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창업가
내가 중학생 때 개발자로 돈을 벌게 된 이유
만 26세, 딸 둘 아빠의 창업 생존기 1회 : 벤디트 이준규 대표

이준규
벤디트 · CEO

1회 프롤로그: 짧은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규입니다. 극한까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진리를 좇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을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시공간 운영 혁신’ 그리고 영원히 남는 ‘의지’와 이를 넘어서는 ‘실체적인 영생’을 구현하는 데 인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벤디트 팀 사진. (제공 : 이준규)

 

지금은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창업 경험을 갖고 있는 ‘벤디트’ 라는 스타트업에서 CEO 역할을 맡아 팀을 이끌고 있어요. 최근 일인데요, 법인을 설립하고 만 1년차가 됐던 지난 2월에 누적 거래액 100억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40억 원 투자 유치를 하면서 줄곧 주변을 이뤄 왔던 세계관을 부수고 확장할 수 있었어요.

투자를 유치하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2022년은 제게 인생의 변곡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내림이 있었던 삶을 토막 토막 정리하면서, ‘유년기’, ‘결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경험, 창업에 관한 배움(Lesson Learned)을 공유합니다.

이 글이 꼭 필요한 분께 영감이 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딸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 (제공 : 이준규)

 

때는 바야흐로 Windows XP가 OS시장의 제왕이었던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집에 컴퓨터 한 대가 있고 이걸 온 가족이 나눠 사용하는 게 보편적인 때였죠.

제 어릴 적, 한 일곱 살? 아니 여덟 살쯤. 아버지께서는 모 대기업 주물 공장의 관리직에 계셨는데, 그 때 업무와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전공이 아니셨던 컴퓨터 언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셨었죠. 그렇게 배우신 걸로 엑셀 플러그인 매크로를 만드시는 등 컴퓨터를 가까이 하셨었던 것이 기억나고, 프로그래밍 책들도 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돈에 관련한 여러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남매 합쳐 여섯, 삼촌까지 총 일곱 명이 바퀴벌레가 넘쳐나는 8평 남짓한 집에 모여 살았을 정도였어요. 집 형편이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유년기 그리고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그 때 그 시절. 온 가족이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었다. (제공 : 이준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 한 대 이상의 컴퓨터가 항상 집에 있었어요. 부모님께서는 인터넷으로 필요한 업무를 보시거나, 종종 스타크래프트 MMORPG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는 하셨죠.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저는, 아버지를 따라 스타크래프트에 빠졌어요. 그런데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맵을 만드는 것을 즐겼습니다.

여러가지 규칙들을 설정하면 그 규칙 내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게 만들 수 있는 에디터가 있었는데요. 이를 ‘유즈맵 에디터’라고 불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유즈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와 느끼는 거지만, 여태 살면서 자유도가 높은 게리모드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샌드박스형 게임 말곤 게임을 통해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만든 규칙 안에서 놀게 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 (출처 : Starcraft wiki)

 

정말 친했던 두어 명의 친구들 빼고는 현실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유즈맵을 만들었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만나고, 제가 만든 맵을 다운로드 받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좋아했었죠.

그러나 유즈맵이란 건 근본적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존재하는 자원’만 이용해 게임에 특정한 규칙성을 부여해야만 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답답함이 생겼습니다.

인벤토리 창 같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없을까? 커스텀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그런데, 조금 더 깊이 공부하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리소스까지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트리거가 있었어요. ‘EUD 트리거’라는 개념이었어요. 기존의 트리거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결함, 버그를 이용해 게임 외부의 리소스를 게임 내부의 법칙 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깨고 외부에서 주입된 자원을 활용해 나만의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맵을 만드는 EUD 트리거 화면. (출처 : 블로그 강좌)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제 인생을 통째로 결정짓게 된 ‘Aha-moment’를 겪었습니다.

  • 첫 번째. 가족 또는 친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연결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해줄 사람을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고,
  • 두 번째. 스스로 정해진 규칙이나 한계를 깨부술 수 있는 무엇인가에 환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렇게 EUD 트리거를 공부하면서 ‘스크립트’의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엄밀히 말해 제 인생 첫 번째 프로그래밍 경험이었죠.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내고 나니 동시에 이런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저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네이버와 구글에 검색해가며 웹 사이트를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이걸 서버에 올리고, 도메인을 붙인 서비스로서 이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만드는 것들의 가치를 누군가는 굉장히 비싸게 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2010년 jQuery 1.4.4 릴리즈 후 블로그. 이전 자료들. 자체 홈페이지 등은 여러 이유로 상당 부분 유실됐다. (제공 : 이준규)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08년, 그렇게 만들어 낸 제 첫 번째 홈페이지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제가 겪었던 여러가지 시행착오들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을 수 있도록,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블로그 조회수도 높아지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열심히 답변을 달았죠. 그러던 와중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작은 게임 사업체 홈페이지를 제작해달라는 의뢰가 담긴 메일을 처음으로 받게 되는데요, 그게 제 경제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2010년에 직접 작성했던 마인크래프트 서버 및 플러그인 개발 스터디 게시글. 마인크래프트는 2009년에 등장했고 2011년 말에 공식 출시됐다. 이 글을 기준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개발자들이 마인크래프트 서버와 플러그인들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설 서버들이 개설되면서 국내 마인크래프트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 (제공 : 이준규)

 

1회 에필로그: Lesson Learned

 

어릴 때부터 많이 뒤쳐져 있었어요. 유치원 생활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올라간 초등학교에서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글을 몰랐고, 받아쓰기 빵점을 계속 맞아서 패배하는데 익숙해졌고, 다른 사람들보다 몇 년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가 유지됐거든요.

초등학교 5, 6학년을 지나면서 며칠씩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 있고는 했습니다. 그 이유는 좋지 못한 집안 형편에 잘하는 것도 딱히 없고, 공부도 못하고, 어떤 변수가 또 작용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죽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뭔가를 빠르게 찾아야 한다는 불안을 느끼게 했어요. 집에 있는 컴퓨터는 한 대, 남매는 네 명이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최대 컴퓨터 사용 시간이 자연스레 제한됐음에도 모두 잠든 새벽 시간에 늘 깨어 있으면서 몰래 컴퓨터를 켰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하곤 했어요.

 

어릴 때 수 없이 되뇌었던 문장. (제공 : 이준규)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니었죠. 사실 성장기 내내 컴퓨터만이 아니라 체육, 음악, 기타 다른 영역에 아주 다양하게 도전했어요.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런 말을 들어야만 했어요.

 “어떤 분야든 진짜 잘하는 사람은, 공부도 잘 한다.”

이런 피드백만 남으니 패배자의 기분을 느껴야만 했죠. 그러나 컴퓨터를 공부할 때는 달랐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정해도 나를 모르는 인터넷 속 사람들은 저를 인정 해줬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별로 잘 하는 게 없었어요. 인터넷을 통하면 더욱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반복되면서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갔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는 100명 중 1명이 공감하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1%라니 작아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1%라면 어떨까요? 전 세계 인구는 70억이고 이 중 50억은 인터넷을 통해 연결돼 있어요. 50억의 1%는 5000만 명. 인터넷을 통해 1%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필적하는 공감이 될 겁니다. 

인터넷은 이렇게 가치 전달을 촉진하는 매개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경험을 전함으로써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더 큰 믿음과 용기를 얻으시길 바라요. 내일부터는, 인터넷을 100% 활용하면서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 가치를 레버리지 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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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본적 없는 것들을 믿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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