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디자이너 한 명이 AI 디자인팀을 만드는 법]에서는 AI를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팀처럼 구성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Claude는 PM을 맡고, 이미지 생성 AI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영상 생성 AI는 모션 디자이너가 된다. 그렇다면 이 팀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실제로 여러 프로젝트에 AI를 적용해 보면서 내린 결론은 비교적 명확했다. 인간의 역할은 디렉터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디렉팅은 단순히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디자인 조직에서 디렉터가 하는 일과 상당히 비슷하다.
- 결과물을 보고
- 문제를 발견하고
- 수정 방향을 정하고
- 다시 결과물을 확인하고
- 또다시 방향을 조정한다
AI 디자인에서도 좋은 결과는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AI 디자인팀의 퀄리티는
디렉팅에서 결정된다
한 번의 프롬프트로 좋은 디자인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AI를 처음 사용할 때 가장 쉽게 빠지는 착각이 하나 있다. 좋은 프롬프트 하나만 만들면 좋은 결과물이 한 번에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해도 첫 번째 결과물은 대부분 어딘가 부족했다. 형태는 맞지만 비율이 이상하거나, 스타일은 맞지만 디테일이 과하거나, 전체 분위기는 괜찮지만 프로젝트의 디자인 시스템과 어울리지 않았다. 때로는 80% 정도까지 빠르게 도달했지만, 마지막 20%에서 계속 어긋났다. 처음에는 이것을 AI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을 반복하면서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사실 사람과 작업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디자이너에게 처음 브리프를 전달했다고 해서 첫 시안이 바로 최종안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디렉터는 결과물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 아이콘의 선이 조금 두껍다.
- 전체적인 형태가 너무 둥글다.
- 다른 아이콘보다 시각적 무게가 무겁다.
- 디테일을 조금 줄이자.
- 이전 시안의 비율이 더 좋다.
이런 피드백이 여러 번 오가면서 결과물은 점점 정제된다. AI도 비슷했다. 좋은 결과는 좋은 최초 명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피드백의 누적에서 나왔다.
AI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생성보다 수정이다
AI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생성에 집중한다.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했는지,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가 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생성보다 수정 과정이 훨씬 중요했다.
예를 들어 아이콘 하나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 첫 번째 결과에서는 전체적인 스타일만 확인한다.
- 두 번째에서는 형태를 단순화한다.
- 세 번째에서는 선의 굵기를 맞춘다.
- 네 번째에서는 모서리의 곡률을 조정한다.
- 다섯 번째에서는 다른 아이콘과 나란히 놓고 시각적인 무게를 맞춘다.
이런 수정이 반복되면 처음 생성된 결과와 최종 결과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생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사람이 계속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결과물을 만든다. 하지만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스스로 프로젝트 맥락 안에서 판단해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디렉터가 계속 질문해야 한다.
- 무엇이 다른가.
- 무엇이 부족한가.
-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가.
-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네 가지 판단이 반복될수록 결과물의 퀄리티는 올라간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근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아이콘 작업에서도 이 과정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처음부터 목표하는 아이콘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3D의 입체감이 살아 있어야 하고, 여러 개의 아이콘이 하나의 패밀리처럼 보여야 했으며, 선의 굵기와 곡률, 디테일의 밀도도 일정해야 했다. AI에게 이 조건을 전달하면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아웃풋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 생각과 전혀 맞지 않는 아웃풋이 나오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디렉팅은 실무에서 디자이너에게 하듯이 상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 이미지는 서울 N타워의 3D 아이콘이다. 4단계로 이미지 예시를 구정했지만 실제로는 7차례 이상 디렉팅을 진행해 스타일을 완성했다.
실제로는 7 차례 이상 디렉팅을 진행했다.
몇 차례 수정이 반복되자 디렉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추상적이고 개인의 느낌적인 피드백은 사람도 잘 알아듣지 못하듯이 AI도 알아듣지 못한다.
반복된 디렉팅은 결국 데이터가 된다
여기서 AI 디자인의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나타난다. 사람과 작업할 때 디렉팅이 경험으로 남는다면, AI와 작업할 때는 그것이 데이터로 남는다.
- 어떤 비율을 사용했는지
- 어떤 선 굵기를 적용했는지
- 어떤 표현을 피했는지
- 어떤 스타일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축척된 데이터로 일괄 적용하면 된다.
어떤 결과가 승인되었는지가 계속 축적된다. 처음 아이콘을 만들 때는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몇 개의 아이콘이 완성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미 좋은 결과물이 레퍼런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 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전에 만든 아이콘의 스타일을 기준으로 만들어줘.”라는 지시가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언어로 설명했던 기준이 이제 이미지 자체로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작업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이것은 작은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단순히 결과물을 하나씩 수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정의 기록들이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콘이라면 이런 기준이 남는다.
- 선의 굵기
- 모서리의 곡률
- 오브젝트의 비례
- 디테일의 수준
- 여백
- 시각적 무게
- 금지해야 할 표현
- 선호하는 표현
이 정도가 쌓이면 AI에게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규칙 안에서 변형을 요청할 수 있다. 즉 반복적인 디렉팅은 단순한 수정 작업이 아니다. AI가 따라야 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후의 작업은 급격하게 쉬워진다.
처음에는 느리지만, 다음부터 빨라진다
AI 디자인을 몇 번 해보고 실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만 보면 생각보다 수정이 많다. 프롬프트도 계속 바꿔야 하고, 결과물도 여러 번 생성해야 하며, 사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럴 거면 내가 만드는 게 더 빠른 것 아닌가?” 어떤 작업에서는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AI 디자인의 효율은 첫 번째 결과물 하나로 평가하기 어렵다.
- 첫 번째 작업에서는 기준을 만든다.
- 두 번째 작업에서는 그 기준을 재사용한다.
- 세 번째 작업에서는 이전 결과를 레퍼런스로 활용한다.
프로젝트가 반복될수록 디렉팅 비용은 줄어든다. 반대로 결과물의 일관성은 높아진다. 그래서 AI 디자인의 생산성은 단순히 생성 속도가 아니라 축적 속도로 봐야 한다.
AI에게 무엇을 만들지 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디렉터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나는 좋은 이미지를 상상하는 능력만큼이나 문제를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좀 더 예쁘게.”
- “좀 더 고급스럽게.”
- “뭔가 이상한데.”
이 정도의 피드백으로는 결과가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 분해해야 한다.
- 형태의 문제인지
- 비율의 문제인지
- 재질의 문제인지
- 구도의 문제인지
- 색상의 문제인지
- 디테일의 문제인지
혹은 다른 결과물과의 일관성 문제인지. 예를 들어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어줘.”보다 “외곽 실루엣은 유지하되 내부 디테일을 30% 정도 줄이고, 모서리의 곡률을 기존 아이콘과 동일하게 맞춰줘.” 가 훨씬 좋은 디렉팅이다. AI 시대의 디렉팅 능력은 결국 감각을 구체적인 수정 언어로 변환하는 능력에 가깝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보다 디렉터에 가깝다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을 한동안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디자인 영역에서는 이 표현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한 문장의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결과물을 보고
- 평가하고
- 수정하고
-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다음 결과물에 적용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했다. 이것은 엔지니어링보다는 디렉팅에 가깝다.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AI의 결과물을 보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아는 사람. 앞으로 AI 디자인팀을 이끄는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AI 시대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제작 능력이 아니라 더 정확한 디렉팅 능력일지도 모른다.
Author: Shaun