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오히려 사람 냄새 덕분에 흥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레딧입니다. AI 기업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양질의 데이터였고, 레딧은 그런 데이터가 가장 많이 쌓인 곳이었습니다.
레딧은 2024년 상장과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구글과 OpenAI에 데이터 라이선스를 팔았고, 구글 AI 답변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출처가 됐습니다. AI 시대에 꼭 필요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았죠.
그 평가가 뒤집히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레딧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상장 이후 가장 큰 낙폭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번 칼럼에서 짚어 보았습니다.
10월 29일, 레딧의 3분기 실적 발표. 숫자만 보면 나쁠 게 없었습니다. 매출은 1년 전보다 53% 늘어난 8억 9,5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레딧 주가는 30% 가까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이유는 매출이 아니라 스티브 허프먼 CEO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허프먼은 구글 검색에서 들어오는 방문자가 "이번 분기에 의미 있게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10월 한 달 동안 검색 유입이 매주 평균 100만 명 넘게 빠졌고, 이 흐름이 이어지면 4분기 일간 방문자가 10% 넘게 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미국 일간 방문자는 이미 5,07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2%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10월 30일 하루 동안 빠진 29.2%는 2024년 상장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이었습니다.
2년 전, 레딧은 데이터 부자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레딧 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2024년 3월 34달러에 상장한 주가는 2025년 9월 한때 270달러 가까이 올랐습니다. 시장이 열광한 이유는 AI였습니다. 상장 직전인 2024년 2월 구글과 연 6,000만 달러 규모로 알려진 데이터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5월에는 OpenAI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시장이 본 레딧의 가치는 분명했습니다. AI가 사람처럼 말하려면 사람들의 진짜 대화가 필요하고, 레딧에는 20년 넘게 쌓인 질문과 답, 후기와 논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검색어 뒤에 '레딧'을 붙여 검색할 만큼 그곳의 답을 믿었고, 구글 검색 결과에서도 레딧 글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레딧은 AI 시대의 원천 데이터 생산지로 대접받았습니다.
같은 답, 다른 화면
달라진 건 레딧이 아니라 구글 검색 화면이었습니다. 구글은 AI Overviews와 AI Mode를 앞세워 검색 결과 맨 위에서 답을 직접 정리해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답 상당수는 레딧 같은 커뮤니티의 글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사용자는 답을 읽고 나면 굳이 레딧 링크를 누를 이유가 없습니다.
구글 AI 답변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출처가 바로 레딧입니다. 조사 업체 Profound가 2024년 8월부터 1년 가까이 구글 AI Overviews의 인용 출처를 분석해 보니, 레딧이 21%로 1위였습니다. AI 시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데이터 공급자가, 그 AI 때문에 손님을 잃고 있는 겁니다.
허프먼은 실적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은, AI Mode는 트래픽을 보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구글이 레딧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긁어 가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가져가는 양은 그대로인데, 돌려보내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같은 주 구글의 실적 발표에서는 정반대 숫자가 나왔습니다. 알파벳은 3분기 검색 쿼리 증가율이 최근 5년 중 가장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이 검색을 덜 하게 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검색합니다. 다만 답을 레딧이 아니라 구글 화면에서 읽습니다.
데이터를 판 돈으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요? 데이터 라이선스가 포함된 '기타 매출'은 3분기 4,800만 달러로 35% 늘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매출의 5% 남짓입니다. 레딧 매출의 대부분은 광고에서 나오고, 광고는 사람이 와야 팔립니다.
몸값은 사용자를 쥔 쪽이 매긴다
이 구도는 한국 독자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기사를 만드는 건 언론사였지만, 독자는 포털에서 뉴스를 읽었습니다. 독자를 쥔 포털이 기사의 값을 정했고, 언론사는 점점 포털에 기사를 대는 공급자가 됐습니다.
AI 검색은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밀어붙입니다. 포털은 그래도 기사 제목에 링크를 걸어 두었습니다. AI 답변은 링크를 누를 이유 자체를 지웁니다. 원천 데이터를 만든 쪽은 점점 뒤로 물러나고, 사용자와 맞닿은 화면을 가진 쪽이 데이터의 쓸모와 몸값을 모두 쥐게 됩니다. 데이터를 누구 앞에서 보여 주느냐가 값을 매깁니다.
값을 정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광고 단가는 수많은 광고주가 사용자 한 명의 눈길을 두고 경쟁하면서 정해집니다. 데이터 라이선스 가격은 레딧과 구글 두 회사가 마주 앉아 정합니다. 사용자를 직접 만날 때는 시장이 값을 정했지만, 데이터만 넘길 때는 사는 쪽이 정합니다.
구글과의 계약 갱신 협상도 같은 구도 위에 있습니다. 허프먼은 "레딧에 맞는 조건일 때만" 계약하겠다고 했지만, 협상의 무게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구글에게 레딧은 여러 데이터 출처 중 하나지만, 레딧에게 구글은 방문자의 큰 몫을 대 주던 통로입니다.
OpenAI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4년에 레딧 데이터를 사 간 두 회사는 지금 모두 사용자가 답을 읽는 화면을 쥐고 있습니다. ChatGPT의 주간 사용자는 올해 초 이미 9억 명에 달했습니다.
우물을 마르게 하는 답변
레딧의 데이터가 값진 이유는 지금도 사람들이 와서 묻고 답하기 때문입니다. 2년 전 글보다 오늘 올라온 후기가 더 쓸모 있습니다. 새로 나온 제품, 새로 생긴 오류, 지난주에 바뀐 제도에 대한 답은 아직 AI가 배운 적 없는 곳에 있습니다.
AI 답변이 방문을 줄이면, 새로 올라오는 질문과 답도 줄어듭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면서, 정작 우물로 가는 길은 막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Stack Overflow가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개발자들이 묻고 답하는 Stack Overflow는 ChatGPT가 나온 지 6개월 만에 게시 활동이 25% 줄었습니다.
레딧은 사정이 더 무겁습니다. 코딩은 공식 문서와 교재로도 배울 수 있지만, 레딧에 쌓인 건 직접 써 보고, 가 보고, 겪어 본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이 노트북이 실제로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이 동네 월세가 적당한지는 누군가 먼저 겪고 써 줘야 AI도 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글이 줄어든 자리는 AI가 쓴 글로 채워지기 쉽습니다. 2024년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AI가 만든 글을 다시 AI가 학습하는 일이 되풀이되면, 드물지만 중요한 정보부터 사라지고 답이 점점 평범해진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모델 붕괴'라고 불렀습니다.
레딧으로 오는 사람이 줄면서 칼자루는 구글이 쥐게 됐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레딧에 사람이 덜 모일수록 구글이 쥔 칼도 조금씩 무뎌질 수 있습니다.
레딧의 선택은 문을 닫는 것
레딧의 대응은 분명합니다. 4분기부터 미국 밖 일부 시장에서, 로그인해야 대부분의 글을 볼 수 있는 방식을 시험합니다. 외부 개발자에게 열어 두던 공개 데이터 API도 2027년 3월 닫습니다. 로그인 없이 글을 긁어 가는 길을 좁히겠다는 뜻입니다.
허프먼의 표현은 솔직했습니다. "도달을 내주고 참여를 얻게 될 겁니다." 실제로 레딧 수익의 80% 이상은 로그인한 앱 사용자에게서 나옵니다. 검색으로 스쳐 가는 수천만 명보다, 직접 앱을 여는 사람들이 레딧을 먹여 살려 왔습니다.
레딧이 자체 AI 답변 'Reddit Answers'를 키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올해 초 주간 사용자가 1,500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구글 화면에서 끝나던 질문을 레딧 안에서 끝내겠다는 겁니다.
AI로 만든 글이 늘어날수록, 사람이 직접 겪고 쓴 글은 귀해집니다. 레딧이 문을 닫으면서까지 지키려는 것도 결국 그 사람들입니다. 레딧이 사람의 대화가 남은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 이 아티클은 테크잇슈에서 먼저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