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고 싶다면 'ㅇㅇㅇ'에 집중하세요
페이스북-뱅크샐러드-스탠포드 MBA 도전 이어가는 천인우 님 이야기

김지윤
· 에디터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론 인생이 벽돌로 뒷통수를 칠 때가 있다. 그래도 믿음을 잃지 말라.)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특히 위 구절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죠. 

애플 창업가였던 잡스는 애플에서 해고된 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다음 도전을 이어갔어요.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 등 굵직한 회사 설립에 이바지합니다. 넥스트는 애플에 인수되면서 잡스의 복귀 신호탄이 됐어요. 여기서 얻은 교훈이 ‘새옹지마’라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개발자 천인우 님은 여전히 이 연설을 찾아 듣습니다. 러닝머신에서 운동할 때도 종종 이 연설을 듣는다고 해요. 페이스북 엔지니어,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 뱅크샐러드 리더를 거쳐 스탠포드 경영학 석사(MBA)에 도전하는 그. 두려움을 넘어서 도전하는 삶의 자세는 그에게 습관처럼 보입니다.

“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으면 세상의 잣대나 주변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선택을 해나갈 수 있다. 그렇게 안전지대를 깨고 나가니 더 많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지대에만 머물렀다면 평생 보지 못했을 삶의 가능성이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미 실패한 일을 후회할 것인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것인가?’ 이 질문을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럴 때마다 내면의 대답은 늘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천인우 저 <브레이킹 루틴 : 원하는 인생은 늘 안전지대 밖에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훌쩍 떠났던 이유, 실리콘밸리 페이스북에서 일했던 경험,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 하버드와 스탠퍼드 MBA 모두 합격한 비결까지. 나만의 스토리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천인우 님은 ‘몰입할 문제’를 찾아 도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대중에게 채널A <하트시그널>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에게 들을 이야기가 더 많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eo와 이야기 나누는 천인우 님. (출처 : eo스튜디오)

 

매일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3가지 관점

 

Q.학창시절에 인우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2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일단 제가 고등학교 때 살이 되게 쪘었어요. 지금도 마른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때는 거의 100kg가 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곰이었어요. 처음에는 싫었지만 하도 들으니 제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제가 영어 토론대회를 나갔던 적이 있어요. 그날 처음 본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요. 좀 짓궂은 친구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중에 커서 인우는 배 나온 아저씨가 될 것 같아. 신문지 이렇게 펼쳐 들고 스레바 끌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무 서슴지 않게 말하고 주변 사람들도 무언의 동조를 하는 듯했어요.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제 이런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게 싫더라고요. 이 루틴을 깨고 싶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줄넘기를 거의 2천 번씩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고, 끼니도 평소보다 20% 덜 먹었어요. 그렇게 3개월 만에 한 17kg를 감량했습니다.

 

Q.학창시절 이 경험이 터닝포인트(전환점)이 됐겠네요.

세상에 여러 가지 편견이 존재하잖아요. 인종, 학벌, 지역 등등. 그 중 유독 한국에서는 외모에 대한 편견이 심한 듯합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 편견의) 피해자가 그 사실에 익숙해진다는 것이에요. 

실제로 제가 그런 입장에 있었고, 그걸 깨고 나온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시절 다이어트는) 제게 주어진 것들, 사람들이 저에게 거는 편견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해 애쓰면서 ‘나를 바꿀 수 있구나’ 깨닫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천인우 님의 모습. (제공 : 천인우)

 

Q.학창시절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충격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순위권에 들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만큼 성과가 나오기도 했었는데,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노력을 들인 것에 걸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였어요. 그래서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성적이 뛰어난 걸 알 수 있었죠. 친구들이랑 같이 놀았는데 나만 도태되는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고민하게 됐어요.

또 다른 편견을 마주하기도 했어요. 외국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학교에 많았어요. 반면에 저는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조별 과제를 맡았을 때 조장 같은 중요한 역할이 제게 오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죠.

 

Q.이렇게 좌절하는 순간에 인우 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일단 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상황을 인정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러고서 작은 것부터 쌓아 나가는 시도를 많이 했어요. 작은 성공 경험이 모여서 나중에 큰 영향력(임팩트)을 낼 수 있는 길을 보여주리라 믿었어요. 제가 수학을 잘 한다면 아침 공부 시간에 엄청 쉬운 수학 문제를 먼저 풀어요. 아침부터 성공했던 경험으로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요.

중학생 때까지는 자신만만 했다가 고등학생 때 이런저런 좌절을 맛보고 그걸 이겨내면서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냈다고 봐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를 맞닥뜨려야 하는지 습관이 쌓였고,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머슬(근력)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Q.편견이나 좌절을 맞닥트리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데, 대단하시네요.

제 인생 모토가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비관론자, 장기적으로는 낙관론자. 앞에 닥친 일 하나하나에는 계속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조금이라도 완벽하게 처리하고 조금이라도 퀄리티 높게 해내려면 그렇죠. 하지만 그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손을 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요.

‘설사 이 결과가 좋게 안 나오더라도 내 인생을 크게 길게 봤을 때는 나는 결국에 잘 될 것이다!’

결국엔 다 잘 되겠지, 어찌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죠. 이 덕분에 한 번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고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멘탈 관리가 되는 듯합니다. 장기적으로 제가 제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니까요.

 

Q.어렸을 때부터 이런 모토를 갖고 계셨나요?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훈육하는 방식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노력을 안 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화를 내셨어요. 예를 들어 제가 수학 시험을 보거나 친구들이랑 같이 조별 과제를 해야 했을 때 제가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더 혼내셨죠. 하지만 해야 하는 부분이 끝났을 때 그 결과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항상 말씀해 주셨답니다. 제가 알게 모르게 스스로 가슴에 새기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한국을 떠나 큰 꿈을 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Q.카이스트(KAIST)에 입학했다가 3개월 만에 자퇴를 하셨어요. 

맞아요. 카이스트는 2월 진학이고, 미국 대학 결과는 한 4월쯤 나왔어요. 3개월쯤 카이스트를 다녔던 거죠. 그때나 지금이나 뛰어난 친구들을 많은 곳이에요. 다만 당시에는 ‘정해진 인생을 걸어가게 되는 걸까?’라는 막연한 답답함이 있었어요. 

‘어떤 회사는 안전한 선택이고, 어떤 회사는 모두가 가고 싶고’

마치 학교에 지원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대화가 흘러갈 때가 많았어요. 그런 기준을 제가 진정으로 원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고요.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어린 마음에 ‘이러다가 내 인생이 이대로 흘러가 버릴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Q.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선택지일 수도 있으니까요.

행정실에 가서 자퇴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행정실 직원 한 분이 말리셨어요. ‘뭐 하러 자퇴하느냐, 이렇게 좋은 학교에 와서 보장된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왜 자퇴하느냐, 그냥 학교 다니지 그러냐’. 

아이러니하게도 그 얘기를 듣고 더 확실하게 결정했던 것 같아요. 바로 카이스트 자퇴서를 제출했고, 그해 8월에 미국 UC버클리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Q.‘보장된 인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고 느끼신 계기가 따로 있나요?

고등학교 때 해외 봉사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특히 네팔에 갔을 때 제 눈이 확 트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네팔 청각장애우 학교에 가서 제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했던 적이 있어요. 언어가 안 통하고, 제가 수화를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너무 힘들었죠. 결국 반쯤 포기 상태에서 제가 당시에 가져갔던 노트북에 있는 영화를 보여줬어요. 

어린 마음에 시간을 좀 떼워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학생들이 너무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나중에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저한테 너무 감사하다면서 해주신 말씀이 되게 감명 깊었어요. 

‘오늘 보여주신 영화가 어떤 친구들한테는 인생에서 처음 본 영화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오셔서 네팔 친구들한테 처음으로 디지털이라는 경험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주신 게 되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입시 과정을 거쳐 카이스트라는 좋은 학교에 갔지만, 네팔에서 했던 그 경험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만 계속 살던 제가 글로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해진 길을 가야 하나 의문이 커질 무렵, 자퇴를 결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돼 준 경험이었습니다.

 

 

Q.UC버클리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UC버클리에서도 가장 학업량이 많다는 EECS(Electrical Engineering and Computer Sciences)라는 전공을 택했거든요. 전기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같이 공부하는 파트에요. 다음 날이 기말고사인데 그 전날 새벽까지 프로젝트를 하곤 했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공부하려고 밤을 새는 게 일상이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일화도 있어요. 4시간짜리 기말고사를 치르는 날이었어요. 2시간쯤 기말고사를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시험 감독관에게 한 시간만 자야겠다고, 한 시간 자고 일어날 테니까 좀 깨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실제로 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시험을 마무리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Q.원래 컴퓨터 공학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요?

컴퓨터를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처음 버클리에 입학했을 때는 사실 전공을 정하지 않는 언디사이드(undecide)로 들어갔어요. 한국에서 유학을 간 친구들은 대부분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으로 삼으니까 저도 그럴까 고민하던 찰나, 필리핀계 친구 하나가 컴퓨터 수업을 한번 들어보자고 했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그 수업을 듣게 됐어요. 

그렇게 기초 컴퓨터 공학 수업을 듣게 됐는데, 정말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진짜 매일매일 뇌가 깨어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냥 그 재미에 이끌려서 EECS를 전공으로 하겠다고 학교에 말했습니다. (재미가) 아니었으면 아마 일찌감치 전공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Q.UC버클리에서는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은 안 하셨나요?

제 동기들한테 물어봐도 그 당시에 제가 동아리 활동 같은 것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할 겁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도 시간을 쪼개서 제 학업에 집중했던 시점이에요. 

다만 팀 플레이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가 한번 있었어요. 제가 학교 스쿼시 팀에서 스쿼시 선수 생활을 했었어요. 미국 학교 스포츠팀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혀 스쿼시를 못하는 상황에 그 팀에 들어가서 20명 팀에서 항상 20등을 했죠. 

다행히 트레이닝을 거듭하고 학년이 올라가니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경기에 나가게 됐어요. 9등이 돼서 9번째 멤버로 나갔어요. 그때 미 해군사관학교 팀이랑 경기를 했습니다. 한 경기마다 11점을 내는 대결인데, 제가 2점밖에 못 냈어요. 

너무 창피하고 팀원들한테 미안했어요. 그럼에도 그때 팀원들이 저를 보듬어줬어요. 제가 한창 지고 있는 상황까지도 경기장에서 떠나지 않고 응원해 주던 기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내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도 주변에서 이렇게 응원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 있겠구나.’

내가 열심히 하고 나만 잘나고 내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를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주변 사람들도 많이 챙기고, 제가 속해있는 커뮤니티에도 환원(give back)하려고 노력하며 살게 됐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배운 ‘잘 나가는 회사의 특징’

 

Q.여러 실리콘밸리 회사 중 왜 페이스북을 선택하셨나요?

페이스북을 제일 가고 싶었어요. 2014년쯤에는 페이스북에 입사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았어요.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핫한 기업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기준은 ‘제가 어떤 임팩트를 주고 싶은지’였어요. 제가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낼 일터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이 최대한 큰 임팩트를 냈으면 좋겠고, 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부합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페이스북이 디지털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플랫폼으로 다가왔어요. 해외 봉사로 만났던 네팔 친구들과도 페이스북으로 교류할 수 있었고, 군대에 있을 때도 페이스북을 통해 바깥 세상과 소통했으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고, 그걸 줄일 때 임팩트와 보람이 엄청 크다는 걸 알기에 페이스북이라는 회사에 가면 (임팩트를 주는)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Q.페이스북에 입사했을 때 생활이 궁금합니다.

정말 뛰어난 분들이 많았어요. 덩달아 제 뇌가 많이 열렸던 것 같아요. 일례로 미국 예일대 출신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여러 컴퓨터 언어를 잘 쓸 줄 알고 수학적으로도 너무 뛰어났어요. 근데 그 친구가 6개월 만에 회사를 나가더라고요. 왜 회사 나가냐고 물어보니 갑자기 방탈출 사업을 시작한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뛰어난 데다가 사업을 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뛰쳐 나갈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흥미롭다고 느꼈어요. 반대로 제가 부족한 게 많다, 도전 정신이나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었고요. 그걸 알게 돼서 감사했어요. (주변 동료들로부터) 계속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조성돼 있는 것이니까요.

 

 

Q.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는데, 인우님께는 어땠나요?

회사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만큼 책임이 따라요.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개별 사원의 일 욕심도 대단해요. 다들 열심히 하는 게 기본인 곳이죠. 개인적으로도 정말 여기서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냥 바로 전선에 던져놓고 일에 임해야 하는 환경이었으니까요. 

대신에 열망이 있다면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제가  코드를 올리고 코드 리뷰 요청을 해두면, 자고 일어났을 때 팀원들 코멘트가 몇 십 개씩 달리고는 했어요. 그러면 이 코드를 꼭 유저들한테 내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지더라고요. 페이스북에서 보낸 첫 해에는 이런 열망이 쌓이고 쌓여서 더 열심히 하는 선순환 구조였습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회사라서 실리콘밸리 본사도 있고, 뉴욕이나 싱가포르 등등 여러 곳에 지사가 있잖아요. 즉, 24시간 내내 누군가 일하고 있는 거예요. 잠에 확실히 드는 시간 빼고는 제가 맡은 부분에 관해서 항상 서포트를 해야 했어요.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었던 회사였습니다.

 

Q.페이스북에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페이스북 공식 블로그가 있어요. 여기에 한 달에 1개쯤 글이 올라갑니다. 2년차 사원이었을 때 여기에 제 작업이 소개됐던 경험이 있습니다. 

페이스북 플랫폼이 아닌 외부 사이트에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를 임베드 하는 기능이 그 당시만 해도 없었어요. 간단해 보일 수는 있어도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 고려해야 될 사항이 상당히 많은 것이었죠. (페이스북에 영상 콘텐츠를 올리는) 클라이언트 분들이 원했던 개발 프로젝트였어요. 

그 분들이 페이스북에 이 기능이 있다면 좋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진짜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매니저는 당장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개발 아이템을 제안했어요. 

저는 좀 더 재밌으면서 유저에게 필요한, 도전적인 기능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임베딩 기능이 좀 더 페이스북의 임팩트를 키울 것’이라고 팀 내부를 설득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이 기능이 잘 구현돼서 결과적으로 페이스북에 기여할 수 있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페이스북 공식 블로그에 소개되면서 나중에는 승진을 하게 됐습니다.

 

페이스북 영상 기능 관련 발표를 진행하는 천인우 님. (제공 : 천인우)

 

Q.페이스북에서 일하며 겪었던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서로 성공을 챙겨준다’는 문화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타인을 도와주지 않고서는 커리어 성장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형태로 구조가 짜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컨대 반기마다 1번씩 하는 성과평가 기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피드백이 이뤄져요. 그 중에서 ‘감사합니다 툴’(Thank you tool)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걸 사용하면 회사 내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어요. 옆에 앉아 있는 팀원이 내게 이런 도움을 줬다면 이에 대해 감사함 표시를 입력하는 것이죠.

이게 데이터로 축적이 되면 사내에서 그래프로 만들어서 공개합니다. (서로 도움이 됐다는 것을) 시각화를 해서 직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사기도 북돋고, 내가 더 많은 도움을 줘야겠다고 마음 먹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팀 선택의 자유도가 높다는 것도 (성공을 챙겨주는 문화에) 한몫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일했을 때는 어떤 팀에 모인 5~6명이 특정 문제를 풀기 위해 모여요. 남이 시켜서 만들어진 그룹이 아니라 ‘우리는 이 문제를 풀 거야’라는 스탠스에서 시작한 그룹이기 때문에 서로 도와줄 수밖에는 없어요

만약 내가 (타의에 의해) 어떤 팀에 배치된 것이라면 이 팀에서 내가 돋보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페이스북의 여러 시스템이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봅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Q.인우님 얘기를 들어보니 페이스북의 전성기를 경험하고 나오신 것 같네요.

(페이스북이) 가장 핫할 때 입사했던 게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첫 직장생활을 너무 잘 나가는 기업에서 성과가 나는 프로젝트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리 대의를 향해서 함께 나아간대도 계속 실패만 하면 사기가 꺾일 수가 있는데, (페이스북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각자 팀원에게 성공 경험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걸 알았어요. 여기에서 얻은 경험으로 지금까지 제가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페이스북에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던 인우 님은 돌연 사표를 썼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뱅크샐러드’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에 리드급으로 합류하죠. ‘도전 정신’. 한국에서 미국으로 갔을 때와 같은 이유로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된 거죠. 대기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이었습니다.


 

페이스북 퇴사 후 한국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

 

Q.페이스북에서 안식년을 가질 정도로 커리어를 쌓으셨다고 들었어요. 

페이스북에서 5년 정도 일하면 직원들한테 한 달의 휴가가 주어졌어요. 제 개인 휴가까지 붙여서 한 달 넘게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죠. 덕분에 레벨 5단계가 되고 나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습니다. 

개발 직군에 한해서 말씀드리면 대표적인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입사할 때 레벨 3을 줍니다. 한 번 승진하면 레벨 4가 되고, 이후 5~9까지 올라갑니다. 레벨 3~5 사이에는 N년 이내에 승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거예요. 여기에 못 맞추면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심각한 면담에 들어가게 돼요. 

레벨 5부터는 종신(테뉴어) 레벨이라고 불립니다. 이때부터는 일정 수준의 자율권, 선택권이 주어지죠. 레벨 6으로 승진을 안 해도 큰 문제는 없어요. 레벨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가 커지기 때문에 일과 삶의 밸런스가 중요하신 분들의 경우 일부러 레벨 5에 머무르고 싶다고 가감 없이 말씀하세요.

저도 레벨 5의 개발자였기 때문에 이 루트를 선택할 수도 있었어요. 주변에서 이 루트를 선택하는 친구들은 각자 확고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였어요. 허나 제가 이 루트를 택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상상해보니 (나만의 이유가 없다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았죠. 

 

Q.계속 레벨이 올라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퇴사를 결정하신 계기가 있나요?

결정적인 계기 하나를 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 무렵 저는 ‘내가 밖에 나가서 다른 일을 했을 때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런 시점에 안식년을 갖게 되면서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에 대해 들으며 시야가 넓어졌어요. 페이스북이 대기업이긴 하지만, 이 작은 세상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라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고 느꼈어요. 한 번 뛰쳐나와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Q.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것처럼 ‘도전’에 목마르셨던 것이네요.

아버지의 영향도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시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셔서 기술 스타트업의 CEO로 평생 일하시다가 은퇴하셨거든요. 

어찌 보면 1980년도만 해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한국에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었어요.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이었고요. 그걸 뒤로 하고 한국의 기술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고 싶다는 사명을 지키셨다는 게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와 휴가 기간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세계에서는 기술적으로는 가장 많이 발전해 있다는 실리콘밸리, 여기서 보낸 5년의 세월을 제가 속해 있는 한국이라는 커뮤니티에 환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곳에서 좋은 제안이 있었지만 한국 스타트업으로 오고 싶다는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Q.페이스북이 아니라 천인우로써 무언가 하고 싶어지셨던 걸까요?

맞습니다. 예컨대 페이스북이 콜라보 프로젝트,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하면 여기에 필요한 기관이나 업체를 모집하는 과정이 너무 쉬워요. 페이스북이라는 배에 타려는 선원이 너무 많은 거죠. 그게 없는 곳에 가야지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던 것 같아요.

강연을 해보면서 더 체감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최대한 강연 요청을 수락했어요. 제 얘기를 많이 나누려 했거든요. 헌데 제가 발표했던 내용을 뒤돌아보면 꼭 제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했을 법한 얘기가 너무 많다고 봤어요. 제가 페이스북이라는 회사에서 나온대도 이 회사가 나같은 부품을 새로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품이 되는 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어떤 부품이 돼야 하지 않을까, 부품이 아니면 더 좋다, 그런 마음으로 퇴사를 결심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에 들어가는 게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후광을 뒤에 업고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더 많이 해내는 데에 싫증이 났달까요. 결국 회사가 잘 나가는 건 회사가 잘 나가는 것이고, 내 입장에서는 내가 단단해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잘 나가는 회사에 가는 게 아니라 내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보고 스타트업에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조직 만들기

 

Q.뱅크샐러드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데이터 파운데이션’이라는 조직의 팀장을 맡았습니다. 뱅크샐러드 제품을 만드는 다른 팀원들이 쓸 만한 데이터 툴을 만들어 드리고, AB테스트 등을 통해 좀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조직입니다.

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컨셉을 좋아해요.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도) 물론 직관에 기대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항상 숫자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명확했어요. 그 문화를 한국 테크 기업에도 가져오고 싶었죠. 제 역량을 가장 발휘할 수 있는 팀이 어딜까  했을 때 데이터 파운데이션 조직이 잘 맞는다고 봤습니다. 

 

Q.팀장으로 일하면서 새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완벽주의를 내려놓게 됐어요. 학창 시절에는 내가 끝낸 결과물을 보고 성적을 딱 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시험이든 프로젝트든 점수가 100점 만점에 N점. 그러다 보니 완벽주의가 안 생길 수가 없었어요. 근데 일할 때는 다르더라고요. 내가 밤 새서 완벽하게 했다 해도 다른 팀원들이 보면 항상 고칠 부분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제가 보기에 한 70%쯤 완성해요. 그러면 항상 팀원들한테 선공유를 하고 피드백을 받으려 합니다. 학교와는 다르게 일터에서 하는 작업들은 대부분 ‘팀플레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되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의 못난 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남들에게 여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랬고 아직도 그런 면이 있어요. 그럼에도 (팀장으로 일하면서) 최대한 자주 작업물을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을 받는 경험을 드리려고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뱅크샐러드 사무실에서 찍은 사진. (제공 : 천인우)

 

Q.피드백을 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일단 내 허점이 있어도 여기에 대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팀원들의 자세가 필요해요. 그 어떤 허점이나 잘못한 부분들에 대해서든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걸 수용하는 나의 자세도 중요하고요.

 

Q.스타트업과 페이스북에서 일했던 경험의 차이는 없었나요?

뱅크샐러드와 페이스북의 차이점은 (국가가 다른 것보다도) 회사 규모나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페이스북은 너무나도 많은 인프라가 준비돼 있고, 제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이걸 물어볼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아요. 모든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입니다. (회사의 성장 단계마다) 상황이 다른 거죠. 

스타트업에서는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문화도 필요하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있는 문화를 (스타트업 조직에) 그대로 들여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스스로 성장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 같네요.

 

Q.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힘드신 점은 없었나요?

나름대로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도전이었어요.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아니었거든요. (감사하게도) 나중에는 제가 PO(프로덕트 오너) 역할을 맡아 제품 개발을 하거나 회사 로드맵 짜는 일, 투자자 IR 피칭 등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여러 역할을 맡겨 주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회사의 CEO와 굉장히 가깝게 일해볼 수 있었다는 게 특히 좋았습니다. 페이스북에 다닐 때 제가 (페이스북 창업가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고충을 알 수는 없었어요. 뱅크샐러드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대표의 고충을 알 수 있어서 그 경험에 정말 감사했어요. 

또한 한국의 테크 업계 종사자들 중에 굉장히 뛰어난 분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보다 성장하려는 열망도 더 크고요. 그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면 (한국 기업들이)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에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얻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제가 페이스북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시간 관리법’

 

Q.현재는 미국에서 MBA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앞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의 선택도 그런 맥락에서 내린 것이에요. 뱅크샐러드에 다니면서 한국 스타트업에 기여하는 경험을 했다면 이제는 좀 더 큰 규모의 임팩트를 주고 싶다고 느꼈어요. 저에게 글로벌 네트워크가 더 있다면 좋을 것 같고, 제게 부족한 경영이나 금융, 경제 쪽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봤어요.

종합적으로 봤을 때 모든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옵션은 좋은 MBA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는 것이더라고요. (이 경험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뒤지지 않는 글로벌 기업 선두권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Q.회사에 다니면서 MBA 준비를 하긴 쉽지 않으셨을 듯합니다.

그래도 ‘할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라고 납득이 되면 어떻게든 하게 돼요. 둘 다 놓칠 수 없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그 목표에 저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것 같아요.

과거의 제 자신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거 하고서 뭐 해야지’라고 생각해왔다는 거예요. 지금 eo와의 인터뷰도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 다음에 인터뷰에 나가야 옳다’고 항상 여겨왔어요.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고 그 다음 걸로 넘어가는 인생의 연속이었죠.

요즘에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지금 정말 필요하다면 지금 시도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대의에 저를 맞춘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Q.어떻게 하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요?

일하다 보면 ‘뜨는 시간’이 엄청 많아요. 이것만 조정해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요. 미팅 기준도 확고하게 잡아서 때로는 ‘No’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해요. 그 기준이 없는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미팅 자체가 일이 돼버려서 개인 일을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거든요. 

내가 어떤 업무 기준을 가지고 새로운 업무들을 받아들이는지 주변 사람들과 확실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놓고, 이 기준을 준수했기 때문에 주말 시간을 온전히 MBA 지원서 작업에 쓸 수 있었던 듯합니다.

 

Q.MBA 지원 결과는 어땠나요?

감사하게도 하버드, 스탠퍼드 두 학교에 모두 합격했습니다. 제가 제일 가고 싶었던 곳들이에요. MBA 지원자 사이에서는 둘 다 합격한 사람을 ‘유니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당연히 전 세계에서 좋은 커리어를 가진 분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둘 다 붙는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두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다 보니 흔치 않은 경우라고 들었습니다.
 

스탠포드 MBA 합격 메일. (제공 : 천인우)
하버드 MBA 합격 메일. (제공 : 천인우)

 

Q.현재 스탠퍼드 MBA를 하고 계시죠. 어떤가요?

첫 쿼터(분기)가 제일 바빴어요. 항상 출석 체크 하면서 수업이 진행되는 방식이고, 매번 토론식 수업이었어요. 여기 참여하려면 미리 읽어야 하는 문서 양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수업에서는 제가 수업에서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도 제가 준비를 안 하면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수업 준비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학업뿐 아니라 향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어요. 한국 기업과 협업하는 일정도 있고, 스탠퍼드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서 조그마한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자 주말에도 실리콘밸리 여러 기업을 방문하고 주변 테크 업계 종사자를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엄청 빡쎄네요😮 이렇게 다양하게 시간을 쓰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우선 저는 제가 원하는 거를 다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제가 제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지 답이 없는 상태거든요.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인생은 곱셈과 같다고 봐요. 내 인생에 주어지는 기회가 많아도 내가 0이면 다 0일 뿐이에요. 적어도 1, 2, 3쯤 해볼 수 있겠다 판단이 되면 그냥 도전해보는 편입니다. 그 기회들이 주어졌을 때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던 결과를 만들어 놓는 것이니까요.

MBA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해보고, 많은 경험을 해보려 해요. 2년 후에 정확히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정말 몰입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데에 정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Q.인우님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현재는 제가 몰입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게 제 인생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커리어라는 수단은 항상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인생의 스토리라인에서 결정의 순간마다 제 기준으로 선택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본인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남이 원하는 잣대에 나를 맞추면서 살다 보면 본인만의 스토리가 나오기는 쉽지 않잖아요. 내가 이 길을 왜 걸어왔는지, 나의 인생의 철학에 빗대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인생의 선택을 할 때 내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중요하게 가져가려 합니다.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남들이 봤을 때 잘난 내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인생을 사는 나 자신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항상 기억하고 싶어요. 여러 선택지 중 후회를 하지 않을 만한 결정을 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본 아티클은 2022년 1월 공개된 <본인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나요?ㅣ하트시그널 천인우>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뱅크샐러드를 거쳐 스탠퍼드 MBA에 도전하는 개발자 천인우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매주 용기를 주는 이야기
eo 레터를 놓치지 마세요!

Tags

Editor / Contributor
김지윤

콘텐츠,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버츄얼, 뉴즈 공동창업

댓글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