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AX(AI Transformation)를 외치고 있다. AI를 도입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처럼 이야기하고, 조직마다 AI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AI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인력을 줄여 고정비를 절감하려는 것일까? 기존 인력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결과물을 생산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업무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일까?
세 가지 모두 AI를 활용하는 방법이지만, 지향하는 조직의 모습은 다르다. 인력 감축은 기존 업무를 더 적은 인원으로 유지하는 것이고, 생산량 증가는 동일한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업무 확장은 기존 직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표에 따라 인력 구성과 업무 프로세스,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까지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일부 기업들이 이러한 목표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일단 AI를 도입하고 구성원들에게 활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바꾼 직무
바뀌지 않는 조직
AI가 직무의 경계를 허물면, 조직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AI를 활용해 코딩을 하고, 영상을 제작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거에는 디자인팀이 화면을 설계하면 개발팀이 구현하고, 영상이 필요하면 별도의 제작 인력이 작업했다. 하지만 이제 디자이너 한 명이 AI를 활용해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AI가 직무의 경계를 허물면?
개인 관점에서는 분명 업무 영역의 확장이다. 그런데 조직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디자이너가 코딩까지 한다면 기존 개발자의 역할은 어떻게 되는가?
영상 제작도 마찬가지다. 디자인팀이 AI로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 영상 제작 조직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두 조직의 업무 범위가 겹치거나 책임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 AI가 기존 직군의 전문성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전문성을 기준으로 나누었던 업무의 경계를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디자이너가 만든 코드를 시제품 수준으로 제한하고, 실제 서비스의 개발과 유지보수는 개발팀이 담당하도록 역할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AI가 아닌 조직이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AI는 직무의 경계를 허물고 있지만, 기업의 조직도에는 여전히 그 경계가 남아 있다. 이것이 AX 전환에서 발생하는 첫 번째 모순이다.
AI는 업무 시간을 줄였지만, 조직의 업무 운영은 그대로다
AI를 활용하면 기존에 일주일 걸리던 업무를 2~3일 만에 끝낼 수도 있다. 개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생산성 향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주일 걸리던 일을 3일 만에 끝냈다면, 나머지 2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은 시간을 쉬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업무를 추가로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음 업무를 앞당겨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 조직 내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2026년 BCG의 글로벌 AI 업무 조사에 따르면, AI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현장 직원의 42%가 매주 8시간 이상을 절약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66%는 절약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직으로부터 충분한 지침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AI로 절감한 업무 시간을 기업이 어떻게 활용할지 합의하지 않았다는 문제
AI로 시간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조직이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오랫동안 MM(Man-Month)과 같은 투입 공수를 기준으로 인력과 업무량을 산정해 왔다. MM은 투입되는 노력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실제 소요 기간과는 다르지만, 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일정과 인력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AI로 실제 투입 공수는 줄었지만 기존 업무 일정과 인력 배분 기준은 그대로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5일의 공수로 산정했던 업무를 AI를 활용해 동일한 품질로 2일 만에 끝냈다면, 절감된 3일을 조직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업무를 빨리 끝냈다고 이야기하면, 그만큼 더 많은 일을 맡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2026년 갤럽의 미국 근로자 조사에서 업무에 AI를 활용한 응답자의 31%는 고용주로부터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AI를 잘 활용할수록 업무는 늘어나는데 평가와 보상은 그대로라면, 오히려 절감한 시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개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의 2026년 연구에서도 생성형 AI 활용으로 업무시간이 평균 3.8% 단축됐지만, 절감된 시간과 업무처리량 증가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자영업자와 전문직 등 업무 자율성과 성과 유인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에서는 생산량 증가가 관찰됐다는 점이다. 이는 AI가 만들어낸 시간의 여유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기술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떨까?
AI로 일주일 걸리던 업무를 3일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기존의 공수와 일정으로 업무를 운영하고 있다면 그 효율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AI로 절약한 시간을 조직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합의하지 않았다면, 개인의 효율 향상이 조직의 성과로 연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했느냐가 아니다. 절약된 시간을 조직이 어떻게 활용하고, 그 성과를 구성원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합의다. AI는 일하는 시간을 바꿨지만, 기업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으로 일을 계산하고 있다. 이것이 AX 전환에서 발생하는 두 번째 모순이다.
큰 조직일수록 AX가 어려울 수 있는 이유
나는 오히려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AX 전환 과정에서 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조직은 오랫동안 분업을 통해 효율을 최적화해 왔다. 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 등 각 직군의 R&R을 구분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기존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AI로 직무의 경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제약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조직의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문제가 된다. 사일로는 조직 내 부서들이 각자의 목표와 이해관계에 집중하면서 협업과 정보 공유에 장벽이 생기는 현상이다.
사일로는 조직 내 부서들이 각자의 목표와 이해관계에 집중하면서 협업과 정보 공유에 장벽이 생기는 현상
AI를 통해 다른 부서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기존 부서가 자신의 역할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부서의 효율화가 다른 부서에는 역할 축소나 존재 이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부서별 성과지표와 책임 구조까지 그대로라면 충돌은 더욱 복잡해진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역시 2025년, 각 부서의 독립적인 AI 도입이 기존 조직의 사일로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업무 공수의 재산정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직군의 업무 시간이 줄었다면 기존 인력과 일정, 부서별 업무 배분까지 조정해야 한다. 한 부서의 생산성 향상이 다른 부서의 역할과 인력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결국 AI로 만들어낸 효율이 부서 간 이해관계와 조정 과정에서 소모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대기업에는 AI 투자 여력과 전문 인력, 기술 인프라라는 강점이 있다. 반면 소규모 조직은 기존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데 유연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쪽이 반드시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AI를 도입할 수 있는 역량과 AI에 맞춰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역량은 별개의 문제다. 어쩌면 AI 시대에는 조직의 규모보다 조직을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지도 모른다.
AX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의 재설계다
기업들이 AX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어떤 AI를 도입할 것인가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AI를 통해 조직이 무엇을 얻으려는지, 그리고 그 목표에 맞춰 기존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인력 감축이 목표라면 축소된 인력으로도 품질과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업무를 재설계해야 한다.
생산량 증가가 목표라면 기존 MM과 일정을 재산정하고, 절감된 공수를 추가 업무에 활용할지, 프로젝트 기간을 단축할지, 구성원의 업무 부담을 줄일지 결정해야 한다.
업무 확장이 목표라면 기존 직군의 R&R을 재정의해야 한다. 디자이너가 코딩할 수 있게 되었다면 개발자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개발자가 담당해야 할 전문 영역과 책임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과평가와 보상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업무량만 늘어난다면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할 동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2026년 맥킨지의 글로벌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가 개인 생산성 개선을 보고했지만, 기업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인 기여를 보고한 비율은 37%였다. 서로 다른 성과에 대한 응답이지만, 개인이 체감하는 효율이 반드시 기업의 재무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이 체감하는 효율이 반드시 기업의 재무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기존 조직구조와 업무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성원에게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국 개인에게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정한 AX는 기존 업무에 AI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업무와 조직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AX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AX라는 신기루
지금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비용은 줄어들며, 조직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기대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미래에 도달하려면 기술 도입과 함께 기존 조직의 역할과 책임, 업무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AI로 업무 시간이 줄었다면 공수와 일정도 바뀌어야 한다. 직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면 R&R도 바뀌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면 평가와 보상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그런 변화 없이 AI 도입률과 생산량만 높이는 것은 멀리서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대했던 효율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조직 내부의 충돌과 조정 비용만 커질 수 있다. AX의 가장 큰 모순은 AI로 기존 업무의 시간과 직무의 경계를 바꾸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 기준으로 만들어진 조직구조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AI는 이미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어쩌면 AX 전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AI를 배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AI가 바꿔놓은 현실에 맞춰, 우리가 익숙하게 만들어온 조직을 다시 바꾸는 일이다.
Author: Shaun
참고 자료
Boston Consulting Group (2026)
AI at Work: Strategy Matters More Than Tools
AI로 절감한 업무 시간과 조직의 활용 지침 사이의 불일치.
한국은행 (2026)
Does AI Adoption Improve Productivity? Effects Over the First Three Years
생성형 AI 활용에 따른 업무시간 감소와 산출량의 관계.
Gallup (2026)
AI Benefits at Work Unevenly Distributed
AI 활용에 따른 추가적인 업무 책임과 조직 내 변화.
Boston Consulting Group (2026)
Five Ways That AI Front-Runners Change How Work Gets Done
AI 선도기업의 직무 경계 및 조직 운영 방식 재설계.
Harvard Business Review (2025)
Don't Let AI Reinforce Organizational Silos
부서별 AI 도입과 사일로 강화의 위험.
McKinsey & Company (2026)
The State of AI in 2026: On the Road to ROI
개인 생산성 개선과 기업 차원의 재무성과 사이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