 매니저에게 맡기라는 조언을 합니다. 편하게 이런 대화를 하면서 방향성을 맞추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라고 의미입니다.

 

Q.또 다른 조언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결과와 문제의 크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합니다. 아무래도 엔지니어는 어떤 기술을 써서 해결하는 데에 포커스를 두다 보니 그 문제가 중요한지 따져보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최소 비용으로 빠르게 결과를 내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그게 제 커리어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물론 엔지니어 입장에서 기술에 대해 깊게 들어가야 커리어가 더 안전하다고 믿으실 수도 있습니다. 기술에서 손을 떼는 순간 커리어가 망한다는 인식이랄까요.

헌데 커리어가 어느 정도 커지면 그때부터는 ‘내가 어떤 기술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주변에 어떤 영향력을 퍼트릴 수 있느냐, 그렇게 해서 큰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 됩니다. 한 단계 더 전진하려면 큰 그림을 이해하면서 결과를 내는 데 집중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Q.시니어에게는 주니어와는 다른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네요.

주니어 친구들에게는 일단 스킬을 전문화하라고 조언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제대로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를 만들고 기술에 대한 지식을 넓고 깊게 들어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아는 게 적으니까 피드백도 귀담아 들어야 하고요.

시니어가 되면 스킬셋은 기본이에요. 모르는 게 있어도 빠르게 익힐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됩니다. 이 시점부터 중요한 건 영향력이고, 그걸 키우려면 본인의 장단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최근에 제가 팀원에게 줬던 피드백을 공유해드릴게요. 한 친구가 코딩도 잘 하고 주변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만사 제치고 해줬어요. 제가 볼 때는 그게 문제였습니다. 시니어 레벨이 되면 우선순위를 따질 줄 알아야 하거든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임팩트 있고 중요한지 이해하고 중요한 것에 시간을 더 써야 합니다.

반면 이 친구는 무슨 일이건 100% 최선을 다하고 남이 도와달라고 하면 자기 일 제끼면서까지 도와줌으로써 인정받아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이 행동이 본인의 장점이자 힘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이럴 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네가 가진 시간이 유한하다. 중요하지 않은 일까지 중요한 일처럼 하면서 임팩트를 내긴 쉽지 않다. 이제부터는 선택과 집중을 해봐라. 중요하지 않다면 대충 해라.’

이런 피드백을 드리면 ‘일을 대충해도 된다는 의미냐’고 반문을 받기도 하는데요. ‘마인드셋을 바꿔야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적당히 해도 된다’고 답변을 드립니다. 대부분 본인 스스로 이런 지점을 알긴 어려워요. 편안하게 행동해왔던 컴포트존(Comfort zone)이잖아요. 특히 완벽주의가 강할 경우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다 열심히 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하지만 시니어에게는 일의 경중을 따져서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팀이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하는 겁니다. 지금 스테이지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자기성찰이 필요하고, 주변에서 그걸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쉽게 자기성찰을 할 수 있겠죠. 괜찮은 매니저를 만나면 이런 대화를 좀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Q.멘토링 외에도 초기 스타트업 엔젤 투자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엔젤 투자를 하게 됐어요. 유데미 재직 시절에 굿타임이라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유데미에 서비스를 팔기 위해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한인이 저에게 먼저 편하게 이야기를 건넸는데, 듣다 보니 두 사람이 너무 괜찮았어요. 좋은 질문을 던지고, 선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죠. 

‘이 친구 포기하지 않고 오래 할 것 같다. 자기 생각을 바꿀 줄도 안다.’

그런 게 보이니 저도 모르게 미팅 끝날 때쯤 엔젤 투자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게 제 첫 엔젤투자였습니다. 2016년 여름이었네요. 현재는 11~12개 회사에 투자를 했습니다.

 

Q.엔젤투자 해보시니 어땠나요?

예전에는 누가 창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을 안 보고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봤어요. 아이템을 보기 시작하면 안 되는 것만 보였습니다. 

몰로코 안익진/박세혁 대표가 좋은 예입니다. 원래 알던 친한 후배들이고 창업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봤습니다. 사람들만 보면 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몰로코가 하는 광고 비즈니스가 제가 야후에서 검색 엔진 개발을 하며 잘 알던 분야였어요.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서 안 되는 것만 생각했죠. 

(돌이켜 보면) 초기 투자자는 진짜 사람만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던 계기였습니다.

좋은 사람이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한 2~3년쯤 하다 말 생각이라면 망하기 딱 좋아요. 오래 버텨도 자기 생각을 못 바꾸는 사람이라면 구멍가게로 남게 됩니다. 내 생각이 틀렸구나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피봇을 할 줄도 알아야죠. 그래서 굿타임 엔젤투자를 했을 때 마음 먹었던 겁니다. 괜찮은 ‘사람들’에게 투자를 하게 됐습니다.

 

Q.앞으로 기용 님은 어떤 삶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한국 IT업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멘토링과 교육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비영리단체와 일을 하거나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쪽으로 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멘토링과 교육에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창업에 대한 욕심도 아직 있긴 합니다. 다만 제 인생의 시간을 더 잘 쓰는 방향을 고민합니다. 지금 시점에는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제가 아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미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돕거나 그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스로만 봤을 때 창업자들은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알고 보면 거의 8~9년씩 고생한 사람들이에요. 한 가지를 오래 붙들고 매진하다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는 게 제 인생의 시간을 제일 잘 쓰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겁니다. 

 

Q.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께도 한 마디 남겨주세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일이 ‘two way door’라는 관점에서 더 많이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런 시도를 장려하는 사회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가 더 다양해지면 어떨까 생각하고요. 

심플스텝스(Simple Steps)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코딩 한 번 배워본 적 없는 30대 후반~50대 초반 경력단절 여성들이 코딩을 배워서 취업을 하는 걸 보면서 사회의 다원성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인종, 성별, 나이, 학교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잖아요. 다양성이 있으니 ‘다양한’ 가능성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전문성이란 어떤 토픽을 깊게 아는 것뿐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그 변화를 빠르게 따라가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모든 걸 공부로 해결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마세요. 너무 머리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제 커리어에서 후회로 남는 부분입니다. 오래 준비한다고 더 잘하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꼭 행동하세요. 기회는 당연히 행동을 옮기는 사람에게 옵니다

 


*본 아티클은 2022년 7월 공개된 <27년차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인생 이야기>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유데미 초기에 합류해 데이터 팀을 30명 규모까지 키웠던 한기용 개발자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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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Contributor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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