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프롤로그: 이전 회차 리뷰
처음으로 의뢰를 받았던 “게임사 홈페이지 외주”는 대실패로 끝이 났어요. 실무를 처리하기에는 당시 제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었죠. 최선을 다해 마무리 했지만 의뢰인의 만족을 이끌어내기엔 모자랐고, 결과물은 평생 세상 빛을 볼 일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눅이 든 저에게 기특하다며 20만원 정도를 보내주셨는데요.
'평생 돈이라는 것을 벌어볼 수는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매일 걱정하면서 살아 갔던 저는 그 20만 원 덕분에 용기를 갖게 됐어요. (이 때 돈도 벌어봤고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결국은 둘 다 가장 먼저 했네요.) 언젠가 당신께서 이 글을 보게 되신다면 그때 정말 감사했고, 당신 덕분에 지금까지 더 용기 있게 살아올 수 있었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어요.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맡아본 최초의 경험으로부터 1년 정도 후, 중학교 3학년에 했던 제 첫 창업 과정과 실패에서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다만 첫 창업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 즉 ‘클라우드’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2022년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은 4,820억 달러에 이릅니다. 2025년에는 8,375억 달러(한화 약 1,000조 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예측됐고요.
그런데 최근과 같이 클라우드가 주류가 되기 이전에는 ‘웹 호스팅’, ‘가상 서버 호스팅’ 등 호스팅이라는 사업 분야가 주류였던 때가 있었어요. 웹 서버를 포함해, 다양한 서버를 구축하는 인프라를 자동으로, 때론 수동으로, 물리적으로 또는 가상머신을 통해 대신 구축해주고 트래픽과 서버 사양에 따라 서비스 이용료를 수취하는 개념의 사업이었죠.
지금은 클라우드라는 멋진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만, 비교적 최근이자 제가 성인이 된 2014년까지만 해도 클라우드의 개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클라우드란 앞서 이야기했던 가상 서버 호스팅 서비스가 진화한 형태로 생각하면 좋아요. 더욱 매끄럽게(Seamless) 고도화 해서 서버라는 자산 뿐만 아니라 기존의 서버실에 들어가던 물리적인 인프라 전반을 가상화 하고, 생태계를 형성하고, 데이터를 분산함을 통해서 더욱 편리하게 서버실을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개념이에요.
정리하자면, 마치 공동 구매처럼 수많은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서버실 구축 작업을 한 곳에 모아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동시에 처리하게 하는 것이에요. IT, 컴퓨터, 인터넷이 비즈니스의 중심이 되어버린 현재에는 더욱 비즈니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요. 컴퓨팅 리소스라는 사회적 비용을 감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는 비즈니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클라우드’라는 개념은 글로벌에선 2006년, 국내에서 2010년 대에야 막 논의되기 시작했었어요.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때였죠. 그만큼 클라우드 개념이 흔치는 않았기 때문에 저와 공동 창업자들은 지향점을 ‘클라우드’로 잡고 호스팅 서비스로 출발했어요.
짧게 공동 창업자들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때 당시 저는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라는 학교에 지원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교과 성적은 바닥을 쳤었고, 아쉽게도 학교에는 합격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당시 해당 학교의 입시 관련 커뮤니티에서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IT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친구들이 잔뜩 생겼고요. 뜻이 맞았던 친구들과 함께 바로 이 호스팅이라는 사업의 세계로 입문을 했습니다.
사업의 시작은 정말 가벼웠습니다.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다같이 돈을 벌어보자’고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면 스스로 가치가 증명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죠. 서버 엔지니어링을 하던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서버 호스팅으로 분야를 정했고요. "회사명은 짧은 이름으로 하자!"고 해서, 세 글자 도메인을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hnx.kr이 남아있길래 에이치앤엑스(HNX)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Human Network Express’라고요. 서비스 이름도 굉장히 간편하게 지을 수 있었는데요, 도미노 피자를 먹다가 도미노 피자 박스에 꽂혔던 공동 창업자의 의견으로 “도미노호스팅”이 됐어요.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름 짓고 의미 부여하는 데에 시간을 쏟지 않았던 건 지금도 잘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이름을 지어야 할 때 나중에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시간을 쏟지는 않았어요. 가급적 파열음이 하나쯤 들어가고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짧으면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요.
가볍게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다들 개발자, 기술자였기 때문에 ‘클라우드’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고도화 해보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기술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컨셉들을 마구마구 때려 넣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고객이었기에 고객에 대한 조사도 딱히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명백한 오판이었어요.
지금의 AWS와 유사하게 인스턴스의 세부 요소들을 커스텀할 수 있게 한다든지, 시작과 종료, 그리고 확장 같은 것들이 용이하게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려고 했어요. cPanel 등 외산 솔루션 라이선스를 사와서 한글화 하고 국내 최초로 적용해보기도 했죠. 그렇게 8,000여 명의 얼리어답터를 유료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문제는 거기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즉 캐즘*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실험적인, 기술적인 챌린지가 끝나고 나서부터 다양한 고객 계층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빠르게 고도화 했어야 해요. 고객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을 보다 매끄럽게 만들고, 안정화하고, 가격 모델, 바이럴 루프 등 디테일한 요소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죠.
당연히 관련 논의들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너무나 느렸어요. 서비스 홈페이지부터 시작해서 제품, 광고와 마케팅 전략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실무 논의들이 매우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리뉴얼이 진행됐어요.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빠르게 추진하고 실행하지 않았고, 서비스 리뉴얼은 느려져 갔어요.
근본적인 이유는 명확했어요. 다들 품고 있었던 개인의 꿈은 굉장히 컸을 수 있겠지만, 사업에 대해선 확신이 있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만 얘기했거든요. 그 누구도 앞에 나서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요.
이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혁신할 수 있을지, 문화를 만들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 보다 먼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요했음에도 누구도 이를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했더라도 믿지 않았죠.
결국에는 제가 성인이 된 2014년, 누군가는 군대, 누군가는 대학, 누군가는 결혼… 이렇게 뿔뿔이 흩어졌어요. HNX는 폐업하게 됐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던 유료 고객들이 환불 카페를 만들어서 데이터 복구와 보상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도미노호스팅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 보면서… 처음으로 사업의 실패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때 제가 배웠던 것은 현재까지도 아주 유효한 교훈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훌륭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공통의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 함께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시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
- 그런 미래를 이룰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게 만들거나, 애초에 믿는 사람을 모셔와야 한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이 두 가지를 갖추면서도 사기꾼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스스로 그 비전을 100%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5개월, 1년도 아니고 5년,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만들고 이걸 스스로에게 있어 100%의 믿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때의 제가 떠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더 많은 수를 계산하고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실전에서 실무적인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 다음 단계로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지만, 이번이 아닌 다른 회차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바둑이나 체스의 경우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판 한 판 경험을 누적시켜서 이 다음에 어떤 수가 나올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상대방에 비해 더 폭넓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계산하여 확실하게 한 수 한 수 둬야 승기를 가져갈 수 있잖아요?
결국 어떤 일이건 간에 상관없이, 더욱 먼 미래를 예측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예측을 통해 확신을 갖고 한 수를 둬야 합니다. 이를 반복해야만 외부의 속도보다 내부의 속도가 더 빠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결국에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들을 증명해주는 사례들을 축적하고 있어요. 현재 이끌어가고 있는 벤디트의 벤더 분들을 대상으로 오래 전부터 1 on 1 인터뷰 세션을 진행하면서 많은 인터뷰를 해왔는데요, 동일 기간 동안의 업무 밀도, 인재 집적도에 따라 개인 간의 편차는 확실히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업무 경력이 짧은 사람일수록 더 짧은 기간의 미래만 약속할 수 있었어요.
신입은 당장 내일도 버겁고, 경력 1년 차는 1개월, 경력 3년 차는 6개월, 경력 5년 차는 1년과 같은 것처럼요. 아, 물론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엣지케이스(Edge Case)*는 존재합니다만, 대개 얼마나 많은 경험을 누적했느냐에 따라 더욱 확신을 갖고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범위가 달라졌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추진했다면 미래의 8,375억 달러짜리 시장에서 분명한 찬스를 가질 수 있었던 애환의 HNX를 눈물을 머금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곤 더욱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2회 에필로그: Lesson Learned
최근에 저는 피터 드러커의 저서를 모두 읽어보고 있는데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미래 예측가 피터 드러커 아저씨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
저는 과거부터 친구와 함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즐겼어요. 이를테면 2009년에 발표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2010년부터 관심을 뒀습니다. 특히 그 사상과 철학에 매료됐어요. 2012년, 국내 거래소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 블록체인이 미래를 바꿀 기술이라 부모님을 설득하려다가 실패했어요.
그래서 2012~2013년쯤, 투자는 고사하고 HNX에서 남는 서버들을 이용해 코인 채굴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 그래픽 카드 여러 장을 한 개의 메인보드에 설치하기 위해 라이저 케이블을 구하러 다녔는데, 온 동네 전자상가를 다 뒤져도 구할 데가 없어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만약 그 때 수박 겉 핥기가 아니라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더라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부모님을 설득해내는 것도, 사업화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었겠죠. 이제 와서야 그 때를 돌아보니 얻어지는 값진 교훈입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입니다.
과거로 가서, ‘네이버나 구글 같은 기업을 내가 먼저 만들었다면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비트코인 사뒀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같은 이야기를 해도 미래는 바뀌지 않는 게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앞으로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확실하게 공부하고 실력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세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제를 생각하며 후회하기보다, 어제를 생각하며 배우고 오늘과 내일을 더 가치 있는 날들로 바꿔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어제로부터의 배움을 나누고,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삶을 살아 나가는데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폐업 결정은 한 순간이지만 파트너사, 고객 관계 정리 등을 다 하는 데 저는 2년까지도 걸려봤거든요. 준규님도 만만치 않았을 거 같고, 이게 진짜 리얼 고통?!이라고 생각해서 질문드립니다.
서버 장애가 났다는 연락이 쏟아져서야 서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환불해달라 데이터 복구해달라는 연락이 쏟아졌는데, 엄청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있었더니 결국 그때 당시 운영에 도움을 주던 유일한 파트너 법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하드웨어 일체를 넘기는 조건으로 모든 처분을 해당 법인에 위탁했어요. 환불조치 / 데이터 복구 조치도 맡아서 수행 해주셨고요.
그래서 아직도 서비스를 정말 형편없이 정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많이 부끄러운 역사인 것 같아요.
모든 정리까지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되었던 것 같은데, 오래된 일이라 디테일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행착오와 배움 까지의 디테일은 공유 드리기가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어 짜내보면, 적어도 그걸 떳떳한 이력으로 어딘가에 소개가 가능하려면 끝 마무리를 정말 잘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어요. 고객들께 투명하게 소통하고 적어도 복구환불 카페 같은것이 생겨나지 않게 했어야 했지 않나 하는…
그 사건 이후로 한동안 IT 관련 아는 분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해서 숨어 지냈었던 것 같아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있어서 창업을 준비 중인데, 제 짧은 경험 때문에 실패로 만들까봐 걱정이 되네요. 다방면으로 경험을 좀 더 쌓은 후에 시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까요? 준규님은 다양한 창업 경험이 있으신데 짧은 경험으로 인해 실패해서 아쉬운 사업 아이템이 없으신지요!
B2C B2B B2G 다 특색이 있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분명 유사한 패턴들이 존재를 하거든요. (성공 방정식 같은 소리는 아닙니다)
이런 패턴들을 모르거나 혹은 알려져 있는 사실임에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들 (뭘 모르는 지 모르는 상태인 경우) 속도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것 같아요. (샛길로 빠진다던지) 이 경우 단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스타트업은 굉장히 힘든 경우를 겪을 수 있다고 봅니다.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은, 어쩌면 이런 여러가지 패턴들을 단기간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압축적인 성장이 가능케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창업이 되면 거기에 책임까지 얹어져서 근육을 기르는데 효과적이라고 보고요.
주변에서는 다들 “창업하지 말라” 는데,저는 낙관적인 사람인지 주변에 창업을 권장 하는 편이거든요. 😅 그래서, 스스로 확신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알아보시고 확신을 줄 수 있는 많은 사료를 확보하실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스스로 믿음이 부족해서, 꼭 필요한 인재를 설득하지 못하거나 투자자 또는 자본시장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정부를 설득하지 못하거나 기타 “타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로 실패하는 경험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소한 질문인데, 혹시 글에 나오는 창업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 다시 창업하신분은 없나요? 어린시절에 강력한 (?) 경험을 하고 나서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심플하게 답변 드리자면 그때 함께 창업했던 공동대표와 지금도 함께 창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사업에 어드바이스를 주었던 친구도 얼마전 C레벨로 합류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경우, 어떤 친구는 MCN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정보보안 엔지니어를 하고 있기도 해요 :-)
각자 삶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